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King RAW novel - Chapter 299
298 습격(4)
습격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이어졌다.
도중에 관에 들러 살수의 공격을 받았다고 했지만, 식겁한 현령이 대놓고 모른 척했었다. 살수들도 설마 관청으로 들어갈 줄은 몰랐기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관청에서 쫓겨난 무진과 일행은 살수의 암습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강소성으로 방향을 돌려야 했다. 밤잠을 설치고, 식사도 맘대로 하지 못하자 피로가 쌓였다.
주르르!
옷 사이로 핏물이 흘렀다. 내력으로 지혈을 한 후 휴식을 취했다. 처음에는 별거 아니었지만, 살수의 공세가 점점 치밀해졌다. 한 번으로 끝내지 않고, 다음을 위한 연계를 펼쳤다.
잠시의 소강상태를 이용해 무진은 진행 상황을 물었다.
“소문은 어떻게 됐어?”
“조만간 등불처럼 번질 겁니다.”
“의심하진 않겠지?”
“살수의 직언을 누가 믿겠습니까.”
“슬슬 본격적으로 나올 모양이니, 아까처럼 방심하진 말고.”
“……아무렴요.”
그걸 봤네.
육칠의 어깨 아래에 흐르는 상처는 의도와는 달랐다. 나중에 재교육이 있다는 무진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주변은 누가 봐도 인적이 드물고 귀신이 나올 것 같은 장소였다.
우거진 수림을 지나는 동안에는 살수가 나오지 않았다. 자연히 자객이 없는 방향으로 잡다 보니 살수가 유리한 장소로 유인을 당하고 말았다.
“저기로 가서 쉬자.”
쉬자고 선 무진은 품에 넣어 두었던 천뢰구를 가리켰던 방향으로 던졌다.
위익!
……피햇!
피할 것 같아서 하나 더 던졌다.
위익!
꽈아아앙, 푸아아아앙!
예상하지 못한 폭발에 비명이 들리며 살의가 덮쳐 왔다. 당하지 않아도 될 피해를 보았지만, 살수는 원을 그리며 포진한 상태였다. 천뢰구에 죽은 스무 명의 살수를 제외하면 백 명이 남았다. 남은 전력이야말로 사살곡의 정예였다.
그건 그거고, 피해는 피해였다. 순간의 방심이 화를 불러온 격이었다.
“이 찢어 죽여도 시원찮을 놈이!”
“얼레, 있었어?”
난 몰랐다는 무진의 발뺌에 귀적산의 안면이 붉게 물들었다. 여태 죽은 살수만 해도 이백 명이나 되는데, 저놈만 멀쩡했다. 다른 일행은 그래도 고생한 흔적이라도 있었다. 그 연유를 모르지 않기에 더더욱 열이 받았다.
이 얄미운 새끼가!
일행을 방패막이 삼아 자신의 안전을 취한 것이다. 그리고 그 방패막이에 자기 아들도 있었다. 사파나 살수도 하지 않을 짓을 태연히 벌였다.
그런 놈이 여유 만만한 표정으로 히죽거리니, 귀적산으로선 당연히 열이 받을 수밖에. 얼굴에 칼부터 던지지 않은 게 용할 지경이다.
귀적산은 놈에게 절망을 선사해 주고 싶었다. 단순히 죽이는 걸로는 성에 차지 않았다. 물론, 사로잡아서 포를 뜨고, 소금을 발라 절여 줄 작정이다.
“네놈의 같잖은 여유도 여기까지다.”
“혹, 암기에 합산독이라도 발라 놨냐? 어쩌지, 우리는 그거 다 해독했는데.”
“……허튼소리를!”
“금선사에 장독과 군자산을 썼더군. 꽤 신경을 쓴 독이긴 한데, 나도 해독에 신경 좀 썼지.”
층층무혈지독(層層無血之毒)에 들어가는 재료가 나열되자, 귀적산은 기겁했다. 놈의 여유를 박살 내 주기 위해서 합산독에 중독됐다고 알려 줄 요량이었다. 한데,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는 대응에 등골이 오싹해졌다.
“그런데 어째서?”
“너희들 하는 꼴이 재밌어서. 무엇보다, 죽고 싶다는데 죽여 줘야지. 안 그래?”
잡아 놓고 가지고 놀려고 했던 귀적산의 귀밑머리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운이 좋아 여태 살았다고는 볼 수 없는 치밀함이었다. 삼푼을 감추라는 강호의 격언처럼 천운권은 간악한 심기를 숨겼다.
“세간에 알려진 것보단 대단한 놈이구나. 하지만 죽는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쳐랏!”
귀적산은 신호를 보냈다.
독을 중화했다곤 해도, 전혀 영향이 없을 순 없을 거다. 층층무혈지독을 완성하기 위해 들인 공을 상기하면 시간을 지체해선 안 된다. 체력을 회복할 시간을 벌지 못하도록 해야 했다.
사사혈성진(死死血星陣).
귀적산은 죽음으로 가는 사망진을 펼쳤다. 자신을 죽여 상대를 죽이는 극살진이었다. 축이 되는 사살곡의 수뇌부들 일호에서 오호가 오성진을 구축했다. 발산되는 혈기에 전염이 되듯 살수들이 죽음을 도외시하며 달려들었다.
고수로 불리는 자들일수록 살수를 경시하지만, 실제는 좀 다르다. 살수를 무시하는 고수는 현 강호에 없다.
살수는 살인하기 위한 기계와 같다. 무인처럼 단련하여 성취를 올리거나 명성을 올리는 자들과는 완전히 다르다. 목적을 위해 뭐든지 하기에 살수와 원수가 되는 짓은 고수일수록 하지 않는다.
그 연유를 지금 볼 수 있었다.
진을 구축하여 달려드는 살수의 기세는 단련된 무인조차 질리게 했다. 하물며 이처럼 목숨까지 버려 가며 반드시 죽이겠다는 살의로 무장할 때는 더더욱.
죽음에 잠식하여 질려 가야 하는데.
귀적산의 두 눈은 찢어질 듯 부릅떠지고 있었다. 그의 상식으로는 일어날 수 없는 현실이었다.
“저럴 수가!”
층층무혈지독을 해독했다곤 해도, 여태 살수의 공격을 쉼 없이 받았다. 자잘하지만 상처를 입었기에 체력을 온전히 회복하지 못했어야 한다.
그런데 보라.
저자들의 움직임을.
천지 사방을 철저히 가로막고 달려드는 살수를 상대로도 위축되기는커녕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기세를 발산했다. 마치 지금까지 전력을 숨기고 있다가 이제야 본신을 개방한 것처럼.
“어찌 이런……. 설마, 숨기고 있었다고?”
서정, 육칠, 태진, 철호가 철벽처럼 버티는 공간 속에 히죽이고 있는 무진이 귀적산의 심기를 흔들었다.
“고작 이런 얄팍한 수작에 내가 넘어갈 것 같았어?”
“처음부터 다 알고 있었구나.”
“유인당해 주니까 좋다고 달려 나오더라고.”
“안다고 달라질 건 없다!”
분노에 찬 귀적산도 사사혈성진을 등에 업고 마영살검을 뿌렸다. 더는 살격에서 여유를 부리는 무진을 보지 않겠다는 필사의 각오였다.
“기세가 나한테 오잖아. 똑바로 안 해!”
무진의 한마디에 나태해지려는 서정, 육칠, 태진, 철호의 무공이 더욱 완벽한 철벽을 이루었다.
“간격은 반 장이라고 했다.”
무진이 정한 영역이었다. 이 안을 지키지 못하면 지옥이 기다렸다. 하지만 그런 사정을 아는 것은 서정, 육칠, 태진, 철호뿐이었다. 귀적산과 살수들에겐 안전한 장소에서 개소리를 지껄이는 것으로 보였다.
빠득, 빠득!
귀적산은 마영살검의 마혈혼으로 찔러 들어가며 놈들의 연계를 무너뜨리고, 천운권을 직접 노리려고 했었다. 하지만 이놈들의 연계는 마치 오랫동안 합을 맞춘 듯 흐름이 끊어지지 않았다.
‘보지도 않고!’
감만으로 이렇게나 정교한 합격을 완성하다니, 귀적산으로선 귀신에 씐 기분이 들었다. 살면서 이처럼 막막한 적은 처음이었기에 울화가 치밀었다.
크크크!
그 앞에서 실실 쪼개는 놈을 보자니 머리 뚜껑이 열리며 영혼이 가출할 것 같았다.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 것 같으냐!”
놈들의 연계를 깨려면 살수들을 갈아 넣는 방법밖에는 딱히 없었다. 층층무혈지독을 믿고 있었기에 작금의 상황이 뼈아팠다. 하지만 공력이 무한대인 공령지체가 아닌 이상, 고수도 지치기 마련이다.
“네놈 앞에서 아들놈을 오체분시해 주마.”
“살수 나부랭이들한테 당할 만큼 내 아들은 약하지 않으니까, 맘대로 해 봐.”
“곧 네놈의 주둥이도 찢어 주지!”
“할 수 있으면. 한데 어쩌냐. 너희들은 여길 벗어나도 산동악가와 제갈세가의 추격에서 살아남지 못할 텐데.”
“격장지계 따윈 이제 안 통한다!”
“오기 전에 개방을 통해서 무신총의 비도를 가지고 있는 게 나라고 소문을 냈어.”
“……?”
현재 제갈세가와 산동악가는 무신총의 비도를 얻었다는 소문으로 골머리를 썩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이목을 돌리기 위해 송호문을 걸고넘어지려다가 실패하고 말았다.
이로써 산동악가와 제갈세가가 송호문에 악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공공연한 비밀이 되었다. 그런 가운데 살수들의 습격은 심증을 사실로 드러나게 했다.
이런 상황에서 무신총의 비도를 천운권이 가지고 있다고 소문을 내 봐라.
세간의 시선이 어떻게 보겠는가.
천운권을 암살하기 위해서 살수를 썼고, 살행이 실패하자 뒤집어씌우려고 무신총을 거론했다고 볼 것이다. 이는 제갈세가나 산동악가로선 최악의 사태였다.
당연히 소문의 진원지를 찾을 테고, 자신들이 소문을 내지 않았다면 의심을 받는 것은 사살곡이었다.
사살곡이 암살 의뢰를 받고 가장 큰 손해를 봤으니까, 이에 악감정을 품고 소문을 냈다고 볼 수도 있었다.
“네놈의 거짓말을 믿을 것 같으냐?”
“왜 이래, 알면서. 거짓이든 사실이든 중요한 건 아니잖아.”
대다수 사람이 믿으면 거짓도 사실이 되기 마련이다. 개중 오해를 하고 진짜로 달려드는 놈들도 있을 테고. 그조차도 무진은 의도하고 있었다.
-잔머리는 나날이 느는군.
‘잔머리에 당한 놈이 누구시더라.’
-…….
‘할 말 없으면 진 거지.’
-조까.
천운권의 이죽거림에 흔들려선 안 되지만, 귀적산으로선 치를 떨었다. 놈의 말이 사실이 아니라고 해도, 소문이 나면 사살곡은 표적이 될 것이다. 이렇게 되니 벗어나기 힘든 함정에 빠진 것은 천운권이 아니라 자신이었다.
‘이놈, 대체 뭐야?’
인생 자체가 뺀질거리는 놈이기는 한데, 무시 못 할 심기를 가지고 있었다. 하는 말마다 비수가 되어 신경을 건드렸다. 그것은 살수들이 펼치는 살진에도 영향을 주었다.
“과연 보통 놈이 아니구나. 하지만 네놈을 죽인다면 얘기가 달라지겠지!”
공멸을 원치는 않지만, 귀적산은 모든 살수를 갈아 넣기로 마음을 먹었다. 사살명혼을 개방하여 살수의 정신을 지배했다. 이 수법은 한 번 써먹으면 다시는 쓰기 힘들다.
생존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능이나 어릴 때 잡아서 세뇌하였기에 사살명혼을 거부할 수는 없다.
퍼퍼퍼펑!
독과 암기, 폭약을 거침없이 사용했다.
서정, 육칠, 태진, 철호도 처음과 달리 상처가 늘어났다. 호흡이 어긋나고, 합격에 빈틈이 생겼다.
귀적산은 최후의 일격을 날리기 위해서 사살명혼을 끝까지 유지했다. 하지만 만족할 만한 성과가 나오지 않아 이가 갈렸다. 놈들은 무력에 못지않게, 기보에 가까운 보갑을 착용하고 있었다.
“화룡갑이라고, 새로 만든 거야. 제법 괜찮지?”
그 와중에 무진은 보갑을 자랑하며 귀적산을 주둥이로 계속 팼다. 정신을 집중하기 어렵게 심기를 흔들어 댔다. 귀를 닫고 싶지만, 현실은 참혹했다. 보갑의 효능인지 알 수 없지만, 체력과 내력의 소모가 적었다.
퍼엉!
그 순간 사살 이호의 동귀어진에 합격의 빈틈이 보였다.
놀란 무진은 손에 들고 있는 걸 놓치고 말았다.
어이쿠, 놀라라!
떼구르르르!
귀적산은 불나방처럼 달려드는 살수들을 뒤로 물리려고 했지만, 늦어 버리고 말았다.
놈이 떨어뜨린 물체는 천뢰구였다.
꽈아앙, 파파파팟!
순식간에 열 명의 살수가 폭발에 휘말렸고, 쏟아지는 암기에 스무 명이나 상처를 입었다.
“이런 실수를, 미안.”
놀라서 실수했다는 무진의 깐죽거림은 귀적산의 이성을 잃게 했다. 저처럼 공교로운 짓을 과연 실수라고 할 수 있겠는가. 누가 봐도 고의가 분명하거늘.
“죽여 버리겠다!”
눈에 뵈는 게 없어진 귀적산이 이대도강의 수법을 펼쳤다. 폭발의 순간 벌어진 간격 속으로 뛰어 들어온 것이다.
사방으로 분사된 천뢰구는 서정, 육칠, 태진, 철호에게도 영향을 주었다. 보갑을 입고 있기에 충격을 입진 않았지만, 간격이 엉성해졌다.
그 틈을 귀적산은 놓치지 않았다.
서걱!
회심의 일검이 성공하려는 찰나, 오른팔이 허공으로 날았다. 이어서 회풍을 이룬 신형이 허리를 깊숙이 베었다. 검기가 타고 들어와 내부를 진탕시켰기에 운신이 불가능했다.
“……빌어먹을!”
귀적산은 코앞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살수들이 전멸하는 광경을 지켜봐야 했다.
꽈아앙, 푸아앙!
태진, 철호, 육칠이 남은 살수와 치열한 혈전을 벌이며 승기를 잡아 갔다. 순간 힘을 집중하여 검기를 쏟아 냈던 이서정은 잠시 숨을 골랐다. 귀적산의 암검을 받아 내느라 무리했는지, 육신의 삐걱거림이 들렸다.
“초입이긴 해도 화경이면 이형환위쯤은 가볍게 해야지, 그거 좀 움직였다고 골골거리면 쓰나.”
“새겨들을게요.”
전력을 잃은 채 제압되기는 했어도, 귀적산의 귀는 멀쩡했다. 방금 자신이 뭘 들었나 싶었다. 그러고 보니 그 순간의 움직임은 초절정으론 어림도 없었다. 자신의 암검을 이처럼 완벽하게 막아 낸 보신, 화경이라면 이해가 되었다.
“제기랄! 나를 가지고 놀았구나!”
“자괴감 가지지 않아도 돼, 너희들이 필요했으니까. 우리의 전력을 가늠해 볼 잣대로 쓰기엔 나무랄 데도 없고.”
“가늠, 잣대? 혹…… 이런 빌어먹을!”
“가는 길이 외롭지는 않을 거야.”
“가당키나 한 소린가? 저 계집이 화경이라고 해도 어림없을 텐데.”
“우리 안위까지 걱정하진 말고. 잘 가라.”
“잠깐, 살려…… 헉!”
무진은 칼을 들어 귀적산의 목을 벴다.
뎅강!
데구르르!
바닥을 허망하게 구른 귀적산의 수급엔 살고자 하는 욕망이 가득했다. 하지만 곧 잿빛이 되어 죽어 갔다.
목적을 위해 부하들을 도구처럼 처분하던 놈이 자기 목숨만 귀한 줄 알면 안 되지. 죽어 간 살수들과 함께 저세상에서 한풀이하길 바란다.
귀적산이 죽은 이후는 손쉬웠다. 끝까지 저항하기는 했지만, 맥이 빠진 터라 모조리 황천길로 안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