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King RAW novel - Chapter 340
339 얼마면 돼?(2)
‘이게 뭐야?’
원하는 바와는 다른 처우였다. 이곳에 올 때까지만 해도 차고 넘쳤었다. 아버지의 인정을 받은 전사도 아니고, 그 동생 정도는 얼마든지 사로잡을 수 있을 줄 알았었다.
웬걸, 적들이 너무 많다. 도움의 손길이 절실하나 거리가 멀었다.
“공 장로님, 안 되겠죠?”
“커험, 쉽지 않구나.”
“투마시잖아요.”
“그렇긴 한데, 상대가.”
공야우는 철요란의 눈을 마주하지 못한 채 허공을 바라보아야 했다. 그도 내심 자신은 있었다. 투마라고 불릴 만큼 전투를 마다하지 않는 그였기에.
‘호굴이 따로 없군.’
힘을 앞세우기에는 상대가 버겁다. 어느 정도여야지, 신주이십일강이 떡하니 버티고 있었다. 사막에서 날고뛴다고 해도, 검후와 검제는 역량 밖이었다.
다만, 오는 동안 나만 믿으라고 큰소리를 쳤기에 염치는 없었다.
‘궁주께서 오셔도 안 될 것 같은데.’
검제나 검후도 문제지만, 그 외의 인물들도 경시하기 힘들었다. 호언장담했던 공야우로서도 난감한 현실이었다. 외부에선 보이지 않는, 내부에 있을수록 송호문의 저력을 체감했다. 일개 문파로 얕볼 수만은 없는 힘을 지녔다.
“공 장로님, 이대로라면 전 말도 못 붙이고 돌아갈 판이라고요.”
“노력해 볼 테니, 너무 닦달하지 말거라.”
“말로만 호언장담할 때가 아니라고요. 이러다 소득도 없이 돌아가면 아버지가 고생했다며 잘 돌아왔다고 할 거 같나요!”
혈천의 사랑을 받은 철요란이지만, 그녀는 알고 있었다. 아버지의 애정을 받는 건, 그간 맡았던 일들을 순탄히 처리했기 때문이다.
궁지에 몰린 공 장로는 이실직고했다. 속인다고 모를 철요란도 아니고.
“솔직히 말하마, 나도 자신 없다.”
“진짜! 제가 알던 공 장로님이 맞으세요?”
“어쩌겠냐, 약한걸.”
사막의 자존심을 내세우기에는 송호문은 호굴이었다. 이 안에서 날뛰었다가는 불나방처럼 사라질 같잖은 객기에 불과했다. 그러한 현실을 철요란도 모르진 않았다.
‘그분의 동생이라더니, 명불허전이야.’
강무호의 무력을 공 장로님은 파악하지 못했다고 했다. 최소한 초절정의 고수는 되었다. 한데, 소문에 의하면 화경에 이르렀다고 한다.
‘주변이 너무 막강해.’
이서정과 남궁연화는 넘보기가 어렵다. 미모도 미모지만, 자신보다 훨씬 강하다. 배경도 남부럽지가 않아서 끼어들기가 요원하다.
서로 연적이 분명한데, 요상하게 잘 어울렸다.
그렇다고 능소려를 노리기엔 무리가 따른다. 은연중에 가장 우위에 선 여인은 그녀였다. 괜히 그녀를 물고 늘어졌다가는 강 공자의 미움을 살 수 있었다.
‘빌어먹게도, 그년뿐이네.’
공 장로는 이제 배제했다. 도움을 바라기에는 역량이 부족하다. 그렇다고 본궁을 앞세우기에도 쉽지 않았다.
마음을 굳힌 철요란은 바로 실행했다. 사막의 뜨거운 열기도 밤이 되면 식듯이, 결심을 굳히면 뒤를 돌아보진 않았다.
“어쩐 일이야?”
“내가 올 줄 알았으면서 모른 척하기는.”
“부탁하러 온 자세가 안 됐는데.”
“그래 봤자 피장파장이야.”
“너와 나는 급이 달라.”
“아무것도 못 했으면서, 다르긴 뭐가!”
날 선 공방이 이어졌다. 무심코 내뱉은 단어와 문장이 비수가 되어 서로를 공략했다. 어떤 면에선 살 떨리는 혈전에 비견되는 냉혹함이 있었다.
“여긴 중원이야.”
“그래서?”
“힘을 합치지 않으면 원하는 걸 얻지 못해.”
“합친다고 달라질 것 같진 않은데.”
냉소적인 반응과는 달리, 북궁혜도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었다. 북해와 사막이 손을 잡았고, 교류의 문을 개방했다. 아버지는 사막의 주인을 인정하고 있었다. 수백 년의 악연이지만, 함께할 명분은 생겼다.
“최소한 더는 안 돼.”
“맞는 말이야.”
북해와 사막을 정리한 시부는 연이 닿는 대로 동생을 정략의 대상으로 삼고 있었다. 그렇다면 앞으로도 여인들이 꼬이지 않는다고 장담하기 힘들다. 이서정, 남궁연화, 능소려라는 막강한 연적이 견고한 울타리를 친 상황이라 힘을 합해도 부족하다.
“한 발 물러서지만, 두 발은 물러설 수 없어.”
“나도 마찬가지야.”
손을 잡고, 적과의 동침을 합의했다. 비록 언제 깨져도 이상하지 않을 연약한 유대지만, 새외의 동지로서 의욕을 불태웠다.
기회가 생기는 대로 최선을 다해 자빠뜨려야 했다. 그것만이 북해와 사막을 위한 숭고한 희생이었다.
‘찬물도 위아래가 있지.’
‘먼저 먹는 사람이 임자지.’
숭고하긴 어디가?
그 나물에 그 밥이었다.
부르르르!
갑작스럽게 느껴지는 한기에 강무호는 몸을 떨었다. 웬일인지 몰라도 신상에 이로울 것 같지는 않았다. 미녀들에게 둘러싸여 있어도, 행복하지 않은 현실이다. 요즘 들어 수명이 줄어드는 느낌이 강렬했다.
‘말할 수도 없고.’
복에 겨워서 개소리를 지껄인다고 욕이나 박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형이 나갔다 들어올 때마다 마음을 졸여야 했다.
그런데.
‘왜?’
기대되고 지랄이냐고.
결단을 내려도 부족하거늘. 이율배반적인 마음이라니. 심상 수련을 혹독하게 해야 했다.
소문주로서 문파를 돌아보는데, 정문이 시끄러웠다.
“무슨 일이지?”
“당문에서 손님이 왔답니다.”
움찔!
이놈의 인기란.
나를 찾았다는 보장도 없거늘, 두근거리다니.
헙!
색즉시공, 공즉시색.
무호는 공수래공수거를 연발하며 옷깃을 정제했다. 깃은 사내의 자존심이었다.
‘제발 참하기를.’
***
“곽 대협을 뵙습니다.”
“대협은 무슨, 됐으니까 일들이나 보라고.”
“그러지 마시고, 이것 좀 드셔 보시지요. 갓 잡은 고기라 맛이 죽여줍니다.”
“밥 먹고 왔으니, 많이 팔게.”
장터를 지나갈 때마다 상인들이 고개를 숙여 인사를 올렸다. 그로서는 분에 넘치는 과분한 대접이었다. 대협은 아무에게나 붙이지 않는다.
근방의 상인들이라 잘 보이려는 접대의 의도가 있기는 해도. 근래에 들어 가문의 성세가 확장하면서 대우가 눈에 띄게 달라졌다.
‘강해지긴 했지.’
천예검, 적운수사, 낭천권을 비롯한 제법 명성을 날린 자들을 꺾었다. 예전이라면 감히 대적할 엄두도 나지 않았지만, 이겨 냈기에 얻어진 명성이었다. 자신이 강해지는 만큼, 가문의 성세도 역대 최고를 구가했다.
‘그럼 뭐하냐고.’
빛 좋은 개살구.
이보다 적합한 표현이 또 있겠는가. 가문의 위명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무공도 과거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성장했다.
봐라.
저 위풍당당한 건물과 번듯한 명패를.
규모가 세 배는 늘었고, 신축이라 보기에는 너무 좋다. 담벼락의 돌 하나하나에 정성이 들어가서 가문의 명예를 드높였다.
딱 거기까지다.
가문은 맹위를 떨치지만, 개인의 삶은 예전보다 좋아졌다고 하기가 애매하다. 입고 있는 옷과 병기는 물론 좋다. 문제는 그 외의, 미래를 도모할 돈이 없다.
딱, 개인의 품위를 지키는 불문과 도문의 승려나 도장처럼, 금욕적인 생활을 유지해야 했다. 탈선과 일탈은 어림도 없는 짓이었다.
강해졌음에도 과시하지 않고, 절제된 삶을 살자 주변의 평가가 좋아졌다. 대협이라고 부른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대접해야 할 자리가 아니면 돈을 쓰기가 궁색했다. 그렇다고 진짜로 돈이 없다고 구구절절 하소연도 못 한다. 가문의 성세가 높아질수록, 대외적인 시선을 무시할 수가 없었다.
‘이번 달 이자가 얼마더라.’
가문에 지워진 채무를 개인으로 나누어서 갚아 나가고 있었다. 문파의 명성에 금이 가지 않는 최소한의 선을 지키면서 생활해야 했다.
그렇지 않고 조금이라도 사치를 부리면 분기마다 상납할 채무가 밀린다. 밀리는 만큼, 이자의 무게가 엄중하다.
그나마 가문이 세력을 넓히면서 수익은 늘어났다. 지금 요대를 바짝 조이면, 후대에는 채무 없는 가문을 넘겨줄 수 있었다.
응?
왜 이렇게 불안하지?
묘한 위화감이 번졌다. 가문의 정문이 가까워질수록 불안감이 증폭했다. 이런 느낌을 예전에도 받아 본 것 같아서 더욱 찝찝하다.
착!
어깨에 손이 닿았다.
언제?
암습이었다면 무방비였다.
휘익, 꾸욱!
본능적으로 고개가 돌아가며 볼이 검지에 찔렸다. 돌아본 상대를 확인할 때까지 시간이 걸렸다.
“경각심이 부족하군요.”
“……자네는?”
“오랜만입니다.”
“역시 그렇군.”
“기다렸던 거 아닙니까?”
“아닐세.”
곽철웅은 무진의 맥락 없는 등장에도 놀라진 않았다. 인간 같지도 않은 지랄맞은 위인이라, 파악하려고 노력할수록 골치만 아플 뿐이었다.
하나, 무진이 아닌 다른 이들까지 지척에 있었다. 예전과 비교해 많이 강해졌다고 자부했거늘. 기척을 알아차리기도 전에 제어된 공간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여전히 우물 안의 개구리구나.’
예정에 없는 갑작스러운 방문은 아니었다. 정운상단과 개방이 연락해 오기를 기다렸었다. 곽가장이 단양과 그 주변 일대를 지배하는 가문이 되었다곤 해도, 상대가 워낙 거물이었다.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했다.
“새로 지어서 그런지 건물이 보기 좋군요.”
“보기야 좋겠지.”
참나무의 향이 빠지지도 않았다. 새로 지은 집 특유의 향도 있었다.
“가문이 이리 잘나가고 있는데 얼굴이 왜 그 모양입니까? 인상 펴고 다니세요. 주름 생깁니다.”
“너무 좋아 죽을 것 같아서 그러네.”
이게 다 내 덕이라는 무진의 당당함에 곽철웅은 뭐 이런 놈이 다 있나 하는 심정이었다.
‘부정할 순 없겠지.’
무진의 덕은 맞다.
그 사실마저 부정한다면 위선자에 배은망덕한 자였다. 그래도 최소한 삶의 여유를 가지고 살아갈 숨통은 틔워 줘야지. 박박 긁어 가고 나면 분기마다 삶이 척박해졌다. 은혜는 은혜인데, 받고 싶지 않은 은혜였다.
“곽가장이 잘되니, 내 집처럼 좋네요.”
“……!”
문장의 전후가 이상했다.
갑자기 이 좋은 집이 내 집 같지 않게 낯설어지는 어색함이었다. 뭐랄까, 토끼를 잡은 후 사냥개를 솥에 삼는…… 아니겠지.
“자, 들어가시죠.”
“……그러지.”
주객이 전도되어 무진이 앞장을 섰다. 그 뒤를 곽철웅이 어정쩡하게 따라붙었다.
내 집처럼 편히 지내라곤 하지 않아 곽철웅은 다소 안심했다. 이 인간의 습성을 겪어 봤기에 으레 하는 요식행위는 권하지 않는 편이 이로웠다.
그대로 실천하는, 눈치 없는 행동을 대놓고 하기에.
“저 왔습니다.”
“……!”
무진의 목소리가 가문에 퍼지자, 주어진 일에 열중하던 가솔들은 얼어붙었다. 다들 들키지 않으려고 무의식적으로 숨어들었다. 마치 채무자를 찾은 염왕채의 주인을 일견하는 모양새였다.
“반갑습니다.”
“……이리 반가울 수가, 어서 오게!”
곽철용이 가주실에서 헐레벌떡 뛰어나왔다. 숨어 있다고 될 일도 아니고, 곽가장의 장주로서 체통을 지켜야 했다. 쭐레쭐레 장로들과 자식들이 배후로 다가왔다. 없는 듯 있는 듯, 눈에 띄지 않는 편이 이롭다는 배치였다.
“다들 신수들이 훤해졌네요. 저로서는 매우 뿌듯합니다.”
“좋게 봐 줘서 고맙구먼.”
본인의 업적과 치적을 자랑함에 일절 부끄러움도 없으며, 금칠을 덕지덕지 처발랐다. 천운권이라는 악명과 대조하면 지극히 천운권다운 행동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무진의 실체를 조금이나마 알고 있었다. 소가장을 처리할 때 팽가의 무인들을 아무렇지 않게 도륙했던 전장의 악마를.
‘속지 말자.’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면 안 돼.’
‘지독한 심마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