Former King RAW novel - Chapter 282
281 규화(葵花)(3)
-크크크크크크크!
심령 속 웃음의 가소로움에 강철은 실수를 깨달았지만, 용서는 없다.
크아아아아악!
비명을 지르며 공터에서 발버둥을 치는 강철을 보며 나릉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당할 때는 몰랐는데, 남이 당하니 재미가 쏠쏠하다. 나의 아픔을 공유할 진정한 동생을 만났다.
바르르르!
한참을 고통에 몸부림을 치고, 재차 혼비백산한 후에야 강철은 정신을 차렸다.
‘뭐 이런!’
장인을 뛰어넘어 예술의 경지에 이른 고문 기술자의 진술에 따르면 고통을 초월한 고문은 효용성이 없다고 한다. 오히려 고통의 강약을 적절히 유지한 채로 고문해야 효과가 있었다.
그래서 더 말이 안 되었다. 극한에 이른 육체의 고통으로 정신이 붕괴해도 이상하지 않은데도 온전했다. 마치 금제가 정신이 붕괴하지 못하도록 차단하고 있는 것 같았다.
“어째서 이따위 괴상한 고문이 다 있는 거야?”
“고문이라니, 주군의 은혜를 호도하지 말자. 경건하게 받아들이고 항상 감사하게 여기라고.”
“내가 이딴……? 이 개자식이 나를 가지고 놀아!”
“어허, 말이 지나치네.”
강철은 나릉이 일부러 도발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자신이 욕을 하도록 약을 팔며 속을 살살 긁었다. 이쯤 되자 금제를 가한 원흉보다 이놈이 더 얄미웠다.
‘이 새끼나 그 새끼나!’
-크크크크크크크크.
아, 왜?
이런!
생각도 안 되는구나!
나릉의 대자대비한 자비로운 미소에 강철은 치를 떨었다.
크아아아악!
***
“권로가 흔들리잖아.”
“미안, 나도 모르게.”
“이번에 처음이니까 봐주는 거야.”
“우리 미주는 마음씨도 곱네.”
“아부는 안 통해.”
“아부라니, 세상의 진리지.”
손에 물도 안 묻혀 본 미소년, 미소녀의 표본과도 같은 염산호와 미주였다. 후일 선남선녀가 되기에 충분했다. 오빠와 동생처럼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비무는 계속되었다.
퍼퍼퍼펑!
막 병석에서 일어났음에도 염산호의 권공은 상당히 강맹했다.
염산호는 구음절맥이 치료되면서 삼갑자의 내력을 얻었고, 천무신결을 기반으로 권공을 익혔다.
우웅!
주먹에 서린 청백색의 은은한 기운, 놀랍게도 권기였다. 배운 시간을 고려하면 믿을 수 없이 빠른 성취였다.
스륵!
권기를 받아 내며 절묘하게 흘리는 미주의 대응에 염산호는 혀를 내둘렀다. 비무에 심취하여 내력이 과한 줄 알았는데, 어림 반 푼어치도 없었다.
“미주는 천재구나.”
“수련이 짧은 것치고는 오빠도 꽤 하는 편이야.”
“나는 미주에 비하면 멀었어. 사부로 모시겠습니다. 많은 가르침을 바랍니다.”
“아부하지 말라니까. 진짜.”
염산호가 포권을 하며 스승의 예를 취하자, 미주는 싫다며 콧방귀를 귀엽게 뀌었다. 싫다는 말과는 달리 가르침이 친절하기는 했다.
사제(師弟) 놀이는 계속되었다.
“이거 이렇게 하는 거였어?”
“확실히 금방 배우네. 훌륭한 스승 덕분이긴 하지만.”
“아무렴요, 사부님.”
“오냐, 제자야.”
만난 지 얼마나 됐다고 스스럼없는 미주와 염산호였다. 시간은 중요하지 않음을 보여 주었다. 둘이 가만히 있어도 훌륭한 그림이 나왔다.
부들부들!
그들을 숨어서 지켜보는 네 개의 눈동자가 있었다.
차마 못 볼 꼴을 봤는지, 안 본 눈을 사고 싶은 표정이었다. 서로에 대한 반감 이전에 차오르는 불신이 휘몰아쳤다.
“조소도 아니고, 어째서 저렇게 웃음이 헤프냐고?”
“내 동생이 맞는 건가?”
“양심이 있으면 나한테 한 거 반이라도 해야 하는 거잖아!”
“철호 형이었으면 무자비하게 관절을 꺾었을 텐데.”
“억울해, 불합리다고!”
철호와 태진은 미주의 차별에 치를 떨었다. 염산호가 잘생기기는 했어도, 송호문의 소악마가 저리 줏대 없이 행동할 줄이야. 자신들이 알고 있는 미주가 맞나 싶었다.
“사부님의 말씀이 맞았어!”
“내 동생이 이리 갈대처럼 흔들릴 줄이야!”
“저런 느끼한 놈한테!”
“미주야, 말만 번지르르한 놈이야!”
평생 보기 힘든 철호와 태진의 의기투합이었다. 차별에 응전하는 철호와 동생의 낯섦에 태진은 염산호를 공공의 적으로 규정했다. 사람이 내실이 있어야지, 잘생겼다고 다가 아니었다.
“미주한테도 안 되잖아.”
“안심하지 말라고, 저놈 무공 배운 지 보름도 안 됐으니까.”
“빌어먹을, 천재였어?”
“그래도 우리한텐 안 돼.”
철호와 태진은 염산호의 무공이 궤도에 오르기를 바랐다. 보름도 안 된 초보를 이겼다고 해서 기쁘지는 않았다. 가장 자신감에 차 있을 때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음을 알려 주리라.
파파팟!
미주의 공세에 염산호는 식은땀을 흘렸다.
고사리 같은 손에 삼갑자를 상회하는 공력이 실렸다. 나름 배움이 빠르다고 자부했지만, 주군의 금지옥엽다웠다. 저 나이에 이렇다면 차후 어떤 모습일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털썩!
염산호의 체력으론 여기까지가 한계였다.
여러모로 부족하긴 해도 움직일 수 있어 좋았다. 평생 침상에 누워서 생을 마감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속에 살았었다. 땅에 발을 딛고 서 있다는 사실이 행복했다.
‘강해져야 해.’
주군은 인간의 경지를 아득히 초월한 절대자다. 한 줌이라도 도움이 되려면, 현재로선 불가능했다. 최소한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경지에는 이르러야 한다. 그러고 나야 주군의 명을 수행할 최소한의 명분이 생긴다. 할아버지를 설득할 수도 있고.
“다음에도 부탁해.”
“공짜 아니거든, 나중에 꼭 갚아. 안 갚으면 끝까지 쫓아가서 강제로 받아 낼 거야.”
“아무렴요. 사부님, 말씀 각골명심하겠나이다.”
“오늘은 이만 하산해.”
미주의 귀찮음이 다분한 손짓조차 염산호에겐 마냥 귀엽기만 했다. 하나, 사제로서의 무게는 가볍지 않았다. 현재의 성취로 미주만 한 스승도 없었다.
염산호는 옷에 묻은 먼지를 턴 후 방으로 돌아갔다. 오늘 배운 무리를 체득하기에도 빠듯했다.
호호.
홀로 남은 미주의 입꼬리가 살포시 호선을 그렸다.
잠시 후 종종걸음으로 누군가 나타났다.
“하여간 여우라니까.”
“언니만 하려고.”
“계획은 나쁘지 않아.”
“분발해야지. 내 오빠면.”
“낭군님도 고생이야. 철호 오빠도 그렇고.”
“아빠를 위해서 강해져야 해.”
미주와 황보세령이 입을 가리며 웃자, 소가 멈칫했다. 소는 요망한 두 요물을 대하기가 나날이 껄끄러워졌다. 나이가 들수록 사람과 영물을 막론하고 머리 꼭대기에 있었다.
냥(이놈의 집구석)!
염산호를 대하는 미주의 언행은 철저히 계산되었다. 소와 영성이 연결된 미주는 감각의 범위가 넓었다. 숨어서 지켜보고 있던 오빠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평소에 하지 않았던 모습을 보여 주었다.
“잘생기긴 했지?”
“얼굴 뜯어 먹고 살 거 아니거든.”
“그래도 잘생긴 게 좋잖아.”
“그건 그래. 호호호.”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선남선녀를 보자마자 질색하는 경우는 흔하지 않았다. 있다면 속내를 숨기는 음흉한 사람이니 가까이하지 않는 편이 이롭다.
냥(쳇)!
***
송호문은 손님을 모시는 접객실이 따로 있지 않았다. 사람이 많이 찾지 않으니 별도로 객당을 만들어 봤자 용도가 한정적이고, 관리하려면 비용만 들었다.
그랬거늘, 이제는 옛일이 되어 갔다.
최근엔 청양을 넘어 안휘성 내에서 남궁세가를 제외하면 십대문파에 들어설 만큼 명성을 떨쳤다. 문파를 찾아오는 사람들이 자연히 늘어났고, 적절하게 관리할 필요가 있었다.
늦은 감이 있지만 객당을 짓고 손님을 받았다. 당연하게도 유명 인사를 비롯한 빈객을 위한 객당은 정성을 들여야 했다. 보이는 부분이 전부는 아닐지라도, 최소한 판단을 위한 잣대가 되었다.
귀한 손님을 모시기 위한 객실에 무진과 능백환이 탁자를 두고 앉아 있었다. 새로 지어서 그런지 객실의 내부가 고풍스럽고 깨끗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새것만큼 좋은 것도 없다. 사람들 마음은 다 똑같다. 그래서 새것이 비싼 거다.
“어떻습니까, 강 대협?”
“좋기는 한데, 과한 것 같네요.”
“과하다니요. 차후 대륙을 호령한 문파로 명성이 자자할 텐데, 이 정도는 해야지요. 혹, 비용 문제라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건 제 순수한 성의입니다.”
“이거야 원, 제 머리카락이 온전히 남아나지 않겠습니다.”
공짜라고 하자 손사래를 치면서도 무진은 마다하지 않았다.
풍성한 머리카락과 과도하게 발달한 육체를 고려하면 대머리가 될 가능성은 희박했다. 가문 대대로 모발은 건강한 편이었다.
하나, 방심은 금물이다. 외가의 먼 친척 중에 대머리가 한 분 계신다고 들었다. 젊고 풍성하다고 자신하다간 언제 모발을 셈하게 될지 모른다.
“강소성의 사정은 괜찮습니까?”
“곽가장과 풍검문의 전폭적인 도움을 받아 발판은 다져 놓은 상태입니다. 다만, 다른 상단의 견제가 심해지고 있습니다. 석가장의 만천상회에서 뒤를 봐주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제 도움이 필요한가요?”
“공정한 경쟁은 마다하지 않습니다.”
“암요, 그렇고말고요.”
능백환의 처세는 지극히 합리적이면서도 상도(商道)를 지켰다. 어떤 일이든 도움이 계속되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의존하는 경향이 생긴다. 후일 대륙 상계의 지각변동을 가져올 대상단이 되려면 어려움을 스스로 극복할 줄도 알아야 했다.
원조를 넙죽 받아들였다면 무진은 꽤 실망했을 것이다.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아 내심 만족했다.
“북해와 사막은 최대한 조심스럽게 거래해야 할 겁니다.”
“워낙 규모가 커서 오래 숨기기는 어렵습니다.”
“상단주님의 말씀대로 시중에 물건이 풀리는 즉시 다른 상단도 냄새를 맡을 겁니다. 그 전까지 최대한 물량 확보에 주력하는 편이 나을 겁니다. 당장은 팔아도 될 물건들만 분산해서 판매해야 합니다.”
“판매할 상인과 자금은 여유로운 편이나, 여전히 물건을 호위할 표사가 부족합니다.”
“그 부분은 북해와 사막에서 해결해 줄 테니, 그들을 표사로 고용해서 위장하시면 됩니다.”
능백환은 북해와 사막에 상단의 수뇌부를 보내 놓았다. 개방을 통해 서신을 주고받아 도중에 정보가 새어 나갈 우려는 적었다.
“그들만으로 될지가 문제입니다. 사막과 북해는 대륙과 너무 멀어서 위장해도 티가 날 겁니다.”
“녹림에서 협조할 테니, 어렵진 않을 겁니다. 안 되면 그들도 고용하세요.”
최대한 시간을 끈다 해도, 교역을 통해 물건이 들어오게 되면 어떤 식으로든 정보가 새기 마련이다. 단순 도적 떼라면 우려하지 않겠으나, 일전 상전에 개입했던 자들이라면 위험했다. 어지간한 수준의 표사로는 어림도 없었다.
북해와 사막의 정예와 녹림을 적절히 이용한다면 의심을 최대한 돌릴 수 있을 것이다.
‘정말 빈틈이 없구나.’
능백환은 상당히 놀라고 있었다. 북해와 사막의 원조를 받아 낸 것만 해도 엄청난 일이거늘. 이를 효과적으로 활용할 방안까지 마련해 놓고 있었다.
그래서 더 걱정되기도 했다. 북해, 대막, 녹림 중 어느 하나도 가볍지 않았다. 그들의 힘을 모두 동원해야 한다는 사실이 두려웠다.
“혹, 저들이 우릴 노리는 겁니까?”
“당장은 아닐 겁니다. 그래도 확신은 금물이니 조심할 필욘 있습니다.”
“세간에 떠도는 풍문이 어쩌면 그들일지도 모르겠군요.”
“너무 깊이 파고들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능백환은 무진의 말을 흘려듣지 않았다. 파고들면 위험하다는 일종의 경고였다.
정체도 모르는 자들의 위협을 간과할 수는 없으나, 능백환은 자신의 위치를 망각하진 않았다. 상인은 상인이 해야 할 일이 있고, 무인은 무인이 할 일이 있듯. 어설프게 파고들다간 자칫 계획이 틀어질 우려가 있었다.
“이 능 모는 상계의 일에만 매진하겠습니다.”
“소문이 잠잠해지면 그때 다시 얘기하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