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King RAW novel - Chapter 403
402 진짜였어?(2)
쩌어어엉, 슈아아앙!
일직선으로 날아간 암광이 어둠을 관통하여 수륙도의 건물을 풍비박산 내 버렸다. 섬이라서 건물을 지으려면 육지보다 몇 배를 더 들여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한순간에 소실되고 말았다.
강기파손보험(罡氣破損保險)을 들어 놨다면 모를까.
솨아아!
솟구쳐 오른 건물이 하늘에서 잿더미가 되어 떨어져 내리며 휩쓸렸다.
파앗!
흑점.
검은 검과 점이 이어지자 길게 이어진 신형이 맞은편에서 형태를 갖춘다.
꽈아아앙!
형태를 갖추기가 무섭게 내질러 오는 무형권강.
가볍게 여길 수가 없다.
어둠의 장막으로 중첩된 기운, 흑천마라강기가 권강에 닿자 원래 없었던 것처럼 소멸했다. 망설이고만 있을 수 없었던 합륵은 재차 흑천뢰를 시전하여 잔상과 허상을 사방에 퍼뜨렸다.
솨아아아악!
흑천뢰가 극한에 이르면 완성되는 이형환위는 단순한 허상으로 볼 수 없었다. 하나하나가 살의를 품고 있으며, 어둠의 강기를 펼칠 수 있었다.
슈슈슈슈, 퍼퍼퍼퍼펑!
백팔영으로 잔상을 일으켰던 이형환위가 삽시간에 지워졌다. 동시에 흑혈포를 발출하려고 했던 합륵은 권강을 마주해야 했다. 반 박자 늦은 대응으로 인해 낭패를 경험한 합륵은 거리를 두고 나서야 상대를 직시할 수 있었다.
“네놈은?”
“절대고수 처음 보냐.”
촌음간에 펼쳐진 광세절학의 접전을 허무하게 만드는 등장이었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기에 합륵은 물론, 낭악도 얼떨떨했다.
‘뭐야, 저 새끼!’
지 입으로 만독불침지체에 절대고수라고 말하긴 했지만, 솔직히 입만 산 떠버리인 줄 알았다.
‘……진짜였어?’
천하에 적수가 없다고 할 때부터 미친놈으로 단정 짓고, 인질로 내세워 녹림왕을 잡으려고 했었다. 천군과 호각지세를 이룬 괴물 같은 놈에게 검혈대원 다섯을 보냈다니, 가당치도 않은 개수작이 되어 버렸다.
어째서 진짜냐고!
낭악은 연이어 놈들에게 농락을 당하자 이성을 잃기 직전이었다. 애초에 함정으로 둘이서 왔다는 걸 직시했어야 했다. 죽을 자리를 알고 찾아올 리 없었다. 여태 녹림왕의 손바닥 안에서 놀아난 것이다.
“네놈은 누구냐?”
“아까 말했잖아. 귀도 병신이었냐?”
“정체를 밝혀라.”
“응, 싫은데.”
극성에 이른 흑천마안을 발동했던 합륵은 무심지안에 고통을 느꼈다. 놈의 정신을 사로잡기는커녕 반탄기에 되레 충격을 받았다.
‘심안을 개방했어!’
무극무안의 경지에 도달한 자에겐 사술은 잘 통하지 않았다. 통하지 않는데도 무리해서 사용하다가는 오히려 역으로 사로잡힐 수도 있었다.
‘위험한 놈이다.’
사술에는 극상성을 지녔다. 놈이 사용한 권공도 흑천마라강기를 소멸시키는 공능을 지녔다. 이런 자가 여태 알려지지 않았다니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는 수 없지.’
아직까지는 쓸모가 있어서 살려 두었지만, 이렇게 된 이상 주저해선 안 되었다.
찌잉!
합륵의 동공에서 검은 기광이 번뜩였다. 그러자 녹림왕과 대치 중이었던 낭악은 기운이 달라졌다.
쩌적!
감싸고 있던 벽이 부서진다.
합륵이 가진 이능 흑뢰마혼이었다. 인간에게 내재한 어둠을 장악하여 가지고 있는 모든 잠재력을 격발하여 극한에 이르도록 했다.
화화화활!
낭악의 기도가 변하며 흑마공과 융화된 용혈수라마공이 활화산처럼 극한으로 치달았다. 기세가 유형화를 이루어 검은 불길이 활활 타올랐다.
“크크크크, 좋구나, 좋아!”
낭악의 흑화에 닿은 검혈대도 전염이 되듯 활활 타올랐다. 마치 잠혈공을 사용하여 본원진기를 격발하듯 맹렬한 기세를 발출했다.
“필도야, 적당히 시간만 잘 끌어. 어차피 오래 못 써.”
“예, 형님.”
흑뢰마혼은 잠력을 격발하는 사공이었다. 인간은 본원진기를 한도 끝도 없이 끌어다 쓰진 못한다. 결국, 시간이 흐르면 급격하게 타오른 심지처럼 모조리 다 녹아 버리기 마련이다. 잿더미에 불을 붙여 봤자 붙지 않는 것처럼.
“네놈이구나!”
“아닌데.”
“겁이 나는 것이냐?”
“병신.”
개수작 따윈 무진에게 통하지 않았다. 상대의 속을 긁어 주는 미련한 짓은 절대 하지 않는다. 또한, 남이 부리는 개수작에 당할 만큼 어수룩하지 않았다.
“호기를 부려 봤자 소용없을 것이다.”
“호오, 믿는 구석이 있나 보구나.”
“흑무대라혈사진에 죽는 것을 영광으로 알거라.”
“죽음이 영광이면, 너부터 쳐 죽여 주마.”
대낮처럼 밝았던 수륙도가 어둠에 물들었다. 하늘의 중심에 선 태양이 흑무에 가려졌다. 수륙도 전체를 감싼 흑무대라혈사진(黑霧大羅血死陣)은 합륵의 마라흑천경과 반응하게 되어 있었다.
완전한 어둠과는 다른, 회색의 어둠으로 시야가 줄어들기는 했어도 불편함을 느끼진 않았다. 고수일수록 안법이 높아 어둠을 투영할 수 있으니, 암흑이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치사하기는.”
“어디 발버둥 쳐 보거라.”
흑무대라혈사진은 생기를 흡수하여 사기로 전환하고, 인간의 잠재된 어둠을 증폭하는 흡성대마진이었다. 그래서 무진은 수륙도에 둘이서만 찾아온 것이다.
‘이놈 때문에 많이도 죽었지.’
-대인 살상에 특화된 놈이었으니까.
‘어쨌든 잘됐지.’
-다행인 줄 알아라.
낭악이 수륙도에서 대장전을 하자고 했을 때, 무진은 쾌재를 불렀다. 죽음의 지배자로 군림하던 사천군은 인간의 내면에 잠재된 어둠을 이용해서 마음대로 조종하고 지배할 수 있었다. 만약 수륙도가 아닌 녹림과 장강의 총력전에서 나섰다면 시산혈해를 각오해야 했다.
‘필도나 잘 돌봐.’
-네 걱정이나 해.
필도와 낭악은 불이 붙었다. 합륵의 어둠에 먹힌 낭악의 기세가 살벌했다. 필도는 맞불을 놓기보다는 검혈대를 줄이면서, 낭악의 공세를 끊어 내고 있었다.
하나, 당장의 대치 국면은 필도에게 불리했다. 낭악의 잠력이 모두 소진되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다. 그때까지 버티기가 여의치는 않을 것이다.
마왕이 없다면 말이지.
폭, 푸악!
폭폭, 털썩!
장필도는 자동반사적으로 공격을 펼치는 신화마정갑의 공능에 혀를 내둘렀다. 낭악과 공수를 이룰 때마다 흐름을 끊어 내는 역할을 했다.
‘너 정말 보통이 아니구나!’
-시끄럽다. 닥치고 네 일이나 해라.
뭐야, 이거?
신화마정갑이 기물이라곤 해도, 지성을 가지고 있을 줄이야. 하물며 굉장히 건방졌다. 신병이라고 해도 주인이 없이는 스스로 움직이지……?
잘도 움직이네.
신화마정갑의 기민함이 실로 놀라웠다. 생각을 읽고 있는 것처럼 합이 잘 맞았다. 건방지기는 해도, 신병이기를 왜 그토록 무인들이 탐하는지 이해가 되었다. 굳이 그런 것 없어도 괜찮을 줄 알았는데, 신화마정갑은 탐이 났다.
‘안 될까?’
-과욕은 금물이다.
‘그렇지.’
-저놈을 이기면 또 모를까.
‘싫으면 싫다고 해라.’
한편으로 저렇게나 강한 형님한테 신화마정갑까지 더해지면 얼마나 더 강해질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
이런 신병이기는 우리 같은 약한 사람들을 위해서 남겨 줘야 하지 않나. 정말 무지막지하게 이기적인 형님이라니까.
닿을 듯 말 듯.
낭악은 자신의 도를 피해 내는 장필도의 대응에 피가 거꾸로 솟구쳤다.
“언제까지 도망만 칠 셈이냐!”
“사공이나 쓰는 주제에 뭐가 잘났다고. 그 대단한 사공으로 잡아, 잘!”
흑마공에 잔뜩 취해 있는 낭악이지만, 아예 이성이 없지는 않았다. 자신의 현재 상태가 천군의 사념에 영향을 받아 본원진기를 마구 소모하고 있음을 모르진 않았다. 이대로 시간이 흐르면 진기가 바닥이 나고 더는 회복할 수 없을 줄 알았다.
한데, 어둠이 수륙도를 감싸자 소모되는 만큼 진원진기가 회복이 되고 있었다.
“지치기를 기다리는 모양인데, 어림도 없는 수작이다.”
“네 수하들이 가엽다.”
검혈대의 수가 확연하게 줄어들었다. 신화마정갑이 활약할 때마다 서너 명씩 쓰러졌다. 그것 자체로 놀라웠다. 불사진기를 이룬 것처럼 어둠에 물든 검혈대는 재생력까지 갖추었다. 팔다리가 잘려도 회복이 되었다.
‘둘이서 오자고 한 이유가 있구나!’
애들 다 데리고 왔으면 줄초상 날 뻔했다. 신화마정갑이 정신을 보호하고 있어 어둠에 먹히지 않았지, 자신조차도 가볍게 여길 수 없는 사공진이었다.
“본 좌는 불사신이다, 크하하하하!”
“뭐래는 거야.”
장필도도 회피만 하진 않았다. 기회가 생길 때마다 낭악의 사각을 노렸다. 하지만 어둠과 동조한 낭악은 아까보다 반응속도가 엄청나게 빨라졌다. 같은 속도도 아니고, 더 빠르게 내질렀는데도 닿지 않았다.
그마저도 결정타를 위한 연계에 불과하긴 했지만.
푸우욱!
커어어어억!
검혈대원의 입을 뚫고 들어가 뒤통수로 나온 신화마정갑의 날카로운 촉수가 세 개의 줄기로 뻗어 나갔다. 이어서 검혈대원 세 명을 동시에 빨랫줄에 널어놓은 빨래처럼 꿰뚫었다. 바람을 맞은 빨래같이 사방으로 사람이 날리는 광경은 장필도에게도 섬뜩함을 주었다.
‘즉살긴데!’
접근하는 족족 머리통에 구멍을 냈다. 수하들이 죽어 가고 있는데도 물 만난 물고기처럼 날뛰는 낭악의 광기에 장필도는 혀를 찼다.
두드드드드!
장필도와 낭악이 혈전을 벌이는 동안, 무진과 합륵이 본격적으로 맞붙었다.
파앗, 푸스스!
무진과 합륵에게 거리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수백 장에 달하는 수륙도도 좁았다. 눈이 따르지 못하는 거리 싸움이 벌어졌다. 무형, 유형이 환과 허를 넘어 패와 강이 어우러졌다. 부딪칠 때마다 굉음이 토해지며, 천재지변이 수륙도를 변화시킨다.
충돌의 편린이 수많은 사선을 그리자, 수륙도의 한 축을 막아서던 거대한 암벽이 조각조각 갈라져서 허물어지는 광경은 실로 장관이었다.
쩌어어엉!
푸아아앙!
뇌성벽력이 내리친 대지는 깊이를 알기 어려운 구멍이 족족 생겨났다. 파격에 파격을 더한 경세적인 파괴력의 격돌이었다. 인간적인 영역하고는 담을 쌓았다.
‘이해할 수가 없군.’
합륵은 전투의 흐름에 미간을 찌푸렸다. 보기에는 팽팽한 격전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많이 다르다. 격돌할 때마다 전투를 지배하기는커녕 손해를 보고 있었다. 전투 수행 능력에서 차이가 벌어지지 않고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이놈이 나를 능가한다는 건가!’
사천군인 자신과 자웅을 겨룰 무인이 무림에 있었다니 믿어지지 않는다. 신주이십일강이라도 발아래 두기를 주저하지 않았거늘. 알려지지도 않은 무명의 무인이 자신을 넘어섰다.
‘신력을 개방하고도 밀렸어!’
천군의 고유 능력인 신력을 개방한 이상 무인 따윈 단숨에 짓밟아 버려야 정상이었다. 접전도 아닌, 밀리는 형국은 예상하지 못했다.
퍼엉, 푸스스!
흑천마라강기가 연기처럼 흩어지며 본신에 타격을 입혔다. 옆구리가 찢어지는 고통에 합륵은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이제 좀 조준이 되네.”
흑천마라강기를 중첩하여 흑천마갑을 이룬 상태였다. 신병이기를 능가하는 흑천마갑이 순간적으로 종잇장처럼 찢어지며 본체를 타격했다.
“우연…… 크윽!”
“그럴 리가 없잖아. 크크크!”
절대고수의 격전에서 우연이란 발언을 하다니, 무진은 혀를 찼다. 촌음 단위로 전투의 흐름을 읽어 내며, 다음 수를 예측하는 존재가 바로 절대고수다.
절대경의 고수가 일인군단으로 취급을 받는 연유가 바로 이것이다. 수많은 수 싸움으로 다음 수를 내다보기에 절대경에 오르지 못한 자들은 마치 미래를 장악당한 절망을 느끼게 된다.
강호를 살다 보면 애먼 칼에도 죽긴 하나, 절대고수가 하수에게 당하는 경우는 만의 하나도 불가능하다. 그런 기적이 가능하려면 천재지변이라도 일어나야 했다.
“네놈의 예측이 나를 능가한다고? 그럴 리가…… 헉!”
“맞아 보면 알 거야.”
무진은 오랜만에 진의를 개방해 나갔다. 확실히 이전에 상대했던 천군과 비교하면 급이 다르긴 했다. 상위 서열에 속하는 사성천부터는 다른 자라고 봐야 무방하다. 그걸 증명하듯 사천군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
‘까다롭긴 해.’
방금은 전력을 실었는데, 사천군은 회피했다. 원래대로라면 허리와 어깨가 날아갔어야 한다. 타점에서 권폭을 일으켰지만, 예상 지점에서 벗어난 것이다. 가히 신기에 가까운 보신을 가지고 있었다. 속도에서 환천군을 넘어섰음을 보여 주었다.
“죽어 줘야겠어.”
무진은 살의를 담지 않았다. 다만, 합륵의 목숨을 빼앗기 위한 전투를 수행할 뿐이다. 기계의 톱니바퀴처럼 완벽하게 맞물리는 그물망 같은 전투 수행 능력이었다. 변수조차도 가두어 놓고, 역으로 제어했다.
회귀 전 마신교의 무인들이 치를 떨었던 연유가 바로 전왕의 전투에 있었다. 처음에는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어느 순간 완벽히 잡아먹혔다. 싸우면 싸울수록 전투의 흐름을 빼앗아 오는 데 도가 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