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King RAW novel - Chapter 404
403 진짜였어?(3)
푸슥, 파아앙!
전투도 전투지만, 무진의 전왕공에서 발산하는 전왕투기는 마기와 절대적으로 상극이었다. 처음부터 상극이었냐고 물어본다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싸울 때는 모르지만, 싸우고 나면 어떤 형태의 마공이든 완벽히 적응하여 상극으로 변했다.
불가나 도가의 수행을 통한 심법이 아닌 전장에서 진화하는 신공이었다.
커억!
합륵으로선 믿어지지 않는 결과물이었다. 연속적으로 밀리더니, 이젠 흐름을 완전히 빼앗겼다. 흑천마라강기를 극대화하여 흑천마벽을 완성했지만, 맥없이 뚫려 버렸다.
마치 아무런 장벽도 되지 않는 것처럼.
부르르!
합륵은 느꼈다.
무시무시한 기세를 뿜어내지 않지만, 이놈에게서 위험한 냄새가 짙어지고 있었다. 마치 마신교를 대적하기 위해서 하늘이 내린 천적처럼, 흑천마라강기를 잠식해 들어왔다.
‘이 내가 잡아먹힌다고?’
합륵으로선 생전 겪어 보지 못했던 생소한 감정에 당혹스러웠다. 흑무대라혈사진을 통해 사기를 지속적으로 주입받고 있었다. 그에 반해 이놈은 대진의 영향으로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해야 마땅했다.
‘왜 영향을 안 받지?’
흡성진과 사공진이 결합한 흑무대라혈사진이었다. 그 안에서 아무렇지 않게 싸우다니, 그 자체로 말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말도 안 되는 걸 이놈은 아무렇지 않게 하고 있었다.
‘저놈도 그렇고!’
녹림왕도 여전히 팔팔했다. 흑뢰마혼으로 잠재력을 극한으로 증폭한 낭악은 쓸모없는 쓰레기에 지나지 않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녹림과 장강의 대장전이 아닌 전면전을 벌였어야 했다. 그랬다면 흑뢰마혼으로 얼마든지 상대할 수 있었다.
“까다롭네, 자꾸 재생하고.”
무진도 마냥 편하진 않았다.
사천군은 불사진기를 완성한 듯 순식간에 회복되었다. 그러니 단번에 숨통을 끊어 놓지 않으면 굉장히 귀찮았다.
‘아직은 아니지만.’
용무길과 황보세령의 합작품이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를 확인해야 했다. 그걸 위해서 다소간 시간을 끌고 있었다. 물론, 사천군의 흑천마라강기에 대응하기 위한 준비도 필요했다.
회귀 전 사천군과는 직접적인 전투를 벌이진 않았다. 놈은 항상 사기를 이용해서 아군을 포획해 사공의 도구로 사용했었다.
‘너무 많이 죽이긴 했지.’
무진으로선 씁쓸한 결과물이었다. 사천군의 사공에 당한 자들은 돌아오지 못했다. 철저히 도구가 되어 무진의 앞길을 막았었다.
조금 전까지 동료였던 자들이 적이 되었으니 대다수는 망설였었다.
반면, 무진은 닥치는 대로 쳐 죽였다. 손속에 사정 따윈 두지 않았다. 그때 무진이 죽인 아군의 수만 해도 족히 이천에 달했다.
적이 되어 별수 없었지만, 아군을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도륙했던 무진의 손속에 정나미가 떨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안 죽이면 어쩌려고.’
지금처럼 마왕이 같이 했다면 모를까, 사술을 풀 수도 없는 전장에서 손속에 사정을 둔다? 무진이 이천을 죽였기에 그 배에 달하는 무인을 구할 수 있었다.
푸념은 푸념이고.
무진의 전투는 차근차근 밟아 가다 급가속하여 합륵에게 치명타를 선사했다. 다음 한 방이면 골로 가게 생겼지만, 언제까지 실험에 목을 맬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가라.”
대가리를 조준하여 노렸다. 한데, 무진의 의도와는 달리 방향이 틀어졌다. 일시에 몰려 들어온 어둠이 장막을 형성하여 권격을 가로막은 것이다.
푸아아앙!
사방에서 달려드는 어둠은 죽음도 도외시했다. 무진의 권공에 연기처럼 흩어지는데도 물러서지 않았다.
츠으으으!
닥치는 대로 폭발시킨 어둠이 튕겨져 나가 바닥을 굴렀다. 상체의 절반이 날아가 버렸는데도 아무렇지 않은 듯 일어섰다. 검은 기운이 날아간 상반신에 달라붙어 회복되는 모습은 불가사의했다.
‘흑강시잖아.’
인원을 최소화했던 무진은 미간을 찌푸렸다. 사천군이 흑강시까지 데리고 왔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구대성천의 습성상 자존심이 강한 놈들이라, 사공진만 조심하면 될 줄 알았다. 또한, 이때 당시 흑강시가 완성되었을 거라고는, 예측이 틀렸다.
‘너무 여유를 부렸구나.’
사람이었다면 바로 알아차렸을 텐데, 죽은 자들이라 기감으로 느껴지지 않았었다. 더욱이 강시를 물속에 숨겨 놓고 있었다. 자존심만 센 놈이 아니라, 만약의 사태까지도 대비했다. 구대성천을 가볍게 여겨선 안 되었는데, 예전보다 강해져서 그런지 방만해진 것이다.
후우!
순식간에 원상태로 회복한 합륵이 무섭게 노려보았다. 눈에서 장풍이 다발로 쏘아질 것 같았다. 자존심에 상처 입은 맹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눈을 부라린다고 달라지진 않아.”
무진에게 달려들었던 흑강시 네 기가 폭발하며 흔적도 남지 않았다. 상반신이 날아가도 복구된다면 완전히 무너뜨리면 그만이었다. 조금 더 신경을 써서 부숴 주어야 하기에 다소 귀찮을 뿐이다.
무진은 싸울수록 노련해졌고, 요령을 체득했다. 요령을 단순한 임기응변으로 폄하하기에는 실로 절묘하다.
쐐액!
강격에 처맞은 어둠이 흩어지며 본체를 드러낸 흑강시는 무진의 손속에 희생양으로 전락했다. 순식간에 흑강시를 분쇄하여 숫자를 확연히 줄여 버렸다.
흠.
공을 들여 완성한 이백의 흑강시가 맥을 못 추고 소멸하는데도, 합륵은 의외로 냉정함을 찾아 갔다. 분노해선 안 된다는 걸 깨달을 수밖에 없다.
‘무공 자체가 상극이 되어 버렸어!’
처음에는 그저 강한 놈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이제는 흑천마라강기와 완전히 대척점에 섰다. 흑강시의 분쇄만 봐도 그렇다. 강기를 쓴다고 해도 흑강시를 완벽하게 분쇄하긴 어렵다. 한데, 이제는 닿기만 해도 흑강시의 신체가 부서져 나갔다. 약물로 금강불괴에 도달한 흑강시가 뼈와 살이 분리되는 광경은 도무지 현실적이지가 않았다.
‘이놈은 대체 뭐란 말이냐?’
단순히 강하다는 것으로 의문이 풀리진 않았다. 이 자리에서 반드시 죽여야 할 놈이었다. 그러지 못하면 본교의 천년대계가 무너질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꼈다.
‘이제 알 필욘 없겠지, 네놈은 죽는다!’
합륵은 상대를 인정했다. 놈의 강함은 진짜였으며, 본교의 대적이었다. 어쭙잖게 대했다가는 역으로 잡아먹힐 수 있었다. 본교의 대계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제거해야 했다.
‘어서 다 죽여라.’
흑강시는 소멸을 아랑곳하지 않고 필사적으로 달려들었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공략하진 않는다. 흑강시의 혼은 합륵의 영혼과 닿아 있었다. 중심을 잡으며 차륜진을 형성했다.
퍼어엉, 푸스슥!
보통 이런 식으로 차륜전을 펼치면 무인도 인간인 이상 질린 기색이라도 있어야 하거늘.
‘전투에 이골이 난 놈이다.’
싸우면 싸울수록 능숙해지고 있었다. 차륜진을 펼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절반으로 줄어 버렸다. 그야말로 전투에 미친 놈이 아닐 수 없었다. 보고 있는 사람을 질리게 만드는 전장의 광기가 번들거렸다.
‘대문파도 일각이면 초토화시킬 전력이거늘!’
일인군단이란 말도 무색하게 할 전장의 지배자였다. 전력 대결에서 밀렸던 것이 절대 우연이 아님을 직시해야 했다.
‘쓸모없는 것들.’
낭악과 검혈대의 고군분투가 못마땅한 합륵이었다. 승패에 영향을 주진 못해도, 진작 녹림왕을 제압했어야 했다. 본교의 신공을 받고도 녹림왕에게 끌려다니다니, 한심한 놈이 아닐 수 없다.
퍼퍼퍼펑, 톼아아앙!
속도를 높이는 낭악의 도법이 수많은 도영을 형성하여 장필도의 권영과 불꽃을 튀겼다. 도와 권의 충돌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굉음이 이어졌다. 충격도 충격이지만, 굉음에 고막이 터질 것 같았다.
후우우!
빈틈과 사각을 권격으로 비집고 들어갔으나, 장필도는 원하는 만큼 소득을 얻어 내진 못했다. 신화마정갑이 사공진의 영향에서 보호는 해 주지만 쏟아 낸 기력을 회복시키진 않는다. 사각이 존재하지 않는 신화마정갑이 검혈대를 확연히 줄였는데도, 시간이 흐를수록 흐름이 불리해졌다.
보다 못한 마왕이 운을 뗐다.
-한심하군.
‘그 정도는 아니지.’
-쉽게 이길 수 있는 상대다.
‘쟤가 저래도 절대경이라고.’
-그게 어쨌다는 거지? 저 녀석을 봐라. 쉽잖아.
‘나하고 형님하고 같냐!’
낭악과의 대결에 몰입하느라 여유가 없기는 해도, 형님의 전투는 감히 따를 엄두가 나지 않는다. 자신보다 월등히 강한 줄은 알았지만, 전투 자체를 즐기는 것 같았다. 흑강시가 등장했을 때의 놀람도 어느새 무덤덤해졌다.
그런 형님과 자신을 비교하다니, 신화마정갑도 제정신은 아닌 모양이다. 하긴, 수백 년을 잠들어 있다가 깨어났으니 세상 돌아가는 사정을 알 턱이 있나.
마왕은 코웃음을 쳤다.
-네 몸뚱이면 금방 끝낼 수 있다.
‘나도 끝내고 싶다고. 근데, 이놈이 쉽지가 않다고!’
-몸뚱이가 아깝군.
‘그렇게 잘났으면 네가 하지 그러냐.’
-조금 보여 줄까?
‘보여 주긴 뭘 보여 줘.’
-보여 주지, 감을 잡도록.
‘감을…… 응? 이게 뭐야?’
장필도는 낯선 느낌과 함께 자신의 육체를 통제하지 못했다. 일순간 육체를 신화마정갑에 내어 놓고 관전자가 되었다.
이게 그 말로만 듣던 육체 강탈?
바로 눈앞에서 자신의 몸을 강탈당한 장필도는 허망했다. 이러려고 형님을 따라다녔나,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혹시, 나중에 안 돌려주는 건 아니겠지?
-이따위 몸은 줘도 안 갖는다.
‘그럼 다행이…… 아니, 말을 해도 왜 그따위로 싸가지 없이 하냐.’
-최소한 저놈 정도는 되어야지.
‘알았으니까, 보여 주기나 해!’
몸을 빼앗기지 않아서 안심인데, 기분이 더러워진 장필도였다. 명색이 신주이십일강에 속하는 절대고수다 이거야. 오늘처럼 일방적으로 개무시를 받다니. 신화마정갑이 얼마나 대단한 신병인지 똑똑히 보아 주겠다.
조금이라도 못해 봐라, 신랄하게 까 주마.
“크하하하하, 어디 다시 한번 떠들어 보거라!”
장필도가 주춤하자 낭악은 기가 살아서 날뛰었다. 검혈대가 절반이 넘게 죽었는데, 저러는 거 보면 병이 분명했다.
“원한다면.”
“허세 따윈 통하지 않아, 지칠 대로 지친 네놈이 뭘 할…… 크윽!”
허공을 격한 격공권이 낭악의 안면을 두들겼다. 얼굴의 반이 피떡이 된 낭악이 고통에 발악할 때, 장필도의 광룡보가 거리를 뛰어넘었다. 이어서 펼쳐지는 혈광천마권은 의념체가 되어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된 장필도를 경악하게 했다.
‘……어떻게?’
-별거 없더군.
본인의 초식보다 더욱 완벽한 권공에 장필도는 혀를 내둘렀다. 그간 수련하여 성과도 있었지만, 다가서지 못했던 영역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저것이야말로 혈광천마권의 극의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도 그렇지.’
-쉽다, 쉬워.
장필도는 신화마정갑의 잘난 체에 자괴감을 느꼈다. 평생을 익힌 자신보다 더 완벽하면 대체 어쩌란 말인가. 이젠 내 육체인데도, 내 거라고 하기가 민망해졌다.
-안 가진다.
‘……그만하시지!’
별것도 아닌 몸뚱이 취급을 받은 장필도는 신화마정갑에 대한 소유욕이 뚝! 떨어졌다. 이건 줘도 가지고 싶지 않았다. 병기는 주인의 의지를 따르는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한데, 주객이 전도되어 주인보다 뛰어나면 소외감을 느끼기 마련이었다.
-줄 생각 하지 마라.
‘안 줘!’
-경건히 부탁한다면 가끔 사용해 주도록 하겠다.
‘……됐거든.’
이런 걸 형님은 잘도 가지고 다녔네.
언제든 주인을 가두고, 자기 멋대로 돌아다니는 병기를 누가 좋아할까? 제아무리 뛰어난 능력을 발휘해도 절대 사양이었다. 하지만 낭악의 표정을 보니 또 그런 것 같지도 않다.
커억!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낭악은 초주검이 되어 있었다. 같은 절대경인데, 아예 급이 다른 존재였다. 저래도 되나 싶을 만큼 손쉽게 낭악을 제압해 버렸다.
-허점이 너무 많아.
‘……나도 봤거든.’
-그걸 알면서도 그랬군.
‘시끄러웟!’
-조용히 말했다.
장필도에게 제압당한 낭악은 현실을 불신했다. 방금까지만 해도 내딛지 못했던 경지에 발을 들였고, 녹림왕을 압도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전투의 흐름이 바뀌더니 속절없이 무너져 버렸다.
끝까지 자신을 가지고 놀다니!
낭악은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주체하기가 힘들었다.
“하찮군.”
“……닥쳐! 나는 녹수연맹의 맹주가 될 것이다!”
장필도의 주먹은 냉정했다. 낭악의 발버둥조차 허점으로 만들어 최후의 일격을 선사해 주었다.
퍼억, 푸아아앙!
상체의 절반이 날아가 버린 낭악이었다. 그런데도 복구되는 비정상적인 신체가 경이로웠다. 하나, 장필도는 아랑곳하지 않고 치고 들어가 남아 있는 낭악의 육신을 분쇄했다.
푸스스스스!
극한에 이른 권공은 그 무엇이든 소멸시킬 수 있었다. 육체가 사라져 가는 걸 깨닫자 낭악의 정신은 고요해졌다.
“넌 대체…… 뭐야…….”
장필도는 죽어 가는 낭악을 보지도 않았다. 남은 검혈대를 한 놈도 남기지 않고 권풍으로 도살했다. 내지를 때마다 흔적도 남기지 않고 먼지가 되는 광경은 비현실적이었다. 실로 전투를 위해 태어난 괴물처럼 완벽하다.
푸슥, 푸슥!
애써 지어 놓은 모래성을 부수듯, 검혈대는 맥을 못 추었다. 손수 키운 검혈대마저 무너지자, 낭악은 죽음을 받아들여야 했다.
“이러려고 살아온 게 아니…… 젠장!”
그것이 낭악의 마지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