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King RAW novel - Chapter 407
406 녹수연맹(2)
“그걸 말이라고 해!”
“송구합니다.”
암주의 보고를 받은 중년인들.
마신교 구대마장의 현마장, 철마장, 혈마장으로 천군의 명을 받아 대기하고 있었다. 구대마장은 천군의 바로 아래에 속하며 전투를 담당했다. 일대일로는 천군과 비교가 되지 않으나, 세 명의 마장이 합격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우리가 함께 갔어야 했어.”
“천군께서 결정하신 일일세.”
“이제 어쩌지?”
“녹림왕을 죽여야 하네.”
“섣불리 판단해선 일을 그르칠 수 있어.”
구대성천에서도 사천군의 강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어둠을 통제하는 사천군은 본교에서도 군계일학으로, 개인전과 대인전을 가리지 않고 상대하기 가장 까다로운 천군이었다.
그런 사천군이 패배했다.
마장들로선 납득하기 어려운 현실이었다. 신주이십일강의 녹림왕이 사천군과 자웅을 겨룰 만한가? 그리 물어본다면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었다.
문제는 내막을 모른다는 점이다.
녹림왕이 대체 무슨 수로 사천군을 죽일 수 있단 말인가? 녹림채를 전부 동원했다면 시산혈해를 이루어야 마땅했다. 한데, 당장 파악한 정보만 봐도 녹림의 피해는 전무하다.
“혹, 무림맹에서 도왔나?”
“검제나 취선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녹림왕이 나설 때마다 무림맹이 의도적이든, 의도적이지 않든 도움이 되었다. 어쩌면 따로 도움을 줬을 수도 있다고 봤다. 하지만 무림맹은 무림대회 준비로 한창 바빴다. 맹 내의 경비를 강화하기도 바쁜 시기였다.
“우리가 합공한다면 사천군을 상대할 수 있을까?”
“없다. 더욱이 사천군께서 흑강시를 데리고 갔으니 더더욱 불가능하겠지.”
“그런데도 피해가 없다면, 녹림왕이 그렇게나 강하다는 건가?”
“잠재력만 놓고 보면 발군이긴 해도, 아직은 검제를 비롯한 상위의 절대강자와 비교하긴 어렵다고 봤거늘.”
녹림왕을 처리하기는 해야 하는데, 지금의 전력으론 상대하기가 곤란했다. 이제까지 알던 전력하고는 달라진 데다가 함정을 파 놓고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었다. 사천군조차 피하지 못할 함정이라면 더더욱 신중을 기해야 했다.
“대업의 시초가 될 발판을 잃었군.”
“녹수연맹에 연연하다간 무림맹까지 망칠 수 있네.”
“하는 일마다 끊어지는구나.”
녹수연맹을 장악한 후, 무림대회를 기점으로 대륙을 혼란에 빠뜨리기로 했다. 하지만 연계했던 모든 계획이 실패하고 있었다. 남만, 북해, 사막에 이어 녹림과 장강까지. 어느 하나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한데, 암주의 보고는 더 있었다.
“철암과 연락이 끊어졌습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아미파와 청성파가 봉문에 가까운 상태라 자세한 내막을 알려면 무력을 동원해야 합니다.”
“미치겠군.”
사천의 계획까지 흔들리고 있었다. 철암에게 변고가 있다면 죽었다는 의미가 된다. 여태 잘 숨기고 있다고 생각했거늘, 구대문파의 저력을 간과했는지도 모른다. 쉽게 흘러가다 보니 발밑을 정확히 보지 못한 것이다.
그렇다고 지금 선택하기도 껄끄럽다. 아미파와 청성파를 공격했다가는 무림대회 자체가 성사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구대문파가 무너지는 사건을 가볍게 볼 순 없을 테니.
어쩌다 이리됐는지 모르지만, 선택의 기로에 서고 말았다. 하나, 자신들은 귀계에 능하지 않다.
“우리로선 안 되겠네.”
“하면 어쩌려고?”
“쥐어짜야겠지.”
“이것이 그토록 경계하던 무림의 저력이란 말인가?”
당장은 사건의 내막을 알아내는 것이 중요했다. 사천군이 당했다면 그 이상의 준비가 필요하다. 어설픈 짓을 했다가는 본교의 근간이 훼손될 우려가 크다.
***
녹수연맹의 초석을 다지기 위한 계획이 신속하게 진행되었다. 그간 쌓은 서로 간의 원한이나 감정을 잊고 새롭게 출발하자는 취지로 화합을 내세웠다.
그렇다고 마냥 평화롭진 않았다. 수라도의 평판과는 별개로 골수 추종자는 있기 마련이다. 다소간의 청산 작업은 불가피한 사안이었다.
“너, 대단한 놈이구나.”
“솔직히 그놈 밑에서 썩기에는 아까운 인재입죠.”
“입방정을 떠는데도 죽지 않고 살아 있는 것만 해도 대단해. 바퀴벌레보다 질긴 생명력이야.”
“썩을 종자도 포기 못 한 저의 탁월한 능력입니다.”
장필도는 녹수연맹을 위해서 수라도의 본채인 흑룡채를 신속하게 찾았다. 장강채의 주요 무인들은 사로잡은 상태였다. 수륙도 주변을 포위한 장강채를 역으로 포위하여 항복을 받았다. 허무하게 끝났지만, 이럴 때일수록 뒤처리는 확실히 해야 했다.
흑룡채의 저항은 짧았었다. 수뇌부가 항복했는데, 끝까지 의리를 지킬 수적들은 많지 않았다. 그렇더라도 자신의 앞에서 자랑질을 서슴없이 하는 이 녀석은 유별났다.
호리호리하게 생긴 데다가 팔자수염이 얌생이의 전형처럼, 겁은 또 더럽게 많아 보였다. 한데, 도망치기는커녕 수라도의 방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무공도 익히지 않은 놈이 뭔 배짱으로 있나 했더니.
-제가 수라도의 비리 장부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만 있으면 수라도가 숨겨 놓은 재산을 모두 찾을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수라도를 따르는 골수분자들은 반드시 처리해야 합니다. 그중에서도 광견은 필히 죽여야 할 놈입니다. 말 그대로 미친개라서, 두고두고 후환이 될 겁니다.
보자마자 원하는 걸 긁어 주는 고객 응대에 장필도는 실소를 감추지 못했었다. 흑룡채를 찾은 연유를 깔끔하게 해소해 주었다. 게다가 나중에 후환이 될 자들까지 일목요연하게 선별해 놓았다. 그중 마신교와 연결된 녀석들도 있었다.
-이건 녹수연맹의 초석이 되기 위한 계획서입니다. 아시다시피 통합을 했더라도 분쟁은 일어나기 마련입니다. 사소하다고 하여 내버려 둔다면 큰 화근이 될 수 있습니다. 지도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장강과 녹림의 위치를 조금 조정해야 합니다. 수로와 육로의 통합뿐만 아니라, 정보의 연계도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장필도도 녹수연맹의 초석을 다지기 위해서 계획을 세우기는 했지만, 이놈처럼 완벽하게 체계를 구축하진 못했었다. 그대로 실행을 했더니 결과물이 나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실로 놀라웠다.
“너였구나.”
“그렇습니다. 돼지처럼 욕심만 많고 머리까지 나쁜 놈이 장강채를 어떻게 꾸렸겠습니까.”
“신기하네. 죽이고 싶은데.”
“그게 바로 제 능력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재수 없는 놈이 분명한데, 선은 지키는 편이었다. 그것이 자신의 목숨줄이라는 걸 냉철하게 판단했다.
장필도는 소춘풍을 녹수연맹의 군사로서 대접해 주었다. 적이었다 해도 버리기에는 능력이 너무 아까웠다. 하지만 어제만 해도 주인이었던 수라도를 아무렇지 않게 배신하는 걸 보면 달갑진 않았다.
“저는 강한 분을 모실 뿐입니다.”
“너무 솔직한 거 아니냐?”
“자고로 거짓으론 미래를 내다볼 수 없다고 했습니다.”
“맞는 말만 골라서 하는 재주도 있고.”
소춘풍은 양심의 가책을 전혀 느끼지 않았다. 지금의 장강채를 구축한 공로를 인정받은 것도 아니고. 수라도에게 허구한 날 두들겨 맞았다. 죽이지 않고 살려 줬다고 해서 의리를 지키기엔 많이 처맞았다.
체계를 얼추 구축한 장필도와 소춘풍은 다음 일정을 풀어 나갔다.
“그러니까 무한에다가 녹수연맹채를 짓자고?”
“그렇습니다.”
“너 잊었나 본데, 우리 본업이 도적이야. 한데, 성도에다가 성을 짓자는 거야?”
“개파대전을 산에서 할 순 없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성도에다 지어?”
“보이는 곳에 지어 놓아야 속이기도, 도망치기도 편하지요.”
소춘풍의 설명에 장필도는 기가 막힌 표정을 지었다. 그야말로 허허실실의 극의를 보고 있었다. 누가 상상이나 할까, 거대한 성을 지어 놓고 간판으로만 쓸 거라고.
“아무리 그래도 성채를 지으려면 돈이 많이 들잖아.”
“아시는 상단이 있을 텐데요. 통행료를 면제만 해 줘도 엄청난 혜택이지 않습니까.”
허!
장필도는 이 얌생이 염소수염이 보통이 아님을 깨달았다. 이제 모든 교통로는 녹수연맹의 손아귀에 있었다. 통행료의 면제는 유통으로 인한 비용을 최소한으로 할 최고의 방법이었다. 형님과 연계한다면 정운상단을 내세울 명분이 생긴다.
“소심한 놈이 계획은 뭐가 이리 대범해.”
“사내로 태어난 이상, 큰판에서 한번 놀아 보고 싶었습니다. 헤헤헤!”
소심함에 가려졌을 뿐, 장필도는 어처구니없는 놈을 주웠다는 걸 깨달았다. 만일 다른 놈이 차지했다면 주저하지 않고 죽였을 것이다.
“우리 오래 보자.”
“감사합니다.”
***
-진짜 난놈이다. 타고났네, 타고났어.
-뭐가 타고나?
-천운권 말이야.
-그 새끼가 또 왜?
-수라도가 천운권에게 악감정이 대단했잖아.
-아, 그러네. 녹림왕이 처리했으니 이젠 자유롭구나!
-운빨 하나는 무서울 지경이다!
-달리 생각해 봐. 천운권을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지를.
-와, 더러운 놈일세.
-가는 곳마다 악운을 몰고 다니면서 어부지리를 취하고 있다고.
-이 새끼는 건드려선 안 될 종자야!
수라도에게 쫓기는 순간 천운권의 운도 다했다고 대부분 생각했었다. 제아무리 날고뛴다고 해도 장강채가 눈에 불을 켜고 찾고 있으니, 중원에선 살 수 없다고 봤다.
그런데 어떤가?
수라도는 죽고, 장강채는 녹림채에 흡수 통합되어 버렸다. 가는 곳마다 파란을 일으키고, 마찰을 빚는 개인이나 단체는 폭삭 망해 버렸다. 한데, 또 의도치 않았어도 협조를 하면 적지 않은 공적을 쌓을 수 있었다.
천운권의 악명이 재차 갱신되는 전환점이 되었다. 밉보이면 절대 안 되고, 연이 있다면 최대한 협조하는 편이 나았다. 그러나 모두는 알고 있었다. 천운권이 지랄하는 순간, 강호엔 파란이 인다는 걸.
당장 송호문에서 뛰쳐나와 활개 치리란 모두의 예상과 달리 무진은 집에서 푹 쉬고 있었다. 거동을 했으니, 누적된 피로를 풀어 주어야 했다.
아내와 미주의 사랑만이 묵은 피로를 풀어 주었다. 녹수연맹이 초석을 다지는 때를 노려 꿀맛 같은 휴가를 즐겼다. 열심히 일했으면 열심히 놀아야 다음을 원활하게 진행할 수 있었다.
열흘이 흐른 후.
무진은 송호문의 지하실을 찾았다. 문파의 규모가 커지면서 은밀하게 처리해야 할 일들이 많아졌다. 비밀 통로나 밀실은 대문파의 필수 요건이었다. 어떤 일이든 공명정대하게 처리하면 좋겠으나, 세상이 어디 그런가.
무진은 세상의 질타가 두렵다고 회피하진 않는다. 다만, 보여 줘서 좋을 게 없는 일까지 굳이 밝힐 필요는 없었다. 살아 보면 깨닫지만, 슬픔을 나누면 약점이 되고 기쁨을 나누면 시기와 질투를 부른다고 했다.
사람은 잘나갈 때 자신을 단속할 줄 알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간의 노력이 한순간에 물거품으로 남가일몽이 될 수 있었다.
저벅, 저벅!
비밀 통로는 황 철장이 주도해서 만들고 내부인만 알도록 했다. 과거의 황제들처럼 비밀 공간을 만들고 죽이는 짓까진 하지 않는다. 그런 개새끼는 단매로 쳐 죽여야 했다.
일은 일대로 시키고, 돈도 안 주고 목숨까지 빼앗는 새끼는 황제의 자격도 없었다. 지금이라도 위치를 알면 모조리 다 부수고, 관짝에 들어간 황제를 부관참시 해야 했다.
어쨌든 봐서 좋지 않은 일을 하기는 하나, 들켜도 크게 문제 될 사안은 만들지 않았다.
하나, 보안을 허투루 하진 않았다.
용무길과 황보세령이 세심하게 신경을 썼다. 진법으로 입구를 가리고, 기관과 함정을 설치해 놓았다. 작정하고 들어온다고 해도, 쉬이 찾아내지는 못할 것이다.
철컹!
철문의 자물쇠를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퀴퀴한 냄새가 나거나 어둡지는 않았다. 밀실이라고 해서 어두운 분위기를 자아낼 필요는 없지 않나. 밝고 화려한 색으로 봄기운이 완연한 공간을 만들었다.
그래야 고문할 때도 밝고 건강하지. 습하고 눅눅하면 고문하고 싶다가도 귀찮아질 우려가 크다. 해야 할 고문을 미루다 보면 일정이 지체될 수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