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King RAW novel - Chapter 416
415 역지사지(3)
“절강성에서 멀리도 왔네.”
“천하 망종답게 비겁하기 짝이 없구나!”
“혼자서는 성도 못 넘는 겁쟁이 주제에 누구보고 비겁하데.”
“네놈의 입부터 뭉개 주마!”
구룡여의신공(九龍如意神功)을 개방한 용산하는 하늘에서 내려온 천장처럼 강대한 기운을 뿜어냈다. 공력의 양과 순도 모두 극성에 도달해 초절정의 문을 개방했다.
구룡장법을 연이어 발출했다. 뻗어 내는 손이 확대되며 공간을 잡아챈다. 구룡난영(九龍亂影)에 이어 구룡아(九龍牙)가 펼쳐지며 목표물을 혼란스럽게 했다.
퍼어엉, 푸아아앙!
권영과 장영이 허공에서 부딪치며 파괴력을 과시했다. 천지 사방을 뒤흔드는 폭발의 여파가 접근을 불허한다.
허어!
천도문주, 웅천보주, 진천문주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구룡장주의 신위도 놀랍지만, 막아서는 천운권의 권공이 예사롭지 않았다. 기습적이긴 해도, 무인들을 박살 낸 실력은 진짜였다.
‘도대체 왜?’
‘하늘은 어째서 저딴 놈에게 기연을 준 거지!’
‘영약을 얼마나 처먹는 거냐?’
천도문주, 웅천보주, 진천문주는 천운권의 활약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신들은 평생을 수련해도 얻지 못할 공력과, 운이 하늘에 닿아야 얻을 수 있다는 기연을 가로챈 천운권을 인정할 수 없었다. 하는 행동도 하나같이 마음에 안 들었다.
‘필히 죽여 주마!’
‘곱게 안 죽인다!’
‘개먹이로 던져 주겠어!’
천도문주, 웅천보주, 진천문주는 구룡장주와 격돌하는 천운권의 빈틈을 노렸다. 기회가 생기는 즉시 숨통을 끊어 버릴 심산이었다. 이놈은 살아 있어선 안 되는 천하 망종이 분명했다.
‘이놈이!’
용산하는 구룡여의신공을 구성까지 끌어 올려 구룡지, 구룡섬, 구룡각을 연거푸 구사하여 천운권의 빈틈을 노렸다. 하지만 공수는 팽팽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손쉽게 끝낼 수 있을 거란 생각과 달리 만만치가 않았다.
‘쉽지 않잖아!’
천운권과 용호상박의 결전을 펼친다는 것 자체가 수치스러웠다. 하물며 이놈이 중간중간 간격을 재고 있었다. 그러한 움직임이 기가 막히게 천도문주, 웅천보주, 진천문주의 기습할 궤적을 죽였다.
‘감히!’
간극을 잰다는 건 여유가 있다는 방증이다. 자존심이 상한 용산하는 구룡여의신공을 극성으로 끌어 올렸다. 공력에 한해서는 자신을 따를 자가 많지 않았다. 기교를 부리겠다면, 공력으로 짓밟아 버리면 그만이었다.
퍼어엉, 투아앙!
쇄도해 오는 장력을 권공으로 쳐 내거나 보법을 활용해서 피해 내며 어중이떠중이를 견제하는 무진이었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피하지 않으면 위험한 순간이 연속적으로 펼쳐졌다. 그런데도 쓰러지지 않고 반격을 가하는 건 대단했다. 문제는 한 번만 밀려도 끝장날 것 같다는 점이다.
‘하아아, 졸린데.’
-적당히 해라.
겉으로는 위급지경에 처했지만, 속은 한가롭기 그지없었다. 무릉도원에서 햇살을 맞으며 냇가에 발을 담근 채 수박을 뜯는 기분이랄까.
‘규모를 좀 키울 걸 그랬나.’
-그랬다면 정체를 의심했겠지.
‘상인이라 그런지 똑똑하단 말이야.’
-빠져나갈 구멍이 넓지는 않다.
이번 일을 꾸미면서 산동악가를 주시하고 있었다. 한데, 계획과는 달리 별다른 움직임을 보여 주지 않았다. 광천군이 연관될 줄 알았지만, 예측이 틀렸다. 아니면 쓸모가 없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산동과 강소는 움직이지 않았단 말이야.’
-악명에 비해 무력을 과소평가 받았단 거지.
‘적당히 할 걸 그랬어.’
-무림대회에 집중했다면 적당히 해도 지금과 다르지 않았을 거다.
무진은 하북성으로 오는 동안 온갖 지랄이란 지랄은 다 떨었다. 내가 어디로 간다는 걸 동네방네 떠들고 다닌 것이다. 그 일련의 상황을 만들어 낸 연유가 있었다.
천운권에 악감정을 가진 놈들이 합류하기를 바랐다. 무림대회가 있기 전 최대한 마신교에 붙어먹는 놈들이나, 붙어먹을 예정인 놈들을 구별할 기회로 삼으려고 했다.
‘한 놈이라도 건졌으니 다행이긴 한데, 인건비도 안 나오겠네.’
-수작질이 매번 통하기를 바라는 것 자체가 도둑놈 심보지.
‘한 번 써먹은 방법이라 그런가, 잘 안 통하네.’
-빌어먹게도 전혀 안 통한 건 아니니까.
천운권의 위엄이 잘 통했다고 보긴 어렵지만, 절반의 성공은 거두었다고 마왕과 같이 평점을 매겼다.
‘결의한 것치곤 쉽지 않겠네.’
-너처럼 경박한 놈하고는 다르다.
‘사람은 끝까지 가 봐야 알아.’
-넌 죽을 때도 입만 살았었잖아.
‘버릇은 남 주는 거 아니라고 했어.’
-넌 양심이란 게 있기는 하냐.
남만으로 가기 전에 잘 조져 놓아서 그런가, 섬영대는 꽤 분전하고 있었다. 사방이 포위되었지만, 진형을 유지하며 팽팽한 대치를 이끌어 냈다. 그러면서 이따금 변수를 일으켜 적들의 속을 태웠다.
물론, 가장 속 타는 사람은 따로 있었다.
‘역시 저 새끼였어.’
-마정을 거의 흡수했군.
남궁세가에서 어설프게 마정을 흡입한 독비검과는 차원이 다르다. 마정을 제대로 흡수하면 마혼만 남게 되어 겉으로는 알아보기 힘들다. 같은 마정을 흡수하거나, 투심마안을 가지고 있거나. 물론, 마혼을 보려면 내공을 운용해야만 했다.
‘완벽하진 않아.’
-그러니까 보였겠지.
마신대전에서 당시의 팽도광에게선 마혼조차도 느껴지지 않았었다. 전왕으로서 무수히 많은 마인을 죽이면서 자연스럽게 마인을 구별하는 능력이 생겼지만, 마정을 완벽히 흡수한 자를 골라내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니 적지에서 뒤통수를 맞았지.
쩌어어엉, 꽈아앙!
혼원을 기반으로 한 벽력기.
건곤을 기반으로 한 연환기.
도법의 극한에 도달한 하북팽가의 총화가 역량을 과시하며 서로를 노렸다. 그럴 때마다 뇌성벽력이 울리며 공간이 파괴되었다.
후우!
한 호흡이 쉬어질 때마다 백팔 번의 도격이 접점에서 고막을 찢어발기는 파공성을 자아냈다. 빛이 번쩍이며 천지 사방이 부서지는 광경이 펼쳐진다.
쉴 새 없이 휘두르는 도와 도의 격돌은 불꽃을 튀겼다.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이어지는 사투였다.
‘이놈이 언제?’
어둠을 수놓는 황금색 휘광의 뇌기는 천지간에 가장 강력한 기운이지만, 연성하기가 어려워 대성을 이룬 자는 손에 꼽혔다. 어지간한 재능으로는 닿지 않을 혼원벽력신공의 극의가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절대경이라고!’
화경의 극의만 해도 무인으로서 도달하기 힘든 지고한 경지였다. 이를 뛰어넘은 자만이 손에 넣을 수 있는, 신주이십일강의 영역이었다. 가히 도왕이라 불려도 손색이 없는 절대의 경지에 팽위천이 도달했다.
팽도광은 건곤연환도강을 펼치는 순간 끝이 났다고 생각했지만, 팽위천은 혼원벽력도강으로 맞불을 놓았다. 누가 더 순수하게 우위에 있는지를 보여 주려는 듯.
격돌할 때마다 부서진 강기들이 지상을 폐허로 만들었다. 그럴수록 팽도광의 숨겨진 악의가 폭발적으로 상승했다. 드러내고 싶지 않았던, 그 어떤 때라도 감추고 싶었던 열등감이 마혼과 결합하여 격렬한 파동을 일으켰다.
두드드드드!
팽위천은 숙부의 심연에 자리한 저열함을 느꼈다. 저와 같은 마음을 이때까지 숨기고 있었다니, 그 자체로 대단하다는 말이 절로 흘러나왔다.
‘그렇다고 용서가 되진 않는다.’
아버지를 죽이고, 자식을 죽이려는 숙부의 만행을 그저 열등감의 변질된 욕망으로 치부할 순 없다. 패륜을 저지른 대가만큼은 반드시 치러야 했다.
“오늘의 선택을 죽어서도 후회하게 해 주겠다!”
“본모습을 보니 구역질조차 나지 않는군.”
뇌정지기를 끌어 올린 팽위천의 몸에서는 강렬한 뇌광이 발산되었다. 눈을 뜨지 못하게 하는 빛의 포화는 그 자체로 강력한 무기였다.
“허튼짓을!”
시야를 가리는 뇌광 속에서 도강을 번뜩이며 팽도광과 결전을 펼쳤다.
쩌저저정, 투아아앙!
천지간의 동화를 이루어 낸 팽도광의 도법은 세월의 힘을 여실히 증명했다. 뇌광의 포화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건곤연환탈백도의 성명절초를 뿌렸다.
꽈아앙, 화아아악!
도강과 도강의 격돌이었다. 중도와 패도를 추구하는 하북팽가의 총화가 맞물리며 의지를 시험했다.
격전의 소용돌이 속 중심에 자리한 팽위천과 팽도광은 한 치의 물러섬도 용납하지 않았다. 반드시 힘으로 이기겠다는 필살의 의지와 비장한 각오가 전해졌다.
주르르!
도법을 수련하려면 육체의 단련은 필연적이다. 도공의 폭발적인 힘을 감당할 육체를 완성하지 않으면 칼을 쓰다가 오히려 잡아먹히는 수가 있었다.
팽위천과 팽도광의 육체는 금강불괴는 아니더라도, 그에 필적하는 철골지체를 이루었다. 그런데도 강기의 편린에 베이며 핏물이 흘렀다. 마치 사방으로 부서지는 대나무의 날카로운 예기에 살갗이 찢기는 것 같았다.
꽈아앙, 주춤!
건곤연환탈백도의 연환결이 극한에 이르면 그 속도를 따르기가 어렵다고 했다. 하지만 극점에 도달했던 팽도광은 승기를 잡기는커녕 팽위천의 반으로 쪼개는 일도에 멈춰지고 말았다.
산을 쪼갠다고 하여 붙여진 단악도가 오히려 역으로 당했다. 되레 충격을 받고 밀리자, 팽도광의 눈빛이 붉게 물들며 건곤지기에 사이한 기운이 묻어 나왔다.
“사도에 손을 댔는가?”
“이젠 후회해도 소용없다!”
억제했던 기운을 꺼내 든 팽도광은 살의로 충만했다. 팽위천과 연관된 모든 걸 죽이지 않고서는 성에 차지 않았다. 일말의 망설임 때문에 꺼내 들지 않으려고 했던 지난 시간이 후회되었다. 이렇게 대단한 힘일 줄은 몰랐다.
마혼의 권능에 취한 팽도광이 기광을 뿜어내며 가공할 기파를 발생시켰다. 천지 사방이 그의 의지에 따라 움직였다. 누구도 자신의 권위를 무시할 수 없었다.
“어이, 지금은 좋아할 때가 아니라고! 네 아들이 굉장히 위험한 상황에 처했어!”
생사가 오가는 격돌이 이루어지려는 찰나.
나 좀 봐 달라는 전언이 끼어들었다.
꽈악!
크윽!
팽도광은 바라보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나 익숙한 신음에 자신도 모르게 돌아서고 말았다.
“천운권!”
“아들의 목숨을 살리고 싶으면 두 팔을 자른 후 단전을 쪼개고, 머리도 쪼개.”
팔을 자르고 어떻게 머리를 쪼개?
잘린 팔로 쪼개란 건가?
여하튼 논리는 나중이고, 전혀 생각지도 못한 국면이었다. 천운권의 손에 팽도광의 아들, 팽위윤이 잡혀 있었다.
그 주변으로 낭패한 기색이 완연한 구룡장주와 무인들이 이를 바득바득 갈며 서 있었다.
씨익!
무진은 미소를 잃지 않았다.
“그 손 놓지 못하겠느냐!”
“네가 놓으란다고 놓으면 내가 네 꼬봉인 거 같잖아.”
팽위윤의 숨통을 조금 더 조여 주었다. 동시에 가련하게 떨고 있던 손가락 하나를 뽑았다.
크아아아아악!
팔을 뽑은 것도 아니고, 손가락 하나 뽑았는데 엄살은? 무진은 제 팔 아니라고 막말을 서슴없이 해 줬다.
“이 병신 같은 아들…… 아? 이젠 병신이지. 손가락 병신. 여하튼 이 병신 같은 놈을 살리고 싶으면 그 저열한 열등감을 내려놓고, 항복하시지?”
“……뭐라!”
부르르르르!
끄집어내고 싶지 않은 내면의 치부가 공개적으로 까발려진 것이다.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역린을 전낭처럼 넣었다, 뺐다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