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King RAW novel - Chapter 402
401 진짜였어?(1)
“막았어?”
그로서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의외의 상황이었다. 단숨에 끝을 내려고 배후에서 암습을 가했었다. 눈치를 챌 수 없도록 은밀하게 접근했기에 십할의 확신이 있었다.
하물며 마라흑천경(摩羅黑天經)을 바탕으로 한 육성의 흑혈마라장(黑血摩羅掌)이었다. 설령, 방비했다고 해도, 상당한 타격을 입혔어야 했다. 버티고 서서 자신을 노려보고 있다니, 의아한 일이었다.
흠.
반응을 봐선 알고서 했다기보단 본능에 가까워야 하는데, 대응은 또 그렇지가 않았다. 마치 독립적인 개체로 대응한 것 같았다.
“신병이기를 얻었군.”
“카악, 퉤엣! 죽을 뻔했잖아. 넌 또 뭐야?”
감각을 극한으로 끌어 올렸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대비가 되어야 했다. 그런데도 장필도는 반응하기는커녕 놈의 말대로 신병이기의 도움이 컸다. 위험한 순간 방패막이가 되어 놈의 장력을 막아 냈다. 하지만 내부를 파고들어 오는 음험한 장력을 온전히 해소하진 못했다.
‘단 일격으로 광룡투마신체에 이만한 타격을 입히다니!’
형님이 빌려준 신화마정갑의 도움이 없었다면 꼼짝없이 저세상으로 직행할 뻔했다. 분명 운이 좋다고 볼 수도 있지만, 성에는 차지 않았다. 광룡공이 더 발전하지 않으면 저런 괴물 같은 놈들과 대적하기는 힘들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놈들 정말, 대단한데!’
일전에 만난 놈과 비슷한 부류가 분명한데, 그보다 위험한 냄새를 풍겼다. 마치 죽음을 관장하는 사신처럼 닿기만 해도 죽음에 전염될 것 같다.
‘고생한 보람은 있네.’
신화마정갑을 빌리기까지의 과정이 순탄치는 않았다. 그걸 또 빌린다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씻어.
-예?
-맞고 씻을래, 그냥 씻을래?
-그냥 씻겠습니다.
신화마정갑을 빌리기 위한 순수한 의식이라나. 팔꿈치와 복숭아뼈, 중요한 부분을 닳아 없어지도록 닦았다. 유학자 집안으로서 보기보다 깨끗한 편인데, 형님의 광적인 청결은 소름이 돋았다. 만독불침이라며, 왜 그렇게 유난을 떠는지는 모르겠다.
“낭악아, 숨겨 둔 한 수가 있기는 있었구나. 난 또 네가 비겁한 놈이 아닌 줄 오해할 뻔했어.”
“닥쳐! 죽여 버리겠다!”
“내 몸이 정상은 아니지만, 넌 내 상대가 아니라니까.”
“가만두지 않아, 감히 나를 내려다봐!”
성질을 돋운 후 필도는 몸 상태를 살폈다. 또 기습할 수도 있기에 거리를 벌릴 필요도 있었다. 낭악에게 치명타를 날리지 못해 아쉽기는 했다.
“기병치고는 놀라워. 대체 무엇이냐? 그런 식으로 변형이 가능한 기병이라면 알고 있을 텐데. 음!”
뭔가 떠오르자, 사내는 미간을 찌푸렸다. 모든 계획의 시발점이나 다름이 없는……! 그 실패가 있고 나선 교의 대업이 수도 없이 어그러졌다.
“신화마정갑.”
“뭔 소리야?”
필도는 태연히 부정했다. 굳이 상대가 인정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 무엇보다 신화마정갑을 제대로 알고 있는 자는 죽어 버린 천무자와 소유자인 형님, 그리고 대여한 자신뿐이다. 순순히 인정해서 적을 시원하게 해 주는 짓은 오만이 아니라 병신 짓이다.
“네놈이 얻었구나.”
흑포의 사내가 으르렁거렸다. 사나운 무형의 겁살기가 거미줄처럼 뻗어 나갔다. 어서 이실직고하지 않으면 성히 죽이지 않겠다는 엄포였다. 언제든 기분에 따라서 계획과는 상관없이 즉흥적으로 결정하는 놈이었다.
‘피곤한 놈일세.’
이런 놈이 통제하기는 제일 귀찮다. 능력은 또 있어서 버리기는 아깝고. 그렇다고 자주 사용하자니 자기 내키는 대로 해서, 중간이 없는 놈이었다.
그런데도 마신교에서 이런 놈을 내보냈다면.
‘수틀리면 끝장내 버리겠다는 거군.’
내가 못 먹으면 남도 못 먹게 하겠다는, 마신교의 의지를 읽을 수 있었다. 이번에는 실패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성천 중 다섯을 잃고, 나까지 나서게 될 줄은 몰랐었다. 녹림왕이여, 의외로 거물이었군.”
“나름 보는 눈은 있구나.”
“하나, 천군을 상대하기에는 부족해. 네놈 뒤에 누가 있는 건지 알아야겠다.”
“무례한 말을 서슴없이 하네. 설령 그렇다고 한들, 내가 말하겠냐.”
반도 기질이 다분한 장필도는 천군의 뜻대로 행하지 않았다. 이 자리에서 결판이 난다고 해도, 굳이 적에게 이로운 정보를 넘겨줄 필요는 없었다. 죽을 때까지 궁금하다 뒈져야 속이 시원한 법이다.
장필도 못지않게 흑포 사내도 마이동풍이었다. 네놈의 뜻은 중요하지 않다는 듯.
강자의 본성이 발동했다.
“본 천군에게 영혼을 바쳐라.”
“자꾸 개소리를…… 헙!”
천군을 마주하는 순간 시간이 멈춘다. 장필도는 천지가 검게 물든 암흑 지대에 서 있었다. 천지 사방 어디를 가도 어둠 속에 가려져 고립무원이 되었다. 의식이 육신에서 분리되어 어둠에 물들었다.
그리고 깨닫는다.
세상이 변하진 않았다. 자신에게만 어둠이 보일 뿐이다. 사법을 알아챘음에도 장필도는 벗어나지 못했다.
“……뭘 한 거지?”
“본교의 오대마종에 속하는 흑천마안이다. 영광으로 알도록.”
인간에게 잠재된 어둠을 증폭하여 영혼을 지배하는 천고의 술법으로, 마신교의 사성천 합륵만이 펼칠 수 있는 기예다.
그 어떤 인간도 어둠 앞에서는 하찮은 미물에 불과했다. 신주이십일강의 녹림왕도 흑천마안을 벗어나진 못한다.
후후!
합륵은 녹림왕의 저항을 가소롭다 여겼다. 고수일수록 빠져나가려고 하겠지만, 그럴수록 흑천마안에 잠식되어 절망할 뿐이다.
곧, 모든 걸 바치고, 노예를 자처하리라.
부르르, 뚝!
어둠에 잠식된 녹림왕의 기운이 고요해졌다. 신주이십일강의 녹림왕이 이처럼 맥없이 지배를 당하다니.
‘이런 젠장!’
사술에 무너진 녹림왕의 낭패에 낭악은 분노가 치밀었다. 녹림왕을 제압하지도 못하고, 속절없이 밀렸었다. 자신을 밀어붙였던 녹림왕이라면 저리 쉽게 당해선 안 되었다.
‘빌어먹을, 건방을 떨더니 꼴좋구나!’
낭악으로선 결국 녹림왕을 넘진 못했다. 합륵의 도움이 없었다면 목숨마저 잃었을 것이다. 그 사실이 못내 개운치 않았다. 이렇게 된 이상 녹림왕의 비굴한 모습이라도 봐야 했다.
“신화마정갑이 맞느냐?”
“그렇습니다.”
“신화마정갑을 가져오너라.”
“……알겠습니다.”
멈칫했던 장필도의 반응에도 합륵은 여유를 잃지 않았다. 절대고수의 정신력을 완전히 장악하려면 시간이 필요하긴 했다. 하나, 흑천마안에 구속된 이상 시간이 흐를수록 무간지옥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스르르!
장필도의 육체에서 신화마정갑이 분리되어 손바닥 위로 모여들었다. 일반적인 형태의 기병과는 차원이 다른 신화마정갑의 특징에 눈을 떼지 못했다. 형태를 자유자재로 착용자에 따라서 변화할 수 있었다.
호오.
합륵도 신화마정갑의 무한 변형에 흥미를 느꼈다.
검도창을 기준으로 병기술을 쓰는 무인은 본인에게 맞는 애병을 소원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자신에 맞는 병기는 만들거나 찾는 것 자체가 천운에 달렸다. 제아무리 대단한 장인을 만나도 완벽하게 들어맞는 무기를 얻기는 쉽지 않았다.
‘확실히 범상치 않군. 신병으로 불릴 만해.’
본교의 십대장력인 흑혈마라장을 견딘 내구성만 봐도 신화마정갑의 가치는 충분했다. 하물며 자신의 장력을 배로 증폭해 줄 신병이기였다. 무인으로서 관심이 가는 것도 당연했다.
녹림왕은 신화마정갑을 육신에서 완전히 분리하여 두 손으로 경건하게 들어 합륵에게 걸어갔다.
저벅, 저벅!
허무한 결말을 바라보고만 있어야 했던 낭악은 아쉬운지 입맛을 다셨다. 실력의 차를 느꼈지만, 어쩌면 신화마정갑의 도움이 있었을 수도 있었다. 자신에게 신화마정갑이 있었다면 애초에 패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찌잉!
합륵은 불편한 느낌을 받았다. 찰나였으며, 대단치 않았다. 무시하고 넘어간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테지만, 육신은 기민하게 움직였다.
스르륵, 솨아악!
곱게 갠 형태였던 신화마정갑이 좽이질을 하듯 합륵을 덮쳐 왔다. 신화마정갑에 닿아서는 안 된다는 위기감을 느낀 합륵의 선제적 대응이 없었다면 위험했다.
이런!
아직 끝나지 않았다.
“라고 할 줄 알았냐!”
흑천마안에 지배된 줄 알았던 장필도의 흐리멍덩했던 눈빛이 원래대로 돌아와 있었다. 정신을 차린 상태에서 거리를 좁힐 수단으로 썼다. 신화마정갑의 형태 변환이 제멋대로 이루어진 시점에 광룡공을 개발해 권공에 실었다.
꽈아아아아앙!
신화마정갑이 시선을 가릴 때를 노린 장필도의 기습적인 맹폭이었다. 어중간한 수로는 어림도 없기에 처음부터 전력을 끄집어냈다.
우우우웅, 파아아앗!
내지른 권공이 폭발하면서 땅거죽이 일순간에 뒤집히며 속살을 드러내다 허망하게 흩어졌다. 사방을 가득 메우는 먼지구름이 일어나는 가운데 태풍이 휩쓸고 지나갔다.
솨아아아!
폭풍이 몰아치고 적막이 흘렀다. 찰나의 고요가 지나가고 긴장감이 팽배했다.
크윽!
거리를 벌렸던 장필도는 내지른 주먹의 떨림에 혀를 내둘렀다. 방심을 유도한 후 신화마정갑으로 시선까지 가렸다. 그 상태에서 기습적으로 날린 권공이거늘. 그런데도 주먹을 뻗자마자 느꼈다. 이 수로 끝나지 않는다는 걸.
-물러서.
내지른 직후 뇌리를 파고들어 온 신화마정갑의 경고를 받아들여 최대한 거리를 두었다. 그러지 않았다면 반격을 당해 낭패를 면치 못했을 것이다.
‘쪽팔리네.’
사술에 당하지 않으려고 애를 썼지만, 솔직히 신화마정갑이 아니었으면 심기체가 흔들렸을 것이다. 지난번의 경험을 바탕으로 사술에 대응하기 위해서 연구했음에도 여의치가 않다.
‘좌도방문이라고 하여 사술을 만만히 봐선 안 되겠어.’
절대고수에게 찰나는 억겁과 같았다. 상대의 목숨을 빼앗기에 부족함이 없다. 한순간이지만, 심기체의 통제가 원활하지 않았다는 점이 마음에 들진 않았다. 여전히 형님의 그늘에서 벗어나긴 요원했다.
“일대일이니까, 불만은 없겠지.”
그렇다고 티를 내진 않았다. 장필도는 변죽을 울리며 천군의 심기를 긁었다. 어떤 대결이든 먼저 화를 내는 순간 전력은 반 이하로 하락하기 마련이었다.
큭!
합륵의 입꼬리가 비릿한 호선을 그었다. 이 사태가 우습기 짝이 없기 때문이다. 자신이 언제 이런 식으로 농락을 당한 적이 있었던가? 같잖은 놈들을 처리하는 데 직접 나서는 것도 맘에 들지 않았었다.
이렇게까지 당한 이상, 천군의 죽음을 비웃었던 자신도 다르지 않다는 걸 보여 준 꼴이었다.
헙!
너도 나와 다르지 않으면서 잘난 체한다고 비아냥거리려던 낭악은 입을 닫은 채 물러섰다. 한마디를 하는 순간 갈가리 찢겨져 흔적도 남지 않을 것 같았다.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주마등엔 자신의 주검이 파편이 되었다.
‘이런, 제기랄!’
흉한 꼴을 보인 낭악은 돌아서며 검혈대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인질로서 가치가 있는지 알 수는 없지만, 데리고 왔어야 했다. 그런 사소한 일 처리도 제대로 하지 못하다니, 검혈대도 마땅치 않았다.
“제법이나, 화를 자초했다.”
“개소린 하지 말지.”
“우선 그 건방진 입부터 뭉개 주마.”
“안됐지만, 네 상대는 내가 아냐.”
합륵은 대답하지 않았다. 이 꼴사나운 광경을 남은 천군이 본다면 두고두고 치욕으로 남을 것이다. 모조리 다 지워 버리기로 마음을 먹었다. 녹수연맹 따윈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전부 어둠의 먹이로 던져 준 후, 다시 세우면 그만이었다.
두드드드!
격을 초월한 가공할 살기에 수륙도가 공포에 떨었다. 인간 본연의 공포를 자극하는 죽음의 기운이 공간을 장악했다.
‘뭐 이런 괴물 같은 것들이 다 있지!’
내색하지 않았지만, 장필도는 편치 않았다. 일순간 아예 다른 놈이 되어 버렸다. 일전에 만난 놈들보다 위 서열이라 예상은 했지만, 격이 달랐다. 마신교란 사이비 집단이 대체 뭘 원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을 지경이다.
‘이만한 전력을 가지고 어째서 여태 조용했던 거야?’
그냥 단숨에 무림을 휩쓸어 버리면 끝날 수도 있었다. 지금처럼 찔끔찔끔, 은밀하게 움직일 필요가 있나 싶었다.
금제나 제약이 있나?
하는 짓을 봐서는 그런 것 같지도 않았다. 한편으로 형님이 나서지 않았다면 과연 막아 낼 수 있었을까? 마신교를 대적하기 위해서 하늘이 형님을 내렸을지도.
‘이건 좀 아닌가?’
형님을 영웅에 빗대기엔 무리가 따랐다. 영웅들을 패고 다니지 않으면 다행이지. 함께 무림의 평화를 위해 매진하자고 했다간 본인들의 평화부터 깨질 각오를 해야 했다.
안타깝지만 상대하기엔 벅차다. 승부욕도 어느 정도 수준이 맞아야 부리지, 객기가 될 순 없다.
“어이, 낭악아, 다시 붙자. 맹주위를 가려야지.”
주제 파악한 장필도가 낭악을 부르자, 합륵의 신형이 한 줄기 검은 섬광으로 화했다.
섬광을 넘어서는 어둠, 흑천뢰의 현신이었다. 정리해 버리기로 한 목표물이 건방 떠는 걸 더는 두고 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