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King RAW novel - Chapter 308
307 역습(3)
휘이이잉!
무진이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흑포를 입은 무리가 늪지를 에워싸며 접근했다.
기척을 느낀 무당, 아미, 청성이 날을 세우며 경계하자 당연우가 손을 뻗었다.
“오셨습니까.”
“이런, 한발 늦었구나.”
안타까운 탄성이 실렸다.
서신을 받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려왔던 당명후였다. 한 치의 흐트러짐도 보여 주지 않았던 평소와는 달랐다. 땀에 젖은 정돈되지 않은 머리카락과 먼지가 두껍게 쌓인 얼굴에선 다급함이 비쳤다.
흠!
귀왕수 당백기와 독룡대도 암담한 분위기에 편승했다. 말하지 않아도 사태를 짐작할 수 있었다. 다만, 최악의 사태는 벌어지지 않기를 바랐을 뿐이다.
“어찌 된 일이더냐?”
당연우는 진실을 숨기지 않았다. 저들은 현실을 바로 봐야 했다. 그래야 더는 미련을 두지 않는다.
“반역을 주도한 역당, 당사진은 죽었습니다.”
“……네게는 숙조부다.”
“천밀독을 사용한 이상, 혈육을 내세울 때는 지났습니다. 당연천과 당연수를 살려 놓은 것으로도 저로선 많은 것을 양보했습니다.”
당명후는 차마 아들의 말을 부정하지 못했다. 아미, 청성, 무당이 가문의 후계 경쟁에 휘말려 동문 사형제를 잃었다. 혈육이라고 하여 편을 든다면 저들을 무시하는 행위였다.
비통한 분위기 속에서 당연우는 쐐기를 박았다. 정파를 대표하는 오대세가의 한 축인 사천당가의 소가주로서 모범을 보였다.
“당문의 지엄한 율법을 만천하에 보여 줄 때입니다.”
“……그렇게까지 한이 되었더냐?”
“사적인 감정은 없습니다. 저는 당문의 소가주로서 책임을 다할 따름입니다.”
감정의 기복조차 보이지 않는 냉철함에 당명후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차라리 원망이라도 했더라면 나았을 텐데, 혈육이 아닌 역도를 처단하는 단죄의 칼날만이 남았다.
‘어리석은 짓을!’
당명후는 숙부와 아내의 선택에 치를 떨었다. 모두가 무진의 손바닥 안에서 놀아난 것이다. 사방에 덫을 놓고, 걸려들기를 바랐었다. 불구덩이가 될 줄도 모르고, 기어이 이 사달을 일으켜 당문의 심장에 대못을 박았다.
‘용서할 수가 없구나!’
숙부와 아내는 물론, 제갈세가에 분노했다. 한 줌의 권력을 위해 혈육마저 베어 내려고 하다니, 오만 정이 떨어졌다.
그런데도 이 사태를 막을 수 있었던 아들의 외면에 서운한 감정이 들었다. 사람 마음이란, 칼처럼 단호하지 않았다. 혈육이기에 최악의 선택은 피해 주기를 바랐었다.
“그놈은?”
“떠났습니다.”
당명후는 무진의 고약한 심보에 치를 떨었다. 그가 조금이라도 빨리 사실을 알려 줬다면 막을 수도 있었다. 일이 끝나는 순간에 도착하도록 유도했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벌어진 이상,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 처벌해야 하고, 보여 주어야만 했다.
‘잔소리마저 듣기 싫어서 튀었군.’
일을 이 지경으로 악화시켜 놓고, 공교롭게도 도착 직전에 사라졌다. 이건 누가 봐도 고의적이다. 귀찮은 문제는 당문이 알아서 해결하라는.
하지 않을 수도 없기에 가슴이 답답했다.
슬금, 슬금.
감각이 무뎌진 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가벼운 발걸음이 있었다. 그제야 알아챈 당명후가 돌아섰다.
백유경, 백유화였다.
“아버님.”
“아버님.”
……뭐?
심각한 상황과는 어울리지 않는 새침하고 밝은 인사에 당명후와 독룡대는 헛바람을 삼켰다. 이 와중에 저렇게까지 해맑아도 되나? 청정도문의 무당이 걱정될 지경이다.
크흠, 원시천존이시여!
살아남은 무당의 도인들도 어색한지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돌렸다. 자신들이 끼어선 안 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더냐?”
“그렇게 됐습니다.”
“……?”
손사래를 치며 부정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대뜸 인정해 버리자 당명후는 어찌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았다. 분노해야 할 때, 어색해지고 말았다.
‘거절할 수도 없군!’
이런 개 같은.
아들과 잘해 보기를 바랐던 마음과는 별개로, 이런 식으로 번갯불에 콩 볶듯이 이루어질 줄은 몰랐다.
하물며 의도가 뻔히 보였다. 당문을 위해서라도, 연을 이어야 하기에 거절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병 주고 약 두 병 준 건가?
‘망할!’
당백기와 독룡대도 축하를 해야 할지, 비통해해야 할지 어색한 자세로 계속 서 있었다.
‘바둑판에서 놀아났군.’
***
안휘, 강소, 절강, 산동.
가는 곳마다 분탕질을 치며 속도전을 펼쳤다. 따르다가 놓치는 일이 빈번히 발생했다. 그것이 정상적으로 보이진 않았다. 분명 강소성에 있어야 하는데, 산동에서 발견되었다. 정신이 없는 사이 동에 번쩍, 서에 번쩍을 시도하니 추격하는 자들은 눈이 어지러웠다.
천운권이 나타날 때마다 무신총을 확신했지만, 매번 허탕을 치는 바람에 무인들의 분노만 샀다.
한편, 따르는 자들은 병신이란 소리까지 들었다. 혹시나 하는, 인간의 오묘한 심리가 작용한 것이다. 그러나 천운권은 역시나 명불허전이었다.
그때 강소성 해문에서 천극유성검의 무덤이 발견되었다. 삼백 년 전 당대 최강의 쾌검을 구사했던 단천위의 독문검식으로 유성과 같은 속도는 죽음마저 초월했다고 알려졌다.
무신총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에는 부족하나, 단천위의 검법이라면 흥미가 돋을 수밖에. 천운권을 따랐던 무인들은 그제야 보상을 받는 기분이 들었을 것이다.
하나, 생각지도 못한 사태가 벌어졌다.
-무신의 무공인 줄 알았는데 좋다 말았잖아. 이딴 걸 어따 써. 나 천권에겐 무신의 무공뿐이라고.
그러고선 천극유성검식과 유성신검을 미련 없이 절벽 아래로 던져 버렸다. 검식과 신검을 빼앗으려고 나섰던 무인들은 그 광경에 당황해서 한동안 멍하니 바라보았다고 한다.
-저런 미친놈을 봤나!
-왜 하필 저기로 던져!
-내 거야!
-닥쳐, 내 거라고!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태가 벌어졌다. 절벽으로 무인들이 뛰어내렸을 때, 아래에서 검과 검식을 들고 도망치는 자가 있었다. 마치 이때를 노렸다는 듯이 낚아채서 달아났다.
이후,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되었다. 무신총을 쫓던 무인들까지 가세하면서 강소성이 시끄러웠다.
하아.
목적했던 장소에 도착했다. 몰아쉬었던 숨을 그제야 토해 냈다. 겨우 따돌리고 예정대로 넘겨주고서 빠져나왔다.
‘고생길이 훤하겠어.’
검과 검식을 받은 이상, 무인들이 득달같이 달려들 텐데. 안타까운 현실이었다.
“아우야, 물 마시고 숨 좀 돌려라.”
“내가 나이가 더……. 한번 형님은 영원한 형님입죠. 헤헤헤.”
“이런 간사한 주둥이를 봤나.”
“영원한 딸랑이입니다.”
강철의 싹수 노란 아부에도 나릉은 흡족했다. 메마른 현실에 한 줄기 단비와도 같았다. 이 맛에 그나마 살아갈 힘을 얻는다.
반면, 강철은 죽을 맛이었다.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하고, 여전히 막내였다.
‘빌어먹을, 내 기어코 남은 놈들을 데려온다!’
제일 연장자인데, 대우는 이제 갓 병영에 들어온 신참이었다. 온갖 허드렛일과 귀찮은 수발을 전담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불만을 내색하면 이 망할 놈이 가만있지 않았다.
‘애새끼들도 보통이 아니고.’
가장 얌전한 줄 알았던 태진도 빡 돌면 성깔 있었다. 주군의 자식답게 사나웠다. 물론, 얼굴이 신병이기인 철호도 얼굴값을 지랄맞게 잘했다.
‘진짜는 저 두 년이지!’
검과 권을 쓰는 이서정과 남궁연화는 기세를 드러내진 않았다. 그러나 그 자체로 사위를 압도하는 절대고수의 기도를 풍겼다. 저 나이에 가능한 일인지를 곰곰이 따져 보게 했다. 성별을 초월한 시대를 압도하는 여고수의 등장이었다.
그저 강하기만 하지도 않았다.
누구보다 아름답다.
시리도록 차가운 백화를 연상케 하는 이서정과 햇살에 만개한 불꽃같은 남궁연화였다. 강호 전체를 살펴도 두 여인과 비교할 만한 여인은 흔치 않았다.
‘근데, 왜 이렇게 분위기가 살벌해.’
서늘한 바늘방석에 앉은 기분이었다. 다들 그걸 느꼈는지, 입을 닫고 조용히 있었다.
“그 인간, 날 또 속였어.”
“그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을 텐데요.”
“이러면 내가 여기 올 이유가 없잖아.”
“숫자를 채웠으니 다행이긴 하네요.”
대화가 겉돌지만, 이상하게 돌려 까는 느낌이다.
강철과 나릉이 무진을 흉내 내며 돌아다녀야 할 때, 남궁연화와 초개가 도착했다. 마치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 양동작전을 펼쳤다. 결과적으로 원하는 대로 되었다. 분탕질이 제대로 먹혔고, 검식과 신검으로 시간을 벌었다.
순순히 따라야 했던 남궁연화는 분하고 억울했다. 무진이 있는 줄 알고 주야로 달려왔는데, 허탕만 제대로 쳤다. 일전에도 그렇고, 여전히 손바닥 안에서 놀아나고 있어 마음이 편치 않았다.
이서정과 남궁연화의 관계는 애매하다.
서로를 적대시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은연중 경쟁 관계가 형성되었다. 호적수를 만난 무인의 경쟁으로만 보기에는, 누군가에 대한 소유욕이 느껴졌다.
간절하지는 않으나, 남 주기에는 아까운.
‘숙부, 명복을 빌어요.’
‘좋다고 하기엔, 이상하잖아!’
태진은 여난에 시달릴 숙부의 미래를 떠올렸고, 철호는 부러우면서도 아닌 것 같아 난감했다. 호불호를 분명하게 가려야 하지만, 답이 명쾌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본인의 뜻을 관철하기에는 아버지이자, 사부가 워낙 막강했다.
‘이 조합은 대체 뭐지?’
초개는 처음 합류할 때만 해도 이서정과 남궁연화만 신경 쓰면 될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전투가 벌어지자 저 애송이들의 무력이 자신을 한참 상회했다. 나이를 뛰어넘었다는 표현만 가지고는 부족했다. 아예 상대가 되지 않았다.
‘이 새끼도 그렇고.’
초개는 육칠을 다시 봤을 때, 얘가 원래 이렇게 강했나 싶었다. 자신보다 한참 밑이었던 녀석이 어느새 추월하여 우위에 있었다. 홍무개가 일전에 했던 푸념이 떠올랐다.
무공이 전부는 아니더라도, 역전당하는 기분은 참 뭣 같다.
‘저것들도 그렇고.’
얼굴과 복장을 자유자재로 바꾸는 능력을 보면 오대야객이 분명한데, 알려진 능력치의 폭이 지나치게 컸다.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면 다른 사람으로 오해했을 것이다.
‘이건 뭐, 불나방들이었네.’
보물을 찾겠다고 이 조합을 건드린다? 섶을 지고 불구덩이로 뛰어드는 격이었다. 수는 적어도 하나하나가 절정 이상이었고, 초절정과 화경의 고수가 있었다.
이 미친 조합을 깨부수겠다는 생각 자체가 어불성설이었다. 모아 놓고 싶어도 모으기 어려운 조합이 아닐 수 없었다. 이걸 만든 누군가가 대단하게 느껴졌다.
‘게다가 여력이 있잖아.’
이서정, 남궁연화, 태진, 철호는 젊다기보다는 어리다. 한창 성장할 시기이니만큼 강함에 취해 우쭐댈 수도 있겠지만, 초절정과 화경의 고수에겐 부질없는 잔소리였다.
우우웅!
순간, 고요했던 공기에 긴장감이 흐르기 시작했다. 이곳을 향해 다가오는 자들이 있었다. 인기척이 훤히 드러난 것으로 보아 대단치 않았다.
‘불나방들이 또 왔네.’
초개는 곧 비참하게 쓰러질 하루살이들의 명복을 빌어 주었다. 이리저리 분탕질을 쳐서 화가 나는 건 이해를 하지만, 상대를 잘못 만났다.
응?
한데, 초개의 평가가 달라졌다.
태연하기만 했던 이서정과 남궁연화의 표정이 굳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화경의 고수가 동시에 무언가를 느꼈다면 사태를 달리 봐야 했다.
‘뭐야?’
푸스스스!
수풀을 헤치고 공터로 한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어디에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외형이나, 분위기가 범인과는 다르다. 태생적인 기질, 그 자체로 솜털이 곤두서게 했다.
폐부를 관통하는 서늘함이었다.
씨익!
표정이 읽히지 않는 사내가 입꼬리에 호선을 그렸다. 웃는 얼굴이 되었는데, 오싹한 한기가 휘몰아쳤다.
“물이 올랐군. 게다가 처녀라면 맛도 좋겠지.”
추잡한 언행에도 여인을 쫓는 탐화랑객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마치 인간을 먹잇감으로 여기는 흉포한 마수와 같았다.
“지천이라고 한다. 발버둥을 쳐 보거…….”
“이거나 처먹어!”
대화를 시도하기보다 선기를 잡는다. 실전을 겪으면서 흐름을 파악하는 눈이 생겼다. 기선을 빼앗기면 위험하다는 육감이 발동했다.
쐐애액!
한 줄기 뇌전.
전광석화로 화한 남궁연화는 지천의 심장을 노리며 권을 뻗었다. 방심하는 찰나에 이득을 취하려는, 정파의 무인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속전속결이었다.
스륵!
지천이 반응했다. 곧, 남궁연화의 속도를 따라잡는다. 자세를 취하지 않았다고는 믿기 어려운 기민함이었다.
흠.
지천의 얼굴에서 편치 않은 감정이 보였다. 남궁연화가 그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이 방향을 바꾸었기 때문이다. 속도를 이용한 강격인 줄 알았거늘, 변곡을 주어 허공을 취하게 했다.
직선에 이은 회류(回流).
꽈아아앙!
애초에 중심이 아닌, 어깨를 노렸다.
인간이든 짐승이든, 약점을 보호하는 습성은 본능이었다. 단단한 철옹성을 직접 깨기보다는 외부부터 갉아 내려는 의도였다.
투득!
짧은 순간 전력을 모은다. 고수에 이를수록 사전 동작의 시간이 줄어들기 마련.
그런 의미에서 남궁연화는 능히 고수라 불릴 만하다.
강권을 내지른 남궁연화는 침음을 삼켰다.
천뢰기는 내력임과 동시에 강기공으로 육신을 강화할 수 있었다. 단련된 육체와 천뢰기의 조합으로 능히 금강불괴에 버금간다고 여겼거늘.
‘저리잖아.’
겉으로 보이지 않았던 지천의 어깨가 드러났다. 충격은커녕 흠집도 남지 않았다.
스윽!
그는 멈추지 않고 어깨를 틀어 내어 남궁연화를 끌어들였다. 신형이 원을 그리듯 소요를 일으키자 와류에 휩쓸린 연어처럼 남궁연화는 딸려 들어가고 말았다.
스왁!
타아아아앙!
상처를 도외시하고 남궁연화를 찢어발기려고 했던 지천은 마수(魔手)의 방향을 틀어야 했다. 외면하기에는 검에 실린 의지가 남다르다.
검기를 쓰면 일류, 검사를 쓰면 절정, 검강을 뿌리면 초절정으로 분류하여 그 위로 화경과 절대경으로 나눈다. 하나, 경지에 이르러도 뜻을 담지 못하면 위력은 절반에 불과했다.
이서정은 단순한 화경이 아니었다. 이미 검의를 담은 의형검강을 이루었다.
솨아아!
충돌의 여파로 반경 오 장이 얼어 버렸다. 중심으로 갈수록 절정에 이른 빙룡무극기가 흉흉한 기파를 발생했다. 승천하는 빙룡처럼 무한의 고리를 그리며 휘몰아치는 가운데, 이서정은 검의 연계를 멈추지 않았다.
츠츠츠츠!
스치기만 해도 얼어붙는 혹한의 냉기가 통하지 않았다. 지천은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 것처럼 더 빨라졌다.
채채채챙!
꽈아아앙!
검과 손이 부딪쳤다고는 믿어지지 않는 파괴력이다. 검신을 타고 전달되는 반진력에 이서정이 흔들렸다. 점점 원하는 방향과는 거리를 두게 된 검로였다.
위험하다.
지천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쩌어어어어엉!
푸스스스스!
흉살광기를 흘려보내 검로를 흐트러뜨렸던 지천이 점차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설마, 그 빈틈조차 예측하여 반격으로 전환할 줄은 몰랐었다.
그러자 무미건조했던 눈빛에 생기가 들어찼다.
“겉멋에 찌든 정파의 위선자들과는 다르군. 실전 경험도 제법 녹아 있고.”
지천의 순수한 칭찬이었다.
하나, 남궁연화와 이서정은 미간을 찌푸렸다. 기습에 이은 연격, 선택을 흔들어 버린 반전까지. 어느 하나 가볍지 않았다. 한데, 충격을 주기보다 상대의 본질을 깨운 격이다.
퍼퍼퍼펑, 타아아앙!
남궁연화와 이서정이 지천과 격전을 벌이고 약간의 소강상태가 진행될 때, 포위하고 있던 열 명의 장정이 달려들었다.
그들도 일반적이지는 않았다. 마치 길들지 않은 야수처럼 광기에 젖은 흉악한 살기를 분출했다. 살기만으론 능히 이제까지 만난 자들을 넘어섰다.
‘뭔 놈의 살기가!’
‘어디서 이런 놈들이?’
단순 전력에선 철호와 태진이 앞서는 편이었지만, 육칠, 나릉, 강철, 초개가 밀리는 바람에 선기를 잡지 못했다.
태진과 철호도 남궁연화가 공격할 때 수를 줄여 놓을 요량으로 기습을 펼쳤거늘, 이득은커녕 손해를 봤다.
‘반응이 거의 야생동물 같아.’
‘야수에게 옷만 겨우 입혀 놓았다고 해야 하나.’
태진과 철호는 체감했다. 지금 이 순간이 인생 최대의 고비라는 것을.
이서정, 남궁연화의 도움을 받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이겨 내지 않으면 다음 날 뜨는 해를 보지 못할 것이다.
이번이 어쩌면 처음일지도 모른다.
수없이 많은 생사결을 함께했던 아버지이자 사부가 멀리 떠났다. 있고, 없고의 차이는 컸다. 내색하지 않았지만, 은연중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한 번 죽지, 두 번 죽겠어!’
‘지면 사부가 가만두지 않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