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King RAW novel - Chapter 370
369 친구와 함께(3)
칠성천 용천군 천화.
육성천 암천군 천우.
완전히 다른 성향처럼 보이나, 둘의 얼굴은 거울을 보듯 닮았다. 서로 자잘한 부분까지 비교하지 않은 이상, 똑같이 생겼다. 암천군과 용천군은 같은 시간에 태어난 형제였다. 용천군이 나설 때마다 암천군은 음지에서 뒤를 따랐다.
무진은 용천군을 확인하고도 곧바로 죽이지 않았다. 그리하면 암천군은 절대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리라. 어둠 속의 제왕은 조심성이 강했다. 확실하지 않으면 본모습을 언제까지고 감추었을 것이다.
“……이건 있을 수 없어!”
용천군은 암천군에게 열등감을 느끼고 있었다. 먼저 태어났지만, 육성천에 오른 암천군을 경쟁 상대로 여겼다. 처음부터 함께했다면 지금처럼 허망하게 당하진 않았을 것이다.
신력 개방을 통해 원상태로 회복하면, 전력 대결을 펼칠 수 있었다. 하지만 암천군에 대한 열등감이 일을 그르치고 말았다. 나서야 할 때를 맞추지 못했기에 동생을 잃은 것이다.
음과 양으로 태어나 합일을 이루지 못하고 물과 불의 관계가 되어버렸으니.
뼈아픈 결과는 당연할지도.
“네놈은 대체 뭐냐?”
“알아서 뭐 하게.”
“어떻게 알았냐고!”
“열등감이 보였거든.”
“……죽인다!”
“그러려면 처음부터 잘했어야지. 크크크!”
초살마검에 당한 용천군의 저항은 무의미했다. 기력이 사라졌고, 신력까지 잃었다.
꽈악!
무진은 용천군의 목을 잡았다. 버러지같이 몸부림을 치지만, 이젠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전력을 다하려고 했다면 서로 힘을 합했어야 했다.
충고하자면, 동생의 마음을 알아차렸어야지. 형으로서 보듬지 못한 속 좁음이 패착이 되었다.
‘나처럼 마음이 넓어야지.’
-네 동생이 회귀를 해 봐야 해.
무진은 무너져 버린 용천군의 뇌리를 투심마안으로 장악해 나갔다. 자신이 동생을 죽였다는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을 때야말로 투심마안이 파고들 최적의 요건이었다.
이런 기회를 놓칠 수가 있나.
“너 때문에 동생이 죽은 거야.”
“웃기지…… 크아아악!”
“형이면 보듬어 줬어야지.”
“그만…… 아니야!”
울부짖는 용천군을 보니 무진은 매우 흡족했다. 마신교는 이렇게 죽어야 제맛이었다. 자기들도 부모 형제가 죽어 봐야 개소리를 지껄이지 못하지.
-피도 눈물도 없군.
‘개소린 그쯤하고, 알아낸 건?’
-누차 말하지만, 빨리 끝내야 할 거다.
‘역시.’
무진은 주저하지 않았다. 알아낼 건 알아내고, 깔끔한 처리는 기본이었다.
용천군의 목을 꺾었다.
우드드득!
혀를 길게 뺀 채 죽어 버린 용천군을 암천군과 같이 허공으로 들어 올린 후 삼매진화로 태워 버렸다.
화르르르르!
목이 떨어진 시체도 남겨 둘 순 없지.
마신교엔 영혼을 불러서 확인하는 요상한 주술도 있을 수 있다. 그럴 때를 대비해서 완전히 지워 버려야 한다. 처리를 미적지근하게 해 버리면 나중에 반드시 후회하게 된다. 여지를 주지 않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강자였다.
‘부디 내세엔 사람으로 태어나라.’
-네가 할 소린 아님.
공염불을 외우고 나니, 여전히 미친 듯이 날뛰는 친구의 괴성이 들렸다. 나이가 상당하다고 들었는데, 정력이 대단한 흑마룡이었다. 그러니 저 연세에 새끼를 다섯 마리나 낳지. 듣기로는 남편은 잡아먹었다고 한다. 자식을 위해 어미의 자양분이 되었으니 훌륭했다.
쿠어어어억!
화르르르르!
천지 사방을 불태우는데, 안방처럼 따뜻했다. 훈훈하다 못해 뜨거운 화염이 번지고, 오독궁과 오대부족의 사투가 펼쳐졌다.
남의 집 불구경과 싸움이 제일 재밌다고 하는데, 두 가지가 함께 보이니 너무 재밌다.
“잘 막네.”
-곧 죽을 거 같다만.
몇몇 불타 죽은 이들이 있지만, 사소한 죽음까지 일일이 다 신경 쓸 만큼 한가하지 않았다.
내 편도 아닌데, 인간적인 감정을 담을 필요가 있나. 뒈지면 그것이 제 운명이겠지.
“시간이 많았으면 좋았을걸.”
-심보 좀 곱게 써라.
아쉽게도 시간이 많지 않았다. 느긋하게 행동했다 계획이 잘못되는 수가 있었다.
“어이, 친구. 이제 그만해.”
쿠어어어어엉, 화르르르르!
마음을 담아 흑마룡을 부른 무진은 무안했다. 답을 해주기는커녕 독마와 오대부족을 죽이려고 안달이 나 있었다.
“사람이 불렀으면 대답을 해야지.”
모른 척 외면하면 부끄러워서 참을 수가 없잖아.
무진은 친구의 외면에 조심스럽게 접근한 후, 패도무쌍의 권의를 담은 권풍을 발출했다.
슈아아아앙, 푸아아아앙!
새끼를 잃은 어미는 무진의 뒤통수에 비명조차 내지르지 못하고 대가리를 잃었다. 한참 날갯짓을 했던 흑마룡은 대가리를 잃고 볼썽사납게 고꾸라졌다.
쿠우우웅!
허억!
돌연한 반전에 오독궁과 오대부족은 헛바람을 삼킨 채 망연자실했다. 흑마룡으로 인해 절반이나 죽었었다. 이처럼 허망하게 끝이 나 버릴 줄 누가 알았으랴.
독마의 놀람이 가장 컸다.
“……네놈이 어떻게?”
“안 보고 여태 뭐 했어. 전투 끝난 지가 언젠데.”
흑마룡을 상대하느라 정신이 팔렸던 독마는 현실을 불신했다. 인간의 범주를 벗어난 용천군의 무위를 알기에 더더욱 믿기 힘들었다. 놈은 살아 있어선 안 되었다. 산산조각으로 흩어져야 마땅하거늘.
어처구니없게도 놈으로 인해 자신들은 살아남고 말았다.
‘어쩌지?’
기습은 중요하지 않았다. 흑마룡을 일격에 죽여 버린 괴물 같은 놈이었다. 이젠 아까처럼 대하기도 어려웠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했다. 놈을 죽이지 않으면 자신도 죽는다는 사실.
‘독강시라면.’
안타깝게도 흑마룡을 상대하느라 한 기를 잃었다. 독궁의 모든 전력을 투입하여 완성한 독강시를 잃었으니 출혈이 컸다.
어쨌든 한 기가 있으니 시간을 끌 수도 있으리라. 독이 통하지 않은 흑마룡과 같은 마물이 아니라면, 독강시는 인간에겐 치명적이었다.
‘오대부족까지 퍼부으면.’
갈산독에 중독이 된 이상, 자신이 만든 해독제가 아니면 오대부족은 고통에 몸부림치다 칠공에서 피를 흘리며 죽게 된다.
휘익!
독마의 상념을 존중한 무진은 오대부족에게 무언가를 던졌다. 남아 있는 자들에게 한 알씩 던져진 것은 단약이었다.
“해독제다. 질문은 받지 않는다.”
먹고 싶으면 먹고, 싫으면 안 먹어도 그만이다. 선택은 자유였다. 신뢰란 원래 목숨을 걸어야 의미가 있으니까.
도망칠 궁리부터 했던 독마는 발작했다. 갑자기 해독제가 나올 줄은 몰랐기에 더더욱.
“……거짓말이다! 갈산독의 해독제는 나만 알고 있어!”
“내가 왜 괜찮았을까?”
“그건 네놈이 만독불침지…… 헛소리다!”
“멍청한 놈일세.”
제 입으로 말하고, 제 입으로 아니라고 하면 누가 믿냐고.
무진의 넓은 아량이었다.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못 알아들었으면 살릴 가치가 없다고 봐야겠지.
꿀꺽!
독마의 외침이 기폭제가 되었고, 오대부족은 너 나 할 것 없이 해독제를 입에 털어 넣었다. 해독제가 아니더라도, 여기서 살려면 말을 들어야 했다. 흑마룡을 일격에 쳐 죽인 괴물을 상대로 덤벼들어 봤자 명년 제삿날에 불과했다.
“빌어먹을, 대체 어떻게?”
독마는 저 단약이 해독제라는 걸 눈치챘다. 아니, 모를 수가 없다. 갈산독을 복용하게 되면 자신만 맡을 수 있는 특유의 향이 있었다. 오대부족에게서 그 향이 옅어졌다.
그래서 더더욱 말이 안 된다. 갈산독은 본궁의 유일독이었다. 해독제를 유출했을 리 만무했다.
“해독제를 어떻게 가져온 거냔 말이다!”
“그걸 묻기 전에 네 몸부터 보존해야 하지 않을까. 다들 열 받은 거 같은데.”
한 번 배신한 놈들이고, 두 번 배신하지 말란 법도 없지. 갈산독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충성했을 수도 있다. 이유 불문 배신은 배신, 오대부족으로선 충성을 증명해야 했다.
‘이건 시험이다!’
‘진심을 보여줘야 한다!’
‘부족을 위해서라도!’
오대부족의 눈빛이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다. 압도적인 힘에 굴복했지만, 독에 중독되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강요받은 충성은, 금제가 사라지는 즉시 햇빛에 흩어지는 운무처럼 연약했다. 오랫동안 반목과 다툼의 역사였던 오독궁에 고개를 숙이기도 싫었다.
“원래 독강시를 만들기 위한 기본 재료지. 계속 복용했으면 어떤 일이 벌어졌으려나.”
“네놈이 그걸 어떻…… 아니다!”
어설프기는.
궁지에 몰리면 하나같이 다들 멍청해진다. 부정할 거면 얼굴에 철판을 깔아야 하는데, 당황한 티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오대부족도 당황하는 눈치였다. 단순한 금제인 줄로만 알고 있었다. 이지를 잃고 실혼인이 되어 병기로 사용될 거라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
“독마여, 살 생각은 버리는 것이 좋을 것이다!”
“같이 죽는 한이 있더라도 네놈과 오독궁은 반드시 다 죽여 버리겠다!”
“놈을 죽이자!”
치졸한 짓에도 선이라는 게 존재했다. 굴복했다고 하여 독강시가 되고 싶진 않았다. 독마의 독을 부족들이 복용했다면 어떤 사태가 벌어졌을지 상상만으로도 끔찍했다. 자신들만 죽는 것이라면 받아들였을 수도 있다.
“벌레 같은 놈들이 누굴 죽인다고!”
독마도 이판사판이었다. 어차피 이리된 마당에 목숨을 구걸해 봤자 살아남기 힘들다. 감추어 놓은 모든 전력을 쏟아부어야 목숨이라도 연명할 수 있을 것이다.
스륵!
꽈아아악!
멍청하기는.
너희들의 꿍꿍이를 언제까지 기다려 줄 것 같아.
무진은 독마와 두 장로가 당황하고 있는 틈을 노려 독강시의 배후로 돌아가 목을 틀어잡았다.
끼요요요욧!
독강시나 혈강시나 비명은 한결같구먼. 혓바닥이 강시화되어서 그런지 발음이 부정확했다.
알아듣지 못하는 말로 지껄이니, 내 멋대로 해석할 수밖에.
츠으으으!
무진의 손끝에서 극염의 열기가 발생했다. 위협을 느낀 고슴도치가 바늘을 세우듯, 독강시가 독을 뿜었다.
“네놈이 만독불침이라도 독강시…… 아니!”
독마의 득의만만한 외침이 끝나기도 전에 무진은 독강시의 목을 으스러뜨렸다.
우드드득!
화르르르!
목을 으스러뜨린 손에서 백염이 치솟아 독강시를 잠식했다. 발버둥을 치던 독강시는 화염에 휩싸여 잿가루가 되어버렸다.
마지막 구명줄을 한순간에 잃어버린 독마는 허탈했다.
“……네놈은 대체 누구냐?”
“내가 어디까지 떠먹여 줘야 해.”
무진은 독마와 대화하지 않았다.
내가 누구인지를 구질구질하게 설명하기보다는 오대부족을 닦달했다. 확실한 인상을 주지 않으면 오대부족을 가만두지 않겠다는 엄포였다.
“쓸모없는 놈들을 데리고 다닐 필욘 없지.”
“나를 무시해…… 빌어먹을!”
오대부족과 독마의 사투가 펼쳐졌다. 무진은 누가 죽든 크게 의미를 부여하진 않았다. 그저 지켜볼 뿐. 얼마나 도움이 될지, 신념을 관철하려면 증명은 필수였다.
“하찮은 놈들이 감히!”
“더러운 수작이 통할 성싶으냐!”
오대부족은 죽기 살기였다. 그들로서는 반드시 독마를 죽여야 한다. 자칫 부족 전체를 죽음으로 몰아넣을 씻지 못할 죄악을 저지를 뻔했다.
“이럴 순 없어!”
독마는 이를 갈며 저주했다. 주변을 에워싸는 오대부족을 상대하기도 벅찼다. 온전한 상태도 아니고, 수적인 차이가 컸다. 용천군을 믿고 있었기에 받아들일 수 없는 결과물이었다.
“입구가 열릴 텐데, 그 전에 끝내는 편이 이롭겠지.”
배신을 알아챌 인원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오대부족으로선 불리했다. 독마를 죽여 입을 막지 않으면 곤란한 상황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오대부족은 더더욱 필사적이었다.
한편으로 말 한마디로 자신들을 밀어붙이는 무진이 인간 같지 않았다. 무력뿐만 아니라 전황을 이끌어 가는 능력이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야수궁이 독강시가 된 이유가 있었어.’
-독에 강하고, 강건한 신체를 지녔으니 실험하기에는 적합할 수밖에.
‘어떠냐, 나의 선견지명이?’
-용무길의 조언이 아니었으면 그냥 다 태워 버렸을 거면서.
무림맹의 군사로 역임한 용무길은 독강시의 위험을 알아차리고 무진에게 부탁했었다. 죽이지 말고 독강시를 사로잡아 달라고.
그때나 지금이나 용무길의 선택은 현명했다. 그는 전쟁에서 이길 최선의 방법을 찾아내는 귀재였다. 만약 독강시를 연구하여 분석하지 않았다면 엄청난 피해를 양산했을 것이다.
‘당시의 야수궁주는 위험했지.’
-몇 기 더 생산했으면 전황이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그 정도는 아냐.’
-굳이 널 상대할 필욘 없지.
‘아!’
-멍청하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