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King RAW novel - Chapter 466
465 치료(1)
무당파는 당분간 방문객을 받지 않기로 했다. 내부 사정이라고 산문으로 오르는 길과 여러 곳에 적어 놓았다. 사정을 모르는 방문객도 있으나, 산문에 이대제자를 배치했다.
적어도 이대제자는 되어야 사정을 설명해도 알아들을 수 있었다. 신분이 높거나, 명성 높은 무인을 설득하려면 무당도 예의를 갖추어야 했다. 어찌 되었든 갑자기 방문객을 받지 않겠다고 한 것은 무당파였으니 합당한 설명이 있어야 한다.
무당파에는 벽력탄이 떨어진 듯 참혹하고 무거운 공기가 감돌았다.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동문 사형제와 웃고 떠들었지만, 침묵이 흘렀다.
동문수학했던 사형제가 죽이려고 날뛰었으니 신뢰에 빈틈이 생겼다. 믿음이 클수록 배신감도 크기 마련이다. 신뢰는 당장 해결이 되진 않는다. 시간이 약이기에 세월이 흘러야 했다.
어수선한 분위기를 대강 정리 후 자소궁에 장문인과 장로들이 자리했다. 침통한 분위기였다. 장로 중에도 배신자가 있었으니, 충격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하나, 그들은 무당을 대표하는 장문인과 장로들이었다. 제자들처럼 충격에 젖어 현 사태를 외면하고 있을 순 없었다.
“다들 충격이 크겠지만, 어제의 일이 외부로 알려지면 절대로 안 되네.”
“입단속을 해 놨으니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장문인과 장로들은 어제가 하룻밤의 잔혹한 꿈 같았다. 무당의 한복판에서 독버섯이 자라고 있는데도 모르고 있었다. 수십 년을 함께 생활했던 사형제가 간자였다니 믿어지지 않았다.
고된 훈련을 받고, 사부에게 혼이 나고, 같이 몰래 술을 마시기도 하고, 악인을 제압하여 협행을 떨쳤었다. 그 모든 기억과 추억이 엉망진창이 되어 현실을 괴롭게 했다.
“참회동을 철저하게 감시하게.”
“수시로 확인하고 있습니다.”
죽은 자를 제외한 사로잡은 이들은 내공을 폐하여 참회동에 가두었다. 언제부터 무당에 숨어서 활동했는지 알아봐야 했다. 하지만 여의치가 않았다. 확인하려는 순간, 금제가 발동해 머리가 터져 버렸다. 어떤 식으로 금제가 나타나는지 알기 어렵기에 제압만 해 놓은 상태였다.
“이 모든 일이 다 내가 부족한 탓이겠지.”
“장문인의 탓이 아닙니다. 누군들 알았겠습니까. 이제부터라도 해결해 나가면 됩니다.”
희망을 거론하지만, 갈 길이 막막했다. 평온할 때와는 달리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심신을 추슬러야 했다. 자괴감에 젖어 현실을 외면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간 우리가 너무 무심했던 것 같구나.”
“그렇습니다. 마신교가 이리 무서운 세력인 줄 모르고 있었습니다. 아니, 알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마신교가 대륙에 행한 사건들이 가볍지 않았다. 적지 않은 피해가 있었지만, 별달리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저 스쳐 지나가는 일로 치부했다. 하나, 피해의 당사자가 되어 보니 사태의 심각성이 달라졌다.
무당파는 무공을 익히지만, 또한 도인을 기르는 도가의 문파였다. 도인이라면 세상의 불의에 자기 일처럼 관심을 가지고 베풀어야 했다. 본분을 잊고 살아갔으니 오늘과 같은 뼈아픈 사태를 불러온 것이다.
“다행히 검제께서 본파를 위해 노력하셨네. 남궁 대협의 뜻을 잊지 말아야 하네.”
“우리는 남궁 대협을 지지해야 합니다. 그것이 저 사특한 무리를 처단할 길입니다.”
천운권을 보내 발본색원을 했지만, 그 방법이 지나치게 가혹했다. 그러나 협의를 위해선 피치 못할 선택이었다. 드러나지 않았던 암중 세력의 실체를 확인하고, 대처한 검제를 지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의도했든 아니든, 이제 무당파는 검제를 전폭적으로 지원하게 되었다. 그것이 마신교에 제자를 잃은 원한을 갚을 유일한 방법이기도 했다.
“사조님의 상태를 확인해 봤나?”
“강시화가 진행 중인 것은 맞습니다만, 태의각의 의술로는 회복이 어렵습니다.”
신의의 솜씨를 가진 의원이나 강시술을 익힌 강시법사가 아니고선 철양진인의 치료 자체가 불가능했다. 당장 어디부터 손을 써야 할지조차 파악이 되지 않았다.
이대로 두고 볼 수도 없는 형편이었다. 제압해 놓기는 했지만, 철양진인은 점점 죽어 가고 있었다. 반대로 말하면 강시화가 진행 중이라는 뜻이다. 손을 쓸 수 없다면 강시가 되기 전에 화장해야 했다.
“방법이 없지는 않네.”
“사조님을 구할 수 있다는 겁니까? 한가로이 이럴 때가 아니라 당장 움직여야지요!”
현심 장문인은 숨을 고른 후 무진에게 들은 대로 전했다. 그러자 서두르려고 했던 장로들은 자리에 도로 앉고 말았다.
선뜻 믿기도 어려웠고, 요구 사항이 지나쳤다. 자소단 열 개에 태청단 열 개가 기본이라니! 이건 무당파가 가지고 있는 영약 전부를 달라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과한 요구임이 분명하나, 선뜻 단호하게 거절하지 못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철양진인의 안위가 달려 있었다. 방법이 없어서 살리지 못했다면 이해라도 하지, 있는데도 영약이 아까워서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면 도사로서 실격이었다.
하아!
모두가 동시에 한숨을 쉬었다. 청정을 흔드는 마귀의 유혹이 이럴까? 도인으로서 시험을 받았다. 그리고 결론은 정해져 있었다. 철양진인을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현천 사제, 그를 데리고 오게.”
“크흠, 알겠습니다.”
장문인의 허락에 현천도장은 연신 도호를 외웠다. 자소단과 태청단은 무당의 보물이자 미래였다. 제자들의 공력을 올려 줄 영약을 확실하지도 않은 일에 소모해야 했다. 당연히 고민이 되었으나, 하지 않을 수도 없는 현실이다.
‘정말 대단한 녀석이군.’
현천도장은 순수하게 감탄했다. 본인에게 유리하게 사태를 이끌어 가는 권모술수가 실로 놀라웠다. 세간에서 천하망종으로 불리는 연유를 알 것도 같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미리 먹을…… 크흠.’
원시천존이시여, 잊으십시오.
어수선한 무당파와 달리 무진은 귀빈을 맞는 접객당에서 한가로운 시간을 보냈다. 종종 무당의 제자들이 찾지만, 매우 조심스러웠었다.
어제의 진위는 자세히 알 수는 없으나, 무진이 오고 나서 사건이 터졌다. 세간의 소문대로 악운을 몰고 다녔기에 눈이라도 마주치면 화들짝 놀라기 일쑤였다.
개방의 균현 분타에서 육칠이 돌아왔다. 개방의 활약상이 널리 알려지면서 개방도 지망생이 늘었다나. 지부와 분타가 늘어서 걱정이라니 망조가 들었다. 거지는 어느 세상에나 있지만, 많을수록 나라가 망국에 접어들었다고 볼 수 있었다.
“수상한 움직임은 없고?”
“강 대협의 방문은 예정된 일정이 아니었습니다. 저들은 지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도 모를 겁니다.”
“소식이 끊긴 이후엔 다르겠지.”
“무당파의 장문인께서도 이제는 알고 있을 겁니다.”
오늘부로 무당파에 소속된 도인은 모두 깨끗하다고 봐야 했다. 그러나 산문 밖으로 나간 도인과 속가제자들은 속단하기 어렵다. 그들이 무당파에서 일어난 일을 알아내려고 할 것이다.
“역으로 추적하긴 쉽지 않을 거야. 내가 왔는데도 별다른 움직임이 없는 걸 보면 이 방법도 이젠 끝났다고 봐야겠지.”
“바꿔 말하면 당분간은 홀가분하게 행동하실 수 있을 겁니다.”
검제를 방패막이로 세웠지만, 더는 통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무당파의 일이 외부로 알려지는 시기를 최대한 늦추어야 했다. 사실 확인이 되는 즉시 저들은 무림맹 지하 감옥에 갇힌 단사와 팽도광을 죽이려고 할 테니까.
살인멸구를 대비해 놓고 있을 필요가 있긴 한데, 간단하진 않았다. 무당파에서도 배신자가 발에 채는 이상, 대륙정파무림총연맹인 무림맹이라면 얼마나 많은 간자가 암약하고 있겠는가.
그들 전부를 확인하고, 검증하기란 불가능했다. 하물며 무인들은 자존심덩어리들이다. 너 간자지? 하는 순간 칼부림은 애교였다.
일전, 청현의 배신을 실제로 겪었던 무당파의 도인들만 봐도 감이 올 것이다. 내막을 알고 있을 텐데도, 무당을 변화시키지 못했다.
‘살려줘서 고맙다고 할 때는 언제고.’
-이대제자 두 명이서 뭘 어떻게 하겠어.
친히 깨달음을 내렸음에도, 그들은 눈에 띄지도 않았다. 물어보니 현소도장이 무림맹으로 내보냈단다. 죽이면 의심받을 테고, 명분을 만든 것이다.
“산호가 병부상서의 아들을 두들겨 팼답니다.”
“호오, 그 자식도 사내였군. 그래서 병부상서가 뭐래?”
“대놓고 손을 쓰진 않을 겁니다. 병부상서의 자제는 무공을 익힌 금의위의 영반이니까요.”
“한림학사에게 처맞으면 쪽팔려서라도 나대기는 힘들지. 금의위에서도 눈칫밥 먹겠군.”
“암중으론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태진이가 있잖아. 그 정도도 헤쳐 나가지 못하면 내 아들도 아니지.”
아들을 믿고 신뢰한다는 무진의 확고함에 육칠은 입맛이 썼다. 태진이의 명복을 조심스럽게 빌어 주었다.
“병부상서가 마신교와 한패인지 확인해 봐.”
“그러실 줄 알고, 지시해 놓았습니다.”
마신교만 아니면 아들 혼자서도 얼마든지 처리할 수 있었다. 어쨌든 학사로서 금의위를 때려눕혔으니, 황제의 관심을 끄는 데는 성공했다.
막 얘기를 끝냈을 때 현천도장이 찾아왔다. 고민의 흔적이 역력하나, 찾아온 이상 답은 정해져 있었다.
“장문인께서 찾으시네.”
“결심이 선 모양입니다.”
“사람을 시험하지 말게.”
“그럼 당장 집으로 가도 되는 겁니까?”
“……내가 실언을 했군.”
현천도장은 말로써는 무진을 이길 수 없음을 인정했다. 보통은 고민이라도 할 텐데, 이 인간은 어떻게 된 게 상대의 체면을 고려하지 않았다. 자기 내키는 대로 행동하며 거리끼지 않는 성격이었다. 한편으로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움이 부럽기도 했다.
“제자들이 없을 때를 찾은 연유가 있었군.”
“당연하지요. 그래도 처제들인데 위험하게 할 순 없잖아요. 혹시라도 잘못되면 아내한테 미안하기도 하고요.”
“너무 솔직해서 할 말이 없군.”
“굳이 속일 필요가 있겠습니까. 팔은 안으로 굽기 마련인데.”
처제들만 안전하면 그만이라는 무진의 무책임에도 현천도장은 반박하지 못했다. 따지고 보면 그 아이들이 있었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도 없다. 그저 자신의 가족만 챙기는 모습이 좋게 보이지 않을 뿐이다.
“밖에 내보낸 도인과 속가제자들도 확인하세요.”
“조만간 불러들일 예정일세.”
“되도록 빨리 부르는 편이 나을 겁니다. 정보가 새 나가면 아무 소용이 없으니까요. 아닌 척 역으로 이용하면 혼란만 부추길 겁니다.”
“알고 있네.”
현천도장을 따라 장문인의 거처로 향했다.
가는 길에 도사들이 현천도장에게 인사를 하다, 무진을 보고 놀라서 눈을 깔았다. 어제의 충격적인 잔상이 남아 있었다. 특히 천운권과 제자들은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았었다.
무진은 일상의 통과의례로 치부했다. 무인이라면 반드시 거치는 과정이었다. 도인이라고 해서 깨끗한 물에서만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니.
“치료할 수는 있는 건가?”
“확답은 안 합니다.”
“그러면서 자소단과 태청단을 요구했다고?”
“뭐, 잘못됐습니까?”
“본파에도 몇 개 없는 영약일세.”
“시도조차 하기 싫으면 이쯤에서 멈추면 됩니다. 강요는 안 합니다.”
“하지 않을 수도 없지 않나.”
“철양진인께서 어떤 분인지는 겪어 보지 않아서 모르지만, 자신을 위해서 영약을 쓰길 바라진 않으실 테지요.”
현천도장은 말렸음을 깨달았다. 분명 조사께서는 자신을 위해서 영약을 낭비하지 말라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제자 된 도리로 어찌 모른 척할 수 있단 말인가. 천운권은 그러한 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정말 때리고 싶구나!’
도인으로서 이러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진정이 되지 않았다. 자고로 협객이라면 곤란에 처한 사람을 외면해서도, 이용해서도 안 되었다.
하나, 입으로만 대협과 협객을 거론할 뿐 천운권은 천하의 망종으로 소문이 자자했다. 왜 그러냐는 말 따윈 통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