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King RAW novel - Chapter 462
461 노림수(2)
검제에 대한 무진의 신랄한 비판에 장로들은 재차 말문이 막혔다. 차기 무림맹주를 대놓고 비꼬는 무인이 현 무림에 있을까? 한편으로 검제도 이런데, 무당파의 장문인이라고 대접이 다르지 않을 것 같아 찝찝했다.
“본도는 검제께서 무림을 밝히는 등불이 되리라 확신하네. 물론, 자네도 그렇고.”
“검제는 몰라도, 저는 진짭니다.”
“기대하겠네. 껄껄껄!”
“많이 기대하셔도 될 겁니다.”
장문인과 장로들이 비무를 관전하기 위해 마련된 상석으로 간 후에도 현천도장은 남아 있었다.
“무례에 대한 대가를 잊지는 않았겠지.”
“오른팔을 거셨으니, 당연히 잊지 못하지요.”
“잘난 체하는 것도 오늘로써 끝이다.”
“십초를 버틸 수 있을 거라 보십니까?”
“십초든, 백초든 내 제자를 얕보지 마라!”
무진과 현천도장의 내기에 옆에 있던 현소도장은 놀란 감정을 추스르지 못했다. 설마 오른팔을 내기에 걸었을 줄이야. 그나마 십초로 대결의 범위를 한정했기에 망정이지, 심각한 사태가 벌어질 뻔했다.
“강 대협, 현명한 선택이 아닙니다. 비무는 비무일 뿐, 피를 볼 필요는 없습니다.”
“사제는 빠지시게, 이건 이놈과 나의 일일세!”
“사형, 너무 감정적으로 나가면 안 됩니다. 자칫 사태를 돌이키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사제는 안 당해 봐서 모르네.”
현천도장이 완고하게 선을 긋자, 현소도장은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워낙 단호한 데다가 기세가 날카로웠다.
‘대체 뭔 일이 있었던 거지?’
얼마나 빡치게 했으면 사형이 사태를 이 지경으로 키웠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천운권이라서 이해가 되는 묘한 구도였다. 장문 사형과 검제를 대하는 것만 봐도 짐작은 가고도 남았다.
둥둥둥둥!
무진과 현천도장의 대치는 비무를 알리는 북소리에 의해 깨졌다. 철호와 서문호가 번갈아 가면서 상대를 하기로 되어 있었다. 출전 명부는 따로 적지 않았다. 무당파의 도적에 올라 있는 장로가 아닌 제자들은 전부 출전할 수 있었다.
‘자네의 뜻대로 하기는 했는데, 사제 말대로 너무 심하지 않나!’
‘잘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염려하지 않아도 됩니다.’
‘만약,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면 내 모든 힘을 다해서 끝장을 보겠네.’
‘저 처제들한테 매형입니다.’
‘시끄럽네.’
현천도장은 얼토당토않은 변명에 혀를 찼다.
따지고 보면 매형보다 사부가 훨씬 애틋해야 했다. 군사부일체로서 사부는 부모와 같으니.
무진과 현천도장은 전음을 주고받은 후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대결을 알리는 육성에 자소궁의 기운이 바뀌었다. 승패를 논하는 비무가 아닌 무당파의 자존심과 명예가 걸려 있었다.
-비무에 앞서서 승부욕이 지나쳐 삿된 기운에 매몰되지 않도록 태극도진을 개방하겠습니다.
자소궁을 중심으로 설치된 도관은 태극의 형태를 띠는데, 태극의 도를 추구하기 위한 거대한 진법이었다. 외부의 침입을 막는 데 일조하나, 실제 목적은 정신에 깃든 삿된 기운을 씻어 내기 위한 장치였다.
태극도진은 사람에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았다. 오히려 청정도심을 유지하게 해 주어 그릇된 판단을 하지 않도록 도와주었다. 또한, 선천진기나 도술을 수행하기에 적합했다.
장점만 놓고 보면 펼쳐 놓은 형태로 두는 편이 낫겠지만, 음양의 균형을 추구하는 태극도진도 자연의 흐름을 왜곡하는 진법이란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무당산의 정기를 빨아들이는 성질이 있어, 균형을 추구하는 무당파로선 선기가 부족할 때나 사용했다.
태극도진을 펼치고, 학도사들이 나와 도덕경과 태극경을 읊었다. 무당의 도인은 무도사와 학도사로 나뉘는데, 일부는 대단치는 않아도 도기를 경에 실어 운용할 수 있었다.
-비무를 시작하겠습니다.
무진은 따로 행동하진 않았다. 갖출 건 다 갖추었으니, 제자들의 성취를 보여 주기만 하면 되었다.
사부로서 제자들을 응원했다.
힘을 내도록.
“지면, 많이 서운할 거야.”
“……반드시 이기겠습니다!”
철호와 서문호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보다 강력한 응원이 또 있겠는가. 두 번 들었다가는 심장이 버티지 못하고 밖으로 뛰쳐나왔을 것이다.
후후후.
오싹!
사부님이 흡족한 미소를 짓자, 철호와 서문호는 솜털이 곤두섰다. 무당파에 오고 난 후 잠시 마음을 놓고 있었다. 딱히 할 일도 없었으니 나태했음을 받아들여야 했다.
“너무 긴장할 필요 없어. 그래 봤자 현자배가 나오는 것도 아니잖아.”
“……그렇지요.”
무진은 작게 말했으나, 도인들은 귀가 밝았다. 무공을 익힌 데다 관심을 받고 있으니 당연히 들렸을 것이다.
그 순간 도사들의 기운이 격변했다.
부르르르!
분노하고 있음이다.
현자배는 장문인과 장로들의 배분이었다. 그들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소리로 들렸다. 도사이기 이전에 무당의 무공을 전수받은 무인이었다. 이런 말을 듣고 화가 나지 않는다면 무인으로서 자격이 없었다.
허허!
상석에 앉은 현심진인은 무진의 언행에 또 한 번 놀랐다. 자신을 동네의 노인네처럼 대하는 무인도 처음이지만, 말 한마디로 분위기를 바꾸었다.
‘화를 부르는 자로구나.’
현심은 들끓는 제자들의 모습에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한동안 문파가 정체되었다는 생각을 했다. 청현의 안타까운 일도 그런 나태함이 불러왔다고 보았다. 도인이 아닌 무인으로서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허!
파아앙!
검이 부딪친 후, 비무대 밖으로 나가떨어진 도인이 있었다. 이대제자 중 수위에 꼽히는 적양이었다. 단 일검에 검이 반 토막이 나고, 내상을 입었는지 비틀거렸다.
유운검의 유운일선이 채 나아가기도 전에 막히더니 검력을 견디지 못하고 튕겨 나갔다. 내부로 파고들어 온 검력을 흩어 내지 못했기에 당분간 정양이 필요한 상처를 입었다.
“……졌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적양의 패배로 분위기가 재차 일변했다. 이대제자 중 누구도 적양을 단 일검으로 저처럼 깔끔하게 쓰러뜨릴 순 없었다. 최소한 일대제자가 나서야 했지만, 이대제자 중 가장 강한 적인이 나섰다.
“적인입니다. 대결을 청해도 되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적인은 적양의 패배를 받아들였지만, 방심한 면도 있다고 보았다. 처음부터 강한 힘으로 밀어붙일 줄 미처 예상하지 못했으니. 일검을 대응한다면 반격의 기회가 생길 것이다.
“갑니다.”
“오세요.”
적인의 강점은 안법으로, 눈이 다른 이들보다 원래 좋았다. 검의 궤적을 읽어 내는 데 누구보다 뛰어났다. 장로님들의 검도 어느 정도는 보였다.
쇄액!
서문호는 선수를 양보하지 않았다. 대결이 시작되자 적양을 쓰러뜨렸을 때처럼 쇄도했다.
‘보인다.’
적인은 내심 쾌재를 불렀지만, 내색하지 않고 서문호를 끌어들였다. 이쯤에서 구궁보를 밟으며 회피한다면 왼편에서 사각을 점할 수 있었다. 돌아서는 순간을 노려야 한다. 다음을 기약하기에는 서문호의 내력이 범상치 않았다.
스왁!
휘릭!
베기 전에 구궁보를 밟은 후 우상단에서 좌하단으로 검을 내리쳤다. 이대로 끝이거나 승기를 잡았다고 여겼던 적인의 동공이 하염없이 떨렸다.
서문호의 검이 눈앞에 있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눈이 너무 좋군요.”
싱겁게 끝난 승부였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나 의아해하지만, 장문인과 장로들은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방금 고단위의 공수가 이어졌고, 적인은 서문호의 수에 걸려들고 말았다.
“허허, 그 짧은 순간에 적인의 약점을 찌르다니 통찰력이 대단하군.”
“그보다는 마치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군요.”
“어쩌면 전설의 용안일지도.”
“서문세가라면 가능할 수도 있겠군요.”
서문세가의 전설을 거론하자 장문인과 장로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설령 전설의 용안이 아니더라도, 서문호의 검은 완벽에 가까웠다.
이대제자로는 서문호를 막기 어렵다는 걸 인정해야 했다. 하나, 비무의 목적은 단순히 승패로 나누진 않았다. 실력을 겨루어 역량을 발전시키는 계기로 삼아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때, 현천도장이 일어섰다.
“이대제자는 전부 나서라.”
“……그런!”
대결의 의도를 벗어난 파격적인 발언이었다. 실력을 나누는 자리가 아닌, 반드시 이기겠다는 사심을 드러냈다. 비록 일검에 끝이 나긴 했어도, 이대제자 전부와 동시에 겨루게 된다면 심력과 내외력의 손실은 당연지사였다. 그렇다고 비무에서 살수를 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사제, 진정하시게.”
“무당의 자존심을 지켜야 합니다.”
현천도장의 완고한 의지에 장문인도 혀를 찼다. 장로들도 한마디씩 거들려다 말을 아꼈다. 승패에 연연하지 말라고 할 수도 있으나, 딱히 틀린 말을 하진 않았다. 서문호의 나이는 이대제자들과 비슷했다. 일대제자가 나서는 것만으로도 무당의 체면이 상하는 일이었다.
‘허허, 이를 어찌하나.’
현천도장을 만류하기에는 이미 제자들에게 기름을 부은 격이 되었다. 여기서 말을 돌린다면 현천도장의 체면을 깎는 일이 되었다.
-일원이기삼재사상오행칠성구궁.
태극도진과 학도사들의 도덕경과 태극경에 의해서 격렬한 분노는 가라앉힐 수 있었다. 계속 듣다 보니 심신에 상서로운 선기가 쌓이는 느낌이었다.
‘학도사를 부르길 잘했군.’
현심진인은 잠깐 의아한 느낌을 받았다. 저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간혹, 독선적인 면모를 보이기는 해도 오늘은 도가 지나친 면이 없지 않아 있었다. 이쯤에서 말려야 하는지 고민이 되었다.
‘장문인, 현천 사형이 천운권과 내기를 했습니다.’
‘내기라니, 그건 또 무슨 말인가?’
‘팔을 걸었습니다.’
‘이런, 이런! 일을 크게 벌이는군.’
‘사형으로선 돌이킬 수도 없는 듯합니다.’
장문인은 현소 사제의 전음에 침음했다. 물리기에는 사태가 너무 커졌다. 검수가 팔을 걸다니, 천운권과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불구대천의 원수가 아니고서야.
현심진인은 일단 지켜보기로 했다. 말린다고 될 일도 아니고. 당장 중지시키기에는 명분이 부족했다. 차후, 어떤 식으로 끝이 나든, 중재하는 편이 낫다고 봤다.
비무는 휴식을 두지 않고 계속되었다.
이대제자가 전부 나서진 않더라도, 상위에 속하는 제자들이 연거푸 도전했다. 그러고 나서야 청자배가 비무대에 올라섰다.
“청허일세.”
마주한 철호는 포권을 취했다.
청자배부터는 철호가 나섰다. 서문호의 일방적인 승리가 이어졌지만, 내력의 손실이 적지 않았다. 더 하라고 하면 할 수 있으나, 굳이 그럴 필요는 없었다. 적당한 내력 손실이라면, 짧은 운기행공으로도 원래대로 돌릴 수가 있었다.
두둥!
철호는 기세를 숨기지 않았다. 철혈사자공의 사납고 패도적인 기운이 비무대의 중심에서 퍼져 전체를 뒤흔들었다. 철로 만들어진 사자의 형상이 이럴까? 굶주려 있는 한 마리의 고독한 맹수를 보는 기분이다.
혼자겠지?
암암, 그렇고말고.
독수공방의 도인들은 동질감도 느꼈다.
진실은 둘에서 셋이거늘.
배신감은 후일로 미루었다. 어쨌든 지금은 혼자라는 사실이 중요했다.
우웅!
청허도 물러서지 않고 태청신공을 끌어 올렸다. 기세에 밀리면 끝장이란 사실을 염두에 두었다. 하나, 끝을 모르고 상승하는 기세에 점차 질려 갔다.
‘뭔 놈의 기세가!’
사납고, 포악하며, 강력했다. 원래 이처럼 강인한 기세를 발산하면 빈틈도 상대적으로 크게 부각되거늘. 철벽을 마주한 것 같았다.
청허는 내심 먼저 올라와야 했던 현실이 안타까웠다. 상대의 무공이 일반적이지 않았다. 의념을 기에 실어 압박하는 무형지기를 발산할 수 있었다.
“갑니다.”
“오시오.”
청허는 처음부터 전력을 끄집어내야 했다. 육성의 태청신공과 함께 가장 자신 있는 무당면장을 뻗었다. 검에 투자한 다른 사형제와 달리 그는 면장만을 줄곧 수련했다. 면장이라면 일격을 버티고, 내부에 타격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수장이 허공에 부드럽게 원을 그린다. 무당의 근원인 태극을 이루었다.
꽈아아아앙!
쩌저저적!
무당의 면장은 부드럽지만, 면면부절하여 장력과 장력의 중첩을 통해 파괴력을 극대화했다. 그 위력은 능히 암반을 가루로 흩어 낼 수 있었다.
하나, 철호의 주먹은 산을 부수었다.
붕산경이었다.
쿠다다당!
내지른 즉시 청허는 비무대 밖으로 떨어져 나가 바닥을 굴러야 했다. 낙법을 시전하여 착지하기에는 충격이 워낙 강했다.
허어!
여러 곳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청자배가 나섰으니 조금은 대결의 양상이 달라지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기대했거늘. 무당의 면장이 말 그대로 종잇장이 되어 찢겼다. 조각조각으로 휘날리는 도포 자락만큼이나 허망한 결과물이었다.
“……졌구나.”
사방을 충격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것치고, 청허의 상태는 멀쩡했다. 그래서 더 놀랄 수밖에 없는 현실이었다. 청허는 철호가 손속에 사정을 뒀다는 걸 알았다.
‘아예 상대가 되지도 않았구나.’
권압과 권기의 합작품이었다. 면장이 부딪치기도 전에 권압에 휩쓸렸고, 권기에 박살이 났다. 만약 그대로 내질렀다면 온전히 일어서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적자배의 사제들도 크게 다치진 않았다. 정양이 필요하기도 하나, 비무를 관전하는 데는 문제없었다.
‘하아, 오늘이 순탄치 않겠구나.’
굳어 있는 장로님들의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천운권의 제자는 자신이 감히 따르지 못할 경지에 도달했다. 현천 장로님이 전부 달려들라고 한 연유를 깨달았다.
‘기력을 빼 놓을 심산이구나.’
가랑잎에 옷이 젖듯 천운권의 제자도 청자배를 상대하면서 여력을 남기기는 어려울 것이다. 설령 돌아가면서 내력을 조절하더라도, 끝에 가서는 지칠 수밖에 없다.
까딱, 까딱!
청허는 천운권은 어떨까, 무심결에 돌아보다 혀를 찼다. 의자에 앉아서 한껏 거드름을 피우고 있었다.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 한결같은 모습이라 일관성 하나는 태극에 도달했다.
청허 이후로 청자배의 도전은 신중해졌다. 어떻게든 물고 늘어져서 내외력의 소모를 끌어내려고 했다. 강호의 소문을 전부 믿을 순 없으나, 천운권과 제자들은 그 이상이었다.
철호와 서문호도 일방적인 승리가 계속되었지만, 절대 방심하지 않았다. 내력과 외력의 소모를 최소화하며, 최상의 상태를 유지하는 데 힘을 썼다.
그렇게 대결의 추가 기울어 가는 중, 무당의 누군가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청자배가 나섰음에도 승패가 명확하지 않았기에 잘만 이용하면 무당파와 천운권을 불구대천의 원수로 만들 수도 있었다.
‘안 나서길 잘했군.’
반응을 보였다면 천운권의 계략에 넘어갔을 수도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 오히려 질러 놓은 꼴이 되어 물러설 수 없게 했다. 무인의 자존심을 건드린 이상, 끝장을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