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King RAW novel - Chapter 52
051 압도(2)
파팟!
남궁연화가 투기에 반응하며 선공을 펼쳤다. 그렇다고 서두르진 않았다. 성급함은 화를 불러오고, 무공의 방향을 잃게 했다. 이는 할아버지가 항상 하시던 말씀이다.
부동심(不動心).
그러나 결단은 빠르게.
생각이나 하고 있으려고 비무를 청하지는 않았다. 남궁연화에게 있어 대련은 생사의 고투였다. 가지고 있는 전력을 전부 펼쳐 보여야 했다. 오늘의 투쟁을 바탕으로 권공을 발전시켜 증명해 보이리라.
솨아아!
먹이를 발견한 매의 활강, 이어지는 벼락같은 권의 그림자.
무한보와 천뢰섬영의 결합은 완벽했다.
촤앗!
일직선으로 나아갔지만, 감지하는 순간 변화를 일으켜 굴곡이 일어났다. 무진의 대응을 읽고 속인 것이다.
툭!
휘청!
섬광이 허무하게 튕겼다. 정확히 보고,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마주하여 밀어냈다.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밀어낸 경력은 강력한 와류경을 포함했다. 권공이 극점에 이르면 어떤 타점에서도 전력을 실을 수 있다더니.
놀라웠다.
정수에 이른 무진의 권공이 약점을 찌른다.
남궁연화는 권을 회수하여 다음 수를 노렸으나, 무진은 기회를 배제했다. 사로잡은 먹잇감의 약점을 향해 권을 내리찍었다.
꽈아앙!
쩌저저적!
바닥이 움푹 파이며, 균열이 담벼락과 건물까지 흔들었다. 위험했다. 위기를 감지한 육체가 반사적으로 틀지 않았다면 바닥이 파이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반응 빠른데.”
다소 놀랍다는 무진의 칭찬이었다. 그러나 남궁연화는 등골을 타고 올라오는 소름을 맛보았다.
웃고 있지만, 싸늘했다.
타앗!
균형을 잃은 남궁연화의 하체를 쳐 냈다. 눈이 정면을 향했지만, 각법은 아래를 노렸다. 굳이 보지 않아도 되는, 완성된 권공이었다.
붕!
남궁연화의 신체가 평형을 이루며 공중으로 떠올랐다. 버팀목이 되었던 왼발의 축이 바닥을 잃어버린 것이다. 다시 찾으려면 시간이 필요했다.
사삭!
무진은 그 시간을 허용하지 않았다. 간격을 좀 더 좁혔다. 자신이 원하는 공간으로. 무방비에 가까운 남궁연화의 얼굴에 권공을 뻗었다.
파아앙, 콰다다다당!
권공에 강타당한 남궁연화는 쏘아져 나가며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그것으로 충격을 완화하지 못하고 튕기며 일어서야 했다. 호숫가에 던진 돌이 물수제비를 치듯 튀어 올랐지만, 의도하는 바와는 거리가 멀었다.
찌릿! 찌릿!
얼굴은 그나마 멀쩡했다. 하지만 두 팔이 충격을 받아 저절로 내려갔다. 다시 올리려고 애를 쓰지만 당장은 불가능했다. 번개가 강타한 것처럼 저린 팔이 무기력할 따름이다.
‘……어디서 이런 자가!’
막아 냈지만, 남궁연화는 황당했다. 다른 곳도 아니고, 여인의 얼굴이었다. 그 얼굴을 향해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권공을 내질렀다. 만약 두 팔로 막지 않았다면 섬뜩한 광경을 자아냈을 것이다.
“당신……?”
“왜 한눈을 팔지?”
악을 쓰던 남궁연화는 눈앞을 장악한 무진의 싸늘함에 마른침을 삼켰다. 저자는 여태 자신이 대적했던 자들과 궤를 달리했다. 손속에 주저함도, 망설임도 없다. 그저 상대를 쓰러뜨리기 위해 권을 뻗을 뿐이다.
그의 말대로 한눈을 팔 때가 아니었다.
퍼어억!
옆구리에 충격이 가해졌다. 주먹인 줄 알았는데, 무릎이었다. 찰나에 속임수를.
쿨럭!
충격에 몸이 낫처럼 꺾이며 방어가 무력화되었다. 그나마 천뢰기가 육체를 보호하고 있었기에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진작 끝이 났을 것이다.
슈슈슈슝!
대충 지른 권은 허공을 나아가 수많은 그림자를 양산하여 남궁연화를 덮쳤다.
해일처럼 밀어붙이는 권영.
퍼퍼퍼퍼퍽!
얼굴이든, 몸이든.
무진은 상관하지 않고 두드려 팼다. 항복이란 말이 나오지 않은 이상, 처맞을 권리가 있었다.
‘여물진 않지만, 투지는 가상해.’
-패려고 작심했군.
‘권흔을 남겨야 하나?’
-적당히 해라!
얼굴에 남겨진 자상, 그로 인해 절대고수로 각성했다면 얼굴쯤은 희생해도 괜찮잖아. 무인에게 얼굴은…… 나는 중요하지만 얘는 안 중요할 수도 있을 거고. 사람마다 취향과 성취욕은 다른 법이다.
“……항복!”
아, 망설였다!
절대고수로 만들어 줄 기회인데! 마왕 놈이 말 시키는 바람에 틀어지고 말았다. 나중을 기약해야 하나? 아니면 못 들었다고 무시해야 하나?
-그딴 고민 하지 마. 어떤 여자가 자기 얼굴에 상처 낸 놈의 말을 듣냐고!
‘흠, 그도 그러네.’
방금 전 말은 설득력 있었다. 무진은 주먹을 내렸다. 간만에 권공으로 성취를 이룬 후인을 만나 흥이 돋기는 했었다. 이게 바로 권법가들의 의리였다. 권법을 익히면 의리 빼면 시체긴 하다.
철퍼덕!
바닥에 널브러진 남궁연화를 무진은 흐뭇하게 내려다보았다. 맞는 와중에도 제법 건실하게 방어를 해 왔다. 보이는 것 이상으로 천뢰기의 완성도가 높았다. 강기공의 일종인 천뢰기를 이만큼이나 연성하려면 고련은 필수였다. 여인으로서 쉽지 않은 일이 아닐 수 없다.
남궁연화의 노력을 인정했다.
무진은 기절한 남궁연화를 곱게 두었다. 과년한 여인이 무방비이기는 하나, 자기 집이잖아.
왔던 길로 되돌아 걸었다.
-왼쪽이다.
‘알았어.’
-오른쪽으로.
‘안다고.’
-돌아 나와.
‘……젠장!’
꿈틀!
멀어졌던 의식이 돌아오자, 잠자고 있던 육체의 고통에 눈이 번쩍 뜨였다.
욱신욱신!
고통의 한계를 벗어난 새로운 고통이 남궁연화의 의식을 회복하도록 강제했다. 더는 의식을 잃지 않을, 잊지 못할 충격이었다.
휑!
위이잉!
정신이 들어 주변을 살핀 남궁연화는 울화가 치밀었다. 식어 버린 미풍에 낙엽 한 장이 애처롭게 휘날렸다.
“이 인간, 날 내팽개치고 그냥 갔어!”
비무가 끝나도 그렇지, 여자를 바닥에 놓고 사라져 버리다니, 그게 할 짓이냐고! 순간 옷을 살폈는데, 처맞은 흔적만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다른 곳을 은밀히 살폈지만, 청렴결백했다.
부글부글!
그래서 화가 치밀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싶었다. 울화가 치밀던 중 얼굴을 살피다.
까아아아악!
부어오른 얼굴, 강렬한 고통에 정신이 번쩍 뜨였다. 어찌나 아픈지 대침으로 피부를 관통해 뼈를 찌르는 느낌이었다.
하아!
남궁연화는 이 기가 찬 상황이 꿈같았다.
이게 현실일 리가 없다는 부정. 어디 가서 말을 해도 믿지 않을 일이 벌어졌다. 알아주길 바라진 않아도, 세가 내에서 권공으론 손가락 안에 꼽혔다. 그런 자신이 손 한 번 제대로 섞지 못한 채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았다.
“할아버지도 이렇게는 안 했다고!”
남궁연화는 몸에 난 흔적을 살필수록 경악을 금치 못했다.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았다면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단 일수에 저승 구경을 해야 했을 것이다. 가문에서 자신을 이렇게 간단히 제압할 수 있는 이는 할아버지가 유일했다.
“대체 얼마나 강한 거야?”
현악검을 권공으로 쓰러뜨렸다고 해서 호기심이 들었다. 초절정의 초입에 든 현악검을 제압한 실력을 보고 싶었다. 그래도 지금처럼 일방적인 결과일 줄은 미처 예상 못 했다.
‘어쩌면 할아버지와…….’
말이 안 된다.
할아버지는 남궁세가의 전대 가주이며, 신주이십일강에서도 수위에 드는 검제였다. 그의 나이를 고려하면, 대결의 성사 자체가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녀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가 남겨 둔 흔적만 보면 격차는 압도적이었다.
***
와아아아!
대회장이 떠들썩했다. 소룡대회가 열린 지 일주일이 흘렀다. 슬슬 대회 십육강의 윤곽이 드러나고 있었다. 지역에서 날고뛰는 기재들도 십육강에 들긴 만만치 않았다.
대회가 치러질수록 대결은 치열했다. 십육 세 이하임에도 무력이 성인을 뛰어넘었다. 이류나 삼류로는 명함도 내밀지 못했다.
“송호문 강태진 승리, 십육강 진출 축하드립니다!”
십육강 대진의 한 축을 태진이 완성했다. 대회장 안은 후끈 달아오르며 열기로 들어찼다. 송호문을 대표한 태진의 십육강 진출은 오대세가의 장이었던 소룡대회에서 확실한 변수가 되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십육강에 오르는 동안 단 한 번도 고전하지 않았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실력으로 상대를 쓰러뜨렸다. 비록 오대세가와 붙진 않았지만, 놀라운 성과였다.
“아비는 현악검을 이기고, 아들은 십육강에 올랐네.”
“십육강이 아니라 대회 우승할 기센데!”
“아무리 그래도 우승은 쫌. 오대세가가 있잖아.”
“십육강에 오르는 동안 다 한칼이었다고. 그게 쉬운 일인 줄 알아!”
십육강에 올라오는 동안 일검에 끝을 냈다. 좀 이르긴 하지만, 일검무적(一劍無敵)이란 낯 뜨거운 칭호가 울려 퍼졌다. 차후 얼마나 성장할지는 알 수 없으나, 잠재력은 인정받았다.
여기에 무진이 현악검을 이겨 태진의 십육강 진출이 운이 아님을 증명했다.
특히 은근 귀엽게 생긴 태진의 외모도 인기에 편승하는 작지 않은 요인이 되었다. 무공도 중요하지만, 외모도 상당히 중요했다.
“고놈, 참 잘생겼다. 내 딸하고 딱이구나.”
“끔찍한 소리 마라. 어디가 네 딸하고 딱이야!”
“이 새끼가, 내 딸이 어디가 어때서!”
“어린애한테 할 말은 아니지만, 너 빼다 박았어!”
“내 딸이 나 닮은 게 당연하지!”
“여잔데, 안 닮아야지! 차라리 날 닮은 게 낫지!”
“뭐…… 죽어, 이 새끼야!”
태진의 약진에 벌써 눈독을 들이는 자들이 생겨났다. 저 나이에 이만한 성취를 이루었다면 후일 고수의 반열에 들 가능성은 무궁무진했다. 그 자체로 엄청난 장점으로 다가왔다. 시간이 흐를수록 태진의 인기는 솟구쳤다.
“남철호 승! 십육강에 진출했습니다.”
태진의 반대편에서 철호도 승승장구했다. 십육강에 오르는 동안 철호도 압도적인 무력을 과시했다.
상대를 꺾은 후 철호는 주변을 돌아봤다. 이젠 자신의 차례가 왔다. 태진에게 향했던 모든 영광과 환호를 받을 차례였다.
“와, 진짜 잔인하다! 생긴 대로 논다, 정말!”
“저게 어떻게 열여섯 살이야. 살인마같이 생겨서!”
“대체 얼마나 많은 소녀를 조진 거야?”
“지금도 봐, 확실하게 조졌어! 한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니라고!”
“눈빛 봐라, 흉성이 어마어마해!”
“혹시 천살성 아냐!”
영광은커녕, 여기저기서 탄성과 야유가 쏟아졌다. 철호는 내색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단체로 몰아가자 짜증이 치밀었다.
‘이 망할 대진! 대체 누가 뽑은 거야?’
철호의 탓이라고 하면 억울할 수 있었다. 그저 이기고 올라갈 때마다 상대가 소녀였을 뿐이다. 대결에서 여자라고 봐줄 수도 없잖아. 정정당당하게 제대로 패 줬을 뿐인데, 왜 욕을 하고 지랄이냐고!
“저 새끼 때문에 미소녀는 한 명도 못 올라갔잖아.”
“볼 맛 떨어진다. 미래의 재녀들인데.”
“시커먼 사내놈들이 아니라 소녀들 보려고 왔단 말이야!”
“저 새끼는 생긴 것부터가 맘에 안 들어!”
똑같이 압도적으로 승리하며 올라왔지만, 태진과 철호의 평가는 극과 극을 달렸다. 사람은 생긴 대로 산다는, 첫인상의 무서운 파급력과 불운이 겹쳐 설상가상이었다. 철호의 열여섯 살 여린 방심이 참혹하게 무너져 내리는 지독한 현실이었다.
‘이 빌어먹을 세상, 다 부숴 버릴 테다!’
철호는 흉성의 살인마처럼 생겼지만, 마음만은 꽃다운 소녀처럼 여렸다. 대회의 열기가 달아오를수록 정신까지 무인다운 성향을 갖추게 되었다. 무인에게 꽃다운 소녀가 가당키나 하나. 그냥 생긴 대로 사람 많이 쳐 죽이면 된다.
후후!
무진은 관중의 현실적인 반응에 고개를 끄덕였다. 생긴 대로 살지 않고 괜히 이상하게 살다가 억울한 인생을 살 바엔, 자기 얼굴대로 사는 편이 마음은 편할 것이다.
‘분노가 네 저력이었구나.’
-애한테 너무하는군.
‘사람 죽이는 법만 배운 놈이 뭔 개소리야.’
-편애는 나쁜 거다.
무진은 사람들의 오해를 풀어 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철호는 이대로 쭈욱! 억울한 삶을 살면 철왕이 된다. 주변에서 정신적, 육체적으로 많이 두드려 줄 필요가 있었다.
“십육강 축하해, 철호 형.”
“너한테는 안 져!”
난 왜?
태진은 진심으로 축하를 건네면서 손까지 내밀었지만, 철호는 받지 않고 투기를 발산했다. 다른 애들한테는 져도, 태진한테는 결코 지지 않겠다는 사생결단의 의지였다.
아빠!
억울한 태진은 아빠를 돌아봤지만 무진은 흐뭇하게 웃었다. 너희들의 우정, 깊이 이해한다는 표정이었다.
“우승은 우리 아들의 것.”
태진은 깊은 한숨을 속으로 삼켰다. 아빠란 작자가 도움은커녕, 인생의 호적수를 첩첩이 쌓아 주고 있었다.
다들 들었다.
남궁세가, 하북팽가, 사천당가, 제갈세가의 인물들이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어디 듣도 보도 못한 문파의 애송이가 명성을 좀 얻었다고 기고만장하냐는 비난이 담긴 눈빛을 어렵지 않게 읽어 낼 수 있었다.
“역시 내 아들,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다 말하렴. 이 아비가 쏘마.”
“입맛 없거든요!”
이 와중에 밥맛이 있을 리 없잖아요!
아들의 거절 따윈 무시했다. 내가 배고프다. 무진은 태진을 끌고 갔다. 손을 잡고 당기니, 버텨도 소용이 없다.
한창 배고픈 철호는 덩그러니 남겨져야 했다. 옆에 있는데 어떻게 아들만 데려가냐고?
무진은 돌아서며.
“올래? 싫으면 말고.”
“……누가 싫데!”
저 인간, 짜증은 나지만 배포는 있었다. 아름다운 과식을 유도하는 인간이었다.
“싫데?”
“……요!”
무진이 모두가 보란 듯이 대놓고 좋아하며 기고만장을 떨자, 다들 어이가 없었다. 원래 이런 자리는 좋아도 내색하지 않으려고 하는데, 저 인간은 자랑하고 싶어서 안달이 나 있었다. 주변 시선이나 체면을 중시하지 않는 인간이었다.
“개새끼가 범을 낳았구나.”
“꼴값 떠는 놈치고 오래가는 놈 못 봤다.”
“그래도 현악검은 이겼잖아.”
“쉿, 듣겠다!”
들었나?
나불대던 관중은 재빨리 자리를 벗어났다. 단상의 좌측 상석에 앉아 있던 제갈군이 뿔난 황소처럼 내달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