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King RAW novel - Chapter 295
294 사부(4)
철호에겐 네 사부가 내 손에 있으니 알아서 잘하란 협박으로 들렸다. 이제 와 두 번째 사부의 속셈을 고한들, 순진한 첫 사부가 화를 내지나 않으면 다행이었다.
내 발등 내가 찍었구나!
사부의 고단수에 홀라당 넘어가고 말았다. 어쩐지 며칠 전부터 하지 않던 칭찬을 하더라니, 작금의 상황을 위해서 바닥을 금강석으로 깔아 놓은 것이다.
“근자에 철호도 명성을 쌓아 가고 있습니다. 곧 강호에 이름 석 자를 알리게 될 겁니다.”
“제 평생 오늘처럼 기쁜 날은 없을 겁니다. 강 사부의 말처럼 저도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어?
철호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어쩌면 자신이 오해했을 수도 있다. 사부님을 인질로 쓴다고 두 번째 사부에게 이득이 될까? 이러니저러니 해도 자신은 암중 세력과 다툼이 있었고, 위험과 마주했다. 그럴수록 이름은 알려지게 될 것이다.
‘설마 나를 위해서?’
첫 사부의 무공으론 다가오는 위협에 맞서 싸우기는커녕 인질이 될 우려가 컸다. 그러한 사태를 대비하기 위해서 사부에게 서신을 보냈다면 두 번째 사부는 정말로 무서운 분이었다.
앞으로 못하면?
끔찍하다.
‘더 잘해야 해!’
사부님뿐만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라도.
무진은 철호의 눈빛이 바뀌었음을 바로 알아보았다. 사부의 씀씀이를 그제야 헤아린 것이다.
‘짜식, 이 사부는 이렇게나 마음이 넓단다.’
-도망 못 치게 인질로 잡은 건 아니고?
‘어허, 사부가 되어 봐야 이 마음을 알지.’
-내가 알려 준 걸 토씨 하나 안 바꾸고 뻐꾸기처럼 지껄이는 주제에, 할 소리냐?
아무 길이나 가도 북경에만 도착하면 된다고 했다. 불도를 수행해 열반이 아닌 우화등선을 이룬 것처럼, 자잘한 이유 따윈 중요하지 않은 법.
-확실하게 부려 먹으려는 걸 내 모를 줄 알아!
‘안 되겠다. 죽자.’
말도 많고, 정곡을 찌르면 살인멸구…… 살인멸혼인가?
***
산의 공터.
자세를 잡은 무진의 반대편에 신화마정갑으로 된 마왕이 자리했다. 기수식처럼 형식이 있진 않았다. 가장 자신하는 자세를 선호했다.
‘내력은 반반이다.’
-조절이나 잘해.
신화마정갑을 활용하면서 최근에 놀라운 효용성을 찾아냈다. 그것은 내력의 전이뿐만 아니라, 저장이 가능했다. 신화마정갑의 근간이 되는 별의 혈 자리 성혈(星穴)을 단전처럼 활용할 수 있었다. 자체 생성은 어려워도 외부에서 들어오는 내력을 저장하여 사용할 수 있었다.
마왕은 내력을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지속해서 연구했었다. 수도 없이 많은 실패를 통해 찾아낸 방식은 운기행로였다. 신화마정갑 내부에 마왕공의 운기행로를 따라 운용했을 때, 이전에 비할 수 없는 위력을 냈다.
-이번엔 다를 거다.
‘생각을 읽으면 반칙인 거 알지?’
영성을 단절했다. 부동심으로 내면에 철벽을 쳐 사고의 공유를 막았다. 이젠 같은 내력이기는 하나 마왕과 전왕은 개별적인 상태가 되었다.
‘죽여 주마.’
-원하는 바다.
전장의 지배자인 전왕으로 돌아간 무진이었다. 전왕공은 무수히 많은 격전과 혈전을 겪으며 완성되었다. 현재의 무력이 당시보다 강하긴 해도, 전왕으로서의 기세는 남달랐다.
두드드드드!
무진과 마왕이 발산한 무형의 기세가 유형의 파괴를 일으켰다. 다가설수록 지남철처럼 서로를 밀어내자 산이 파도처럼 출렁거리는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휘이이이잉!
하늘과 대지에 항거 불능의 변화무쌍한 파문이 형성되어 격변을 일으켰다. 삼라만상의 자연을 역으로 뒤집어 버리더니 눈 폭풍이 일어났다. 말도 안 되는 순리의 역행이었다.
꿀꺽!
멀리 떨어져 있었다.
강무호, 이서정, 육칠, 강태진, 남철호, 북궁혜, 나릉, 강철이 자리했다. 그들은 무진이 오늘 보여 줄 게 있다고 해서 모이게 되었다. 그런데 가까이 오지 말고, 최대한 멀리 떨어져서 보라고 했다.
‘……저게 사람이야, 귀신이야!’
‘형, 이딴 걸 보여 주면 나보고 어쩌란 거야?’
‘사람이 이토록 파괴적인 기운을 가질 수가 있나?’
‘자연의 조화마저 무너뜨리는, 파천의 기운이잖아.’
‘여태 자신의 진면모를 보여 주지 않았어!’
그저 놀랍다고 하기에는 무진이 보여 주는 파격이 터무니없는 괴력난신이었다. 인간의 기운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다.
그보다 더욱 무서운 것은 둘 사이에서 뿜어내는 기질의 성향이었다.
수라지옥에서 기어 올라온 마신이 이럴까?
살아오면서 경험해 보지 않은 진득한 살기는 섬뜩한 마공마저도 짓눌러 버릴 것 같았다. 밟고 선 대지가 지옥으로 변해 영혼을 집어삼키는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넘지 못할 심마가 찾아와 공포를 증폭했다.
꽈아아아아앙!
전왕과 마왕이 주먹을 교환했다.
극의를 초월한 정중동의 묘리가 사라지자, 허공에서 주먹이 부딪치며 파문이 번졌다. 접점에서 전력이 교환되었다. 부서지지 않아야 할 공간이 유리잔처럼 허무하게 깨져 버린다.
츠으으으!
무형권과는 다르다.
전왕과 마왕의 권장지각은 극한에 이른 기본을 기반으로 했다. 전왕투와 마왕투로 구분이 되지만, 육체를 극한으로 쓰는 형식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니 무공의 극에 이를수록 전왕과 마왕의 무공은 거울에 비친 자신처럼 같아질 수밖에.
퍼퍼퍼펑!
절묘한 타점, 빗나가지를 않는다. 서로의 역량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절기를 담지 않고 기본으로 대했다. 어차피 절기를 써 봤자 통하지 않는다.
절초란, 글자 그대로를 담는다. 상황이 맞물리지 않았을 때 쓰는 절초는 상대에게는 빈틈을 내어 주는 실수의 단초로 작용했다.
전왕과 마왕의 기세는 강하다.
마주 선 상대가 무진과 마왕이 아니었다면, 기세에 짓눌려서 산산조각이 되었을 것이다.
무형과 유형의 구분을 짓지 않았다. 필요에 따라서 실과 허를 요격했다. 빈틈이 생기지 않는다면 창출해 냈다.
경(勁)을 담고, 회(回)를 쓰고, 살(殺)로 격한다.
일반적인 격공이 아닌 타점에서 마왕과 전왕의 심득이 불꽃을 튀겼다. 촌음의 방심도 허용하지 않는, 언제든 잡아먹히는 팽팽한 백중지세가 이어졌다.
전왕투와 마왕투는 전투의 극의로 완성된 전장의 무공이다. 예의와 격식하고는 거리가 멀었다. 적을 말살하기 위한 최선의 수를 찾았다.
후아아아앙!
접점에서 육신의 격전이 이루어지자 산이 버티지 못하고 비명을 질러 댔다. 휘몰아치는 기의 소요는 끝을 모르고 상승하여 거침없이 일대를 가루로 흩어 냈다.
‘재밌네.’
-좋구나.
확실히 이제까지 붙었던 상대와 마왕은 다르다. 과거로 돌아온 무진처럼 마왕도 발전했다. 마왕공이 틀을 깨고, 나아가서 새로운 마왕공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조금은 나아졌네.’
-네놈도.
이 시간이 즐거웠다. 가지고 있는 전력을 쏟아 내고도 승부를 결정짓지 못하는 백중세에 절정의 전율을 느꼈다. 내 모든 걸 토해 내야만 하는 상대, 그것이 마왕임을 부정하진 않았다.
쩌저저적!
충격에 지면의 속까지 타격을 받아 단애처럼 무너져 내리는 광경이 이어졌다. 그나마 범위를 줄였기에 망정이지 경계를 정하지 않았다면 산이 남아나지 않았을 것이다.
무진과 마왕의 격돌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격전이 일어날 때마다 파격이 벌어질 뿐. 빛의 번쩍임마저 관통하는, 뇌성벽력의 경천동지할 격전이 펼쳐졌다.
크크크!
무진은 웃었다.
마왕도 입이 있었다면 웃었을 것이다. 소리 없이 입을 뻥긋거려서 소름 돋기는 해도.
몰아일체.
과거로 넘어온 후 무공의 격을 높였다. 이 정도로 전력을 끄집어낸 적이 없었다. 완벽하다고 여겼던 무공이지만, 승패를 결정짓지 못했다. 그래서 불타올랐다. 이젠 나아가서 반드시 부수겠다는 결의만이 남았다.
처음과는 또 다르다.
정해진 형식이 없기는 했어도, 기본에서 벗어나지도 않았다. 그런 무진과 마왕의 전투가 투박하고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마치 절대고수의 품격 높았던 대결이 시장판에서 벌이는 난잡하고 조잡한 난투극으로 변질된 것처럼.
파아아앙!
타격 위주의 격투가 체술로 변하더니 서로를 맞잡으며 균형을 잃고 튕겨 나갔다. 직선으로 나아간 곳, 솟아오른 봉우리가 폭사하며 사라져 버렸다. 이어서 바닥으로 떨어져 내린 무진과 마왕은 사방팔방에 흙구덩이를 만들었다.
퍼퍼퍼펑!
무공을 처음 익히는, 아니 아예 익히지 않은 자들의 서툰 결전처럼 보였다. 하나, 위력은 말도 못 했다. 어설프게 보이긴 해도 위력은 무시무시하다. 뇌광을 넘어서는 속도전이라 안목에도 한계가 있었다.
전왕과 마왕의 격전이 재차 달라졌다. 중구난방으로 어디로 튈지 몰랐던 격전이 다듬어지고 있었다. 사라졌던 식이 형태를 갖추어 무공으로 변했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야수가 인간의 무공을 익혀 나가는 것처럼,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을 끊임없이 다듬고 마름질하여 형태를 완성해 나갔다.
그리고 다시 기본.
전왕과 마왕은 여전히 격렬한 전투를 벌였다. 지켜보는 자들의 시선은 경악으로 물들어 갔다.
‘같지만 달라!’
‘그 완벽했던 무공을 버리고, 재탄생시켰어?’
‘이토록 짧은 시간에 말이 돼?’
‘……비교가 안 될 지경이잖아!’
내력의 증폭과는 거리가 멀었다. 무공이 비슷하지만 다르다. 전의 무공을 대입할수록 새로웠다.
그제야 깨닫는다.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는 것 같아서 이상하게 보였는데, 무공을 발전시키기 위한 과정이었다.
후우우우!
결착이 난 무진은 숨을 길게 뱉어내고, 깊게 들이쉬었다. 호흡을 돌릴 틈도 없이 쏟아 냈기에 온몸이 땀으로 젖었다.
‘넌 안 돼.’
-빌어먹을!
무진의 단조로운 일격이 신화마정갑의 심장을 꿰뚫었다. 사람이었다면 절명했을 위치였다.
마왕은 패배의 잔향에 이를 갈았다. 이번엔 반드시 성공할 줄 알았는데, 과연 전투의 마왕다웠다. 그새 익숙해져 팽팽함을 단숨에 끊어 내 버렸다. 처음에는 비슷했을지 몰라도, 무진은 전투를 통해 무극을 이루었다.
‘좀 더 노력해. 크크크크.’
-두고 보자.
무진은 이를 가는 마왕의 결의에 만족했다. 오늘의 결전으로 그동안 지지부진했던 무공을 한 단계나 진일보시켰다. 혼자 무공을 익힐 때와는 차원이 다른 성취였다.
이렇게 보면 마왕이야말로 무진에게는 최고의 스승이었다. 마신교를 처리할 때까지 최고의 협력자임을 인정했다.
“오늘 많이 배웠지?”
“……!”
무진의 물음에 다들 합죽이가 되어 침묵이 흘렀다.
‘저걸 보고 뭘 배우라는 거야?’
‘진짜 배우라고 보여 준 거 아니지? 아니라고 해 줘!’
‘우린 그렇게 강하지 않아욧!’
배움도 어느 정도여야 배우지, 자신들로선 감히 따르지 못할 천외천이었다. 배우려고 해도, 배울 수 없는 격의 차이만 체감했다. 갑자기 서러움이 밀려왔다.
이래서 절대고수가 되려고 무인들이 아등바등하는 걸지도.
“이해를 못 하겠네.”
‘이렇게 쉬운데 왜 못 하지?’라는 의문이 압권이다.
모두에게 큰 엿을 선물했다.
다들 무진을 때려 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미수에 그쳤다.
“주먹은 이렇게.”
주먹을 내지를 때마다 산의 능선이 숭덩숭덩 날아갔다. 저 자리에 수천 년 이상을 굳건하게 버텼던 거대한 암반도 겨울철 수목처럼 휑했다.
“발차기는 이렇게.”
수직으로 내지르면 절벽이 생기고, 진각을 밟으면 지진이 발생했다. 자연 재앙의 천지개벽이 인위적으로 일어나는 현장에 있었다.
“그래도 이해를 못 하면 하는 수 없지.”
무진은 받아들이지 못하는 우매한 중생들을 위한 쉬운 방법을 항상 준비해 놓고 있었다. 하물며 지금은 진기를 꽤 많이 소모한 상태였다. 불리함을 딛고 일어서는 협객의 표본처럼, 협공을 마다하지 않았다.
“나 많이 지쳤다.”
그래서, 씨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