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King RAW novel - Chapter 41
040 대도무문(4)
댕댕댕!
소호채의 본거지, 무영도에 비상종이 울렸다.
절반가량 해치울 때까지 몰랐다는, 안전불감증이 만연했다. 하긴, 인간은 원래 위기가 닥치기 전까지는 익숙함에 물들어 나태해진다. 자기들 딴에는 번이나 보초를 세워 안전을 사수했다고 생각했겠지만, 현실이 어디 그렇게 호락호락한가.
대다수는 쓴맛을 보고 나서야 나태함을 깨닫는다.
“안다고 달라지는 건 없지만.”
무진의 두 눈은 감정의 기복이 없이 얼음처럼 차갑게 빛났다. 수적의 죽음은 기정사실이었다.
“부탁한다, 마왕아.”
-이런 식으로 부려 먹지 마라!
“더부살이하려면 밥벌이는 해야지.”
-너보다 많이 하거든!
무진이 직접 투심마안을 쓰진 않았다. 천경이 자체적으로 투심마안을 사용하기에 심력의 소모가 전혀 없다. 아주 효율적인 연계의 정석이었다.
쌔애앵!
무진은 초고속으로 나아갔다.
절대경에 이른 보신과 단순 비교를 하면 느려 보일 수도 있으나, 무진은 딱히 압도적인 힘을 내세우지 않았다. 수적과의 상대성, 그 차이를 이용하여 매우 효율적인 전투를 펼쳤다.
“적이다…… 쿠악!”
“이 마당에 아군이겠냐.”
무진은 막아서는 수적의 하복부를 향해 잔인무적 고환파괴술을 펼쳤다. 빈틈을 방심하지 않고 노려, 고자망자(鼓子亡者)로 만들었다. 수적들은 신체발부 수지부모를 지키지 못한 불효막심한 최후를 맞이했다.
“잔인하……!”
“막앗! 크악…… 내 눈!”
아래만 막으면 다냐.
위는?
무진은 보는 눈이 없는 수적 놈의 눈깔을 장님으로 만든 후 목을 부러뜨렸다. 사소한 죽음일 뿐, 멈추지 않고 학살을 자행했다. 반보를 밟고 찌르는 명치파괴술은 수적의 가슴뼈를 와자작! 박살 냈다.
숨이 턱 하고 막히며 입에서 핏물을 분수처럼 쏟지만, 무진의 신형은 다음 목표를 향했다.
퍼퍼퍼퍽!
스무 명이 죽는 데는 한 호흡도 걸리지 않았다. 눈앞에서 보고 있으면 왜 저들이 처맞고 날아가는지 불가사의의 연속이었다.
습격을 인식하고 대응했지만, 거미줄에 걸린 메뚜기처럼 경직되어 버렸다. 발버둥을 친다 한들, 무진의 눈을 본 순간 저세상과 맞닿았다.
그야말로 명부의 사자인 명왕의 눈이었다.
푸악!
무진은 거침이 없었다. 잔혹한 손속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더는 업을 쌓지 않도록 수적들을 보내 주었다. 어차피 무간지옥으로 떨어질 테지만, 형량은 줄어들 거다.
“어디서 이런 괴물…… 헉!”
소호채의 이인자, 살룡채의 채주 인살도 왕팔은 비현실과 직면하고 있었다. 백 명이 빠져 있다고 해도 삼백 명이나 되는 부하들이 속절없이 당했다.
옆에서 보면 더더욱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째서 저토록 무방비로 허무하게 당할까 싶었다. 그러나 마주한 순간, 의문은 연기처럼 사라졌다.
‘인간이 아니다!’
눈과 마주하자 염라대왕이 떠올랐다.
죽는다.
발악했다.
왕팔은 허무하게 죽을 수 없었다. 왕팔이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여덟 명의 자식 중에 한 명이었다. 굶어 죽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쳐야 했다. 밑바닥에서 시작해서 겨우 이인자의 자리에 올랐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수없이 많은 죽음을 경험했다.
‘……움직여!’
살려는 의지가 극에 이르렀을 때 왕팔은 기적을 일으켰다. 통제를 벗어나 손가락을 까딱했다.
“의지가 가상하네.”
“제발 살려…… 쿠웩!”
“살려 주진 않아.”
네 의지가 가상해서 목숨을 살려 준다, 그런 개떡 같은 말을 날리는 놈치고 오래 사는 놈을 못 봤다. 죽일 수 있을 때 죽여야 했다. 아니면 아예 시도조차 해선 안 되었다. 예로부터 죽다 살아난 놈은 끈기가 지독하여 다시 죽이기에도 상당히 귀찮아진다.
푸두드드득!
무진은 계단을 오르면서 뛰어 내려오는 수적들을 향해 돌진했다. 언덕 위에서 바위를 굴리는 것처럼 수적들은 튕겨 나갔다.
크아아아악!
떨어져 내리는 수적들은 숨이 끊어졌다.
무진은 행여나 떨어져서 다시 살아나는 기적 따윈 남기지 않았다. 확실하게 숨통을 끊어 내고 바닥으로 떨어뜨려 주었다.
그래서일까?
다들 머리부터 떨어졌다.
철퍼덕!
떨어져 내린 바닥은 피로 얼룩져 있으며, 그 위로 계속 떨어져서 차곡차곡 쌓였다.
“……아버지! 훈련하라면서요!”
“……자기가 다 쳐 죽이네!”
혼자 날뛰는 무진을 뒤늦게 쫓는 태진과 철호가 앓는 소리를 냈다. 아버지가 지나간 자리엔 잡초 한 뿌리 남지 않았다. 걸리는 족족 다 죽였다. 그로 인해 초반에 접전을 펼친 이후로, 무주공산이었다.
“어딜 도망쳐!”
“놈을 막아!”
“철구를 굴려!”
투우우웅웅!
“돌아온다!”
“오지 마!”
무영도는 아비규환을 방불케 하고 있었다.
무진의 돌진을 저지하기 위해 대형 철구를 굴렸더니 일직선으로 쳐 내 버렸다. 산의 중턱이 뻥 뚫리며 가공할 흔적을 남겼다. 그 자리에 있었던 산적들 수십 명이 절구통에 넣은 떡처럼 반죽이 되어 날아갔다.
“더는 업을 쌓지 마라.”
“악귀다!”
“살려 줘…… 크아아악!”
“오지 마, 제발!”
수적들의 발버둥은 지독했지만, 무진에겐 통하지 않았다. 독하다고 해서 살고, 끈기 있다고 해서 살고, 집요하다고 해서 사는, 그런 하찮은 수가 통할 만큼 무진은 허술하지 않았다. 죽음 앞에서 최선을 다했다.
부르르!
무진의 강함을 안다고 생각했던 철호는 저 인간이 얼마나 괴물 같은 존재인지를 새삼 깨달았다. 강한 것도 강한 거지만, 인간 백정이 따로 없다. 사람을 하찮은 벌레처럼 잡아 쳐 죽였다.
만약 자신이 더 강하게 나갔다면?
‘……앞으로 개기지 말아야겠다!’
미래의 철왕은 강단 있는 사내로 정평이 나 있다. 그의 의지를 꺾은 자는 없다고 했다. 그런 철왕이 오금이 저린지 부르르 떨었다.
“형, 정신 차려. 우리 몫이 사라진다고!”
“……어. 그렇지!”
그러고 보니 이 녀석은 무진의 아들이었다. 전혀 달라서, 혹시 바람을 피워서 낳은 자식이 아닌가 의심했었다.
하지만 겪을수록 철호는 이 녀석이 무진을 빼다 박았음을 깨달았다.
지지 않겠지?
‘절대 싫어!’
지면 저 악마 같은 자의 마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꼼짝없이 사로잡힌다. 무엇보다 무진도 아닌 그 아들에게 패배한다면, 그간의 혹독한 수련과 사부님과의 약속이 허무해진다.
“꼼꼼하게 쳐 죽였네. 그치, 형?”
“……그렇구나.”
무진이 지나간 자리는 태풍이 휩쓴 황폐한 대지처럼 황량했다. 살아 있는 수적을 찾지 못하자, 숨어 있는 수적을 정리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적당히 했네.”
“……뭐?”
철호는 잘못 듣고 싶었다. 귀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았으면 했다. 그러나 태진의 대수롭지 않은 태도에 짜증은 났지만 믿음이 갔다.
‘저 인간, 대체 뭐야?’
강호엔 날고뛰는 괴물들이 득실댄다고 사부께서 항상 말씀하셨다. 그러니 항시 행동거지 조심하라고 했었다. 그럼에도 저 인간의 강함은 상식적인 선을 벗어나 있었다. 저게 어떻게 같은 인간이지? 왜 저런 괴물이 유명하지 않냐고!
‘십 년이 지나면 이길 수 있어!’
공허한 다짐이었다.
그러는 사이 태진은 앞서 나갔다. 아버지한테 빼앗기지 않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다.
철호도 망설임을 버렸다. 지금은 쓸데없는 상념에 빠져 넋을 놓고 있을 때가 아니다.
태진의 뒤를 철호가 바짝 붙었다.
“침입자를 막아!”
“이쪽으로 오지 마!”
“몸이 불편하신 어머니…… 쿠웩!”
“착하게 살겠…… 크악!”
무진을 필두로 태진, 철호는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았다. 왜 하필 우리 앞에서 반성하냐며 더 강한 공격을 서슴없이 퍼부었다.
죽기 전에 회개하면 하늘이 용서라도 해 준다냐!
멍!
넋을 놓은 자들은 따로 있었다.
황보장성, 황보진운, 적룡단은 눈으로 보고 있는 학살이 현실인지 뺨을 꼬집어 봐야 했다. 대책 없이 쳐들어갈 때만 해도 회의감이 들었었다. 수적이라고 해도 수가 많았다. 그 차이를 극복하려면 보다 전략적으로 움직여야 했다.
이는 병법의 기본이다.
병법에 무지한 무인도 이런 간단한 이치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애초에 병법은 중요하지 않았다. 무진은 그들이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강했다.
특히 철구를 직선으로 퉁겨 내 버릴 땐 소름이 돋았다. 만일 자신들이 저걸 맞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수적들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 봤자 수적들입니다. 숙부님도 할 수 있지 않습니까?”
“네 말대로 작심하면 할 수 있지. 하지만 시종일관 압도적이기는 힘들다. 하물며 저런 속도로 날아오는 철구를…… 하아!”
수적 중엔 제법 수련을 받은 무인도 있었다. 그럼에도 최후는 다른 수적들과 다르지 않았다. 보기엔 간단해 보이지만, 공간을 제압하고 있었다.
‘벽을 넘었을지도.’
황보장성이 아는 최강의 무인은 전대 가주이자 아버지인 권왕이었다. 무진의 무력이 어쩌면 아버지에 비견되지 않을까, 그런 터무니없는 상상을 했다.
‘저 나이에 어떻게?’
소호채를 부수자고 했을 때만 때도 자신의 무공을 과신하는 줄만 알았다. 현실은 과신은커녕, 자신하고도 남을 무력을 갖추고 있었다.
‘봐줬구나.’
황보장성은 받아들였다.
무진이 진심으로 상대했다면 자신은 이 자리에 서 있지도 못했을 것이다. 더불어 그가 무력시위를 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동네방네 떠들고 싶으면 떠들어라. 그 대가는 온전히 황보세가의 몫이 될 테니. 그리 말하고 있었다.
‘대황보세가는 개뿔!’
무진은 황보세가를 안중에도 두지 않고 있었다. 이러면 원래 기분이 나빠야 하는데, 허탈할 따름이다.
황보장성은 마음을 다잡았다.
“언제까지 손 놓고 있을 셈이더냐. 우린 대황보세가의 무인이다. 저들에게 뒤처지지 마라.”
황보진운과 적룡단도 퍼뜩 정신을 차리고 수적 토벌에 나섰다. 숨어 있는 자들을 살려 둬선 안 되었다.
“막아. 저자를 막아!”
“우리한테 왜 이러는…….”
“……입구를 사수해!”
“……그럼 나 하나쯤은!”
“그만 쫓아와!”
부질없는 저항이었다. 애초에 상대가 되지 않는다. 차원이 다른 강함에도 무진은 방심하지 않았다. 때론 작은 돌부리에 목숨을 잃기도 하니까.
도룡채의 채주, 묘검 이광성의 대가리가 묵사발이 난 후 끝이 났다.
사방이 시체 더미로 쌓였다.
무진은 무영도의 막기가 머무는 방으로 향했다.
“어디 있으려나?”
막기가 다른 놈들을 신뢰할 리 없을 테니, 찾는 데 어렵지는 않았다. 방에서 동굴로 이어지는 곳에 철문을 만들어 놓았다.
우지끈!
무진은 철문을 잡아 찢었다.
두께가 한 자나 되는 철문이 종잇장처럼 찢겨 나갔다. 철문은 대충 제작된 것이 아니다. 수적 놈이 자기 재물을 지키기 위해서 제법 공을 들였다.
동굴 안엔 열두 시진 쉬지 않고 노략질을 한 노력의 산실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나중을 위해서 고이 모셔 놓았겠지만, 분배는 하지 않겠지.
씨익!
무진은 생긴 것과 달리 꼼꼼한 막기의 정리정돈을 칭찬했다. 그래서 편견은 좋지 않은 것이다. 그 얼굴로 이렇게나 반듯할 줄 누가 알았으랴.
하아, 허억!
황보장성, 황보진운, 적룡단과 철호와 태진이 뒤늦게 도착했다. 남은 잔적들을 소탕하는 데 시간이 소비되었다.
뜯긴 철문 앞에서 그 어느 때보다 환하게 웃음 짓는 무진을 보며 다들 설마 했다.
아니겠지? 아닐 거야.
선입견을 품지 말자고 불과 조금 전에 다짐했거늘, 무진은 모두의 바람을 단칼에 배신했다.
너희들의 신뢰 따윈 받고 싶지 않다는 의도가 분명하다.
“한동안 굶지 않아도 되겠는걸.”
언제는 굶었냐고!
무진은 보무도 당당하게 금괴와 패물을 챙겼다. 또한, 남은 것도 소홀히 여기지 않았다. 이 안에 있는 패물은 소호채의 피와 땀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소중한 노획물이었다. 그들의 죽음을 헛되이 여기지 않고 꼼꼼하게 챙겼다.
“멀뚱히 서서 뭘 하고 있어! 내가 누누이 말했지. 망설이지 말라고.”
예?
태진과 철호는 그래도 이건 아니라고 하려다가 무진이 노려보자 냉큼 노획물을 품에 챙겼다. 화나지 않아도 무서운데, 화나면 어떻게 될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
“황보세가의 몫도 있습니다.”
“……?”
누가 그런 걸 달래!
대도(大道)가 그런 대도(大盜)였어?
황보장성과 그들은 대도무문의 새로운 정의를 강제로 배워야 했다. 그렇다고 이건 아니라고 말을 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물욕 가득한 탐욕에 젖어 있는 무진의 눈을 보았다. 도로 내놓으라고 하면 어떤 사태가 벌어질지 장담할 수 없었다.
‘……망할!’
소문이 퍼지면 황보세가는 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