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King RAW novel - Chapter 405
404 진짜였어?(4)
장필도에겐 아무런 감흥도 주지 않았다. 수라도 따위에 감흥을 받기에는 터무니없는 놈과 같이하기에 간에 기별도 오지 않는다.
-도로 가져가라.
‘남의 몸을 물건처럼 던지지 말라고!’
-재능이 아깝군.
‘나중에 두고 보자!’
육체를 되찾은 장필도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낭악을 압도한 대가는 작지 않았다. 소모된 내력을 회복하려면 수륙도에서 벗어나야 했다.
‘형님이 천운권인 걸 말했어야 했는데.’
-사법을 쓰는 놈들이다. 죽은 영혼을 불러낼 수도 있겠지.
‘설마?’
-지금도 정상은 아니지 않나.
죽어 가는 낭악의 앞에서 정체를 밝히면 통쾌할 수는 있다. 그러나 죽은 자를 통해서도 마신교는 정보를 찾아내곤 했다. 당장의 통쾌함보다는 항상 본인을 숨길 필요가 있었다.
“그나저나 형님도 장난 아니잖아.”
장필도는 거리를 둔 채 회복에 주력했다. 자신이 끼어들어서 판을 바꿀 전투가 아니었다. 원래 상태라면 또 모를까, 아니면 신화마정갑이 몸을 차지하고 있다면. 갑자기 씁쓸함이 밀려왔다.
“전장의 주인은 내가 아니었구나.”
형님을 이길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녹수연맹의 초대 맹주를 선출하기 위한 대결이었다. 중심에 서기는커녕 들러리에 불과한 현실에 투쟁심이 불타오른다.
“다음에는 다를 겁니다.”
-그 실력으론 무리다. 영원히.
신화마정갑이 초를 치긴 했지만, 장필도는 형님의 전투를 눈에 새겼다. 동시에 자신의 무공을 되돌아보는 계기로 삼았다. 천무진결을 통해 제법 강해졌다고 자신했거늘, 여기선 방귀도 제대로 못 뀌겠다.
소리 없는 방귀를!
쩌어엉, 푸아아앙!
내지를 때마다 수륙도의 일부가 사라져 버리고 있었다. 저게 어떻게 인간이 발휘할 수 있는 무공이지? 장필도는 격이 다르다는 표현도 부족하다는 걸 체감했다.
후아아앙!
사방으로 휘몰아치는 기의 격돌에 가공할 풍압이 발생했다. 접근 자체를 불허하는 경천의 영역이었다.
“아주 물 만나셨구먼.”
-저 정도는 보통이다.
마치 자신도 할 수 있다는 식의 신화마정갑의 발언에 장필도는 생각을 접었다. 대화를 해 봤자 자신감만 떨어지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상한데.”
장필도는 미간을 찌푸렸다.
백 기나 되었던 흑강시가 거의 전멸했다. 이제 남은 흑강시는 합륵의 정면에 선 두 기가 전부였다. 흑강시가 죽어 가는데도 손을 쓰지 않는 천군의 행동이 의아했다. 형님에게 일방적으로 처맞은 주제에 객기를 부리는 것도 아니고.
-수작을 부렸군.
‘그렇지.’
마왕의 예상대로였다.
무진의 권공이 처음으로 막혔다. 전력 일부를 실었기에 설마 했는데, 두 기가 막아섰다.
“대단하구나. 인정한다. 하지만 이 자리가 네놈의 무덤이 될 것이다!”
“이상한데, 대체 뭐지?”
다른 흑강시와는 완전히 달랐다. 하나, 그것이 문제가 되진 않는다. 사천군이 흑강시를 소모품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흑강시가 품고 있는 사기를 진법을 이용해 흡수하고 있다는 것도.
‘신력을 증폭했어?’
신력 증폭은 반드시 천군이 두 명 이상이 있어야 했다. 하나, 이 자리에 천군이 있진 않았다. 그런데도 신력을 증폭했다면 원인은 분명해진다.
“천군을 흑강시로 만들었을 린 없을 텐데.”
“인사드리거라, 내 사부와 사형이니라.”
합륵이 히죽이며 흑강시의 정체를 소개했다. 천군만이 사용할 수 있는 신성이기에 이해가 되면서도 섬뜩하다. 자신의 사부와 사형을 흑강시로 만들어 도구로 사용하다니.
“이거 완전 상종 못 할 개새끼였네.”
“맘대로 지껄여라. 네놈도 흑강시가 될 영광을 누릴 테니.”
몇 번 두드려 본 무진은 신력 개방이 한 덩어리로 융화되어 증폭되었음을 알아차렸다. 지금의 사천군은 처음 상대했을 때와 완전히 다르다. 더욱이 사공진으로부터 끊임없이 진기를 받아들여 다른 장소보다 몇 배는 더 강해졌다.
투득!
무진은 목을 돌리며 좌우로 꺾었다. 이전처럼 쉽게 잡으려고 했다가 일을 키운 꼴이었다. 자신답지 않은 선택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역시나 보는 족족 가차 없이 죽여야 했다. 여지를 주면 꼭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맞는다.
쇄액!
무진이 쇄도하자 합륵도 반응했다. 장심에 모아 둔 흑기를 뻗어 내어 거대한 대수인을 이루었다. 집채만 한 손바닥이 무진의 쇄도를 막아섰다.
퍼어엉, 후아아앙!
대장(大掌)에는 대권(大拳)으로.
대수인과 부딪친 무형권이 폭발하며 천지 사방을 뒤흔들며 개벽천하를 이루었다.
푸아앙!
쿠다다당!
흑천대라신장이 폭발하는 순간, 무진에게 달려들었던 흑강시가 권폭에 충격을 받고 나가떨어졌다. 무진의 무형권은 중첩이 되어 이중 폭발이 일어났다. 무형권에 무형권을 더한 수법이었다.
퍼펑, 꽈아아앙!
합륵은 연이어 폭발하는 무형권의 위력에 식은땀을 흘렸다. 신력 증폭으로 본신의 무력을 배로 끌어 올렸음에도 우위를 점하기는커녕 밀어붙이지도 못하고 있었다.
‘이놈의 내력은 무한이란 말인가?’
말도 안 되는 공력이 아닐 수 없었다. 애초에 공력 싸움으로 가면 압도적으로 유리해야 했다. 지속적으로 사기를 공급받고 있다는 걸 모르지도 않을 텐데.
슈아앙!
푸아아앙!
사부와 사형제를 제물로 만든 흑강시도 무력화되고 있었다. 다른 건 둘째 치고, 사기의 흡수에도 회복이 느렸다. 흑강시를 이용해 사기를 흡수하는 동안 놈도 흑천마라강기에 익숙해진 것이다. 설령 그렇다고 해도, 이건 너무 빠르다. 마치 처음부터 천적으로 태어난 것처럼.
좌우로 처맞고 날아간 흑강시가 바닥에 처박히고, 흑천대라신장이 뚫리면서 마주했다.
크윽!
씨익!
무진과 합륵의 희비가 엇갈렸다.
“이놈, 우쭐대지 마라!”
대답은 손끝에서 뻗어 나간 탄지공이 대신했다. 합륵의 머리, 심장, 단전을 노렸다. 신속히 흑천뢰를 펼쳐 잔상이 꿰뚫렸으나, 합륵은 만족스럽지 않았다. 탄지공은 간격을 재기 위한 무진의 연계였다.
슈유융!
무형탄지공이 쏘아져 나갔다가 우회하여 되돌아왔다. 권영을 일으켜 시선을 분산한 후, 무형탄지공을 연속해서 발출했다. 단발로 끝내지 않고 수많은 탄지공을 분산하여 일순간에 흑강시를 요격했다.
푸아아앙!
흑강시를 떨어뜨린 무진은 합륵과 접근전을 펼쳤다. 무형탄지공은 연속성을 가지고 있었고, 의념이 실렸다.
파파팟!
무진과 합륵의 손발이 어지럽게 맞물렸다. 신력 개방과 사기로 기존의 전력보다 몇 배로 상승한 합륵이었지만, 또다시 밀리자 분노했다.
“왜, 뜻대로 안 되냐?”
“어차피 네놈도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 커억!”
말을 시키고 빈틈을 노린 무진의 주먹이 합륵의 얼굴을 가격했다. 힘을 싣기보다는 끊어 치듯 속도에 중점을 두었기에 타격이 크진 않았다. 하지만 자존심을 건드리기에는 제격이었다. 가랑비에 옷이 젖듯, 계속 맞다 보면 열불이 터지기 마련이다.
‘슬슬 효과가 나오는 것 같기도 하고.’
완전하지 않아 소용이 없는 줄 알았는데, 용무길과 황보세령을 과소평가했다. 당장 합륵의 기세는 여전히 줄어들지 않았다. 피투성이가 되었던 얼굴도 회복되어 원래대로 돌아온 상태였다.
‘운에 의지하는 건 위험해.’
확실하지 않은 일에 승부를 걸다 보면 차후 돌이킬 수 없는 사태를 초래하게 된다. 불확실성과 운에 맡기는 짓은 평생 한 번이면 족했다. 불편한 진실은 그 한 번이 운명을 가르기도 하기에. 모든 변수를 최대한 고려하여 실행해야 한다.
‘그래도 실패할 때가 있으니까.’
천망회회소이불실이라는 개 같은 고사성어가 괜히 나오진 않았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살면서 자기 맘대로 되는 경우는 많지 않을 것이다.
투아앙, 휘이이이잉!
무진의 패도와 합륵의 흑천마라강기가 정면으로 마주하며 역량을 과시했다. 격돌할 때마다 호풍환우를 일으키며 지형지물을 부숴 버렸다.
퍼어억!
숨 막히는 팽팽한 격전 속에서 의외성이 일어나며 합륵의 오른쪽 옆구리를 강타했다. 이어서 대응을 해 오자, 방향을 틀어 왼쪽 어깨를 두드렸다.
‘이럴 수가 있는 건가?’
합륵으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과 마주했다. 자신을 밀어붙이면서 흑강시를 무형강기로 막아섰다. 무당의 양의심공을 극한으로 익혔어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돌아와!’
합륵으로선 결단을 내려야 했다. 어느 정도 타격을 입더라도 흑강시와 합류해서 근접전을 펼치는 수밖에 없다. 사기를 주입받아 회복하는 시간보다 받는 타격이 컸다.
퍼퍼퍼엉!
상체의 삼분지 일이 날아간 흑강시는 기어이 합륵과 합류해 무진과 격전을 펼쳤다. 패도를 바탕으로 한 전왕투기는 물러서지 않았다. 신력의 작용으로 육체를 회복한 흑강시의 합공에도 처음과는 다른 여유가 있었다.
다다다다!
파아아앗!
격돌할 때마다 쇠가 뜯기는 파공성과 울림이 사방으로 퍼지면서 날카로운 와류를 형성했다. 맹렬히 회전하여 돌고 도는 기의 충돌이 엇박자를 이룰 때마다 수륙도가 가라앉기 시작했다.
“이노옴! 네놈은 절대 이길 수 없다!”
“그건 네 생각이고.”
삼대일의 손발이 어지럽게 맞물리는데도 무진은 흑강시를 툭툭! 쳐 내면서 합륵의 요혈을 가격했다. 합공의 맥을 정확히 끊어 냈다. 자신의 무공이 낱낱이 까발려지는 현재의 상황이 믿어지지 않는 합륵이었다.
‘……괴물 같은!’
합륵으로선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누군가에게 항상 괴물이라 불린 적은 있었어도, 상대를 괴물이라 부른 적은 없었다. 생전 처음으로 공포와 두려움이 밀려왔다.
‘이놈은 본교의 대적이 분명하다!’
싸울수록 절망감을 느끼게 했다. 가히 전투의 마왕으로 불려야 마땅한 괴물이었다. 이런 놈이 본교의 시선 밖에서 웅크리고 있었다니,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죽여야 했다.
“네놈은 죽는다!”
“안 될걸.”
“건방 떨지…… 이건!”
“본원진기를 쓰려면 허락을 받아야지.”
죽음을 각오했던 합륵은 치를 떨었다. 이놈이 육신에 패도를 집어넣어 진기의 흐름을 차단하고 있었다. 자신이 어떻게 나올지 손바닥 안에 올려놓고 희롱한 것이다.
“죽어랏!”
분노한 합륵은 영혼과 연결된 흑강시에게 자폭을 명했지만, 의도대로 흘러가진 않았다. 흑뢰마혼이 통제를 벗어나며 흑강시의 조종이 어려워졌다. 명을 듣기는 듣되, 제 위력을 내지 못했다.
“회복이 더디네.”
“대체 무슨 수작을?”
“수작은 네놈이 부렸지.”
“죽여 버리겠다!”
마침내 이성이 폭발해 버린 합륵은 기맥의 흐름을 방해하는 패도를 무시하고 마라흑천경의 극의를 선천진기와 함께 개방했다. 본래라면 몸이 망가지고 폐인이 되어야 하나, 흑무대라혈사진이 있다면 회복할 수 있었다. 어떤 이유로 회복이 더뎌졌어도, 놈을 죽인다면 문제는 해결될 것이다.
우우우웅!
끊어지는 흑강시의 혼을 잡아끌어 자폭을 명했다. 그 시간 동안 선천진기를 완전히 개방해 놈과 생사결의 마침표를 찍으리라. 설령 자신이 죽더라도, 놈만은 반드시 죽인다. 그것이 본교의 천군으로서 해야 할 사명이었다.
각오를 다진 합륵은 죽음을 도외시했다.
화르르르르!
합륵에게서 퍼져 나온 기운이 성화의 불꽃처럼 어둠 속에서 불타오른다. 불길한 기세가 심상치 않았다. 수륙도 전체가 감응하여 거세게 요동쳤다. 저 힘이 그대로 쏘아진다면 수륙도가 통째로 날아간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두드드드드!
땅이 흔들리며, 부서진 파편들이 허공으로 떠오르다가 가루가 되어 버렸다.
큭!
장필도는 무시무시한 기의 파동에 섬뜩함을 느꼈다. 인간이 아닌 귀신의 기운처럼 심혼을 쥐고 흔들었다. 이 정도면 아무리 형님이라도 가볍게 여겨선 안 되는데.
‘지금이 웃을 땝니까?’
-가지고 노는군.
가공할 기세를 보고서도 그런 말이 나오냐고?
장필도는 의아한 기색이 완연했다. 차라리 기를 모으고 있을 때를 노리지 않고 시간을 버는 것 같아서 의문을 증폭시켰다.
곧 장필도도 느꼈다.
“저런!”
죽기 전에 온전한 기력으로 돌아오는 회광반조처럼 극한으로 치달았던 가공할 기세가 한낮의 꿈처럼 허망하게 사라져 버렸다.
크으으윽!
부풀어 올랐던 기세가 급격하게 쭈그러들더니 남아 있는 선천진기마저 회복 불능으로 만들었다.
“……어째서?”
합륵은 교를 위해서 숭고한 죽음을 각오했다. 자신의 희생으로 대륙에 성화가 피어오르기를 바랐다. 최후의 힘을 모아 놈과 동귀어진을 하려고 했거늘. 해 보기도 전에 전력이 소실되어 버리고 말았다. 흑강시도 사기를 잃고 비틀거리더니 제자리에 멈춰 섰다. 통제력을 완전히 잃은 것이다.
“그러게, 진법에만 의존하면 안 되지.”
“네놈 짓이구나!”
“그런 결론은 누구라도 내겠다.”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
“말해 주겠냐, 너 같으면?”
“……죽여 버리겠다!”
같은 말을 몇 번이나 연거푸 하면 패배가 짙어지는 법.
합륵은 이를 바득바득 갈며 살기를 분출했다. 보통 사람이라면 심장이 덜컥 가라앉을 무시무시한 살기지만, 무진에겐 닿지도 않았다.
‘효과 죽이는데.’
-과연 용무길과 황보세령이다.
‘너도 수고했다.’
-대단치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