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King RAW novel - Chapter 355
354 환영마객(2)
크크크.
동종업자의 정체를 파악한 환영마객 방몽은 헛바람을 삼켜야 했다. 만난 적은 없어도 오대야객의 신상은 알고 있었다. 당연히 묵객 강철에 대해서도 조사를 마쳤다. 하지만 묵객이 기관, 진법, 독, 암기를 두루두루 잘 다룬다고는.
‘이놈이 이렇게나 강했다고?’
가장 큰 의문은 묵객의 무공이었다. 대륙을 대표하는 오대야객도 무공 수준만 놓고 보면 대단치는 않았다. 한데, 묵객의 공수는 빠르고 묵직했다. 받아 낼 때마다 파고들어 오는 경력이 만만치 않았다.
“환영마객도 별거 없구나.”
“비겁한 수나 쓰는 놈이 감히!”
“어이구, 칭찬은 고마워.”
“……빌어먹을!”
밤도둑에게 비겁하다고 욕하면 자기 얼굴에 침을 뱉는 격이었다. 방몽도 그 사실을 알기에 치를 떨었다.
지금은 정면 대결로도 승산이 많지 않았다. 일단은 이 자리에서 내뺀 후, 후일을 도모해야 했다.
‘……없어?’
뒷짐을 지고 있던 녀석이 사라졌다.
회피 동선을 파악한 후, 묵객의 발차기를 피했다. 방향을 잡았던 방몽은 폐부를 찌르는 위화감을 느꼈다.
‘위험……!’
늦었다.
어느새 사각을 잡혔다. 대응은 불가능하다. 돌아서는 순간 치명상을 입을 터. 빠져나가기는 글렀다. 무리를 하는 한이 있더라도 받아쳐야 했다. 무방비로 맞는다면 다신 일어서기 힘들다.
꽈아아앙!
쿨럭!
간신히 주먹과 주먹으로 맞섰지만, 방몽은 나가떨어졌다. 바닥에 무릎을 꿇은 방몽은 내부를 진탕하는 묵직한 경력에 마른침을 삼켰다. 최소한 묵객보다는 한 수 위의 고수가 분명했다.
“넌 또 뭐야?”
“이러면 좀 기억이 나려나.”
순식간에 변화되는 얼굴, 마치 유랑단의 변검 공연처럼 수시로 바뀌었다. 손바닥으로 얼굴을 문지르듯 가볍게 스쳤을 뿐이거늘, 천의 얼굴이 되었다.
“천면호리?”
“정답.”
“이게 무슨!”
“궁금증은 풀렸을 테니, 누가 형님인지 가려 보자고.”
방몽은 작금의 현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자신이 알던 천면호리와는 차원이 달랐다. 일전에 한 번 녀석과 겨룬 적이 있었기에 더더욱 그렇다. 그때와 지금은 다른 사람이라고 봐도 무방할 간극이 있었다.
퍼억!
환영살식(幻影殺式)을 펼칠 때마다 무공의 형이 무너지고, 내부가 흔들렸다. 연신 뒤로 밀린 방몽에겐 악몽 같은 현실의 연속이었다.
천면호리가 언제 이렇게나 강해졌단 말인가.
‘이놈들이 어째서?’
황야의 고독한 늑대처럼 야객은 혼자 다시는 습성이 강했다. 마치 한 몸에서 태어난 것처럼 죽이 잘 맞는 천면호리와 묵객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지나온 일련의 시련을 돌이켜 보면 어느 것 하나 가볍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이해가 되기도 한다. 오대야객이 아니고서야, 자신의 습성을 이처럼 능란히 파악하기도 어렵다.
동종업자의 비극이었다.
“철아.”
“예, 형님!”
찰나의 상념도 기다려 주지 않았다. 어디서 한눈을 팔아! 나릉은 강철과 연계하여 방몽을 두들겼다.
헉!
퍼퍼퍼퍼퍽!
빠져나갈 구멍 따윈 없다. 나릉과 강철의 연계는 물샐틈없이 방몽을 괴롭혔다. 동서남북천지(東西南北天地) 어디를 가도 나릉과 강철의 공수 안에 갇혔다.
“……어째서~~~~!”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기 시작한 방몽은 억울했다. 왜 자신이 이런 꼴을 당해야 한단 말인가?
천면호리와 묵객의 야합도 그렇다. 강철의 나이가 나릉보다 많았다.
어디서 이런 개족보를!
‘……언제부터 형 동생이었다고!’
세상이 거꾸로 가는 것도 아니고.
그런 걸 떠나서 방몽은 연신 억울했다. 이놈들의 야합을 미리 알기라도 했다면 오늘처럼 속수무책으로 당하지는 않았다.
“……죽어랏!”
환영살식 극의, 몽환살(夢幻殺)
일방적으로 개처럼 두들겨 맞다가 끝날 수는 없다. 이리된 마당에 방몽도 이판사판이었다. 어차피 처맞을 거 발악이라도 해야 억울하지 않지.
스륵!
……안 맞아!
이럴 줄 알았다는 듯 나릉과 강철이 좌우로 벌어진 후, 재차 달려들어 방몽을 두들겼다.
네놈의 잔꾀는 우리 손바닥 안에 있다, 이거야.
퍼억, 크억!
뻐억, 푸악!
절초를 사용하는 바람에 순식간에 완벽한 무방비가 되었다. 이젠 방어 자체가 되지 않았다. 손발을 휘두르는 족족 파고들어 와 치명타를 선사했다.
“그만…… 쿠웩!”
바닥에 고개를 처박자, 나릉과 강철은 평소 받은 대로 짓밟았다. 두들길 때는 일말의 자비심도 없었던 주군을 표본으로 삼았다. 주군이야말로 인성말종의 끝판왕이었다. 그 주군에 그 수하로서 근본을 잊지 않았다.
“……항복!”
“우린 널 잘 알아.”
절대로 말로 해선 안 듣는다. 야객 특유의 습성이었다. 또한, 여지를 주면 뒤통수부터 노렸다. 말로만 항복했을 뿐, 틈만 노리고 있을 것이다.
우드득!
이런, 발목이 부러졌네.
미끄러졌으니까, 고의는 아니었다.
주군 가라사대.
“지옥에…… 우거거거!”
방몽의 저항에 나릉과 강철의 미소는 짙어졌다. 순순히 말을 듣지 않으면 죽어도 무방한 무심함이었다. 반드시 살릴 필요는 없기에 나릉과 강철의 손속은 잔혹했다.
이놈이 선한 놈도 아니고.
크아아아악!
밤이 새도록 비명은 이어졌다.
“좋다.”
“그러게요.”
기절하는 순간에 방몽은 보았다.
……악마!
걸려도 더럽게 걸렸다.
***
어둠이 깔린 새벽.
동이 트기 직전이라 암흑이 활개를 쳤다. 그때 목재로 지어 놓은 수채의 절반이 불에 타며 어둠을 몰아냈다. 활활 타오르는 불길은 매혹적이었다. 왜 그토록 사람들이 남의 집 불구경을 선호하는지를 알 수 있었다. 특히나 밤에 타는 목재는 예술적이었다.
화화활!
채챙!
잠이 덜 깬 시각이었다. 그러나 졸린다고 일어나지 않을 수도 없다. 자다가 화염에 휩싸인 수채의 인원들이 부리나케 밖으로 나왔다. 삽시간에 번진 화마에 휩쓸린 자들도 적지 않았다.
수년 동안 감지 않은 머리카락들이 그슬린 채 부풀렸다. 고소하고 묘한 냄새는 중요하지 않았다.
“어떤 새끼들이!”
갑작스러운 화공에 수채의 주인은 미간을 찌푸렸다. 처음에는 뜨끈해서 온천욕 하는 줄 알았지만, 명백한 개꿈이었다.
의아했다.
수채의 주변으로 겹겹이 수하들을 배치해 놓았다. 신호를 보내기만 했어도 이처럼 무방비로 화공에 당하진 않는다.
하물며 원거리에서 불화살을 쏜 것도 아니고, 통나무에 기름을 붓고 불을 질렀다. 배신자나 동조자가 없는 이상, 심처까지 침투해 오는 동안 아무도 눈치를 못 챘다는 뜻이 되었다.
“무림맹에서?”
근자에 수로채는 활동이 미미했다. 총채주가 수채의 활동을 제한했기 때문이다. 당분간은 자중하며 시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더욱이 당장은 녹림과의 협맹에 사활을 거는 중이었다. 다른 세력과 다툼을 벌일 여지가 많지 않았다.
“뭐야, 이것들은?”
화마 속으로 뛰어든 그림자가 있었다. 최소한 백 이상의 무리가 습격하리라 예상했거늘, 수를 세어 보니 손에 꼽혔다. 고작 셋으로 천하에 악명이 자자한 혈수채를 공격한 것이다.
부들부들!
혈수채의 채주 만겁혈수(萬劫血手) 장홍무는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집단 대 집단이었다면 이해라도 할 텐데, 이건 혈수채를 무시하는 행위였다. 흉명을 떨쳤으면 떨쳤지, 언제 이렇게 무시를 당해 본 적이 있었던가.
장홍무로선 본보기를 보여야 했다.
“뭘 멍청하게 서 있어, 저 쥐새끼들을 산 채로 잡아!”
“……예, 두목!”
곱게 죽여서는 성이 차지 않았다. 겁도 없이 혈수채를 노린 죗값은 물론, 배후까지 낱낱이 파헤쳐 혈수채를 노리면 어떻게 되는지 본을 보여야 했다.
휘이이잉, 화르르르!
휩쓸리는 화마, 바람까지 불어서 아주 그냥 난장판이었다. 놈들을 사로잡는 것도 문제지만, 불도 꺼야 했다. 성채나 다름이 없는 이곳에서 왕처럼 군림했던 장홍무로선 불에 타들어 가는 수채를 보자 분을 삼키지 못했다.
바들바들!
저놈들을 곱게 죽이면 성을 갈아야 할 판이다. 더군다나 사실이 외부에 알려져서도 안 되었다. 수로채 간의 서열을 고려하면 다른 놈들이 어떤 소릴 할지 명약관화였다.
솨악, 퍼어엉!
크아악, 흐억!
화마 속에서 병장기의 울림이 퍼지며 비명이 흘러나왔다. 여기저기서 쓰러지는 자들이 속출했다.
“뭐야, 저것들?”
화마로 인해서 얼떨결에 기습을 허용했지만, 수채엔 족히 오백에 달하는 수하가 있었다. 부채주 교사독검이 나선 이상, 셋쯤은 순식간에 제압해야 했다. 한데, 제압은커녕 희생자가 늘어 가고 있었다.
“저런 멍청한!”
명색이 오른팔인 부채주란 놈이 애송이의 주먹질에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머리통이 날아가지 않았지만, 수치스러운 결과물이었다.
그러나 쓰러지는 놈들이 늘어나자 장홍무의 안색이 바뀌었다. 달려드는 족족 허망하게 쓰러졌다.
서걱, 서걱!
퍼억!
검에 베이고, 각법에 치이고, 권격에 박살이 났다. 셋의 연격이 심상치가 않았다.
그제야 장홍무는 침입자가 보통이 아님을 깨달았다.
꽈아앙!
지축을 흔드는 파공성에 수하들 서넛이 추풍낙엽이 되어 쓰러졌다. 어찌나 강력한지 파문이 일며 일대를 휘감았다. 경력의 완성도와 파괴력이 일반적인 경지를 넘어섰다. 순식간에 공간을 압도하며 수하들의 기세를 꺾었다.
“강한 데다가 능숙해.”
생김새는 자신들과 동류, 그 이상이었다. 어둠에 가려져 있던 얼굴이 드러나자 식겁하는 수하들의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어디에 가서도 기가 죽지 않는 녀석들이기에 더더욱 그렇다.
주변을 받치는 녀석들도 상당했다.
정통 검로와 실전을 기반으로 둔 각법까지. 쓰러지는 수하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었다. 눈치가 빠른 부채주가 차륜진을 개방했음에도 별다른 효과를 못 보고 있었다.
“확실히 예사 놈들이 아니구나.”
셋이서 수로채를 기습한 것부터가 일반적인 놈들이라고 볼 순 없었다. 강함은 둘째 치고, 강단이 있어야 했다.
분노했던 처음과 달리 장홍무는 지켜보았다. 자신이 나서서 끝내기보다는 일단 힘을 빼기로 한 것이다. 부채주가 저리 허망하게 일격을 허용했다면 가볍게 상대할 녀석은 아니었다. 망신은 한 번으로 족했다.
“그래 봤자 셋이서 뭘 할 것이냐?”
“넷이야.”
대답을 원하지 않았던 장홍무는 놀라기보다는 급히 성명절기인 겁혈마수를 꺼내 들었다. 동시에 회륜겁강을 펼쳐 호신기에 회륜을 실었다. 반진력을 활용한 반탄지기인 만큼 어지간한 수는 튕겨 내고도 남음이 있었다.
꽈악!
허걱!
장홍무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사각을 점하기는 했어도, 손을 써 보기도 전에 당할 줄이야. 한순간에 목이 잡히고, 내력이 통제되었다.
‘……이럴 수가 있나?’
설령 장강수로채의 총채주라도 자신을 이토록 가볍게 제압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렇기에 이 사태는 말이 되지 않았다. 자신은 이처럼 허무하게 당해서는 안 되는 존재였다.
“잘 가.”
“……안 돼!”
무진의 손에 힘이 가해지자 장홍무의 목은 엿가락보다 유약해졌다.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린 후 영혼은 육신에서 가볍게 승천했다.
빛이 바래진 장홍무의 눈빛은 여전히 현실을 믿지 못하고 있었다. 장강수로채의 일개 채주인 주제에 본인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모양이다.
휘익!
무진은 장홍무를 활활 타고 있는 수채에 집어 던졌다. 화마에 휩싸인 혈수채와 같이 한 줌의 잿더미가 될 테니, 흔적은 남지 않을 것이다.
“자기 집에서 불타 죽으면 성불한다지?”
-누가 그래?
아니면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