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King RAW novel - Chapter 387
386 귀환(2)
용호각에서 나와 별궁으로 가는데, 시녀들이 쑥덕거렸다. 무진과 궁주를 보더니 화들짝 놀라 고개를 숙였다.
“믿을 수가 없어.”
“자네 제자이지 않나?”
궁내에서 철호의 인기가 하늘을 찔렀다. 공준지, 뭔지 성별이 불분명한 소소가 미리 점찍지 않았다면 분란의 씨앗이 되었을 것이다. 궁에 있는 내내 시녀들의 뒷담화를 들었기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여기 오래 있다간 내 눈이 이상해지겠습니다.”
“남의 문화를 모욕하진 말게.”
대륙과 남만의 거리감을 느꼈다. 선호하는 바가 다르다곤 해도, 보는 눈은 같을 줄 알았거늘. 제자의 성취를 위해서라도, 빨리 떠나야 했다.
별궁에서 준비를 마치고 서문호와 육칠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을 바라본 무진의 시선이 마땅치 않았다.
“왜 그러십니까?”
“말을 말자.”
서문호와 육칠은 굉장히 기분이 나빴지만, 변명하진 않았다. 한다고 해서 남만의 문화가 바뀌지도 않을 테고. 딱히 철호가 부럽지도 않았다.
흐음.
철호의 옆에 아교처럼 달라붙은 소소의 행색에 무진은 이맛살을 찌푸렸다.
“넌 뭐 하냐?”
“저도 가려고요.”
“안 돼.”
“저도 도움이 될 수 있어요!”
“그 실력으로?”
코웃음을 치는 무진의 핀잔에 소소의 근육이 꿈틀거렸다. 속이 상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남 공자가 싸울 때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힘이 솟는 응원이 전부였다. 그래도 남 공자와 함께하고 싶었다.
“제발요!”
“그 몸으로 중원에 가면 눈에 띌 게 분명한데, 나보고 너까지 보살피라는 거냐. 좋게 대하니까, 내가 아주 호구로 보이나 봐!”
군위천은 딸을 대놓고 나무라는 무진의 횡포에 울화가 치밀었다. 같이 가지 못하게 따끔하게 말해 달라곤 했지만, 저렇게까지 할 필욘 없지 않나.
한순간 내 딸이 쓸모없어져서 아비로서 회의감이 들었다.
“도움이 되고 싶으면 그 불분명한 몸부터 바꿔.”
“제 몸이 어디가 어때서요?”
“알면서 물어보는 거면 처맞는다.”
저 몸으로 어딜 간다고 해 봐라. 변장해도 단번에 들킬 거다. 세상에 저런 몸을 가진 여인은 남만으로 충분했다. 데리고 가는 즉시 동네방네 돌아왔다고 소문내는 격이다. 아직 마무리할 일이 산더미라 정체가 발각되면 곤란했다.
“부모님이 주신 몸을 어떻게 바꿔요!”
“천축의 유가기공을 극성으로 익히면 몸을 자유자재로 변형할 수 있다더군. 내 제자가 그렇게 좋으면 할 수 있지 않을까? 혹, 네 마음이 그것밖에 안 되는 건 아니겠지.”
“할 수 있어욧!”
“그럼 됐네.”
말처럼 쉬우면 인생에 실패자가 왜 있을까?
무진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거짓말을 하진 않았지만, 유가기공을 익힌다고 해서 육체를 통제하기가 쉬웠으면 개나 소나 유가기공을 익혔을 것이다.
천축에서 유래한 유가기공을 방금 말한 수준에 이르려면 최소한이 팔성에는 올라야 했다.
하물며 소소의 육체는 너무 탄탄하다. 유연하게 바꾸는 데도 오래 걸리고, 체격을 조절하려면 극성을 초월해야 했다.
유가기공이 이름만 들어서는 대단치 않아 보이지만, 극성에 이른다면 아무도 무시할 수 없다. 어떤 무공이든 손쉽게 익힐 수 있는 다용도 극상승의 무공이었다.
-환골탈태가 더 빠르지 않을까?
‘그거야 이놈 사정이지.’
-이년이다! 그리고 차라리 헤어지라고 하지 그러냐!
‘그랬으면 좋겠다.’
설마 유가기공을 극성으로 익혀서 찾아오진 않겠지.
실상, 익히기도 어렵지만, 유가기공을 당장 어디서 찾아. 유가기공에도 종류가 다양하고, 극성으로 익히려면 신공에 버금갔다. 천축이든 중원이든 비전절의는 아무에게나 넘겨주지 않았다.
“아빠~~!”
“진서각에 유가신공이 있을 거다.”
있다고?
없을 줄 알고 불가능한 단서를 달았다. 그런데 시작부터 있다고 한다. 이 망할 놈의 궁주가 아까는 말려 달라면서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쳐.
자기만 좋은 아빠이고 싶다 이거지!
-그러는 너는?
‘이놈하고 미주하고 같냐!’
-이년이라니까.
‘불태운다.’
-어차피 극성으로 익히기 어렵잖아.
‘알아.’
아는데, 만의 하나가 걸렸다. 소소의 불타오르는 의욕이 께름칙하다. 설마가 사람을 잡는다고 했다. 제자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사부로서 과감히 결단을 내려야 할지도.
“열심히 익혀라.”
“청양으로 찾아가겠어요.”
소소의 활활 타오르는 결단에 무진은 차마 하지 말라고는 못했다. 저러다 포기해 줬으면 하는 바람이나, 시간을 번 것으로 만족해야겠지.
***
정주.
하남성의 성도로 황하 이남을 따라 낙양과 개방을 잇는 도시 정주는 동서남북의 모든 물자가 모이기에 수륙으로 교통의 요지이기도 하다. 정주가 중요한 이유는 교통로로써 많은 자원이 몰리는 곳이기는 하지만, 무림맹이 있기 때문이다.
위기에 세워졌던 무림맹도 세월이 흐르면서 예전과는 달리 퇴색되었다곤 하나, 여전히 무림을 떠받치는 기둥이었다.
그런 무림맹도 이제는 쇄신이 필요할 때였다. 고인 물은 썩고, 익숙함은 화근을 불러오기 마련이다.
고이다 못해 퇴색한 무림맹이 근래에 활기를 찾아갔다. 잠잠하던 거룡이 꿈틀하자, 생기가 돌았다. 강호를 아우르는 무림맹의 태동이었다.
원인은 자명하다.
정주의 누구에게 물어본들 정답을 내놓는다. 하나는 무림맹주의 교체이고, 또 하나는 새로운 시대를 열 무림대회의 개최였다.
맹주의 교체는 기정사실이었다.
다음 대 맹주로 남궁의 제왕검제(帝王劍帝)가 떠오르고 있었다. 하나, 다른 후보도 만만치는 않았다. 그 역시도 신주이십일강에 드는 태양신군이기 때문이다.
강호의 신망과 지지층이 검제와 비교해 부족하긴 하나, 태양신군도 맹주가 되기엔 충분했다.
하남성 정주로 무인들이 대거 몰리고 있었다. 무인으로서 갈고닦은 실력을 선보여 명성을 얻고, 무림맹의 요직에 앉기 위해서였다.
그런 와중 젊은 무인들의 피가 끓었다. 무공을 검증받고 싶어 하는 자들이 수두룩했다. 하나, 단순히 무공을 겨루는 것으론 만족하진 못했다.
나비가 꽃을 찾듯.
신검마협과 네 여인에 대한 소문이 자자했다. 영웅에게 삼처사첩은 흉이 되지 않는다고 했던가.
신검마협의 영웅지로는 사내들에겐 깊은 인상을 심어 주었고, 여인들에겐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네 여인의 미색과 배경도 하나같이 대단했다. 천하제일미를 뽑는다면 네 여인을 내세운다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신검마협의 명성이 대단하긴 하나, 천하절색의 네 여인을 독차지한다고 하니 사내들로선 탐탁지 않았다.
솔직히 배가 아프다.
신검마협의 명성과는 달리 송호문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소문파에 지나지 않았다. 어디에 있는지도 모를 문파의 무인이 강호의 영웅이 되어 아리따운 여인과 시시덕거리는 걸 보고 있자니 배알이 뒤틀린다.
근자엔 화산의 여협과도 교분을 맺어 외로운 사내들의 가슴에 불을 지폈다. 이대로 두었다간 미인이란 미인은 모조리 신검마협의 차지가 될 수 있었다.
신검마협이 머무는 무림맹 인근 객잔이 인산인해였다. 물론, 그 앞에서 노골적으로 여인을 노리는 멍청한 짓은 하지 않는다. 무인으로서 명성에 도전해 보고 싶단 의사를 표했다.
-화철객(火鐵客) 서중환.
-신광월(神光鉞) 초사독.
-적룡신장(赤龍神掌) 포관승.
-유성괴검(流星怪劍) 단사성.
-혼원룡(混元龍) 유표.
이들은 수많은 도전자 중에서도 대표적인 무인이었을 뿐. 네 여인을 본 사내들은 더더욱 열기를 불태웠다.
하나, 정도에서 제법 이름이 난 자들조차 신검마협의 일검을 받지 못하고 쓰러졌다. 저들 중 혼원룡은 대문파인 혼천문의 대공자로, 정도에 이름을 새길 무인으로 거론이 되었었다.
떠오르는 잠룡들조차 신검마협에겐 역부족이었다. 그제야 신검마협이 쓰러뜨린 거마들이 떠올랐다. 육성의 일인을 죽였다는 걸 알았어야 했다. 신검마협은 젊은 무인들이 감히 넘볼 수 없는 위치였다.
현실을 직시하자, 도전자가 급격히 줄더니 신검마협은 도전을 받지 않게 되었다. 나이의 많고 적음을 떠나, 일검에 쓰러지고 싶은 무인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마냥 일검으로 끝내진 않았다.
정중히 가르침을 원하는 자들에겐 선의를 베풀었다. 그 효과가 작지 않았다. 가르침을 통해 깨달음을 얻은 무인들은 신검마협을 신봉하며 추종했다.
-저 나이에 육성의 일인을 제압했다고 해서 헛소문인 줄 알았더니 명불허전이로다.
-혼원룡은 정말 강한데, 그조차 일검에 쓰러질 줄 누가 알았겠어.
-신검마협은 격이 다르다니까. 젊은 무인은 상대가 되지 않는다고.
-저 정도는 되어야지, 천하사미를 얻지.
-무공도 뛰어나, 가문도 잘나가, 미녀도 얻어, 우린 죽고 싶다!
-그래도 천운권의 동생이야.
-천운권만 없으면 완벽한 인생 아니냐!
-신룡대회에 참가한다며, 이러면 어중이떠중이는 나올 필요가 없잖아.
-대회의 격도 높아졌어. 어설픈 실력으론 참가해 봤자 망신만 당할 거야.
신검마협으로 인해 신룡대회의 수준이 과거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높아졌다. 예전처럼 본인을 시험해 보겠다는 안일한 마음가짐으로 올랐다간 본전도 뽑기 어렵게 되었다.
분위기가 무르익을 즈음 무림맹은 신룡대회의 우승자에게 주어지는 상품을 공개했다.
-공청석유.
-만절검해.
-단천신도.
경이로웠다. 이제까지 무림대회의 우승자에게 주어졌던 상품과는 격이 다르다. 실로 엄청난 상품이 줄줄이 나왔다. 우승자뿐만 아니라 상위 십위 내에 입상만 해도 상당한 특혜가 주어졌다.
이번 대회의 모든 자금과 물자를 제공하는 정운상단은 대상단으로 발돋움했다. 무림삼대상단에 들어설 자금력과 세력을 확보한 것이다.
홍유객잔.
황허강의 물줄기로 형성된 홍유호 앞에 세워진 정주를 대표하는 객잔으로, 규모와 요리를 놓고 보면 호북 무한의 황학루에 비견되었다. 특급 요리사가 매일 새로운 특선을 개발해 내놓기로 유명했다.
홍유객잔의 최상층에 사람이 몰렸다.
칠 층으로 구성된 객잔에서 최상층은 한가로운 편이다. 연유는 간단했다. 워낙 가격이 비싸다. 맛있는 요리에 가격을 고려하지 않는 예도 있으나, 홍유객잔의 특급 요리를 매일 먹기는 부담이 된다.
그런데 칠 층이 꽉 찼다.
신검마협과 천하사미가 점심때마다 최상층을 찾기 때문이다. 그들과 교분을 맺어 보려는 자들이 칠 층을 예약해 자리를 맡아 두었다.
“여긴 육해공이 다 맛있네요.”
“신선하기도 하고요.”
“양념이 정말 끝내줘요. 특히 이 소고기는 녹아요, 녹아.”
“여의주라고 불릴 만하네요.”
신검마협과 천하사미는 차를 마시고, 요리를 음미하고, 술을 즐겼다. 홍유객잔의 특이점은 한 성의 요리만으로 끝내지 않고, 여러 성의 특산 요리를 즐길 수 있다는 점이다. 각 성에서 유명한 요리사를 선별해 장점을 잘 살렸다.
“호 랑, 어향육사예요.”
“내가 먹어도 되는데.”
“아! 하세요.”
“크음, 잘 먹을게.”
무호는 돼지고기, 죽순, 목이버섯을 한입에 받아먹었다. 전분의 걸쭉한 양념 맛이 끝내주기는 하는데,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르겠다.
보기엔 복에 겨운 호사거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