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King RAW novel - Chapter 529
528 무림대회(3)
‘이건 좋지 않은데.’
무림대회를 지켜보는 평범하게 생긴 사내가 있었다. 원치 않는 흐름에 미간을 찌푸렸다. 다른 이들과 어울려 있으나, 그는 대회가 이대로 흘러가기를 바라진 않았다.
‘꼬이는군.’
예선 통과의 걸림돌이 산적했다. 모조리 갈려 나가고 있어서 남은 인원이 세 명밖에 되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본선까지도 보장받기가 어려웠다. 봉인한 능력을 사용한다면 가능할 듯도 하나, 예선부터 사용한다면 경계심만 높아질 뿐이다.
‘의도한 건가?’
검제는 조 추첨을 이용해서 연관된 계파를 자연스럽게 중용하려는 것이다. 실력이 없다면 어차피 본선에 오르지 못하겠지만, 검제의 안목이 상당했다.
문제는 전력 대결을 펼쳐도 쉽지 않은데, 내외력의 손실이 컸다. 무난하게 올라온 상대와 대결을 펼쳐야 하기에 승산이 떨어졌다.
‘명색이 정파의 상징과도 같은 자가 이런 치졸한 짓을!!’
본선에 올라 무림맹의 요직을 맡아야 하는데, 시도조차 못 하고 떨어지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검제의 계획대로 흘러갈 수밖에 없다.
‘실수했다.’
검제가 이렇게 대놓고 조를 조작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이를 반전의 빌미로 삼기도 어렵다. 검제와 한통속인 자들이 너무 많았다. 게다가 조작이라고 하기에는 티가 잘 나지 않았다. 자신처럼 의도가 있지 않고서는, 관람하는 자들은 알아채지 못했다.
‘예전과 달리 무력이 늘었어.’
가장 큰 문제는 평균 무력의 성장에 있었다. 무림대회에서 활약하는 자들의 무력은 물론, 검제도 예전과는 다르다. 신주이십일강의 무력 수위를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직접 붙어 보지 않고서는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좋지 않군.’
자신을 불러온 것을 포함해 계획에도 없던 일들의 연속이었다. 되도록 순조롭게 흘러가기를 바랐으나, 흐름은 피의 광기를 원하고 있었다.
***
서문호, 철호, 태진은 곧 있을 대결을 위해 대기실에 있었다. 주위에는 유명세를 구가하는 후기지수들이 모였다.
색다른 광경으로 보일 수도 있었다. 천운권의 악명을 고려한다면 괴리감이 컸다.
서문호, 철호, 태진은 후기지수가 아닌 명성 높은 무인들과 자웅을 겨루고 있었다. 차기 무림을 이끌어 갈 걸출한 인재임을 증명했다.
결정적으로 천운권과 안면을 직접 트기는 꺼림칙해도, 아들이나 제자들과는 인연을 맺어 놓는 편이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더욱이 이들은 송호문을 대표하였다. 차후 송호문의 영향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보면 어린것들이 참 계산적일 수 있으나, 인간관계에서 조건을 아예 보지 않을 순 없다. 그래서 살면서 모든 조건을 무시한 진정한 벗을 얻기가 힘든 것이다.
“연산검문의 화유란이에요.”
“저는 장천도문 윤호정이에요.”
“명천방의 홍월령이에요.”
태진과 서문호의 주변으로 여인들이 있었다. 그녀들은 문파와 본인을 소개하며 조금이라도 끈적한 연을 맺으려고 했다. 지극히 당연한 이치였다. 아직 예선이라고 해도, 태진과 서문호가 쓰러뜨린 자들이 범상치 않았다. 후기지수들로선 상대하기 힘든, 대문파의 장로들과 견줄 만했다.
“대결이 끝나고 조용히 차라도 한잔하지 않겠어요?”
“제 순서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태진과 서문호는 정중히 거절했다. 혹여 감정이 상하지 않도록 적절한 선을 지켰다. 그러나 연정이나 연모의 감정은 철저히 배제했다.
‘령 매가 날 가만두지 않을지도 몰라!’
태진은 황보세령의 눈이 곳곳에 있음을 실감하고 있었다. 누가 밀고를 할지 알 수 없으므로 항상 조신하게 행동해야 했다. 사람을 믿지 못하는 각박한 현실이 안타까웠다.
‘어쩐다? 구양 소저를 소개하기는 해야 하는데.’
서문호는 서문세가의 적장자이고, 구양옥설은 흑천부의 소공녀였다. 마도가 아니라서 다행이긴 한데, 세간의 시선을 완전히 무시하기는 힘들다. 어떤 식으로든 구설에 오를 수밖에 없다. 이번 공동파와의 마찰은 사부의 농간도 있겠지만, 흑천부와의 연관성을 부정하긴 힘들었다.
‘사람 좋아하기 힘드네.’
‘그냥 좋아하면 안 되나?’
태진과 서문호의 고민이었다. 호의로 다가오는데 마냥 거절하는 것도 사내로서 매정한 행동이지 않을까? 고민이 되었다. 자세한 속사정을 알아본 후에 거절해도 늦지 않았다. 속사정도 모르고, 어떻게 싫어하냔 말이다.
물론, 조용히 차만 마시면 다시는 안 본다.
‘저쪽도 만만치 않네.’
‘사형께선 어쩌시려나?’
철호는 태진이나 서문호처럼 인기가 있진 않았다. 워낙 압도적인 흉면을 자랑하기에 어지간한 강단을 지녀서는 접근하기 힘들었다. 호불호가 명확하게 갈리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하북팽가와 사천당가의 기 싸움이 있었다. 당천예와 팽무린이 서로에 대한 적개심을 숨기지 않았다. 오대세가의 두 세가가 신경전을 벌이는데 그 안으로 파고들긴 위험천만했다.
다만, 중간에 낀 철호는 당당했다.
내가 이런 사내라는 듯 어깨를 폈다. 당천예와 팽무린의 적극적인 자세에 칭찬을 마다하지 않았으며, 송호문에서 기다리고 있는 군소소도 염려했다.
철호는 넓은 어깨만큼이나 마음도 넓어졌다.
“팽가가 언제부터 남의 남잘 탐했지?”
“아직 아무 사이도 아닐 텐데요!”
“내가 먼저야.”
“사람 마음은 시간이 중요하지 않아요.”
둘 다 기가 세기로는 정평이 나 있었다. 보통 사내라면 등이 터질 테지만, 철호의 강철 같은 육체는 버틸 만했다.
‘그러고 보니 환골탈태를 할 때마다 생기잖아.’
철호는 사부의 말을 흘려듣지 못했다. 최소한 여섯 번이 남았으니, 숫자에 연연해선 안 되었다.
그때 한 여인이 다가왔다. 청초한 외모로 사내의 보호 본능을 자극했다.
“저예요.”
“……?”
철호로서는 전후 맥락 없는 대답이었고, 당천예와 팽무린은 한껏 경계심을 높였다. 인정하기 싫은 현실과 마주하고 있었다. 의외로 철호의 인기가 높다는 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혹시 절 기억 못 하는 건가요?”
“기억이 안 나.”
“정말 너무하세요. 전 남 공자 때문에 며칠 동안 끙끙 앓았다고요!”
“그렇게 말해도 모르겠는데.”
당천예와 팽무린의 눈빛이 싸늘하게 식었다. 어떤 사정이 있는지 모르지만, 모두가 보는 앞에서 대놓고 거짓말하기는 어려웠다. 하물며 사내가 되어서 자기가 한 행동을 외면하는 모습에 실망했다.
“청송산장의 이소현이에요.”
“아, 소룡대회!”
“이제야 기억이 나나 보네요. 저는 한시도 그날을 잊은 적이 없어요.”
“사적인 감정은 없었는데.”
“하긴 남 공자에게는 스쳐 지나가는 기억에 불과하겠죠. 하지만 저는 포기하지 않았어요. 그때의 빚, 꼭 갚겠어요!”
“원한다면, 얼마든지 찾아와.”
할 말을 마친 이소현이 자리를 떠났다.
철호는 흐릿한 기억 속에서 이소현을 끄집어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당천예와 팽무린에겐 오해하기 딱 좋은 상황이었다. 사내로서 못 할 짓을 하고 책임을 지지 않은 듯했다.
“이 소저에게 무슨 짓을 한 거예요?”
“손속이 과하긴 했지. 나도 그땐 성숙하지 못했어.”
그게 성숙하지 못했다고 해서 끝날 문제인가?
당천예와 팽무린의 오해는 더욱 깊어졌다. 보다 못한 태진이 자초지종을 자세하게 말해 주었다. 다들 아버지를 닮아 가는 건지 몰라도, 의도치 않게 오해를 샀다.
“소룡대회 때 철호 형은 미소녀 학살자였어요. 철호 형한테 처맞고도 다시 도전하려고 하다니, 도전 정신은 본받을 만하네요.”
“그때는 어설펐다니까.”
“이번에는 아예 반 죽여 놓게?”
“그 정도는 아냐.”
“공주도 팼으면서.”
“너는 아니냐!”
이 인간들이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주변에선 오해가 쌓였지만, 다행히 당천예와 팽무린은 걸러서 들었다. 하지만 경계는 늦추지 않았다. 이소현의 눈빛을 보면 알 수 있었다. 단순히 도전만 하려는 것 같진 않았다. 다른 꿍꿍이도 숨어 있었다.
-대진도문 염사천.
-송호문 남철호.
당천예와 팽무린은 소룡대회가 아닌 군소소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캐 보려고 했으나, 철호에게는 불행 중 다행이었다.
대진도문은 정파 십대문파에 속하는 대문파로, 염사천은 대진도문의 문주 염진산의 장남이다. 진천도(振天刀)라는 별호가 있으며, 도법의 고수로 유명하다.
염사천도 어릴 때부터 천재로 불렸으며, 불혹에 정파무림 백대도객 안에 들었다. 이대로 명성을 쌓는다면 차기 정파를 대표하는 무인으로서 최소 육성과 견줄 수 있다고 평가했다.
진천도에게 있어 천운권과 나부랭이들은 앞으로의 행보에 거슬리는 것들이었다. 천운권이 등장하기 전까지만 해도 진천도의 위상은 하늘을 찔렀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진천도는 천운권의 위명에 가려져 명함도 내밀지 못했다. 악인을 제거하고, 협의를 떨쳤으나 잔잔하게 흩어졌다.
‘이제는 제자들까지 설치는군!’
십대문파치고 천운권을 좋아하는 문파는 단연코 없다. 갑자기 나타나서 온갖 분탕질을 치는데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대놓고 반기를 들기에는 천운권의 악명이 지나치게 높아졌다. 잘못 건드렸다가는 십대문파라도 갈려 나갈 수 있었다. 고작 천운권 따위의 눈치를 봐야 하는 현실에 처한 것이다.
악명은 둘째 치고 천운권은 무림맹의 감찰관이며, 황실의 어사보다 높은 지위를 지녔다. 지닌 신분도 십대문파가 어찌하기에는 무리가 따랐다.
그뿐이랴, 무력도 화경을 넘어섰다. 십대문파에서도 최고수가 나선다고 해도 이길 수 있다고 장담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개인이 아닌 단체로 나선다 해도 배경이 만만치 않았다.
어느 것 하나 마음에 들지 않는데 자기 꼴리는 대로 안하무인으로 행동하니 십대문파로선 배알이 꼴릴 수밖에 없었다.
천운권은 건드릴 수 없는 무소불위의 거물이 되었다. 괜히 시답지 않은 감정으로 맞섰다가는 문파의 존속이 위태로울 수 있었다. 이득이라도 있다면 모를까, 감정적인 싸움은 어리석은 짓이었다.
그렇더라도 천운권은 도가 지나쳤다. 근래에 터진 대형 사건에 안 낀 적이 없을 만큼 유별나게 나댔다. 이제는 아들과 제자들까지 나서서 다 해 처먹으려고 했다.
‘네놈들 뜻대로 될 성싶으냐!’
천운권은 분명 송호문을 천하제일문이라고 하였다. 감히 십대문파도 가만히 있는데, 갓 중소 문파를 벗어난 문파가 천하제일을 거론하다니 기도 안 차는 현실이었다.
그런 가운데 송호문의 신성들이 전부 본선에 오르려고 했다. 천운권의 공언이 현실이 될 판국이었다. 십대문파 누구도 그걸 바라진 않았으며, 진천도는 더더욱 그러했다.
“대진도문의 염사천이다.”
“송호문의 남철호입니다.”
진천도는 철호의 담담함에 미간을 찌푸렸다. 애송이답지 않은 노안의 험악한 인상을 지닌 놈이 미녀들을 곁에 두고 있었다. 주변에서 떠받들어 주니 주제를 망각했다.
“오늘 하늘 위에 하늘이 있음을 보여 주지.”
“그랬으면 좋겠군요.”
“건방진, 사부나 제자나 하나같이 맘에 안 드는구나!”
“맘에 드는 행동을 해도, 당신은 나를 인정하지 않을 것 아닙니까.”
철호의 반박을 들은 태진과 서문호는 저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실상, 어떤 짓을 해도 이미 미운털이 단단히 박혔다. 굽실거린다고 해서 좋게 봐줄 리 만무했다. 그런 사람에겐 그냥 맘 가는 대로 하는 편이 속은 시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