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King RAW novel - Chapter 398
397 꺼어어억!(2)
세상을 시끄럽게 만든 당사자는 간만에 평온을 찾았다. 확실히 집에 돌아오니 마음이 안정되었다.
부스스!
무진은 자신의 팔을 베개 삼아 곤히 자는 유진을 보는 것만으로 행복했다. 이불 안에 아무것도 안 입어서 더더욱 행복하다. 밤의 후끈한 열기가 남아 있어, 촌음도 아까웠다.
스윽!
조금은 흐트러진 유진의 머리카락을 살포시 넘기며, 아침의 선선함을 만끽했다.
“깼어?”
“깨운 거잖아요.”
“일찍 일어나야지, 언제부터 우리 유진이는 잠꾸러기가 된 거야?”
“밤새 못 자게 하고선.”
“혹시, 나만 좋은 거야?”
“몰라욧!”
붉어진 유진이 이불 속으로 모습을 감추자, 무진은 따라 들어갔다. 밖에서 고생한 만큼 보상을 받아야 했다.
“안 되는데.”
“정말?”
“몰라요.”
“이제 알 때도 됐…… 아!”
우리 유진이는 아무것도 모르지. 방년 십팔 세에서 벗어나지 않는 순진함이 유진이의 매력이었다.
이제는 나도 모르겠단 말이야.
어제 뭘 했는지.
모르면 배우고, 익히고, 노력해야 하는 법. 무진은 열심히 다음 세대를 위해 애를 썼다.
집에 돌아온 후 십일이 지나고 나서야, 무진은 집 안을 둘러보았다. 부부 사이의 정무(政務)와 딸과 놀아 주기는 중요했다. 십일도 부족했으나, 대의를 위해서 침대를 벗어났다. 험난한 이불 밖의 세상을 한탄했다.
새 식구가 늘었다.
“너 뭐냐?”
“소신은 방몽이라고 합니다.”
“이름만 말하면 내가 아냐?”
“강호에선 환영마객으로 불렸습니다.”
“별호에 비해 약하네.”
“송구합니다.”
방몽은 감히 항변하지 않았다. 느끼고 싶지 않아도 느껴졌다. 강 대협이 돌아오고 난 후 송호문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상당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세간의 이목과 평가는 아무 의미가 없었다. 이것이야말로 강 대협의 진면모였다.
“아직 날 모르지?”
“아는데요.”
“모르잖아.”
“알고 있습니다.”
“경험해 봐야 알지.”
“굳이 경험…… 흐엑!”
무진은 감으로 아는 걸 신뢰하지 않았다. 부질없는 상념이 들지 않도록 방몽에게 하늘과 겸상할 기회를 내려 주었다. 많이 보고, 느끼면 곧 현실을 체득하게 될 것이다.
정 안 되면 풀어 버리면 그만이다. 낙하의 고통을 직면하게 된다면 어지간해서는 직시할 수밖에 없으니.
슈우웅!
“……?”
어느새 구름과 마주하고 있었다. 방몽은 꿈을 꾸는 기분이었다. 막대기가 된 채로 조종당하고 있음에도, 저항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날이 좋지?”
“……그렇습니다.”
“구름 맛이 상쾌해.”
“……영광입니다!”
허공답보, 천상제를 시전하는 자들을 본 적은 있다. 그러나 사람을 하늘로 집어 던질 수 있는 인간이 있다니 믿어지지 않는다. 알고 있던 규격의 상식을 아득히 넘어서는 초월무신경이었다.
그런 걸 아무렇지 않게 하는 담담함이라니.
그래서 무신경인가?
“날아 보자.”
“……흐엑!”
무진이 손가락을 휘젓자 방몽은 미풍에 휘날리는 나뭇잎이 되었다. 평범하게 날아다니는 거면 이해라도 하겠는데, 속도가 엄청났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짓을 하면 내력의 소모가 커야 정상이거늘.
‘인간 맞아?’
나릉과 강철이 풍 맞은 듯 설설 기고, 송호문의 분위기가 바뀐 연유를 확실하게 깨달았다.
굳이 이런 짓을 하는 연유와는 별개로 경험의 무서움을 체감했다. 무엇보다 하고자 하면 무슨 짓을 벌일지 예측이 되지 않아 더더욱 무시무시하다.
“아, 할 건 해야지.”
“예?”
무진은 마왕을 불렀다.
“차별은 나쁜 거야.”
“예?”
나릉과 강철이 소개할 때부터 방몽의 운명은 결정이 났다. 애초부터 본인의 의사는 중요하지 않았다. 송호문에 들어온 이상, 송호문에 뼈를 묻는다는 각오를 다져야 한다. 들어올 때는 마음대로지만, 나갈 때는 허락이 필요했다.
방몽은 잡혀 들어왔지만.
찌릿!
빛이 번쩍였다.
정신을 차린 방몽은 지상에 내려와 있었다. 언제 내려왔는지, 의식이 짧게 끊어진 것이다. 다만, 나릉과 강철에게서 진정한 형제애가 느껴졌다.
‘뭐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것 같은데, 기묘한 위화감의 정체를 도무지 모르겠다.
“속으로 욕해 봐라.”
“예?”
“맞고 욕할래.”
“……아닙니다.”
별 미친 소리를 다 듣고 있었다. 속으로 칭찬을 하든, 욕을 하든 무슨 상관이야. 무공도 정상이 아닌데, 정신마저 정상하곤 거리가 멀었다. 이런 사람을 언제까지 모시고 살아야 하는 건지, 이보다 더 나락이 있을까?
‘진짜로 미친놈 아냐?’
-크크크크.
‘……?’
-크크크크.
왜 주군의 목소리가 머리에서 들리냐고.
의아함도 잠시, 방몽은 심기체를 옥죄는 가공할 사념에 비명을 질러야 했다. 나릉과 강철의 고문도 작금의 고통에 비하면 무릉도원이었다.
지나고 나서야 봄날인…… 개 같은!
크아아아악!
방몽이 미친 듯이 발광하며 괴성을 지르자 나릉과 강철은 진한 동료애로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이런 미친놈들이!’
-크크크크!
‘……잠깐, 저분은 제외!’
-크크크크!
영혼에 새긴 사념은 공사를 구분하지 않았다. 그저 이 순간을 즐겼다. 살면서 별의별 인간 망종을 다 만나 봤지만, 이토록 지독한 자를 보았던가. 생각조차도 불경하면 가만두지 않았다. 이곳이야말로 진정한 지옥임을 깨닫게 했다.
“괜찮아, 기막 쳤다.”
아프면 맘껏 소리치라는 무진의 관대함에 방몽은 치를 떨었다. 마치 종마의 성능을 확인하듯, 관찰당하는 기분이었다.
바르르르!
방몽이 자지러지는 비명을 계속 지르는 동안, 무진은 나릉과 강철의 무공을 살폈다.
“성취가 있었구나.”
“맏형으로서 아우들을 이끌어야 하는데 놀 수가 있겠습니까.”
“좋은 자세야. 훌륭해.”
“이 모든 게 주군의 은혜입니다.”
무진은 나릉의 자세에 흡족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자고로 수하라면 주인이 원하는 걸 알아서 잘 파악하고, 입에 발린 말도 서슴없이 잘해야 했다.
직언을 고한답시고 충신놀음 하면 뒈지는 거지.
-간신을 양성할 셈이냐!
‘듣기 좋은 말만 들어도 길지 않은 인생이야.’
-오백 년은 산다면서!
‘어허, 만년해로는 해야지.’
고까운 소리는 마왕으로 족했다. 굳이 다른 녀석들의 판단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용무길과 황보세령이 있으면 관리는 어렵지 않았다. 무림맹도 둘이서 잘 관리했는데, 문파 하나 정도야. 마신교만 처리하면 모든 업무는 동생에게 일임할 것이다. 강호의 영웅으로서 분골쇄신을 마다하지 않길 바란다.
‘나 하나쯤은 빠져도 괜찮지.’
-꿈보다 해몽이 좋구나.
나의 의미는 ‘나만’이다.
다른 의미로 해석해서 본인도 쉬고 싶다고 한다면, 영원히 쉬게 해 줄 용의가 있었다.
송호문에 들어온 이상, 송호문의 귀신이 되란 뜻이다. 항시 봐도 못 본 척, 들어도 못 들은 척, 알아도 모르는 척을 명심해야 했다.
-시집살이도 아니고!
‘그래서 유진한테 잘하고 있잖아. 볼 때마다 안쓰러워 미치겠다.’
마신교를 해결한 다음엔 아내와 유람이나 다니며, 맛있는 것만 먹고, 유유자적 살아갈 것이다. 그렇다고 탈속적인 은거 생활을 하진 않는다.
-같이하면 할수록 너란 놈을 이해할 수가 없다.
‘마왕 따위가 어찌 본 전왕의 깊은 뜻을 헤아릴 수 있을까.’
마왕이 구시렁거리든 말든, 무진은 확고한 사상을 바탕으로 가족과 즐겁게 사는 것이 인생의 목표다.
방해물이 된다면 옳고 그름으로 판단하지 않는다. 내 것을 노리냐, 안 노리냐가 중요했다.
“이제 두 놈 남았구나.”
“두 년입니다.”
“성별이야 아무려면 어때, 능력이 중요하지.”
“이번에는 훌륭한 오라버니가 되어 보겠습니다.”
두 야객을 데리고 오면 오대야객을 전부 수집하게 된다. 그것도 나름 보람을 느끼게 했다.
‘남은 육성이나 칠살이 몇 명이지?’
-욕심이 과하다.
하나만 잡아도 알아서 새끼를 치고 있었다. 어째서 강태공이 되는 건지 이해가 되었다. 내가 노력하지 않아도, 수하들이 알아서 클 때 보람을 느꼈다.
“맡긴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변장의 달인인 나릉에게만 해야 할 일을 설명하고, 입신양명을 위해 주경야독을 마다하지 않는 염산호를 찾았다.
염 노는 한창 바빴다. 이번에 가져온 흑마룡의 뼈, 힘줄, 내장까지 연단에 박차를 가했다. 연단에 쓰고 남은 재료는 황 철장이 가지고 가서 제련에 썼다. 문파의 흐름이 물레방아처럼 맞물리듯 원활하게 흘러갔다.
‘친구는 버릴 게 없어.’
-그만해라.
‘우린 친구지?’
-닥쳐!
친구 하자는 데도 발광하는 마왕을 무진은 이해하지 못했다. 정마의 협치를 보여 주자는 대승적인 결단이거늘. 먼저 손을 내민 사람을 무안하게 하냐고.
‘친구의 자식들이 잘 자라 주었으면 좋겠다.’
-잔인한 놈, 네 속셈을 모를 줄 알아!
무진은 어린 흑룡들의 후일을 기대했다. 발육을 촉진하는 영단이 있다면 남만으로 보내 줄 요량이 있다. 염 노라면 성과를 내리라 확신했다. 흑마룡의 사체를 괜히 넘겨준 게 아니다. 다 앞날을 위한 투자였다.
“장원급제 할 수 있겠지?”
“판단은 제가 하는 게 아니라서 확답은 어려워요.”
“공정하게 진행될 테니 걱정하지 마라. 그리고 이건 천란 공주에 대한 자료다.”
“이걸 어떻게?”
“황궁에 납품하는 품목을 뒤져 보면 알 수 있지.”
정보는 개방이나 하오문만 가지고 있지 않았다. 이런 쪽으로는 상단이 유리했다. 그 사람이 사용하는 물품을 보면 성향이 나오기 마련이다. 황제가 아닌 공주들을 노려서 품목을 작성했고, 그중에 간추린 내용이었다.
“황도엔 저 혼자 가는 건가요?”
“태진이를 붙여 줄 테니, 같이 잘 해 봐.”
다 큰 자식을 언제까지 품에 안고 있을 수는 없으니, 혼자서 결정을 내릴 필요가 있었다. 부모에게 의존만 하다가는 자립심을 잃게 된다. 나중에 후회하기 전에 혼자서 살아가는 법도 배워야 했다.
‘미주는 건드리지 마라.’
-선수 치긴.
마왕과의 다툼도 한두 번이지, 열 손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은 있었다. 다만, 사내아이라면 밀림에 던져 놓아도 범과 호형호제할 수 있어야 했다.
***
“보기보다 더 까다롭네.”
“위장으로 들어가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천군의 명으로 천운권의 동태를 살피게 된 요암과 요영 일호였다. 이런 잡스러운 일까지 해야 하는 처지지만, 살아남은 것으로 만족했다.
송호문에 출입은 해 봤다. 그러나 객당에서 내원으로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요소요소에 무인을 배치했고, 대낮에는 사각을 형성하기가 어려웠다. 송호문에 상주하는 자들로 위장하기도 쉽지 않았다.
“이걸로는 부족한데.”
“어차피 나간 건 아니니까, 지켜보는 게 낫지 않을까요?”
“성과가 없으면 어떻게 될 거 같냐?”
“제물이 되겠지요.”
따지고 보면 요암과 요영 일호의 잘못이라기보다 천군들의 실수였다. 그들의 명대로 따랐을 뿐인데, 실패의 책임을 져야 하는 건 억울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교의 도구다, 위에서 까라면 까야지 별수 있나. 상관이 잘못했다고 지적했다간 파리 목숨보다 못한 처지가 되는 수가 있었다.
“아무래도 찜찜하단 말이야.”
“뭐가 말입니까?”
“이 새끼의 행보가 의도한 것 같지 않은데, 의도한 것 같단 말이야.”
“그게 운이죠.”
“운이 좋아도 너무 좋잖아.”
“실패도 했는데요.”
“그래서 타격은 입었냐?”
“명성이 곤두박질…… 흠. 그렇네요.”
요암의 촉이 말하고 있었다. 뭔가 다른 내막이 있다고. 그런데 설명하기가 난해하다. 증거도 부족하고, 천운권이 작정하고 했다고 볼 수도 없다.
“젠장, 위험을 감수하는 수밖에.”
“감이 안 좋은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