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King RAW novel - Chapter 447
446 수금(收金)(1)
선택 약정을 했다면 이할 오푼은 저렴하게 계약할 수도 있었을 텐데, 아쉽게도 암흑신마는 기회를 제 발로 차 버렸다. 깨알 같은 약정을 면밀하게 검토했어야 했다. 자부심만큼이나 본인을 과신한 대가는 무형지독만큼 쓴 법이다.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 합법적인 구타…… 공정 비무는 합리적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아빠~~~~~~~!
과년한 처자가 아버지를 아빠라고 부르다니, 예절 교육을 다시금 받아야 했다. 흑봉과 비교하면 우리 딸 미주는 바르게만 잘 자랐다. 날 닮아서 그런지 몰라도, 예의 빼면 시체거든. 아빠 일 열심히 하라고, 신발도 가지런히 놔 주었다.
-너는 정말 예의고, 양심이고 아무것도 없구나!
‘영혼만 살아서 징징대는 놈보다는 낫지.’
-내가 하나가 되는 그날 보여 주마.
‘굳이 하나가 될 필요가 있으려나? 몸이야, 영혼이야? 하나만 선택해.’
영혼은 승천시키고, 껍데기는 강시로.
마왕의 발광은 중요하지 않았다. 무진은 자금 회수라는 막중한 임무를 소홀히 할 수 없었다. 일당 만 냥의 고급 인력을 부려 먹은 대가는 받아 내야 했다.
철컹, 철컹!
궤짝에 금자가 쌓이는 환청이 들렸다.
무진의 눈동자는 이미 철전으로 가득 들어차 있었다. 애초에 돈에 눈이 먼 무진을 자극하지 말았어야 했다. 빠져나갈 방법을 누차 권고했음에도, 귀담아듣지를 않았으니 자업자득이었다.
쩌어어어엉!
휘리리리릭!
철퍼덕!
천지만물을 관통하는 무진의 전광석화와 같은 일권.
암흑신마는 대로변에 멀뚱히 선 채 치달리는 사두마차를 바라보는 마록(馬鹿)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게 권로(拳路)에 왜 멀뚱히 서 있냐고?
주의 깊게 돌아보고 대비했어야죠.
삼십보, 오십보 보법의 실천이 중요했다.
칠 때 치더라도 무진은 충고를 잊지 않았다. 기절하기 직전이나, 삶을 반추할 교훈은 있어야 했다. 후일 오늘 같은 사고는 일어나지 않도록.
만사불여튼튼.
아빠~~~~!
그만 좀 하시지, 아빠 안 죽어!
누가 죽인데?
함부로 살인자 만들지 말라고.
무진은 호갱…… 고갱님을 홀대하지 않았다. 돈을 받기 전에 죽으면 여러 가지 복잡한 뒤처리가 발생한다. 만수무강하여 쌔가 빠지도록 일해야지.
흑천부는 이제 암흑신마만의 문파가 아닌 무진에게도 소중한 문파가 되었다. 철저한 사후관리와 무분별한 사치를 차단하여 사파무림의 통합에 이바지할 것이다.
‘죽어서도 빚은 갚아야지. 그게 상도의니까.’
-인간이 좀 돼라.
‘귀신이 말 많네.’
-난 살아 있다, 감히 나를 귀신 취급해!
‘그래서 귀신이랑 다른 게 뭔데?’
-……있을 거다. 기다려.
따지고 보면 귀신보다 더한 지박령인데.
용한 무당을 찾아야 하나?
‘무당파를 가긴 가야겠구나.’
-그 무당이 그 무당이냐?
‘……아닌가?’
-내가 이런 놈을 믿고, 돌아왔다니!
무당이든, 승려든 되게 하면 그만이었다. 어차피 칼날 위에서 칼춤 추는 건 매한가지니까. 잘만 춰서 마왕을 우화등선시킨다면 복비를 거나하게 낼 의향이 있다.
원한다면 등선한 원시천존을 만나게 해 줄 수도.
“얼마냐?”
“천이백만 냥입니다.”
아비를 깨우는 효녀 흑봉을 뒤로하고, 무진은 제자에게 정산된 금액을 물었다. 열 번 다 일방적이어서 잠깐 숫자를 잊고 있었다. 대수롭지 않은 일이니, 홀가분하게 넘어갔다.
정산된 액수를 상기할수록 어째서 웃음이 나오는지 원.
도통 모르겠지만, 여기서 멈출 순 없지.
이천만 냥 가자~~~!
이럴 줄 알고 사전에 정운상단과 개방을 통해 흑천부의 자산 총내역을 어느 정도는 살펴봤다. 이천만 냥까지는 쥐어짜면 가능했다. 후일 흑룡성을 장악해 사파무림을 통합한다면 그 이상도 문제없다.
이게 바로 미래를 위한 투자인가?
투기는 아냐.
‘내가 갚을 능력이 안 되는 사람을 쥐어짜진 않아요.’
-암흑신마의 노년이 끝장났군.
여태까지 돈 걱정하지 않으면서 살아 봤으면 이제부터라도 민초의 궁핍한 삶을 체험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그래야 현재의 삶이 얼마나 행복했는지 깨닫지. 사람은 본인이 겪어 보지 않으면 올곧이 체감이 되지 않는다.
“부주님, 깨신 거 아니까 일어나세요.”
“……당신 지금 뭐 하는 거예요?”
아비를 안고 있는 흑봉이 앙큼한 눈으로 노려보았다. 무진은 환하게 웃으며 손가락을 튕겼다.
따악, 꽈다다당!
번갯불이 번쩍하는 순간 딱밤을 맞은 흑봉은 튕겨 나가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비교하자면 얼음판 위를 구르는 돌멩이쯤. 의식이 순간적으로 끊어졌다가 돌아오자 극심한 고통이 밀려왔다. 흑봉은 대갈빡이…… 머리가 깨진 줄 알았다.
까아아악!
어디서 까마귀가 날아가나, 배가 떨어지는지 하늘을 올려다봤던 무진은 부들거리는 암흑신마를 내려다보았다.
왜 이렇게 화가 나셨을까?
“이놈, 감히 설아를!!”
“어울리지 않게 기절한 척을 하니까 오해가 생기잖아요.”
소음공해를 일으키는 흑봉에게 탄지공을 날려 편안한 수면을 유도했다. 대결 중에 떠드는 행위는 흑천부의 화월로서 영예롭지 않았다. 흑봉의 명예를 위한 숭고한 선택이었다.
“의식이 돌아오지 않았을 뿐이다……. 그만해, 이놈아! 대체 언제까지 날릴 거야?”
“아, 그렇지. 어쨌든 다 아는 처지에 이러지 맙시다.”
구양천극은 치밀어 오르는 분노 이전에 황당함을 지우지 못했다. 현실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잔인한 현실과 마주하고 있었다. 자신이 누구인가, 천하제일은 아니더라도 최소 열 손가락 안에는 든다고 자부했다.
‘어째서 이런 일이?’
그런 자신이 단 일격에 의식을 잃었다. 한 번이면 우연으로 치부한다 쳐도, 몇 번이나 같은 경험을 했다. 이쯤 되면 현실을 자각해야 하거늘. 아니라고 부정한들, 비참한 패배감이 밀려왔다.
그래, 그렇다 치자.
이 망할 놈이 때릴 데가 어딨다고 설아에게 그 흉악한 딱밤을 날려! 아비를 걱정하는 딸의 마음도 모르는 악마 같은 놈이 아닐 수 없었다.
“따님의 안전을 위해서 딱밤으로 끝낸 겁니다. 혹, 무인답게 주먹을 날렸어야 했을까요?”
“……인정머리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놈!”
“개인적인 감정은 없습니다. 이게 다 사업이거든요. 자, 바로 가실까요?”
“잠깐, 숨 좀 돌리자!”
의식은 돌아왔지만, 구양천극은 여전히 현실감각이 떨어졌다. 이대로 재차 싸운들, 답이 나오지 않았다. 기절하기 직전의 광경이 지나치게 짧아 복기해봤자 정답이 나올 리 만무했다.
다만, 처음과 달리 무진의 괴물 같은 무력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공이든, 마공이든 자신을 일격에 쓰러뜨리는 괴력난신은 비현실적이었다.
여의치 않지만, 구양천극은 심안의 영역을 동원해 쥐어짜듯 복기했다. 그럴수록 깨닫지 않을 수 없었다. 찰나의 순간 펼쳐진 공방은 전인미답의 극도영역에 도달해 있었다.
“갑니다.”
“……이놈아, 사람이 왜 그렇게 매정해!”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예.”
안심했던 구양천극은 대경실색했다. 무진이 냅다 달려들었기 때문이다. 말로는 안심을 시키고, 빈틈을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내질렀다.
쩌어어어엉!
커어어억!
무진은 일직선으로 나아갔고, 구양천극은 허공을 뱅글뱅글 돌다가 바닥으로 떨어져 나갔다. 평소 보기 힘든 굉장한 광경이나, 서문호에게는 식상했다. 한두 번 날아가야 놀라지, 매번 같은 동작이 이어지니 지루할 따름이다.
쿨럭!
호오.
바닥을 구른 구양천극은 이번에는 의식을 잃지 않았다. 놀라운 변화였다. 일로절명권(一路絶命拳)의 권로를 읽어 낸 것이다. 대로변의 마록에서 벗어났다.
외관상으론 일직선의 권격처럼 보이나, 실제로는 무수히 많은 권공의 무리를 담고 있었다. 단 일격에 무진의 인생이 담겼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러니 일격이나, 일격으로 치부해선 안 되었다.
“마지막 순간 비틀었군요.”
“넌 대체 뭐냐?”
“천운권입니다.”
“……이럴 때만!”
대외적으로 무진은 천권이라며 떠벌리고 다녔다. 그런데 자신 앞에서는 천운권이란다. 이놈이 자신을 희롱하고 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어찌 되었든 무진은 천권이란 별호조차 하찮게 여길 절대고수였다. 운만으로 강호를 종횡무진하기는 불가능했다. 세간에 알려진 소문이 얼마나 얼토당토않은지 실감하게 해 주었다.
“전부 한통속이었구나.”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
“사실이 밝혀지면 네놈도 곤란할 테지.”
“밝히게요?”
무진의 환한 미소에 구양천극은 발끝에서 머리끝을 강타하는 전율을 느꼈다. 생전 처음 경험해 보는 섬뜩함이었다. 흡사 항거 불능의 공포와 같았다. 지금까지의 허술해 보이는 모습이 거짓처럼 느껴졌다.
“날 죽일 셈이냐?”
“어휴, 그런 끔찍한 소리는 하지도 마세요. 부주께선 아직 많은 일을 하실 수 있습니다.”
“네놈 짓이었군.”
“소문이 이상하게 나면 곤란한데요.”
무진이 주먹을 쥐며 뚜둑거리자 구양천극은 자신도 모르게 움찔움찔했다. 열한 방,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지만 평생 잊히지 않을 선명한 각인을 새겼다.
“영웅이라도 될 셈이더냐?”
“설마요. 영웅 따윈 누가 해도 상관없습니다. 다만, 강호를 어지럽히는 놈들은 처리할 필요가 있지요.”
“아닌 척해도, 정파의 협사처럼 말하는군.”
“제가 마냥 정의롭지는 않은데요.”
“……그런 것 같군.”
구양천극은 작금의 사태가 우연의 산물만은 아님을 알아차렸다. 무림사의 심상치 않은 사태가 불거질 때마다 무진이 끼어 있었다. 세상은 천운권이라고 조롱하지만, 어쩌면 이놈의 손바닥 안에서 놀아난 것일지도 모른다.
“대체 어떻게 알아낸 거지?”
“정파, 황궁, 새외를 가리지 않고 마신교의 가지가 뻗어 있더군요.”
“그걸 나에게 말해 주는 연유는?”
“그냥 그렇다고요.”
“내가 마신교와 손을 잡는다면 어쩔 테냐?”
“죽일 겁니다. 연관된 건 무엇이든.”
웃고 있지만 무미건조한 무진의 말투였다. 구양천극은 이 모습이 진짜란 생각이 들었다. 결코, 가식으로 전하는 호언장담이 아님을.
“물론, 돈을 다 갚고 난 후에요.”
“돈?”
왜 모른 척하실까?
무진은 진실을 왜곡하는 행위를 용납하지 않았다.
“호야, 지금까지 얼마냐?”
“천삼백이십만 냥입니다.”
대결과 의도에 심취한 나머지 정작 중요한 내용을 잠시 잊고 있었던 구양천극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액수가 지나치게 비현실적이다.
“……얼마라고?”
“천삼백이십만 냥입니다.”
흑천부의 부주로서 명만 내리면 반 시진 안에 천 냥은 땡길 수 있었다. 그럼에도 천만 냥이 넘어가는 액수에는 눈앞이 깜깜해졌다. 한 번에 갚기는 불가능에 가까웠다. 수년이 뭐야, 수십 년은 더 벌어야 할 거다.
‘……이거 안 죽인다는 거야, 죽인다는 거야?’
사람 헷갈리게 만들고 지랄이었다.
구양천극의 세수 여든이 넘었다. 그 나이에 수십 년이면 백 년은 우습게 넘어갔다. 백 세가 넘어서까지 돈 때문에 궁상맞게 사는 자신이 상기되었다.
……끔찍하군.
벗어날 수 있을까? 구양천극은 조심스럽게 무진을 살폈다. 이놈의 정체를 보다 확실하게 알아 둘 필요가 있었다. 겉으로 보기엔 동냥아치 같은데, 하는 짓은 세상을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대협객이었다. 어쩌면 자신이 오해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은근한 기대를 담았다.
제발 그래라.
“바로 가시죠.”
“……설마?”
“이천만 냥 채웁시다.”
“……진정 마귀로다!”
부주께서 염왕채를 써 보지 않아서 그렇구나. 일반 백성들의 고혈을 쥐어짜는 놈들과 비교하면 자신은 학사처럼 고고했다. 고리대금업자처럼 시도 때도 없이 달달 볶기를 해, 소리를 치길 해, 사업을 방해하기를 해. 이만하면 정중하잖아.
“독왕께선 백 세가 넘으셨는데도 여전히 현역이십니다. 얼마나 팔팔하신지, 아마 굉장히 행복하실 겁니다.”
“그건 독왕의 말도 들어 봐야 하지 않느냐?”
“안 들어 봐도 됩니다.”
“들을 생각도 없구나!”
사람 마음이 다 거기서 거기지. 등 따시고 배부르면 게을러지고, 게으르면 급하게 노화가 온다. 정신없이 바쁘게 살아야 나이가 드는지도 모르는 것이다. 인생을 열심히 살 기회를 드릴 수 있어서 천만다행이었다.
“한참 선배이신 독왕께서도 정정하신데 엄살 피우지 마시죠.”
“독왕도 처맞았구나!”
“새로 태어나셨습니다.”
“지독한 놈이로다!”
“그래서 싫으세요?”
“이 이상 불어나면 나도 책임을 질 수 없다.”
“아, 그러세요.”
“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게냐?”
“누가 보면 강제로 시킨 줄 알겠어요.”
빈정거리는 듯한 무진의 버릇없는 태도에 구양천극은 울컥! 했다. 정말 보면 볼수록 판단이 서지 않았다. 자신을 앞에 두고 이런 식으로 막 나가는 놈이 있다니, 기도 안 차는 현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