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King RAW novel - Chapter 440
439 밥상을 차리다(2)
서문호와 사파의 젊은 후기지수들과의 대결은 며칠째 계속되었다. 객잔 앞이 문전성시를 이루면서 객잔 주인만 노 났다. 구경하기 좋은 자리를 선점하려는 자들이 많았다.
간혹, 말썽을 일으키는 분탕 종자들도 있었으나, 대결을 방해하는 행위는 용납하지 않았다.
채챙!
서문호의 검을 받은 이는 백일도(白日刀) 상일헌이었다. 빛을 투영하는 백색의 도광이 번쩍일 때마다 사위는 눈을 뜨지 못할 정도였다.
도광으로 시야를 가린 후 찔러 들어가려던 상일헌은 멈칫하며 물러서야 했다. 도극이 채 목적지에 가기도 전에 횡으로 그어지는 검기가 있었다.
헙!
도신의 반이 숭덩! 잘리며, 반대 방향으로 쏘아졌다. 상일헌은 고개를 돌려 피했지만, 서문호는 놓치지 않았다. 어느새 검신이 목젖을 한 치 앞에 두고 있었다.
스윽!
움찔!
한 호흡도 흔들리지 않는 서문호의 냉철함에 상일헌은 패배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반사적으로 주머니에 손을 넣었지만, 통할 것 같지 않았다. 암기를 쓰는 순간, 목이 잘려 나가는 주마등을 보았기에.
“……졌다.”
“수고했소.”
상일헌의 패배에 사방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다른 이들과 달리 상일헌은 서른 중반이 넘은 절정고수였다. 저처럼 몇 차례의 공방만으로 끝날 만큼 가볍지 않았다. 그런데도 몇 수만에 상일헌은 패배를 인정해야 했다.
‘천운권의 제자라며!’
‘이놈도 저놈처럼 초절정인 건가?’
‘이게 말이 돼?’
‘제자들조차 초절정은 너무하잖아.’
상일헌의 마도를 가른 한 줄기 섬광은 검강이 분명했다. 서른도 되지 않은 서문호의 무공이 초절정에 이르렀다는 증거였다.
이 한 수로 도전자는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초절정의 고수를 상대할 후기지수는 많지 않았다. 최소한 사파 무림에서 명성이 자자한 무인이 아니고선 어림없었다.
“없나?”
서문호의 무심한 태도에 무인들은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마치 너희들 따위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듯이 들렸다. 자존심이 상한 무인들이 살기를 드러내며 단합된 행동을 하려고 했다.
스윽!
잠자코 구경하던 철호가 일어섰다.
움찔!
몇 번을 봐도 적응이 되지 않는 분노억제기, 철호였다. 들끓었던 살기에 찬물을 끼얹어 주었다.
“역시 사파로군.”
“……이 새끼들이, 미쳤나!”
철호의 발언에 발끈한 자들이 들고일어났다. 혼자서는 하지 못해도 백 명이 넘었다. 이대로 이놈들을 무사히 보내 준다면 사파 무림의 자존심이 꺾이게 된다.
“사특한 수법을 쓰지 않고서야, 백일도를 일검에 쓰러뜨릴 수는 없다고!”
“정파의 애송이들한테 언제까지 당하고만 있을 거야! 사도의 자존심을 보여 주자!”
“놈이 돌아가서 어떤 말을 할지 뻔하잖아!”
“옳소! 사도의 저력을 보여 줄 때가 됐다고!”
철호는 수백 명의 인파 속에서 선동하는 자들을 봤다. 직접 나서진 않고, 억제되었던 분노에 기름을 부었다.
이래서 선동이 무서운 것이다. 한 번 끓어오른 살의는 터져 나가기 전까진 식지 않았다. 상대는 그 점을 노리고 있었다.
두드드드!
피식!
사방에서 쏘아지는 살의에도 철호의 입꼬리가 호선을 그리자, 더는 참지 못하고 폭발했다.
우르르르!
죽여!
철호는 조여 오는 자들을 향해 물러서지 않고 일보를 밟았다.
푸우웅!
황소가 투레질하며 발굽을 거세게 딛는 듯한 모습이었다. 철호의 신형이 직선으로 쏘아져 나갔다. 어떠한 기교나 변칙을 섞지 않았다.
나는 지나갈 테니, 막을 수 있으면 막아 봐라.
까아앙!
철호의 육신과 마주한 병기가 두꺼운 철벽을 두드린 듯 역으로 튕겨 나갔다.
꽈다다당!
그저 몸으로 부딪쳤을 뿐인데도, 나가떨어진 자들은 마른침을 삼켜야 했다. 인간의 육체라고 하기에는 말도 안 되는 단단함이었다. 하물며 진신 병기에 내력을 몽땅 쏟아부었었다. 생채기도 나지 않은 철호의 무심한 끄덕거림에 오싹한 전율을 느꼈다.
그야말로 무쇠로 만든 인간이었다.
꽈아앙, 크아아악!
퍼어엉, 내 팔!
인간 흉기.
철호는 굳이 절초를 쓰지도 않았다. 철혈사자권의 형과 식이 육신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그 자체로 권공이 되었다. 일권 일권이 무쌍일점포라는 점이 무인들에게는 불운이었다. 절초는 아니더라도, 튕겨 나간 자들은 골병이 들기에 적합했다.
스륵!
철호가 사위를 잡아먹으며 시선을 끌 때, 서문호의 청룡안이 빛을 발하며 용천행이 발동했다. 한 줄기 청광으로 변한 서문호의 신형이 아까 전 주둥이를 나불거렸던 자들을 노렸다.
헙, 털썩!
검결지가 자연스럽게 요혈인 거골혈과 천주혈을 찌르자, 맥없이 쓰러졌다.
“들켰어…… 커억!”
“개수작은 안 통해.”
서문호의 손속은 빠르고 정확했다. 선동꾼들이 미처 대응하기도 전에 제압되어 한자리로 옮겨졌다.
꽈아앙, 쿠다다당!
군계일학, 철호의 위용은 대단했다. 사방에서 달려드는 닭대가리들은 처맞고 나서야 ‘내가 학은 아니구나.’라는 걸 깨달았다. 뱁새 주제에 나대자, 냉정한 현실과 마주했다.
아고고!
여기저기서 골병드는 소리가 들렸다. 그 사이를 뚫고 암수가 날아오기는 했으나, 철호의 육체에 흠집도 내지 못했다.
까아앙!
혼란한 틈에 회심의 수를 펼쳤던 자는 망연자실했다. 등을 노렸거늘, 철호가 정면에 있었다.
“살려…… 쿠웨웨웩!”
“재주껏 살아.”
나는 모르겠다, 그런 주먹이었다. 죽으면 하는 수 없다는 스승님의 무책임함이 권로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내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있지만, 내지른 주먹은 회수하지 못했다. 그것이 전왕권의 필수 덕목이었다. 책임을 지지 않기에 전왕권은 최강의 권공이 될 수 있었다.
툭!
서문호는 제압한 자 중 한 명의 점혈을 풀고 물었다.
“누가 시켰지?”
“모른…… 크아아아악!”
모른다고 인생 끝나지 않는다. 배움의 끝은 없다고 대학자가 그랬듯이, 알 때까지 인생을 배워야 했다. 서문호도 사부님에게 배운 대로 고신과 고문에 능숙했다.
“뒤에서 선동하면 모를 것 같아! 누가 시키지 않고서야, 너희들이 이런 짓을 할 리 없잖아.”
“……그만!”
“네가 그만하란다고 그만하면, 내가 네 꼬봉 같잖아.”
“제발…… 크아악…… 말하겠어!”
“누구야?”
“이공자…….”
이때를 노리고 누군가 비수를 던졌다.
까앙!
당연하게도 대비를 하고 있었다. 엄밀히 얘기하면 비밀을 누설하기를 기다린 것이다. 그래서 몇 놈을 남겨 두었다. 빈틈을 내보이며 돌아서 있었던 것도 이때를 위해서다.
서문호가 심문할 때 철호는 주변의 흐름을 읽어 내며 기다렸다가 막아섰다.
“사제, 가자.”
“예, 사형.”
철호와 서문호는 여기까지만 했다. 누가 시켰는지 확실하게 알지 못해도 상관하지 않았다. 이제 저놈들을 죽이든 말든,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하아!
사방에서 한숨이 터져 나왔다.
이 상황 자체가 흑천부에는 부담이 되었다. 사람들을 선동했으며, 사실을 토설한 자는 이공자를 지목한 후 입을 닫았다. 이공자가 직접 지시를 했는지, 모함인지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 자체로 문제가 되는 사안이었다.
빠득!
멀지 않은 곳.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위장한 이공자 요두강은 이를 갈았다. 그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고 최악의 상황이 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이대로는 자신이 의심을 받게 된다.
‘멍청한 놈들!’
나서기에는 늦었다. 사태를 해결하려면 천운권의 제자들을 쓰러뜨려야 하는데, 불가능에 가까웠다.
‘감히 나를 비웃어!’
요두강은 흑천부의 핵심 세력인 혈해방의 소방주였다. 그는 방의 무인을 동원해서라도 빚을 갚아 주기로 마음을 먹었다.
“두고 보자.”
“어딜 가.”
“……언제?”
“이공자군.”
철호와 서문호는 돌아가는 척하면서 몰래 숨어 있는 요두강을 찾았다. 범인은 항상 현장에 온다는 사부님의 말씀을 따랐다. 그리고 요두강은 오늘 머리가 없는 요강이 될 팔자였다.
“……이놈들이 감히!”
“덤비게.”
이번에는 서문호와 철호가 기세를 끌어 올리며 검강과 권강을 드러냈다.
“……비겁한 놈들!”
“칼 들면 죽일 거야.”
서문호와 철호는 잡아 놓을 뿐, 선택은 요두강에게 맡겼다. 하나, 요두강에게는 사면초가였다. 자신의 선동에 넘어갔던 무인들이 주변을 에워싸고 있었다.
“날 건드리면 혈해방이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안 건드려.”
“……뭐?”
“그냥 한번 물은 거야.”
서문호와 철호는 이목만 집중시켜 놓고 쏙! 빠져 버렸다. 현실을 깨달은 요두강의 안색은 새카맣게 죽어 갔다. 암계를 썼는데, 오히려 손바닥 안에서 놀아나고 말았다.
‘……제기랄!’
***
이공자는 암계가 들통나면서 망신을 당했다. 요두강이 혈해방의 소방주가 아니었다면 질책으로 끝나지 않았을 사안이었다.
하나, 하려고 했으면 제대로 해야 했다. 어설픈 간계를 부리는 바람에 흑천부는 물론 사파 무림 전체의 위신이 떨어졌다.
반면, 천운권의 제자들이 활약할수록 감정은 좋지 않았다. 요두강을 질타하는 것 이상으로 적대적이었다.
그럼에도 섣불리 나서진 못했다. 서문호와 철호의 강함이 상식적인 수준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사파에서도 이름깨나 알려진 자들이 아니고선, 천운권의 제자들을 이길 수가 없는 현실이다. 더욱이 지기라도 하는 날엔 흑철패 꼴이 날 수 있었다. 현재 우중탁은 사람을 싫어해서 문파에서 두문불출했다.
분위기가 흉흉해진 흑천부의 영역에서 천운권과 제자들은 거리낌 없이 활보하고 다녔다. 마치 건드릴 수 있으면 해 보라는 듯이.
흑천부의 심기를 지속해서 건드리고 있었다. 불편해진 자들이 속속 나타나고 도전했지만, 천운권과 제자들은 강했다.
한편으로 이놈들이 이러는 연유를 알 수 없었다. 자칫, 정사대전의 빌미가 될 짓이었다.
천운권이 왜 천하망종으로 불리는지를 깨달았다. 어정쩡하게 건드리면 벽력탄보다 더한 파급력을 불러오는 재앙이었다. 이쯤 되니 자존심은 상해도, 건드리면 피 볼 것 같아 다들 몸을 사렸다.
어둠이 깃든 방 안, 두 사람을 제외하고 주변에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은밀한 밀담을 주고받는 사적인 공간이었다.
“어떻게 됐지?”
“허락이 떨어졌습니다.”
“하긴, 이렇게까지 잘 차려진 판을 모른 척하는 건 예의가 아니지.”
“신중히 처리하라고 했습니다. 상대는 천운권입니다.”
“알고 있으니까, 그쯤 해.”
이날이 오기를 그는 학수고대했다. 비록 어릴 때였으나 부모가 죽는 광경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자신은 부모를 죽인 원수의 자비로 살아남았을 뿐이다.
‘그것으로 면죄부가 될 성싶었나!’
수십 년의 세월 동안 복수를 꿈꾸어 온 사내의 눈에 살기 가득한 기광이 번뜩였다. 이날이 오기까지 참고 또 참았다. 더는 참을 필요가 없어졌다. 흑천부는 자신의 것이 될 테니까. 그 앞에서 과거를 떠올리게 해 줄 것이다.
‘네놈에게도 똑같은 상처를 심어 주지!’
***
가야 하는 날이 다가왔다.
거래 물품을 전해 줬으니 돌아가야 했다. 무탈하게 거래를 마쳤으니 홀가분해야 할 텐데, 허장관은 돌아가는 날짜가 다가올수록 가슴이 답답해졌다. 의심하지 않으려고 해도, 머릿속에서 의혹이 떠나질 않았다. 잠을 잘 때마다 최악의 가정이 떠올랐다.
가슴에 돌이 박힌 막막함을 지우지 못한 허장관은 별채로 향했다. 그에게 말을 한들 답을 얻지는 못할 텐데.
‘정말 어디로 튈지를 모르겠구나.’
자유롭다고 해야 하나, 자신처럼 얽매여 있지 않아 부러울 때도 있었다. 그러나 정도란 게 있었다. 강 대협은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흑천부를 들쑤셨다. 석가장과 다시 거래를 틀 수 있을지 의문이 들 지경이다.
슥!
별채의 객실에서 느긋하게 앉아 있던 무진이 고개를 돌렸다. 용건을 마쳤으니 관심이 없다는 표정이었다.
“어쩐 일이야?”
“가는데 인사는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몸조심하고. 살아 있으면 보자.”
“강 대협도…… 예?”
“알면서 왜 그래.”
“장주께서 그렇게까지 하시진 않을 겁니다.”
“그랬으면 좋겠다.”
무진의 성의 없는 대답에 허장관은 서운한 감정이 들었다. 상행을 이어 오는 동안 함께한 정이 있다고 생각했다. 한데, 자신과 상인들에게 한 줌의 미련도 없어 보였다. 그것이 억울했는지, 평소와 다르게 감정을 추스르지 못했다.
“정말 너무하십니다!”
“죽을 목숨을 살려 줬는데 원망을 듣는 건 너무하지 않고.”
“이 모든 일은 강 대협으로 인해서 벌어지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내 탓이라고?”
허장관은 차마 그렇다고 말할 수 없었다. 누구 탓을 해 봤자, 상대는 정해져 있었다. 어떤 이유를 대도 생명의 은인임을 부정할 수 없었다.
그래도 조금은 도움을 주기를 바랐다. 자신만이 아닌 동료들까지 휘말렸다. 어쩌면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야 했다. 그런데 이 작자는 일말의 여지도 없이 쐐기를 박았다.
“죄송합니다. 제가 주제넘었습니다.”
“그래, 가 봐.”
끝까지 미련을 두지 않자, 허장관은 한숨을 내쉬며 돌아서야 했다. 애초에 뭘 기대했는지 모르겠다. 천하의 망종으로 소문이 났지만, 실제는 다르다고 생각했던 것 같았다. 그 모든 일이 자신을 드러내지 않기 위한 위장이길 바랐었는데.
진짜로 개새끼네!
격한 감정에 허장관은 하마터면 속내를 발설할 뻔했다.
“나와.”
“……예?”
“죽지 말라고.”
“저희가 가지 않으면 가족들이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개방에서 사람이 올 거야. 명단을 제출해서 사람을 빼 올 시간을 벌어. 할 수 있지?”
“마땅히 의탁할 데가 없습니다.”
석가장이 맘먹으면 어딜 가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자신 혼자라면 모르지만, 적지 않은 인원이 빠져나오면 숨기도 어렵다.
“정운상단으로 가.”
“정운상단이 받아 주겠습니까?”
“물론이야. 다만, 인정을 받으려면 그만큼 노력을 해야 해. 혹시 날로 먹으려고 한 건 아니지?”
“끄응, 알겠습니다. 제가 욕심이 과했습니다.”
석가장이 의혹에 휩싸여 있기는 하지만, 확증할 만한 증거는 나오지 않았다. 증거가 확실해도 어려운 판국에 의혹만으로 몰아갔다가는 역풍을 맞을 수 있었다.
더욱이 이 세상은 배신자를 좋게 보지 않는다. 이런저런 이유를 붙인다고 해도 석가장을 배신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당연히 정운상단으로선 자신들을 받아들이는 일이 부담될 것이다. 은혜를 입고, 정착할 방도까지 내놓으라고 하는 건 도둑놈 심보였다.
“인정받고, 마음껏 능력을 펼쳐. 능백환 상단주는 인재를 소홀히 대하진 않으니까.”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가는 동안 위험하진 않을 거야.”
“알고 있습니다.”
석가장이나 마신교도 바보가 아닌 이상, 이들을 당장 제거하진 않을 것이다. 가뜩이나 의심을 사고 있는데, 증인이 될 만한 자들을 죽인다면 스스로 죄를 시인하는 꼴이었다.
“이제 진짜로 가 봐.”
“다음에는 도움이 되겠습니다.”
허장관은 결심을 굳히고 객실에서 나왔다. 그는 상인들과 표사들을 설득해야 했다.
‘찝찝하네.’
-사람을 살리는 일이다. 너도 좀 사람처럼 살아라.
‘당장 죽이진 않을 거 아냐. 적당히 잊히면 그때 가서 조금씩 처리하겠지.’
-빨리 죽이나, 늦게 죽이나 그게 그거잖아.
‘내 탓 아니면 된 거지 뭐.’
-내부 정보 빼먹으려는 거 모를 줄 알아.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어.’
허장관의 능력이 나쁘진 않지만, 반드시 데리고 와야 할 만큼 유능한지는 모르겠다. 상인의 능력을 직종이 다른 무인이 판별하긴 어렵다.
석가장주의 눈 밖에 난 이상, 살아남기 위해서 최선을 다할 테고. 능백환 상단주라면 허장관의 능력치를 제대로 알아볼 것이다.
무진은 허장관과 상인들에 관한 관심을 껐다. 이제는 손에서 떨어져 나간 사람들이다. 자신을 입증한다면 다시 볼 테고, 역량이 부족하다면 오늘이 마지막일 것이다.
오해는 하지 마라, 죽어서 못 본다는 소린 아니니까.
밤이 깊어지기를 기다렸다.
무진의 객실로 제자들이 조용히 찾아왔다.
제자들은 잠영술이 극성에 달하진 않았어도, 기본적인 수준은 되었다. 정면 대결이 사내다운 방법처럼 보여도, 무식한 행위였다. 때에 따라서 가장 효과적인 수단을 쓸 줄 알아야 했다.
“준비됐지?”
“예, 사부님.”
무진과 제자들은 은밀히 객실에서 나와 아무도 모르게 어둠과 동화되어 담벼락을 넘었다.
스륵!
귀신의 발걸음처럼 그림자가 되어 사라진 공간. 고요한 침묵이 흐르는 가운데, 새로운 그림자가 달빛에 모습을 드러냈다.
-박쥐가 움직였다.
그는 곧바로 신호를 보내 사실을 전달했다. 일정 거리를 두고 신호를 받은 자들이 바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