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King RAW novel - Chapter 298
297 습격(3)
철호의 하위 호환으로 형, 동생 하기에는 제법 흉악한 면상을 지녔다. 열의 장정 중 가장 흉악하게 생긴 자가 객잔 안을 둘러보다 무진이 앉은 자리로 다가왔다.
“너희들은 잠깐 우릴 따라와야 쓰겠다.”
다짜고짜 살기를 뿜어내는 자들은 적계에서 활동하는 천태방의 방도로, 초기 근방의 왈패들로 구성이 되었다가 외부의 무인들이 자리를 잡으며 커 나갔다. 방도 대부분이 삼류 왈패긴 하나, 이들은 진기를 다룰 줄 아는 이류 무인은 되었다.
똥개도 자기 집 안마당에서는 서푼은 먹고 간다고 하니, 기세가 아주 등등했다. 더욱이 믿고 있는 바도 있었다. 아무나 막 건드리고 다닐 만큼 머리가 나쁘진 않았다.
“동네 왈패들이라 그런가, 무인도 몰라보고. 흑도면 흑도 노는 데로 가라. 괜히 밝은 곳에서 설치다 뒈지지 말고. 고맙지 않냐? 우리가 협사가 아니었다면 칼부터 휘둘렀을 거야.”
“이 새끼가 주둥이는 살았다고 뭐라고 씨불이는 거야! 그런데 어쩌냐? 배가 터지도록 산공독을 처먹은걸.”
“그런데 어쩌냐, 이미 해독제를 먹었는걸.”
“왜?”
“왜냐니, 산공독에 대한 대비는 무인의 기본자세잖아.”
“그런 말도……!”
생각지도 못한 이구동성에 천태방의 명상태는 말문이 막혔다. 설마 하는 심정이었지만, 히죽이는 모습을 보자 불안감이 엄습했다. 산공독을 먹었기에 위풍당당했던 자신감이 서리 맞은 듯 쭈그러들었다.
하나, 허세일 가능성이 컸다. 평소 음식에 산공독이 들었을 때를 대비하는 무인이 있다는 말은 들어 본 적이 없다.
“어디서 거짓말을!”
불신론자들이었군, 안타깝도다.
무진은 눈짓을 보냈다.
쐐액!
이서정, 태진, 철호, 육칠이 번개처럼 튀어 나가 명상태부터 아가리를 털고, 남은 아홉 명을 순식간에 반 조져 놨다.
꾸웨웨웩!
돼지의 멱을 제대로 따 주었다. 각자 놀아야 할 판이 따로 있는 법. 자기 전장이 아니면 물러날 줄도 알아야 한다. 주제를 모르고 아무 판에나 끼어들면 가장 먼저 제사상에 올라가기 마련이다.
천태방을 처리한 무진은 고민하는 척했다. 실제론 무념무상, 색즉시공이지만, 독심술을 익히지 않은 이상 모르겠지.
“쳇, 조심스럽게 움직였는데도 냄새를 맡은 모양이야. 지체했다가는 개떼처럼 몰려오겠지. 남은 건 싸 달라고 하고, 바로 떠나자.”
“그러는 편이 좋겠습니다, 강 대협.”
“독이 남았는지 모르겠네.”
“효과는 확실하니, 괜찮을 겁니다.”
괴의에게 받은 단약을 물과 함께 한 알 더 삼킨 후에 객잔을 신속하게 벗어났다. 오늘은 객잔에서 푹 쉬고 내일 떠나려고 했지만, 추적이 붙은 이상 지체하지 않았다.
추격자를 따돌리기 위해 절강으로 바로 가지 않고, 강소성 방향으로 우회하였다.
마을을 벗어나 산길로 들어섰다. 해가 지기 시작해서 날이 어두워지려고 했다.
찌릿!
초입에서 중턱으로 가는 길에서 감각을 찌르고 들어오는 날카로운 예기가 있었다. 무진과 일행은 일사불란하게 찌르고 들어오는 예기를 차단했다.
채채채챙!
어둠 속 암영을 이용한 암수.
살수의 기본적인 수법으로 보이지 않는 공간에서 기척마저 숨기고 있기에 고수라도 방심하다간 목숨을 잃는다.
쳇!
손바닥보다 작은 단검과 철질려를 던진 후, 보이지 않는 가는 은사를 펼쳐 승기를 보려고 했거늘.
사살연환격이 실패로 돌아가자 사살 팔호는 인상을 찌푸렸다.
살수에게 실패는 죽음.
“죽인다.”
사살 팔호와 스무 명의 살수가 일제히 차륜살진을 펼치며 무진과 일행을 향해 달려들었다. 독특한 형태의 무기는 전면에 내세우지 않았다. 숨긴 후에 펼치듯이 난사하고, 가는 침과 독이 공간을 채운다.
슈슈슈슉!
채채채챙!
일로에 새겨지는 하얀 실선이 한광을 번뜩이자, 일순간 공간에 서리의 장막이 펼쳐지며 순백의 향연을 이루었다.
푸스스스!
빗발치는 암기의 세례가 이서정의 검기에 모래처럼 갈리고 분사되었다.
스왁!
커억!
눈에 보이지도 않는 검의 장막에서 예상된 범위를 무시하고 발출된 검기였다. 검막에 이은 일형기검살(一形奇劍殺)로 살수의 숨통을 끊어 냈다. 제 죽음을 미처 예측하지 못한 동료, 이를 무시하고 달려들지만 검기는 냉혹했다.
서걱!
냉혈무정.
이서정의 검은 한 줌의 빈틈도 허용하지 않는 냉철함을 추구했다. 불도의 정심한 부동심과는 다른 의미의 냉혹한 부동을 구축한 것이다.
사살 팔호의 눈에 경악이 담겼다.
‘……이 계집은 대체 뭐야?’
사람이 선혈을 흘리고 내장을 쏟아 내며 죽어 나가고 있는데도 흔들림이 없다. 죽음의 사선을 수없이 넘지 않고서는 나오지 않을 무심한 기백이었다.
꽈아아아앙!
사살 팔호는 한눈을 팔 때가 아니었다. 차륜살진의 축을 이루는 수하가 폭죽이 터지듯 폭발하며 피육이 되었다. 사방팔방으로 피육의 조각들이 무기가 되어 차륜살진을 와해했다.
휘리릭, 퍼억!
출처 미상의 궤적을 자랑하는 발길질이 혼비백산한 살수의 머리통을 가격했다. 머리의 뼈가 부서지며 겉가죽을 뚫고 나가 뇌수와 처참하게 뒤섞였다.
쌔액!
스와앙!
일로일검의 정도를 지키는 이 혼란 속에서 검의 기본이 펼쳐졌다. 양단하고, 찌르고, 베는 일련의 동작에 살수는 추풍낙엽이 되어 쓰러졌다.
푸욱!
심장을 꿰뚫린 사살 팔호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일급 살수 중에서도 특급을 노렸던 그였다. 가슴을 찌른 검의 대상을 확인하자 치가 떨렸다.
“이 애송이가…… 넌 실수…….”
심장을 찔렀다고 방심한 틈을 노렸던 사살 팔호의 목에 붉은 실선이 횡으로 그어졌다. 목젖이 꿀렁인 다음에야 자신의 목이 베인 후였음을 깨달았다.
스륵, 데루르르르!
태진은 검에 묻은 피를 털어 낸 후 검집에 넣었다. 살인에 적응하기는 했어도, 착잡한 심경이었다. 돈이면 사람을 죽이는 데 망설이지 않는 현실에.
“배운 사람들은 사람 낳고 돈 낳지, 돈 낳고 사람 낳지 않는다고 하지. 한데, 그건 이상적인 세상에서나 통하는 말이지.”
무진은 태진에게 현실의 냉혹함을 숨기지 않았다. 돈의 액수가 문제일 뿐. 사람도 돈 앞에선 등급을 매긴 한낱 고깃덩어리에 지나지 않았다.
“서글프지만, 황제의 목숨값이 일반 백성과 같을 수는 없지.”
다 똑같다고 하는 사람은 위선자다. 반란의 수괴를 죽이는데도 백성 한 명을 죽이는 값을 주면 누구도 하지 않을 거다.
그러나 세상이 그렇다고 해서, 아들이 그리 행동하기를 바라진 않는다. 자신이 바로 서야, 불의에도 맞서 싸울 수가 있었다. 살인을 할 때마다 담아 둔다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심마가 찾아오게 된다.
항상 털어 내고, 비워 내며, 받아들일 줄 알아야 했다. 그래야 다음을 바라보며 나아갈 추진력을 얻는다.
“생명을 소중하게 생각한다면 그것으로 족한 거다. 너는 아직 어려. 대의에 얽매이지 마라.”
“예, 아버지.”
다른 건 몰라도 심마 따위에 지면 안 되지.
그러자 철호가 물끄러미 바라봤다.
“왜, 인마?”
“저도 씁쓸한데요.”
살인마같이 생겨서는.
무진은 입안에서 맴도는 말을 내뱉지는 않았다. 대충 철호를 위로하고 계속 나아갔다. 시간이 그리 많지는 않았다.
내가 아무리 빨라도, 적정한 시간은 필요하다.
하아, 동에 번쩍, 서에 번쩍은 무릎 나가는 짓인데.
“이제 시작이니까, 다들 마음 단단히 먹어.”
“예, 사부님.”
목표물이 나왔는데, 의뢰를 도중에 포기하는 살수 집단은 없다. 실패에 연연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은, 살수를 몰라서 하는 소리다. 실패는 곧 추락을 의미했다. 설령 의뢰에 실패했어도, 충분한 사유가 있어야 한다.
무진의 예고대로 사살곡의 살수들이 밤을 노리며 달려들었다. 야습이 상투적이기는 해도, 여전히 습격에는 제일이었다.
점점 살수의 실력과 숫자가 늘어났다.
하나, 일행의 대응은 여전히 완벽에 가까웠다. 의도치 않은 암수에 상처를 입기는 했지만, 중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오너라, 버러지 같은 놈들!”
무진은 활발하게 주둥이를 놀렸다. 말만 들으면 천하제일도 한 수 접어줄 만하다.
“내가 바로 대송호문의 천권이니라.”
사살곡의 목표는 천운권이었다.
***
꽈득!
이를 악문 사내의 인상이 일그러졌다.
목표물이 집에서 나올 때까지만 해도 이렇게까지 피해가 커질 거라는 예상은 하지 못했다.
사살독검 귀적산에겐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손해에 살의가 폭발했다. 살수를 키우는 데 들어간 돈 대비 의뢰비가 턱없이 부족하다. 가성비가 지랄 같지만, 이대로 포기하기에는 당한 게 너무 많았다.
“다른 놈들은 몰라도 네놈만은 죽여 주마.”
천운권만 처리하면 될 줄 알았으나, 오히려 주변의 방해물이 만만치가 않았다. 천운권의 아들과 데리고 다니는 시종, 개방도가 예상보다 훨씬 강했다. 정작 천운권은 살수의 공격에서 이렇다 할 실적을 올리지 않았다.
“계집의 정체는 알아냈나?”
“소검후로 추정이 됩니다.”
“추정?”
“계집의 무력은 절정의 끝자락이거나, 초절정의 초입에 이른 듯합니다. 소검후는 알려지기로 절정이 아닙니까? 그 시기가 겨우 혈사문을 처리했을 때입니다.”
“또 모르지.”
천재라는 족속들은 하루가 다르게 강해지는 불가사의한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아니면 그간 전력을 숨기고 있었을 수도 있고.
“게다가 자칫 전대의 괴물이 살아 있기라도 하면 뒤를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정체를 숨긴 이상, 흔적만 남기지 않으면 돼. 계획대로 진행시켜. 어차피 우리도 이판사판이야.”
사살곡의 전력을 총동원한 상태였다. 여기서 포기하기에는 손실이 너무 크다. 성공하여 의뢰를 완수해야만 했다. 우리에게 의뢰하면 반드시 죽는다는 인식을 심어 주어야 한다.
‘검후가 살아와도 이번엔 죽는다!’
***
눈앞을 현혹하는 비도의 연환은 아름다웠다. 선과 점이 절묘하게 엮이며 궤도를 예측하기 어렵다. 현혹되어 정신을 잃을 것 같다. 간신히 정심을 유지하여 검을 휘둘렀으나 허상을 베고 말았다.
사륵!
잘려 나간 소매가 낙엽처럼 떨어져 내린다. 여인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언제 자신의 소매를 베었는지 모를 빠름을 지녔다.
“졌어요. 못 당하겠네요.”
“양보에 감사합니다. 적 소저.”
겸양이라고 하기에도 무리였다. 서로의 능력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방금 그게 독왕 어르신의 독행보인가요?”
“그렇습니다.”
적서린도 전력은 아니더라도, 아미파의 경천보신(驚天步身)인 부동명왕보(不動明王步)를 펼쳤다. 그런데도 차이가 벌어졌다. 만약 당문의 소가주께서 진심이었다면 막아 낸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적서린은 확신이 서지 않았다.
“대정신공을 극성으로 끄집어낸 후, 난피풍검법을 펼쳤다면 달라졌을 겁니다.”
“그건 당 공자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당연우는 입을 다물었다. 이쯤 하면 되었다. 그녀의 성취를 가벼이 보지 않았다. 내력 싸움으로 갔다면 승부를 장담하기 어려웠다. 막강한 내력을 바탕으로 하는 아미파의 무공을 견식한 것으로 족했다.
하나, 당연우의 진신은 암기술에 있었다. 여기에 독왕의 만독공이 보태지면서 과거와는 다른 영역에 도달했다.
짝짝짝!
숨을 멈추며 바라본 관전자가 있었다.
그녀들은 당연우와 적서린의 무공에 감탄을 숨기지 않았다. 자신들 또래에서 이보다 강한 무인이 있나 싶을 지경이었다.
“저라면 마지막 초식을 펼치기도 전에 당했을 거예요.”
“승부는 붙어 보지 않는 이상 모릅니다. 하물며 제한된 비무에서 절초를 쓸 수도 없지 않습니까.”
당문의 요청을 받아들인 무당파는 백유화와 백유경을 보냈다. 다른 이들도 있지만, 그녀들의 성취가 근래에 눈에 띄게 달라졌기에 현천도장이 추천한 것이다. 그렇다고 그녀들만 오진 않았다. 무당파에서 청현과 사질들을 함께 보내 강호의 경험을 쌓도록 했다.
“말수가 없으시기에 차가운 분인 줄 알았는데, 세심한 분이셨네요. 물론, 저는 과묵한 사람도 좋아해요.”
“두 여협께선 강 대협의 처제시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우린 남이 아닙니다.”
“형부를 아세요?”
“안면이 있습니다.”
“우린 그런 말 못 들었는데, 아쉽네요.”
당연우는 주군을 언급하려다 급히 강 대협으로 호칭을 바꾸었다. 아직은 관계를 확실하게 밝히지 말라는 당부를 받았다. 혹, 실수라도 알려지면 곤란할 수 있었다.
적서린도 호의를 보였다. 자신이 살아 있을 수 있는 것은 전적으로 무진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때마침 찾아 주지 않았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그날을 떠올릴 때마다 살기를 주체하기 어려울 만큼 분노가 치밀었다.
“저도 한 표 행사할게요.”
“감사합니다, 적 소저.”
당연우는 소가주로서 아미파, 청성파, 무당파에 무인을 보내 달라고 정식으로 요청했다. 이번 신화마정갑을 찾는 데 함께 하자고 건의를 한 것이다.
어떤 일을 하든 수장을 결정해야 했다.
당문이 주도했기에 당연우가 수장으로 나설 수도 있으나, 합의를 보는 편이 나았다. 젊은 무인들이 모였으니, 분란을 최소한으로 할 필요가 있었다.
아미파와 무당파에서 손을 들어 준다면 당연우가 무리를 이끄는 데 부담은 적었다.
“위험할 수 있으니 단단히 각오해야 할 겁니다.”
“우린 당 공자만 믿어요.”
백유화, 백유경은 금발의 이국적인 외모를 지닌 당연우에게 눈을 떼지 못했다. 사람이 이렇게나 조각같이 생길 수가 있나 싶었다. 중원의 사내와는 다른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말수도 적어서 더더욱 시선을 끌었다. 이런 사람이 여태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다니, 다행이었다.
‘평소엔 조각이고, 웃으니까 살인미소잖아!’
‘눈빛 봐라, 쓰러지겠어. 분위기도 장난 아니고.’
백유화, 백유경은 대다수 여인처럼 얼굴을 봤다.
당연우와 그동안 봐 온 사내들을 비교하면 밋밋해 보일 지경이었다. 저토록 윤곽이 뚜렷하면서도 고운 사내는 처음 봤다. 어떻게 보면 여인보다 더 아름다웠다.
‘형부가 너무했어.’
‘알면 진작 소개 좀 해 줄 것이지.’
‘언니, 다른 건 다 양보해도 이건 아냐.’
‘요년 봐라!’
당연우, 적서린, 백유화, 백유경이 연무장에 서 있는 모습은 한 폭의 그림과 같았다. 미남미녀의 전형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하지만 그런 화기애애함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있었다.
‘헤픈 년들, 웃고 떠드는 것도 지금뿐이다.’
여인의 질시는 오뉴월에 서리도 내린다고 하는데, 사내의 질투도 그에 못지않았다. 질시에 눈이 먼 쪼잔함은 기본이었다.
모든 것을 잃었기에 가진 자에 대한 분노가 누구보다 컸다. 자신이 가지지 못하면 모조리 다 부숴 버릴 파괴성에 물들었다.
씨익!
순간 뜻 모를 미소를 짓는 당연우였다.
‘버러지들은 한결같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