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King RAW novel - Chapter 408
407 녹수연맹(3)
“오늘은 어때?”
“차라리 죽여라!”
“정말?”
“……!”
죽음 앞에 초연하지 못한 이들은 요암과 요영 일호였다. 송호문을 침입하다 사로잡혔었다. 이후 진법이 펼쳐진 지하 밀실에서 감금을 당한 채 실험 대상이 되었다.
무진은 마왕과 함께 투심마안으로 금제의 발동을 억제하고, 진법의 범위 밖에서는 효과가 있는지를 확인했다.
“시작하자.”
“……제발!”
요암과 요영 일호는 죽을 맛이었다. 사로잡힌 후 하루도 편하지 않았다. 발동되는 금제를 죽였다, 살렸다 하며 실험을 반복하는 통에 심신의 고통과 피로가 극에 달했다. 이러다간 육체보다 정신이 먼저 붕괴할 것 같았다.
‘마왕아.’
-친구처럼 부르지 마라.
‘태운다.’
-이번만 봐준다.
순간 요암과 요영 일호는 섬뜩한 한기를 느꼈다. 뭔지 모르지만, 불타 죽을 뻔했던 것 같았다.
마왕에게 요암과 요영 일호는 자신의 금제를 풀 중요한 실험 재료였다. 보통은 금제로 인해서 견디지 못하고 죽어 버리는데, 이놈들은 특이체질이었다. 금제의 영향을 다른 녀석들보다 덜 받았다. 그걸 숨기고 여태 살아남은 것도 대단한 일이다. 교에서 자신을 숨긴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알기 때문이다.
“내 눈을 봐.”
“싫다…… 쿠웩!”
싫다고 안 보는 게 가능하면 여태 살려 둘 필요가 없었지. 하나, 내 손은 소중하니 무형기로 고개를 돌리고, 눈꺼풀을 강제로 들어 올렸다.
-신력 금제보단 약하지만, 마공에 영향을 받는군.
‘어때, 할 수 있겠어?’
-누군가 금제를 나눠 가지면 좀 더 빠르게 풀 수 있을 것 같은데.
‘기각.’
허, 이런 마왕 보소.
어디서 말도 안 되는 신박한 개소리를 해. 그럴 거면 그냥 금제 걸려서 최대한 빨리 뒈져.
-인정머리 없는 놈. 그런다고 안 죽는다!
‘누차 말하지만, 난 손해 보곤 안 살아.’
-언젠간 크게 후회할 날이 올 거다.
‘그런 날이 오면 같이 가게 될 텐데.’
무진에겐 씨알도 먹히지 않았지만, 마왕의 해법이 아예 말이 되지 않는 건 아니었다. 실제로 효과가 있을 수 있었다. 신력 금제는 영혼에 각인을 새기는 작업이었다.
영혼이 사라지지 않은 이상, 각인도 남아 있었다. 이를 분리하여 금제의 영향을 각각에 나누어 가진다면 줄어든 영향만큼 금제를 푸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렇기에 한 몸에 두 사람의 영혼을 가진 무진이야말로 마왕의 단짝으로 적합했다.
‘설령 효과가 있어도 기각.’
-할 생각도 없었다!
‘무능력자의 한탄일 뿐이야.’
-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금제를 풀고 만다!
‘세상은 원래 더럽고 치사한 거야. 좋은 공부 했다고 쳐.’
-닥치고, 방해나 하지 마라.
이런 마왕을 위해서 매번 지하 밀실을 찾아 주고 있었다. 이것만 해도 무진으로선 엄청난 배려였다. 물론, 마왕이 연신 양심도 없는 새끼라며 쌍욕을 박곤 있지만.
아!
요암과 요영 일호는 금제가 옅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극소수 중에서도 특이하게 태어난 금마지체가 아니었다면 머리통이 터지고 가루가 되었을 것이다. 금마지체란 걸 들키지 않으려고 그들은 눈물 없이는 듣지 못할 세월을 보냈었다.
-진을 해체해 봐.
마왕의 말대로 무진은 용무길과 황보세령에게 눈짓을 보냈다. 눈살 찌푸릴 험악한 일임에도 용무길과 황보세령은 흥미로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쟤들도 정상은 아냐.’
-너만 하겠냐.
용무길과 황보세령이 만든 단천무극환혼진이 풀렸다. 그러자 끊어졌던 금제의 연속성이 요암과 요영 일호를 괴롭혔다.
마왕은 이번에도 실패하지 않을까, 노심초사했다. 애써 찾은 실마리가 통하기를 바랐다. 회귀하고서야 자신이 받은 금제가 다른 교도들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걸 깨달았다.
크으으윽!
요암과 요영 일호가 비명을 질렀다. 이대로 머리가 폭발해 버릴 것 같은 고통이 밀려왔다.
‘멈춰야 하냐?’
-잠깐.
다시 개진하려던 무진은 손을 내렸다. 마왕이 뭔가를 발견했는지, 요암과 요영 일호의 흐름을 읽어 내는 데 주력했다. 미세한 흐름, 그건 영혼의 변질성을 의미했다. 비슷한 금제가 걸린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영역이라, 무진도 망부석처럼 기다렸다.
“……아파, 너무 아픕니다!”
“……죽고 싶을 지경입니다!”
요암과 요영 일호가 죽기로 비명을 백경백경 질러 댔다. 그러나 죽을 것 같으면서도 죽지는 않는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머리가 부풀어 올라 진법을 발동하지 않았다면 피가 튀는 대참사가 벌어질 뻔했다.
-단초를 잡았다.
‘언제까지 단초만 잡을래?’
-이런 날 초치지 마라.
‘빨리 좀 하자.’
사천군을 죽인 이상, 마신교의 상위 천군이 등장할 시기가 머지않았다. 그렇다면 천군을 호위할 구대마장도 나타날 것이다. 지금쯤 마장들이 암주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을 수도 있었다.
천군의 강함은 마왕 다음이다. 그렇다면 마장은 손쉬울까? 그리 말한다면 또 아니다, 라고 말해야 했다. 이놈들은 어떤 면에서 천군보다 굉장히 까다롭다.
전투병기.
천군이 교를 상징하는 신력을 받은 구도자라면, 마장은 교리를 배척하는 자를 처리하는 병기였다. 그래서 이놈들이 그동안 나오지 않은 것이다. 굳이 병기를 써야 할 상황은 아니라고 판단했을 테니.
마장이 암주보다 상위기는 해도, 머리 쓰는 부분에선 상대적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들은 명을 따르는 자들이지, 명령을 내리진 않았다.
-진을 쳐라.
진법을 펼치자 고통을 호소하던 요암과 요영 일호의 비명이 잦아들었다. 곧, 잠잠해진 심신을 돌아본 그들은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전에는 금제의 영향에서 벗어나도 고통이 하루 반나절은 유지되었었다.
“……이럴 수가!”
“금제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겁니까?”
요암과 요영 일호는 교도로서 낙인이 찍히는 순간부터 벗어날 수 있을 거란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저 살아남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을 뿐이다.
“벗어나게 해 주면?”
“충성을 바치겠습니다!”
“그건 두고 봐야 할 문제고. 앞으로도 계속 실험은 이어질 거야. 감내할 수 있겠냐?”
“죽더라도 받아들이겠습니다!”
이거 봐라.
눈빛만 봐서는 진짜 같은데, 무진은 믿지 않았다. 사람은 언제나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 또한, 마음이란 언제든 변질이 될 수 있었다. 만약 금제가 풀리더라도 무진은 이 둘에겐 또 다른 금제를 가할 것이다. 마신교처럼 쓰고 버리는 도구처럼 다루진 않더라도.
“청소 잘하고, 팔꿈치, 복사뼈에 각질 생기면 뒈진다.”
“……예!”
밀실은 다음 사용자를 위해서라도 깨끗하게 사용해야 했다. 그래서 항시 물을 사용할 수 있도록 긴 통으로 연결해 놓았다.
요암과 요영 일호는 무진에게 목숨을 걸어야 했다. 금제로 인해 죽지 않고 버텨 낸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았다. 마신교로부터 벗어나려면 천운권에게 충성을 다하는 것뿐이다.
‘마신교의 천적이 천운권일 줄이야!’
‘금제에서 벗어나려면 어쩔 수 없잖아.’
요암과 요영 일호는 진법에서 도망칠 수도 없는 처지였다. 밀실의 문을 열고 나가기만 하면 되지만, 진법에서 벗어나는 순간 금제가 발동했다.
‘그래도 그렇지, 제정신으로 하는 소린가?’
‘강한 건 둘째 치고, 정상은 아니야!’
요암과 요영 일호는 앞으로의 삶도 마신교보다 편할 것 같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밀실에 진법을 친 무진은 황보세령, 용무길과 함께 밖으로 나왔다. 진법이 금제에 미치는 영향을 세심하게 관찰한 용무길과 황보세령은 단천무극환혼진의 완성을 위해 투지를 불태웠다.
“단천무극환혼진과 아수라겁천대진이 결합한다면 천고의 기진이 탄생할 겁니다. 하하하!”
“우리가 풀어 주기 전엔 누구도 나올 수 없는 불귀지옥일 거예요. 호호호.”
자신감 충만한 황보세령과 용무길의 의기투합에 철호, 육칠, 나릉은 움찔하며 물러섰다. 무공을 익힌 그들조차 저 둘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기세에 모골이 송연해졌다.
‘젠장, 또 시작이네!’
‘우린 목내이가 아니라고요!’
‘웃으면서 부탁하지 맙시다.’
진법을 개선하기만 하면 찾아와서 실험을 도와 달라고 하는데, 그들로선 죽을 맛이다. 하물며 저처럼 의욕을 불태우고 있으면 얼마나 무지막지할지 감도 오지 않았다. 어쩌면 절대고수도 살아 나오지 못할 멸천지옥일지도.
“반천구의 성능도 개선해야겠군요.”
“효과는 확실했으니까, 무리하지는 말고.”
“무리라니요. 진법 개선보다 재밌는 일도 없습니다. 저에겐 취미 생활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다면 다행이고.”
일을 취미로 여기면 장난인 줄 알겠지만, 용무길이 그리 말하니 섬뜩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수차례나 과거에 낙방했던 학사라고는 믿어지지 않는다. 멋모르고 낙방학사라고 무시했다가는 큰코다칠 수 있었다.
“천무진결을 육성까지는 익히도록 해.”
“업무가 끝나면 꾸준히 운기행공하고 있습니다.”
무진은 이번 일을 겪으면서 용무길의 가치를 높이 샀다. 지금부터 무공을 익힌다고 해도 절대고수가 되기는 힘들겠지만, 꾸준한 운기행공을 통해서 내외력을 단련할 필요는 있었다. 건강한 신체에서 재기 넘치는 지식이 나오는 법이었다.
“염 노가 준 단약도 챙겨 먹고.”
“아무렴요.”
몸보신을 위한 단약처럼 들릴 테지만, 염 노가 만든 보신단은 소림의 대환단에 비견되었다. 한 알만 복용해도 일갑자가 넘는 내력을 얻는 환단을 보신단처럼 복용하고 있었다. 소림사의 중들이 현실에 격세지감을 느낄 낭비였다.
하나, 안락한 노후를 위한 무진에겐 용무길의 무병장수가 중요했다.
“우리 며늘아기도 잘 챙겨 먹고.”
“절 얼마나 부려 먹으려고 그러세요!”
“모든 무력단의 운영을 네게 맡기마.”
“아버님은 아무 권한이 없잖아요.”
“문주님에게 정중히 부탁해 볼게.”
“할아버님 좀 그만 괴롭히세요.”
“어허, 괴롭히다니! 나는 아버지를 사랑한단다.”
“그만 사랑하셔도 될 것 같은데요.”
황보세령의 용병술을 믿고 있기에 무진은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처음에는 ‘왜?’라는 의문이 들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믿음을 주었다. 부족한 인원으로 마신교와의 전쟁에서 활약한 용병술의 대가다웠다. 어리다고 함부로 대했다가는 지옥이 편할 수도 있었다.
당시 무림맹의 부족한 인적자원으로도 맹활약했는데, 지금처럼 넉넉한 자금과 풍족한 인원이 있다면 황보세령의 용병술이 어떤 능력을 발휘할지 자못 궁금했다.
“수륙도는 어떻게 됐어?”
“홍 각주를 보냈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홍 각주는 어때?”
“제 밑에 두기 아까운 사람입니다. 역시 주군께선 인재를 보는 안목이 남다르십니다.”
“그러니까 자네를 얻었지.”
천씨세가에서 모진 대우를 받으며, 자기 몫을 챙기지 못한 홍사철은 송호문에 와서 제 역할을 훌륭히 소화하고 있었다. 본인도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서 매우 행복해할 것이다.
‘밤마다 돌아가고 싶다고 울던데요.’
‘천씨세가가 그립답니다!’
‘부총관님, 그만 좀 달달 볶으세요!’
홍사철은 이제야 자신도 편하게 사나 했더니, 재앙이 찾아와 천씨세가와 항주오대무문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 이후로 송호문으로 끌려와서 용무길의 직속 수하가 되었다. 보기에는 각주지만, 수발을 드는 수족이나 다름이 없었다. 용무길이 전체적인 윤곽을 잡는 총군사라면, 홍사철은 직접 발로 뛰는 현장군사였다.
“인재는 많을수록 좋지요.”
“이번에 나가면 또 데리고 오지.”
“기대가 큽니다.”
“인재를 얻기 위해서라면 내 삼고…… 알지?”
“물론입니다.”
송호문이 울타리가 되어 줄 테니, 본인의 능력을 마음껏 펼치길 바란다. 대신, 일거리가 자신한테까지 오면 곤란했다. 무진은 마신교를 처리한 이후, 송호문의 미래를 위해 인재를 갈구할 뿐이다.
‘삼고초려입니다.’
‘그딴 거 할 생각도 없잖아요.’
‘안 오면 팰 거면서!’
무진은 자질구레한 설명을 하지 않아도 알아듣는 용무길이 더더욱 마음에 들었다. 수하라면 모름지기 주인이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처럼 알아들어야 했다.
“이번 일만 잘되면 상권을 장악할 수 있겠지.”
“공자께서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내 아들이라고 해서 차별할 순 없지.”
“아버님, 내 남자예요.”
“그 전에 내 아들이지.”
시아버지와 며느리의 실랑이는 화목한 가정의 표본으로서, 내 아들로 태어난 태진이의 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