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King RAW novel - Chapter 434
433 제물(3)
크으윽!
녹림왕은 철마장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더욱 기세를 끌어 올려 파상 공세를 펼쳤다.
“천운권은 본맹의 제물이다. 그러니 죽어라.”
“나는 천운권의 동료가 아니다!”
“버러지 같은 놈이었군.”
“한낱 미꾸라지의 농간에 속은 주제에 맹주라니, 부끄럽지도 않더냐!”
녹림왕의 눈썹이 꿈틀거리며 분노가 솟구쳐 올랐다. 강렬한 살의가 광룡공과 융화하여 일대를 장악했다. 경천광룡의 포악한 기운이 숨통을 조인다. 이미 마음이 일면 현실로 구현이 되는 무극경에 도달해 있었다.
드드드드드!
만물일체, 신화기경에 이른 녹림왕의 분노가 공간을 지배하며 철마장의 운신을 제어했다.
크윽!
짓누르는 거대한 무형기에 철마장은 안간힘을 써야 했다. 천운권과의 대결에서 소모된 내력이 아쉬워졌다. 그것만 아니면 이런 식으로 압박을 받지는 않았을 것이다.
철마장은 흑철병단의 단주에게 전음을 보낸 후, 결의를 다졌다. 오해를 풀 수도, 빠져나갈 수도 없다면 방법은 하나뿐임을 인정했다.
“오냐, 오너라.”
살아 나갈 방법을 포기한 철마장의 기운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그 역시도 이전과는 판이하게 다른 가공할 무력 발산이었다.
화화화활!
흑철화기가 뜨겁게 불타오르며 흑철병단에 전이되었다. 흑철병단도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기운을 폭발시키며 결의를 드러냈다. 결코 만만치 않은 기세였기에 가볍게 여길 수는 없었다.
“흥, 죽음을 각오했나?”
“맹주의 자리는 다른 놈이 차지하겠구나.”
“자신 있으면 해 봐.”
“어리석은 녹림왕이여, 지옥으로 초대하마.”
녹림왕과 철마장의 대결은 마치 지금까지는 전초전이었던 것처럼 경이로운 무력을 선보였다. 파괴력도 파괴력이지만, 죽음을 도외시했기에 작은 방심도 허락되지 않았다.
퍽, 쩌어엉!
일격 일격에 공간이 관통하는 파열음이 퍼지며 심혼을 강타했다. 발산되는 기파에 시야를 확보하기도 어려웠다. 눈을 찌르는 기세로 인해 고개를 돌려야 했다.
“잘 싸우네. 양패구상 했으면 좋겠다. 좀 많이 힘이 빠져서 제물이 되거나.”
“……?”
둘의 싸움을 여유롭게 지켜보면서 육포를 씹는 무진이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는 허장관과 상인들이었다.
‘나 같아도 못 참겠다!’
왜 그렇게 다들 천운권을 죽이지 못해서 안달인지를 깨닫게 된 허장관과 상인들이다. 제삼자가 봐도 열 받는데, 당사자는 오죽하랴. 녹림왕과 목숨을 도외시하며 결전을 펼치는 습격자들이 안쓰러울 지경이다.
‘대체 뭔 짓을 한 게냐?’
‘뭐가요?’
‘장가의 무공이 예전과는 다르지 않느냐.’
‘몇 대 맞더니 강해지던데요.’
‘얼마나 팼길래?’
‘어르신도 강해지고 싶으세요?’
‘아니, 난 만족한다.’
무진과 전음을 나눈 취선은 녹림왕의 강함에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일전에 봤을 때와는 격이 다르다. 신주이십일강의 말석이 아니라, 검제를 위협하고도 남았다. 성장 속도만 놓고 보면 누구보다 빨랐다.
‘죽도록 처맞았나 보구나.’
얼마나 때렸으면!
쯧쯧쯧!
시도 때도 없이 처맞았구먼.
녹림왕이 한편으로 안쓰러운 취선이었다. 무인으로서 강함을 숭배하긴 하나, 이 나이에 개 패듯 맞고 싶지는 않았다. 무진과 원치도 않은 훈련을 하고 나면 뼈마디가 시려서 잠도 잘 못 잔다.
‘녹림왕처럼 되고 싶지 않아?’
‘싫다.’
‘어허, 자넨 이젠 하북팽가의 가주야. 그에 걸맞은 위용이 필요할 텐데.’
‘협박하지 마라, 안 통한다.’
‘쩝! 알 수가 없네, 강해지고 싶지가 않나 봐.’
‘과정을 알면 그런 소리 못 하지.’
‘내가 다 알아서 한다니까.’
‘그게 제일 문제지 않나!’
넌지시 팽위천의 옆구리를 찔러봤던 무진은 입맛을 다시다가 정면을 바라보았다. 슬슬 대결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었다. 동귀어진을 마다하지 않는 철마장과 흑철병단이었다.
대비하고 있었기에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희생자가 나왔을 것이다. 사전에 특수한 형태의 보갑을 착용했고, 염 노 특제 만능 해독단을 복용한 상태였다.
꽈아아앙!
화르르르!
천지를 뒤흔드는 폭발과 함께 검은 화기가 번졌다. 그 순간 사방으로 퍼져 나가는 그림자가 있었다.
슈앙!
녹림왕은 이를 놓치지 않고 추적하여 무형권강을 선사했다. 도망치다가 가루가 되어 흩어지는 광경이 비현실적으로 다가왔다. 하나, 예상을 벗어난 사태가 벌어졌다.
“같잖은 짓을.”
“같이 가자!”
철마장은 도주 대신 자신의 몸을 내던졌다. 녹림왕이라면 자신을 끝까지 추적하리라 확신했기에 흑철병단주에게 최후의 명령을 내렸다. 본교를 위한 숭고한 희생이라면 마다하지 않는다. 그것이 구대마장의 소임이었다.
퍼어어엉!
경시할 수 없었던 녹림왕은 전력을 다해 철마장을 뭉개 버렸다. 경천동지할 파문이 번지는 와중 철마장의 육체가 반 이상 사라지며 최후를 맞이했다. 흑철병단도 철마장을 따라 목숨을 거는 지독함을 보였다.
후아아앙!
후폭풍이 지나가고 녹림왕이 취선과 팽위천을 막아섰다. 무리에서 이탈한 흑철병단주를 쫓으려고 했으나, 녹림왕이 알아채고 움직인 것이다.
“어딜 가시나.”
“많이 컸구나, 애송이.”
“그날의 원한을 내가 잊었을 것 같아!”
“이번에는 다를 것 같으냐?”
“봐서 알겠지만, 당신도 내 상대는 이제 아닐걸.”
“그거야 온전한 상태일 때나 그렇지.”
녹림왕은 과거 취선과 검제에게 도망을 쳤던 치욕이 있었다. 이를 갚아 주려는 녹림왕의 행동도 이해는 갔다. 그러나 취선도 마신교의 흔적을 놓칠 수는 없었다. 이때를 위해서 천운권을 제물로 던진 형국이었다.
“그래도 노인장 하나쯤이야.”
“허어, 이놈들은 마신교일세.”
“뭐? 저 새끼가!”
진짜 아무것도 몰라야 했던 녹림왕의 혼신을 다한 연기에 취선은 자못 감탄했다. 이제 알아챘다는 어리석은 모습까지 합해져 상황을 악화시켰다.
녹림왕은 방향을 선회하여 천운권을 노렸다.
“어차피 이리될 일, 천운권이여, 본맹의 제물이 되어 순리를 따르라!”
“안타깝지만 그리할 수는 없네.”
취선이 또다시 막아서자, 녹림왕이 노발대발했다.
“본 왕을 농락한 천운권을 감싸는 게요!”
“어쩌겠나, 저리 보여도 무림맹의 감찰관일세. 그러니 이쯤 하고 비켜 주게.”
“흥! 나만 당할 수는 없지.”
사태가 요상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천운권으로 인해 무림맹과 녹수연맹이 대치하는 꼴이었다. 보고서도 믿어지지 않는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취선 대협의 말대로라면 도망친 자들은 마신교였다.
‘이게 말이 되는 일이야?’
녹수연맹, 무림맹, 마신교의 삼파전이 벌어진 것이다. 그중 하나만 해도 석가장은 패가망신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순간 목 아래가 서늘했다. 그런 세력이 한 사람을 놓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으니 현실적이지 않았다.
“에헴, 이제야 다시 보이냐.”
“……?”
우쭐할 일이 아니라고요!
목숨이 백 개는 되세요?
존재감을 과시하며 으스대는 무진의 행태에 허장관은 말문이 막혔다. 공포에 젖어 벌벌 떨어도 이상하지 않을 텐데, 배짱 하나는 천하제일이었다. 그러고 보면 그 모진 악명을 이겨 내고 여태까지 살아 있는 것만 봐도 보통은 아니었다.
“비키게.”
“당신이나 비켜!”
취선과 녹림왕의 신경전은 계속되었다. 이미 계획이 틀어져 버린 이상, 어떻게든 서로의 일을 방해하려고 작정했다.
“천운권을 내놓으면 순순히 물러가지.”
“이제 막 세운 초대연맹일 텐데, 마지막 맹주가 되고 싶나?”
“이봐, 노인장! 말이 심한데.”
“어린놈이 힘 좀 세다고 눈에 뵈는 게 없느냐! 너 몇 살이야?”
“먹을 만큼 먹었수다!”
나이를 물었으면 이미 끝났다고 봐야 했다. 보통은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무림맹과 녹수연맹의 전쟁은 마신교와 흑룡성에겐 어부지리였다. 여기서 싸운다면 전쟁을 치러야 했다.
“좋은 주먹 놔두고 말로 싸우나.”
허걱!
무진의 무책임한 발언에 허장관과 상인들은 대경실색했다. 저 요망한 주둥이를 방치해선 안 되었다. 만일 천운권으로 인해 무림맹과 녹수연맹이 전쟁을 치른다면 석가장은 원인 제공을 한 꼴이 된다. 임시라고는 해도 천운권은 석가장의 총표두였다.
“이번에는 네놈의 같잖은 수작에 안 넘어간다.”
“원래 싸우다 정드는 거야.”
그나마 녹림왕이 제정신을 차려서 다행이었다. 아니었다면 역사에 이름이 새겨질 뻔했다. 대단한 가문은 아니더라도, 허씨 가문의 수치로 낙인이 찍히고 싶진 않았다.
“거지 할아버지, 이거 무림맹에 대한 모욕 아닌가요?”
“너는 닥치고 있어.”
무진은 이쯤에서 잘 빠져 주는 그런 눈치 있는 사람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 말라면 더 하고, 하라고 하면 안 하는. 주변을 복장 터지게 하는 데 일가견이 있었다.
“어이, 안 덤빌 거야?”
“운 좋은 줄 알아라.”
녹림왕은 더는 시간을 끌지 않고 돌아섰다. 그걸 기다렸다는 듯 노리려던 무진을 취선이 막지 않았다면 무림맹과 녹수연맹은 돌이킬 수 없었을 것이다.
하!
허장관과 상인들은 천운권이 사람이 아님을 재차 깨달았다. 사람이라면 저럴 수가 없다. 죽으려면 혼자만 죽을 것이지, 다 같지 죽자고 날뛰었다. 그 순간 오늘도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대하는 가족들이 떠올랐다.
“다음에 보자꾸나, 망종아.”
“저도 이제 화경입니다. 함부로 대하시면 곤란합니다.”
“꼭 유용하게 써 주마.”
“이번만 참는 겁니다.”
취선과 팽위천은 마신교를 추적하기 위해서 자리를 벗어났다. 남겨진 자들은 기력이 빠졌는지 휘청거리며 주저앉았다. 오늘 너무 엄청난 사건이 일어나서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주변 정리해.”
“예, 사부님.”
철호와 서문호가 일대를 농사철 밭처럼 고르게 정리했다. 그 모습이 어찌나 능숙한지 한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니었다. 숙련된 농부를 보는 기분이랄까.
이제 파종하면 되나?
‘대체 얼마나 죽이고 다닌 거야?’
밥 먹다 죽이고, 잠자다 죽이고, 소피보다 죽이고, 그냥 막 죽이고 다니는 도살자가 아니고서야.
“돕겠습니다.”
“정신은 박혀 있구먼.”
청수검도 정신을 차리고 철호와 서문호를 도왔다. 저들이 아니었으면 자신들은 사방에 널브러진 육편들과 다르지 않은 처지였을 것이다. 막판에 미심쩍기는 했으나, 고마움이 더 컸다.
“배고프네.”
이 지경이 됐는데 밥이 생각납니까?
천운권의 비상식에 허장관은 속이 썩어 문드러졌다. 이렇게나 사람을 답답하게 만들 수 있다니, 그 재주가 용하다.
제발 적당히 좀 했으면 좋겠다. 수명이 계속 줄다 보니 한계치를 벗어난 지 오래였다. 전생, 환생의 수명까지 끌어다 써야 할 판이다.
“다들 안심하고 있을 때가 아니지 않나.”
“또 뭐가 있습니까?”
“그보다는 자신들의 처지를 상기해 보란 거야.”
“우리들의 처지요?”
“나도 이용당한 처지지만, 너희들도 마찬가지잖아.”
“무슨 말씀이신지?”
“왜 모르는 척하실까? 아까부터 알고 있었으면서.”
허장관의 안색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마냥 이상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핵심을 정확하게 찔렀다. 순간 말을 잇지 못하고, 넋을 놓고 말았다. 그것이 실수임을 상인들의 얼굴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오해가 있는 듯합니다.”
“하긴 뭐, 살면서 토사구팽 안 당해 본 사람이 어디 있어. 흔한 일이니까, 괜찮겠지.”
아주 쐐기를 박는 천운권이었다. 암만 비밀로 하고 싶어도 천운권의 주둥이는 자유분방 그 자체였다. 모르고 싶어도 모를 수 없도록 대못을 박았다.
사실 상행 자체가 수상쩍기는 했다. 이 시국에 대량의 물건을 다른 곳도 아닌 사파와 거래한다는 것 자체가. 마치 잘 짜인 바둑판 위에 놓은 기석처럼 의도가 보였다.
‘우리를 제물로 썼단 말인가?’
살아 있음에 안도했지만, 허장관의 표정이 씁쓸했다. 이는 상인들도 다르지 않았다.
“그만했으면 됐어. 가자.”
“예. 사부님!”
무진은 의혹을 심은 것에서 만족하고 상행을 지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