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King RAW novel - Chapter 505
504 전력 강화(3)
-황제가 네 속내를 알면 절대 가만있지 않을 거다.
‘아니, 가만있으실 거야.’
-황제를 패면 후폭풍이 장난 아닐 텐데.
‘몰래 하면 돼.’
-아주 그냥 지멋대로 하는군.
무진은 황제가 마냥 맹탕은 아니라는 걸 확인했다. 방금까지만 해도 공주의 앙탈을 받아 주려고 했지만, 황실을 위해 과감히 결단을 내렸다.
‘그릇이 다르긴 달라.’
-차라리 욕을 하지 그러냐.
‘난 못 하잖아. 나도 인정할 땐 인정한다.’
-그게 무슨 인정이야!
기실 황제로선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무진이 황궁을 떠나는 순간, 황실은 밀천의 보호를 받게 된다. 지금이야 정보를 차단해서 내막을 알기 어렵지만, 후일을 장담하기는 어려웠다. 그러니 황제로선 무진의 가혹한 처사를 마냥 탓할 수 없었다.
“천란의 자질은 확실한가?”
“그럼요, 최강의 광년이 되기에 충분합니다.”
“……?”
“비슷한 녀석도 있으니, 불알친구가 될 겁니다.”
“……?”
이놈을 능지처참할 수 있을까?
황제는 그런 생각을 하다가 각고의 인내심을 발휘했다. 정상적인 대화는 애초에 통하지 않는 위인이었다. 상식을 기대할수록 황제로서의 자괴감이 밀려왔다.
“폐하께서 모르셔서 그렇지, 전장에서는 미친 연놈들이 최곱니다. 딱 봐도 학살에 재능이 있습니다. 한데, 이게 좀 너무 유순해서 비슷한 효과를 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광년은 원래 시련을 통해서 강해지거든요.”
“그건 또 무슨 말이지?”
“혈육이 눈앞에서 처참하게 죽으면 복수에 눈이 멀 수밖에 없습니다. 아주 기본적인 학습 효과입지요. 그때 나타나 복수할 힘을 준다고 하면 얼씨구나 하지 않겠습니까. 크크크!”
능지처참하고 싶구나!
부골참시하겠다!
황제는 정신 건강을 위해서라도, 무진을 하루속히 황궁에서 내보내야겠다고 다짐했다. 함께한다면 육체적으로 든든할진 몰라도, 정신은 피폐해지기 딱 좋은 인간 군상이었다.
강호의 야인들은 다들 이런가? 그렇다면 무림을 없애 버리는 편이 나을지도.
황제는 속내를 감추고 현실을 바라보았다. 당장 해결해야 할 사안들이 산적해 있었다.
“마신교라고 했지.”
“그렇습니다.”
“그들이 황궁을 전복할 수 있다고 보는 건가?”
“황궁도 놈들에게는 대계의 일부에 불과합니다.”
황제는 고민이 깊어졌다. 황실조차도 세워진 계획의 하나라면, 더 큰 무엇을 노리고 있다는 의민데. 이제까지의 정황상 마신교는 그럴 만한 힘과 세력을 갖추었다. 무림의 세력으로 폄하하기에는 매우 위험한 사교였다.
“대병을 일으킨다면 어떻겠는가?”
“전멸할 겁니다.”
“날고뛰는 무인도 인간일세.”
“그 날고뛰는 무인이 정면 대결을 고집할 이윤 없지요. 무엇보다 어디 있는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거병하는 즉시 눈치를 채고 머리부터 노릴 겁니다.”
황제는 무림의 전술을 비겁하다고 욕하진 않았다. 전쟁에서 전략, 전술을 기반으로 한 위계와 암습은 기본이었다. 정정당당하게 패배할 바에는, 비겁하게라도 이겨야 했다. 그것이 개인이 아닌 국가 간의 전쟁일 때는 더더욱 그렇다.
“믿을 사람도 없고, 쉽지 않겠군.”
“미몽에서 너무 오랫동안 헤매셨습니다. 그렇다고 자괴감을 가질 필욘 없습니다. 당시에는 안다고 해도 속수무책이었을 테니까요.”
주둥이로 황제의 뒷골을 후드려 패는 무진이었다. 황제는 얼얼했지만, 일단 참았다.
“태의조차 알아내지 못했지. 그대의 수완이 참 좋군.”
“제 겁니다.”
염 노를 노리다니, 안 되지.
무진은 가족의 무병장수를 위해서라도 염 노가 필요했다. 또한, 염 노 이후까지도 대비를 해 놓고 있었다. 재능 있는 녀석들이 있기에 제자로 받아들일 예정이었다. 아마 지금쯤 염 노의 눈에 들어왔을 것이다.
“제국의 안정이 우선이다.”
“그런가요?”
“양보할 마음이 없나 보군.”
“다 자기 복입니다.”
황제의 권유에도 무진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인생을 살면서 느끼는 것은 철판이었다. 괜히 동정심과 이타심에 양보하다 보면 사람들의 반응은 대동소이했다. 자기 몫과 가족을 챙기지 않는 것은 무책임한 짓이었다.
물론, 피해를 주어선 안 된다. 최대한 세상을 구하는 쪽에 무게를 두기는 해야 했다.
-꼴에 양심은 있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냐?
‘없는 것보단 낫겠지.’
-그래 봤자 서푼의 양심이지.
‘그 서푼의 양심도 없는 놈들이 태반이야.’
무진은 대륙의 안위보다 가족이 중요했다. 그렇다고 해서 대륙의 모든 사람이 죽기를 바라진 않는다. 그들의 평화를 위해서 최소한 노력은 할 수 있었다. 여력이 되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기는 해도.
무진은 알고 있었다. 자신의 그릇이 영웅이 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그러나 딱히 대의를 위해 목숨 거는 영웅이 되기를 바라지도 않았다.
“최대한 협조하겠네.”
“이거 참, 생각지도 못한 대접인데요.”
“황족을 능멸한 대가를 받고 싶은 건가?”
“그럴 분은 아니시니 안심했습니다.”
보기보다 황제가 융통성이 있기는 했다. 사실 이처럼 스스럼없이 대화를 하는 것부터가 여타의 황제와 다른 점이었다. 그는 고지식한 부분이 있기는 해도, 사고는 열려 있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현명한 판단을 내리기 위해서 노력했다.
‘광마향에 중독되고도 버틴 연유가 있구나.’
-광마향은 사람의 가장 원초적인 악을 증폭하니까.
기본적으로 황제는 선한 자질을 갖추고 있었다. 만약, 북친왕과 같은 표리부동한 자가 황제였다면 광마향에 중독되어 완전한 마인이 되었을 것이다. 마인을 황제로 둔다면 세상이 어찌 되었을지, 참.
‘그놈, 말년이 편치는 않았지.’
-네가 선사하지 않았나.
무진은 황제의 태도 변화에 최선의 방안을 함께 모색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이 모든 계획의 일환은 용무길과 황보세령에게서 나왔다.
밀천의 훈련장.
태진 일동과 사대천주의 대결은 날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었다. 이전과 달리 태진 일동도 경시할 수 없는 상대였다. 팽팽함을 유지하기가 어려워졌다. 그만큼 사대천주가 악에 받쳐서 달려들고 있기 때문이다.
꽈아아앙!
태진 일동은 충격을 받고 휘청거리며 거리를 벌려야 했다. 사대천주의 중구난방식의 공격이 통했기 때문이다.
“이번 공격, 막무가내는 아니었군요.”
“속여서 미안하다고 해 줄까?”
“아니요, 잘하셨습니다.”
“다음에는 통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싶은 모양이군. 하지만 절대경이 되지 않고서는 어림도 없네.”
사대천주는 절대고수로서 자각하고 있었다. 틀을 깨고 나니, 경지의 차이는 미묘해도 실제 무위는 전과는 아예 다른 수준이 되었다.
‘빌어먹게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군.’
‘우리를 단번에 꿰뚫어 봤다는 거지.’
‘대체 얼마나 강한 걸까?’
‘절대경이라고 해서 다 같은 수준이 아니었어.’
사대천주는 태진 일동도 경시하지 않았다. 확실히 대단한 실력이었다. 자신들이 틀을 깨는 동안, 태진 일동은 경지를 넘어서고 있었다. 아직은 완벽하지 않지만, 벽을 넘기는 넘었다.
하루가 다르게 강해진다고 해야 하나?
‘이런 녀석들을 어떻게 모은 거지?’
사대천주의 의문이었다. 하나같이 자질이 범상치 않았다. 천재라는 잣대로도 재기 어려운 재능을 타고났다. 이런 놈들을 하나도 아니고 넷씩이나 모았다. 그중 하나는 자기가 낳았으니 논외로 치더라도.
‘안목도 남다르다는 건가?’
어떻게 보면 사대천주의 오해였을 수도 있었다. 천부적인 자질이 있는 건 맞지만, 단순히 재능만으로 경지에 올라섰다고 본다면 명백한 오해였다.
태진 일동과 사대천주의 생사투가 끝이 났다.
염산호가 휴식을 취하고 있는 강예와 기희선에게 걸어갔다. 사투가 끝난 직후라, 피곤함이 얼굴에 묻어 있었다.
“이제 공주마마 차례입니다.”
“우린 안 해도 될 거예요.”
“사부님이 아시면 불호령이 떨어질 겁니다.”
“고양이가 쥐 생각 해 주나. 됐거든.”
“후회하실 텐데요.”
“절대로 안 해.”
수호무사로서 기희선은 소심하게 공주님을 응원하고 있었다.
한쪽에서 휴식을 취하며 내외상을 다스리던 철호는 ‘저년들이 미쳤나?’ 그런 생각을 했다. 줄곧 공주가 아닌 훈련 상대로만 여겼기에 의미를 두지도 않았다. 본인들이 세상 살기가 싫다는데, 말릴 이유는 없지 않은가. 사람에겐 사는 걸 싫어할 자유 또한 있었다.
흥!
강예는 자신만만했다.
따지고 보면 이 모든 게 그 흉악한 인간의 거짓말에서 비롯되었다. 어떻게 입에 침도 안 바르고 태연히 거짓말을 할 수가 있냐고.
나 공준데!
잠깐, 공주가 아니라고 해도 사기는 나쁜 거잖아!
드륵!
문이 열렸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고 했던가.
씨익!
무진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강예를 넌지시 바라보았다. 요 깜찍한 년을 어떻게 요리해야 잘 처리했다고 소문이 날까, 고민한 흔적이 역력했다.
오싹!
북풍한설이 왔나? 강예는 오한이 들었다. 웃고 있는데도, 왠지 모르게 악의가 느껴져 꺼림칙했다.
“요즘 훈련이 많이 편했지?”
“편하긴 어디가 편해요. 아빠가 전부 알거든요.”
‘당신, 이제 끝났다.’는 강예의 겁 없는 도발이었다. 다만, 황실에서 곱게 자란 티가 역력해 세상 무서운 줄 몰랐다.
“허락 맡았어. 마구 굴리래.”
“자꾸 거짓말을 할 거예요! 황족을 능멸하면 어찌 되는지 몰라요!”
무진은 황제가 하사한 돌돌 말린 장계를 공주의 앞에 활짝 펼쳤다.
-천란의 모든 훈련을 강무진에게 일임한다.
황제의 옥새와 서명이 적혀 있었다. 내용을 읽어 내려간 강예의 안색은 북풍한설을 정통으로 맞은 사람처럼 새하얗게 탈색되었다.
덜덜덜!
핏기가 사라진 강예는 현실을 외면하고 싶어졌다. 그러나 누가 감히 황제의 옥새를 위조할 수 있단 말인가. 분명 폐하께서 내린 교지였다. 공주라고 해도 바닥에 무릎을 꿇고 황명을 받들어야 했다.
헛것이 보였나?
강예는 편하게 생각하고 싶었다.
“……이럴 순 없어요!”
“세상이 원래 그래.”
“아빠가 나를 팔았어!”
“받아들여, 그게 편해.”
황명을 내린 이상, 강예도 따라야 했다. 하나, 한 번도 아니고, 이 인간은 거짓말을 대수롭지 않게 하는 위인이었다. 두 번은 속을 수 없는데 옥새가 분명했다.
“거짓말, 이건 다 거짓말이야!”
“황명을 받들어야 착한 공주지.”
“……공주 안 해!”
“강예야, 좋은 말 할 때 이리 온.”
무진이 손가락을 까딱거리자, 강예의 동공은 수도 없이 흔들렸다. 이대로 저 인간의 수작에 걸려들면 보름간의 훈련은 고생도 아니게 된다. 절대 말려들 수 없다. 누가 혼자 잘되자고 한 것도 아니고.
동료를 찾았다.
“희선아.”
“저는 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 강 사부님.”
“……너어!”
“아무 말 안 한 건 사실이잖아요!”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라고 했었나? 여태 희선이를 어찌 대했는데, 이럴 수가 있냐고!
피로 이어지진 않았지만, 친남매 같은 사이도 갈라놓는 훈련의 혹독함이었다.
그녀라고 공주님을 배신하고 싶겠냐고!
“싫엇!”
사면초가에 처한 강예는 비무장의 문을 향해 보신경을 극한으로 시전했다.
저 문만 열고 나가면 돼!
철호가 더 빨랐다.
“사부님, 문 닫았습니다.”
무진은 제자의 발 빠른 조처에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역시 많이 굴렸더니 알아서 재깍재깍 사부의 숭고한 뜻을 받들었다. 모름지기 제자는 알아서 척척! 솔선수범하는 맛으로 키운다고 하지 않던가. 늙어서 봉양받기 위한 필수 조건이었다.
“이 나쁜!”
“어디 가니, 강예야.”
“내가 잡힐 것 같아!”
“뛰어 봤자 벼룩이지.”
어디서 그런 힘이 나왔는지 모르지만, 강예의 빛살 같은 속도에 사대천주는 제법 놀라는 눈치였다.
“황천경이 오성을 넘었어?”
“저럴 수가 있나?”
가르친 지 얼마나 됐다고, 천란 공주의 자질이 예사롭지 않음을 알고는 있었지만 사대천주조차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이런 속도라면 밀천의 숙원을 완성한 천선의 극의에 오를지도.
스륵!
헉!
멀찍이 있었던 무진이 바로 옆에 나타나자 강예는 기겁했다. 언제 어떻게 다가왔는지 전혀 못 느꼈다.
빠악, 까악!
꽈당!
무진은 미련을 두지 않고 목덜미를 손날로 가볍게 후려쳤다.
강예는 벼락에 맞은 듯 찰나 부르르! 떨더니 바닥에 고꾸라졌다. 일수에 대응은커녕 의식을 잃고 대(大)자로 엎어졌다. 골 사납게 사지를 사방으로 펼쳐 놓은 형태였다.
“그러게, 좋게 말할 때 들으라니까.”
꼭 매를 벌어.
무진은 공주의 품위를 고려하여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원래의 자리로 정성스럽게 끌고 왔다.
질질질!
이제야 훈련이 차질 없이 진행될 수 있었다. 후련해진 무진이 환하게 웃자 사대천주와 기희선은 마른침을 삼켰다.
‘안 보였다!’
‘언제 움직인 거야?’
이후의 훈련이 여의치 않게 생겼다. 원인 제공을 한 강예에 대한 시선이 순간 곱지는 않았다. 모시는 공주이며, 밀천의 후계자가 분명한데도 말이다.
‘역시 우리 사부님!’
‘아버지는 인간이 아냐!’
무진 앞에서는 만인이 평등했다. 시대상을 거부하는 진보적인 사상이었다. 하긴, 황제 앞에서 탁자에 발을 올려놓고 평과를 먹을 때부터 평등하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