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King RAW novel - Chapter 367
366 만수영통(2)
무진은 마수림에 들어온 즉시 방향을 잡고 내달렸다. 당장은 저들과 싸울 필요도 없고, 의도대로 흘러가는 편이 효과적이었다. 실제로 지금은 전투를 벌여 봤자 소모성에 지나지 않았다.
‘확실히 공력 운용이 수월치는 않아.’
-배부른 소릴 하는군.
마수림 전체에 퍼져 있는 운무는 산공의 효력이 있었다. 내가기공을 수련한 무인에게는 치명적인 작용을 한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공력을 갉아먹혔다. 뒤늦게 사태를 깨닫고 운기행공을 했다가는 주화입마에 걸릴 수 있었다.
오대부족은 완벽한 육체를 가진 무진을 내가기공의 무인으로 알고 있었다.
이는 맞는 말이기도 하고, 틀린 말이기도 했다.
무진은 내외공을 극의에 도달하도록 수련했다. 최적화된 전왕공을 운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도달해야 하는 경지였다.
극한에 달한 육체와 경험이 쌓인 무진은 산공독에도 저항력이 있었다. 가히 만독불침지체에 도달했다고 봐도 무방했다.
‘어떠냐, 나의 전왕체가.’
-마왕체에 비하면 부족하다.
‘물타기는. 졌으면 승복 좀 해라.’
-승부는 끝나지 않았다.
평범한 무인이었다면 마수림의 운무에 내력이 급속도로 빠져나가겠지만, 무진의 공력은 처음과 다르지 않았다. 호흡과 모공을 통해 흡수되는 운무를 육체가 자체적으로 걸러 내어 내력의 소실을 제한했다.
그렇다고 해도 마수림이었다.
내력의 순환과 발출이 완전하다고 보긴 어렵다. 그저 저들이 생각하는 만큼 손해를 보지 않는 정도였다.
‘효과가 있어서 다행이긴 해.’
-독왕과 괴의가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 거다.
남만에 오기 한참 전부터 해독제를 완성하는 데 시간을 소모했다. 독왕과 괴의가 독과 단약의 제조에 일가견이 있다고 해도, 단순히 어떤 식으로 작용하는지만 듣고서는 완성하기가 쉽지 않았다.
해독제를 제조하기 위해서 들어간 영약, 영물, 영초를 비롯한 각종 약초와 비용이 상당했다. 쏟아부은 만큼 효과가 없다면 허공으로 돈만 날렸을 것이다.
‘이제 천군만 해결하면 끝나겠구먼.’
-한 놈이라면 질 리 없겠지만, 두 놈 이상이면 꽤 피곤할 거다.
‘누가 혼자래.’
-괜한 짓은 하지 말지.
‘너도 궁금하잖아.’
-그러다 망치는 수가 있어.
‘난 마수림을 믿어.’
-미친놈.
무진은 자신 있었다.
예전부터 영물과는 소통이 잘되었다. 마물이라고 다르진 않을 거다. 오는 족족 마음을 열고 간절히 염원하다 보면 진심을 알아줄 것이다.
화룡이 자발적으로(?) 자신의 모든 걸 바쳤던 걸 상기하면. 마지막까지 살신성인하여 영단과 갑옷으로 새롭게 태어났었다.
-그게 자발적인 건가?
‘사소한 오해가 있었을 뿐이야.’
-오해 두 번 했다가는 제 명에 못 살겠군. 아니지, 지금도 수명이 줄었을 것 같은데.
‘그럴 리가. 더 열심히 살면 또 모를까.’
비웠을 때 비로소 채워진다는 말 못 들었나. 소탐대실이라고, 눈앞의 이익에 집착하면 더 큰 대의를 잃을 수가 있었다.
무진의 가당치도 않은 공수래공수거에 마왕은 상종 못 할 놈임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사방에서 적의가 느껴졌다.
훈훈하구먼.
소통하자, 애들아.
크어엉!
무진의 주변으로 늑대들이 식욕을 불태우며 달려들고 있었다. 일반적인 늑대보다 족히 세 배는 더 크고, 검은색을 띠는 흑대랑들이었다. 능히 호랑이와 비견되는 힘과 속도를 지녔다. 노란 동공과 입가에 흐르는 침이 섬뜩했다.
퍼퍼퍼펑!
깨개개갱!
다만, 무진도 일반적인 무인과 다른 상종 못 할 개새끼라는 걸 흑대랑들이 몰랐다. 자신들만 다른 줄 알고 달려드니, 소통의 부재가 여실히 드러났다. 서로가 원하는 걸 이루지 못해 안타까운 오해가 첩첩이 쌓인다.
바르르!
흑대랑 열 마리의 좌우에 권흔이 선명하게 새겨졌다. 의도치 않게 흑대랑의 치아에 문제가 생기고 말았다. 다섯 개 정도 빠졌지만, 무진은 환하게 웃으며 물었다.
오른쪽이 없으면 왼쪽으로 씹으면 될 일.
아주 간단했다.
“친구 할래, 맞을래?”
점잖게 의사를 물었다.
크르르렁, 퍼어억!
깨개갱!
꺾이지 않은 의사를 존중해 주며, 번갈아 권흔을 새겨 주었다. 턱뼈가 조금 으스러졌지만, 마물이니 자연 치유가 될……걸.
턱뼈가 없으면 삼키면 되고, 그딴 일은 중요하지 않았다.
오복의 하나를 끊어 낸 무진은 마음을 환히 열며 영통술을 발휘했다. 그런데도 마수림의 마기에 젖었다면 가슴 아프지만, 손속이 약간 매워질 거다.
퍼어어억, 푸악!
끝까지 소신을 지키는 흑대랑은 숭고한 희생을 치렀다. 몸통만 남고 대가리가 박살 나긴 했다.
무진은 염불을 잊지 않았다.
“내세엔 꼭 사람으로 태어나라.”
-이딴 게 무슨 영통술이야!
무진은 다음 흑대랑에게도 선택권을 주고, 대가리를 두들겼다. 영통술이 통하면 살고, 안 통하면 세상에 미련이 없는 것으로 알아들었다.
소통은 소통인데, 일방적이다.
“친구 할래, 맞을래?”
어떤 일이든 도중에 포기하면 의미가 없다. 끈기를 가지고 계속하다 보면 답이 나오기도 한다.
안 나오면 죽기밖에 더 하겠어.
무진은 가는 길마다 나오는 늑대, 표범, 호랑이를 비롯한 각종 맹수들에게 영통술을 시전했다.
퍼어억, 크어어엉!
맹수들의 서글픈 포효가 마수림을 울렸다. 안타깝게도 마수림은 소리의 전달이 좋지 않았다. 마수림을 뒤덮은 운무가 소리마저 잡아 삼켰다. 혼자 조용히 곡을 읊을 땐 방음이 잘되어서 창피하지 않았다.
“친구 할래, 맞을래?”
크릉!
인내심의 한계를 시험하면 곤란하지.
친구 하재잖아.
이렇게 사정하는데 불쌍하지도 않나.
퍼억!
순간이었을까, 흑대랑의 눈빛이 바뀌었다. 주변의 머리 없는 동료들을 보고 흔들린 것이다. 제정신이 아니었던 흑대랑은 급히 정신을 차리며 맹렬히 고개를 흔들었다.
‘이거 봐.’
-……이런 거지 같은 일이!
이래서 소통이 중요한 것이다. 시도도 해 보지 않고 포기하는 모습은 현명하지 않았다. 항상 도전하며 긍정적으로 살아가야 밝은 미래가 찾아오는 법이다.
주춤, 주춤!
먹잇감인 줄 알고 찾아왔던 마수림의 마물은 무진이 다가가자 뒷걸음을 쳤다.
‘소통하자니까.’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냐.
무진의 뒤로 영통술이 통한 흑대랑 두 마리가 있었다. 명백하게 발휘된 영통술이었다. 다만, 이백 마리의 머리 잃은 맹수들은 사소한 부작용에 불과했다.
아마 평소에 가지고 있는 정신이상이나 질환에 의해서 발생한 사고일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영통술이 통했을 테니, 연관성은 없다고 볼 수 있다.
‘일수영통은 됐고, 백수영통을 위해서 가보자고.’
-대체 얼마나 죽일 작정이냐!
아휴, 끔찍한 소리를.
마수림이 아닌 평범한 수림으로 돌아가자고.
무진은 마수림의 정화를 위해 성의를 아낌없이 쏟아부었다. 다소간의 희생은 큰 문제가 되진 않는다. 이렇게 협조적인 대랑 두 마리가 있는데, 무진은 든든했다.
만수영통을 위해 무진은 부지런을 떨었다.
크어어어엉!
깨개개개갱!
푸아아아악!
평범한 형태의 맹수뿐만 아니라, 마기에 변질되어 새로운 형태를 띠는 마물도 있었다. 이름도 알기 어려운 복잡 다양한 모습이 신비로웠다.
집에 가지고 가 철창에 가두어 기르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켰다.
‘저건 소장각이다.’
-박제되겠군.
호랑이와 늑대의 머리를 가진 마물을 보자, 무진은 소유욕을 느꼈다. 이러면 안 되지만, 저건 좀 특별 대우를 해주었다.
크어어엉!
다른 마물과 달리 투기가 줄지 않았다. 주춤했던 평범한 맹수들과는 차원이 다른 종인 모양이다.
“이제부터 네 이름은 호랑이다.”
-네 맘대로 지으면 되는 거냐?
“호랑아. 손, 발, 거기, 어이쿠, 잘한다.”
-제정신이 아니군.
무진은 주인과 놀고 싶은 호랑(虎狼)의 마음을 헤아려 반겨 주었다. 다소간의 마찰로 호랑이 포효했지만, 환영 인사로 받아들였다.
깨개개갱!
뿌어어억!
이렇게 안타까울 수가.
손속에 힘을 과하게 주었나 보다. 호랑의 머리 하나가 박살이 났다. 그래도 하나가 남았으니 살았겠지.
털썩!
대가리가 두 갠데, 두 개의 역할을 하지 못했다. 실로 어처구니없는 실수였다. 하나가 죽어도, 남은 머리로 살아갈 줄 알았거늘.
마물이면 재생 안 되나?
‘서로 사랑했구나?’
-정도껏 해라.
안타까운 마음에 애도했더니 주변의 마물들이 감동했는지 벌벌 떨며 오줌을 지렸다. 너 나 할 것 없이 고개를 조아리며 절대복종하는 모양새였다.
“미안하지만,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일단 알아들을 때까지 해 보자.”
-……!
마물들의 말도 들어봐야…… 아~~~!
무진은 야수궁주가 언급했던 금지를 향해 순조롭게 나아가고 있었다. 점점 영통술이 효력을 발휘하며, 실력도 많이 들었다. 한두 마리에 불과했던 영통술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었다.
“진정한 만수의 지배자가 되어 보자!”
-……씨를 말릴 심산이구나!
***
경합의 끝이 다가오고 있었다.
사흘은 누군가에게는 짧을 수도 길 수도 있으나, 마수림에서의 사흘은 평생처럼 강렬한 인상을 새겨 주기에 충분하다. 마기에 오염된 마물과 사흘 동안 같이 산다고 생각해 봐라. 보통 사람은 견디기 힘든 악몽으로 남을 것이다.
흠.
잘라낸 나무의 터에 앉은 용천군은 미간을 찌푸렸다. 입구 근처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찾아올 줄 알았는데, 예상보다 늦어지고 있었다.
“길을 잃었나?”
“설마요, 그 정도로 멍청하진 않을 겁니다.”
“아니면 알아챘거나?”
“그렇게까지 똑똑한 놈도 아니지 않습니까.”
어느 것도 용천군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일전에 중원의 대계를 훼방 놓았던 놈처럼 거슬렸다. 예측 가능한 듯하면서도, 어디로 튈지 모르는 놈이었다. 그러고 보면 항상 계획과는 다른 방향으로 움직였다.
‘다른 꿍꿍이가 있었나?’
그렇다고 하기엔 무리가 따랐다. 안으로 들어오기 위해 결계를 강제로 해체했다가는 마수림의 마물을 외부에 풀어놓는 자충수였다. 남만의 생산력을 고려하면 마수림의 결계를 유지하는 데 막대한 비용이 들었다. 그걸 자기 스스로 걷어찬다면 그보다 멍청한 짓도 없다.
‘조력자가 있을 리 없을 텐데.’
마수림으로 들어온 이상, 내부에서 해결해야 했다. 결계를 여닫으려면 야수궁에서 선별하여 훈련한 진법가가 있어야 한다.
‘뭘 원하는지는 몰라도 곱게 죽여 줄 순 없겠어.’
용천군은 지금 화를 부단히 참고 있었다. 현천군과 역천군이 실패한 임무를 계승할 때까지만 해도 이렇지는 않았다. 이상하게도 꼬여 가는 흐름 때문에 신경이 곤두섰다.
그 분풀이로 의도치 않은 희생이 있었다.
스윽.
부르르!
황족은 용천군의 시선에 겁을 집어먹었다. 그들은 부족장과 직계가 갈가리 찢겨서 처참하게 죽는 장면을 눈앞에서 보고 말았다. 분풀이하듯 짓이기는 가공할 패도에 감히 복수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황검은 약하지 않은데.’
‘일수에 피떡이 되었지.’
‘이 선택이 잘한 건지 모르겠구나.’
‘선조시여, 부족을 굽어살피소서.’
청족, 흑족, 적족, 백족도 공포에 물들기는 매한가지였다. 감히 용천군의 패도에 항거하지 못했다. 저 강함은 어쩌면 온전한 야수궁주를 능가할지도 모른다.
‘비루한 것들.’
용천군은 자기 것도 지키려고 하지 않는 것들에겐 관심조차 주지 않았다. 맘 같아서는 모조리 쓸어버리고 싶으나, 본교의 충실한 도구로서 해야 할 일이 있기에 남겨 두었다.
음?
운무를 뚫어내며 파문이 전해졌다. 무언가가 이쪽을 향해 몰려오고 있었다. 마수림을 둘러싼 운무는 감각을 교란하는 특성이 있어, 평상시보다 기감이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다. 그래서 지금에서야 느낀 것이다.
“준비하도록.”
용천군이 터에서 일어나자 전사들은 경계태세를 갖추었다. 이곳을 향해 몰려오고 있는 걸 그들도 느꼈다. 범상치 않은 수준이 아니라, 마수림 내에서도 감지하지 못한 기세였다.
쐐애애액!
대비하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운무를 관통하여 대포알처럼 날아왔다. 빠르고 강력한 힘의 파문, 폭탄일 가능성이 컸다. 그제야 용천군은 놈이 믿고 있는 것이 무언지를 알 수 있었다.
후후후!
가소로운 짓을 하고 있었다. 폭탄 따위에 의존하다니, 무인으로서 논할 가치도 없는 놈이었다.
꽈아아앙!
다만, 예상을 상회하는 파괴력에 경시하긴 어려웠다. 폭탄에 내력이 실려 사방으로 질척한 이물질이 터져 나왔다.
‘……뭐지?’
벽력탄과 비슷한 폭탄일 거란 예상과 달리, 내력의 폭발 이외에 별다른 일이 벌어지지 않았다. 사방으로 퍼질 화염을 대비하려고 했던 용천군의 미간이 좁혀졌다. 군무극의 의도를 예측하기는커녕 전혀 다른 방향으로 향하고 있었다.
두드드드드!
지면이 흔들렸다.
무리를 이루는 기세가 벽을 이루었다. 곧이어 마물이 떼를 지어 달려들었다. 적지 않은 수에 오대부족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영통술이 극의에 이른다 해도 저 수효는 말이 되지 않았다.
“……만수영통!”
그들로선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이나, 저 많은 마물을 다스리려면 만수영통이 아니고선 불가능했다.
군무극이 내가기공의 무인이라서 가볍게 여겼더니, 생각지도 못한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역시 궁주의 혈통이었나!”
역대로 야수궁의 궁주는 바뀌지 않았고, 초대 궁주부터 현재까지 영통술에 관한 한 부족들 전체를 압도했다. 궁주의 혈통을 이어받았다면 작금의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감탄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닐세!”
“어서 방진을 형성하고, 영통술을 개방하도록!”
“주술을 풀어, 신체를 강화한다.”
만수영통이라고 해서 완전하진 않을 것이다. 빈틈을 파고들어 마물이 모이지 못하도록 해야 했다. 대부족을 다스리는 부족장답게 차분히 대응해 나갔다. 그러나 사방을 둘러싼 마물의 규모와 종류에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대체 어디서 이런 마물이!’
‘얼마나 많은 거야?’
‘만수영통이라도 너무하지 않나?’
자신들도 본 적이 없는 마물까지 등장했다. 그래서일까?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보지 못했던 마물이라니? 설마 하는 심정이었다.
‘아니겠지.’
‘아닐 거야!’
‘안 돼!’
미치지 않고서야.
퍼어엉, 푸아앙!
오대부족이 진을 구축하여 영통술을 쓰며 대응하는 순간, 용천군은 가공할 무력을 과시했다. 접근하는 모든 마물을 갈가리 찢어발겼다. 무시무시한 내력의 전사였다. 나선을 그릴 때마다 휩쓸리며 마물들이 한 줌의 핏물로 화했다.
“같잖은 수작을 부리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