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King RAW novel - Chapter 325
324 원만하게 해결하다(3)
두둥!
무진의 눈빛이 바뀌었다.
공기의 흐름이 변화를 일으켜 삼라만상이 뒤틀린다. 찰나보다 짧은 시간에 공간이 사로잡히며 지배자가 바뀌었다.
사로잡힌 흐름이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려면 무진의 허락이 필요했다. 허락이 떨어지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허용하지 않았다.
부릅!
부르르르!
눈꺼풀이 올라간 검후는 타의로 제어되는 육신에 기겁했다. 원하는 흐름으로 이어 가기는커녕, 통제가 되지 않았다.
체감하는 흐름은 느렸다.
저벅, 저벅!
평소와 다름없이 무진이 걸어오고 있었다. 문제는, 저 흐름보다 검후의 흐름이 더 느리다.
윽!
검후는 이 흐름을 원래대로 되돌리고, 원하는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알고 있는 것과 실천은 별개의 문제였다. 당겨지고, 조여진 공간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극강패도.
의지가 일대를 투영하여 지배했다. 내 의지를 받은 이상, 누구도 허락하지 않는다.
검후는 깨닫고 말았다. 이 말도 안 되는 부조화가 어디에서 기인하는지를. 송호문에 왔을 때부터 알아챘어야 했다. 왜 이 녀석에 대해 모두가 천편일률적인 말을 했는지를.
‘……이 녀석이었어!’
이제야 알았다고 원망할 수는 없다. 그 누구도 거짓말을 하지는 않았다. 신호를 계속 보냈는데도 거부한 건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말이 안 된다는 편견에 사로잡혀 진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래도 그렇지, 이건!’
절대고수의 공간을 제어하다니, 상식적이지 않았다. 이런 일이 가능하다면 이 녀석을 대체 무슨 수로 이긴단 말인가?
그제야 남궁세가와 북해빙궁이 송호문과 관계를 맺으려는 연유를 알 수 있었다.
“알았……!”
“대단하시군요.”
검후의 의지에 경탄을 보낸 무진은 흐름을 원래의 자리로 되돌리며, 나아간 주먹을 회수하지 않았다.
퍼어어억!
쿠웨웨웩!
숨 막힐 듯 고요했던 일대가 삽시간에 비명으로 물들어 버렸다. 무진과 이문향의 괴리가 그제야 원상태로 돌아가며 경악스러운 결과가 펼쳐졌다.
쐐애애액, 퍼어엉!
쿠다다다당!
쏘아진 포탄처럼 일직선으로 날아가 수목과 수풀을 훼손하여 자연경관을 망쳤다. 저 수목이 저만큼 자라는 데 수십 년의 세월이 필요할 텐데, 어찌할꼬. 그런데도 추진력을 잃지 않은 검후는 이십 장을 굴렀다.
헙!
말문이 막히는 광경에 시간이 정지되어 버렸다. 꿈을 꾸는 기분이 들었다. 원체 비현실적인 광경을 잘도 만들어 내는 녀석이기는 하지만, 이건 정도가 심했다.
헐!
저렇게 어이없이 날아간 사람이 검후라니. 눈으로 보고도 믿기 어려운 광경이었다. 소문을 내면 거짓말쟁이가 될 판이다. 그도 그럴 것이 검후가 한 방에 쓰러졌다고 하면 누가 믿겠냐고.
현실감각을 상실하게 하는 광경이었다.
“……사부님~~~~~!”
이서정의 안타까운 외침을 듣고서야 모두는 현실로 돌아올 수 있었다. 저 절박한 모습을 보고서도 현실이 아니라고 해 봐야 아무 의미가 없었다.
“이런, 멈추려 했는데 주먹이 미끄러졌네.”
무진의 헛소리에 다들 기겁했다.
저런 국법 같은 소리를!
미끄러지면 불가피하게도 의도와는 무관하다는 의미가 된다. 내 의사가 아니니, 내 잘못은 절대 아니라는 궤변이었다.
그러나 누구도 무진의 궤변을 타박하진 못했다.
‘저걸 보고 무슨 말을 해!’
‘강한 줄은 알고 있었지만, 검후가 한 방이라니!’
‘앞으로도 잘하라는 협박인 게냐!’
‘역시 우리 아빠야!’
저 앞에서 그런 개소리는 지껄이지 말라고 당당하게 말할 강심장은 없었다. 아들이자, 조카이자, 아버지를 응원하지 않으면 곤란했다.
“사부님~~~~~!”
기절한 사부를 끌어안으며 목놓아 애달프게 부르는 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누가 들으면 상주로서 통곡하는 줄 알겠지만, 검후는 살아 있었다.
‘투심마안이 강해졌네.’
-전군보도 제법이었다.
마왕이 육체가 있었다면 드물게 열십(十)자를 팔목으로 교차했을 텐데.
투심마안과 전군보의 조합.
원래도 사기적인 수법이나 다름이 없었다. 일단 처음 걸리면 답도 안 나온다. 무조건 처맞고, 아는 사람이 아니면 비명횡사했다. 검제, 권왕, 독왕, 취선도 초면에 많은 실례를 해야 했었다. 그런데 더욱 진화하여 완성도를 높였다.
‘네가 웬일이냐.’
-본 좌는 인정할 건 인정하는 편이다.
‘조금은 극복했나 보구나.’
-언제까지 끌려다닐 순 없지.
신주이십일강을 전부 겪어 보진 않았지만, 지금까지 만난 분들은 다들 자기 힘에 도취해 있었다. 적수를 만나지 못해서 그런지 몰라도, 방심하는 경향이 강했다.
후일, 신주이십일강이 아홉으로 줄어든 이유였다. 나머지는 전부 뒈졌다고 봐야 했다. 아마, 지금도 몇 명은 죽었을지도 모른다.
‘은퇴는 마신교를 처단할 때까지 보류해야겠지.’
-긴장이 필요할 때긴 하다.
몇 차례 뒤통수를 치긴 했지만, 마신교는 여전히 전력의 일부만을 드러냈다. 그런데도 내가 아니었다면, 과연 무림이 버텨 낼 수 있었을까? 신주이십일강과 대결을 펼칠수록 회의적이었다. 이들은 오랜 평화에 찌들어 느슨해졌다.
그러나 탓하진 않는다.
현재의 내가 미래의 나보다 월등히 강해졌지만, 한 가지는 분명히 나약해졌다.
‘잊으면 안 되는데.’
-잊는 순간 위기는 다가올 것이다.
세상 전체를 불살라 버리겠다는 투기, 미래의 전왕은 투기만으로도 마신교에겐 재앙과도 같았었다. 평화에 안주하지 말아야 했다. 지금의 평화는 위기가 오지 않았기에 잠시 숨을 돌리는 시간일 따름이다. 나태함은 곧 죄악으로 다가올 테니, 뼈아픈 대가를 치르기 전에 극복해야 했다.
“어때요? 안목이 막 넓어지고, 다른 세상이 보이지 않습니까?”
“……!”
보긴 대체 뭘 봤다는 거지?
날아간 검후를 보긴 했지만, 그 이전의 과정을 따르지 못했다. 그런 상태에서 안목을 운운해 봤자 무의미한 짓이었다.
하!
남궁연화는 자신을 이곳저곳으로 똥개 훈련을 시킨 것을 따지려고 했으나 마음을 접었다. 이 광경을 보고 나니, 할아버지와의 대결이 재차 떠올랐다.
‘이 인간, 그사이에 더 강해졌네!’
폐관을 마다하지 않고 훈련에 박차를 가해 천뢰신권이 극성에 올랐다고 자부했거늘. 무진은 그때보다 훨씬 강해졌다. 검후를 대적할 때 보인 궤적에 자신을 대입할수록 소름이 돋았다.
‘저걸 무슨 수로 피하라는 거야?’
작심하고 검후의 배후에서 무진을 관찰했었다. 그 순간 직접적으로 대적하지 않았음에도 심신의 통제가 어긋나 버렸다. 당사자가 자신이었다면? 마른침을 삼켰다.
그나마 검후라서 살아 있는 거다.
‘뭘 했기에 저토록 강해진 거지?’
무공엔 끝이 없기는 해도, 초절한 경지에 이르면 더는 올라갈 길이 보이지 않아야 했다. 그런데도 저 인간은 볼 때마다 강해지고 있었다. 겉으론 수련하지 않는 것 같지만, 끊임없이 자신을 갈고닦지 않고서는 불가능했다.
‘암중 세력이 그렇게나 강한 거야?’
겪어 봤기에 암류의 무서움을 남궁연화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저 인간에게는 너무나 쉬웠다. 굳이 더 강해질 필요가 있나 싶었었는데, 만족해선 안 된다는 걸 깨달았다.
“가시죠.”
무진 내외가 발걸음을 돌리자, 그제야 모두는 어정쩡하게 돌아섰다. 이대로 가도 되나 마음이 쓰였다.
여전히 사부를 애처롭게 부르는 여인의 한 서린 외침이 들렸다.
기분 탓이겠지만, 매우 공허했다.
“어, 너도 있었냐?”
“아까부터 있었거든요. 설마 절 잊은 건 아니시죠?”
“잊기는, 해 본 소리야.”
“본궁은 중요한 세력이에요.”
“아무렴.”
무진은 돌아서려다 북궁혜와 눈이 마주쳤다.
여태 있는 줄 모르고 있었다. 존재감이 느껴지지 않아, 순간 절정의 은영술을 펼치고 있는 줄 알았다. 잘만 활용하면 침투, 잠입, 살수에 최적이었다. 무공에도 전공이 따로 있듯, 북궁혜에겐 살수가 적임일지도.
‘잊은 게 분명해!’
북궁혜는 이를 악물었다. 이대로는 존재감을 각인하기 힘들었다. 이서정도, 남궁연화도, 능소려도 중원에 기반을 두고 있어 원조가 탄탄했다.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입지를 다지기 힘들다.
‘아버지한테 부탁해 볼까?’
조력자가 필요하긴 한데, 너무 엄청난 걸 봐서 그런지 힘이 나지 않았다.
***
산동, 안휘, 강소, 절강.
네 개의 성을 넘나들며 풍찬노숙을 마다하지 않았다. 이곳저곳에 흔적을 남기며, 활개 치고 다녔다. 간혹, 다툼이 벌어지긴 해도, 문제는 생기지 않았다.
밖으로만 돌다 보면 집이 그리울 법도 한데, 분위기는 훈훈했다. 사내들 간의 의리가 쌓이고, 또 쌓였다.
태진이 물었다.
“아버지는요?”
“지금쯤 송호문에 도착했겠지.”
육칠, 태진, 철호는 송호문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안휘, 강소, 산동을 돌면서 절강으로 들어섰다. 성을 돌며 무신총을 찾기 위해 애를 썼다.
그래서일까?
천운권을 바라보는 세간의 시선이 더욱 안 좋아졌다. 신화마정갑과 무신총이, 암중 세력이 혼란을 부추기기 위한 술책임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그런데도 포기하지 않고 찾아다니는 천운권의 뻘짓이 불편했다. 이쯤에서 그쳤으면 말을 하지 않았을 텐데. 근래에 들어 자기도 귀찮아졌는지 아들과 제자에게 일임해 버리기까지 했다.
비도에 대한 욕심은 있는 반면, 노력은 또 하지 않는 게으름의 표상으로 낙인이 찍혔다. 세상을 날로 먹으려는 심보가 고스란히 드러나 버린 것이다.
-찾으면 생색을 또 얼마나 낼지 모르겠다.
-찾겠냐?
-하여간 그냥 얄밉네.
-그래도 인생은 천운권처럼.
-욕이란 욕은 다 처먹어서 무병장수는 하겠다.
-아들과 제자는 또 뭔 고생이야.
-누가 천운권의 아들로 태어나래!
-저 정도 지극정성이면 아무거라도 찾지 않을까?
-이젠 찾을까 봐 겁난다.
짧은 시간 이토록 평판이 안 좋아진 사례가 있나 싶었다. 신기한 점은 천운권이 수많은 사람을 죽인 희대의 살인자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세간의 평판만 들어 보면 고금제일의 공적이었다. 이렇게나 싫어하기도 쉽지 않을 텐데, 어떤 면으론 대단하다는 말도 나왔다.
“아버지가 올 때까진 유인책을 계속 써야겠죠.”
“이게 지금 잘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어쩌겠어요,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야지요.”
“그래도 마음은 편하다.”
태진, 철호, 육칠은 풍찬노숙에도 불편하기는커녕 편했다. 간간이 흔적을 남기기 위해서 분란을 빗기는 하나 잔챙이들이었다.
소식은 개방도를 통해 듣고, 나릉과 강철이 번갈아 가면서 천운권으로 위장했다. 필요한 때만 얼굴을 비친다고 욕을 먹기에 제격이었다. 그렇게 소문은 의도한 대로 흘렀다.
“전대 검후께서 괜찮으실지 모르겠네요.”
“한바탕 난리가 벌어졌겠지.”
“서정 누님은 입이 있어도 사실대로 말하기 어려울 겁니다.”
“말하면 믿겠냐.”
예견된 참사에 전대 검후와 이서정을 멀리서나마 위로했다. 가까이 있지 않아서 마음만은 풍족한 편이다.
그러나 할 일은 반드시 해야 했다.
육칠은 돌아가는 사태를 분석할수록 머리가 아팠다.
“강 대협은 저들의 움직임을 어떻게 알았을까?”
“저야 모르죠.”
“돌아가는 흐름을 보면 무신총이 나타날 걸 예측이라도 한 것 같단 말이야.”
“사부님이라면 알 수도 있을 겁니다.”
육칠은 말하지 않았지만, 회의적으로 보았다. 이전에 깔아 놓은 여러 가지 정황을 살필수록 소름이 돋았다.
‘숙명 같은 건가?’
어쩌다 한번 얽혔으면 우연으로 치부하지만, 강 대협과의 여정을 돌이켜 보면 암류와 계속 부딪쳤다. 그리고 부딪쳐 볼수록 체감했다. 강 대협이 아니면 암류는 상대하기가 벅찼다. 하나같이 위험했으며, 막지 못했으면 강호에 대혼란을 초래했을 것이다.
“강 대협은 무림의 구성일지도.”
“……큰일 날 소리를!”
“육칠 형, 그딴 소리 함부로 하는 거 아냐!”
모처럼 인정했는데.
아들과 제자가 저리 난리를 치다니, 아무리 그래도 너희들은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니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