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King RAW novel - Chapter 532
531 도화선(2)
별채로 온 무진은 멀쩡했다.
취기를 내력으로 빼지 않아도 육체가 알아서 자연스럽게 정화되었다. 이런 말 하면 자기 자랑 같지만, 이제는 예전의 성취를 넘어서 새로운 영역에 도달했다.
전왕공이 구단을 넘어선 것이다. 마왕과 심상에서 투덕거린 결과물이었다.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무공의 범주도 달라졌다.
‘내 상대는 아냐.’
-몸만 찾으면 모른다.
‘영혼이 떨리는데, 솔직히 쫄았잖아.’
-닥쳐랏!
최후의 방도를 숨겨 놓았을 수도 있으나, 무진은 걱정하지 않았다. 전왕공의 초월극의는 전대의 전왕조차 이루지 못했던 전대미문의 영역이다. 전대의 전왕은 미래의 자신보다 떨어졌다. 과거의 영역이라, 미화되는 경향이 있었다. 실전에서 맞붙으면 전대 전왕도 처맞는다.
-이건 불공평해!
‘또 뭐가?’
-……아니다.
‘그게 너와 나의 거리야. 개기지 마라.’
마왕은 차마 말하고 싶지 않았다. 인정하는 순간, 이 망할 인간이 어떤 식으로 나올지 뻔히 알기 때문이다.
무진도 알고 있기에 한껏 거만했다. 사실 객잔에서 떠벌렸던 말 중에 진심도 꽤 있었다. 내 동생, 자식, 제자들이 맹의 요직을 차지했는데 맘껏 누려야지.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누리지도 못하는 것은 병신 같은 행동이었다.
작금의 성취가 어떻게 보면 이상할 수도 있다. 어느 순간 멈춰 있던 무공이 영역을 초월하더니, 믿지 못할 속도로 성장했다. 마왕과의 티격태격이 하나에서 하나를 더한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이었던 듯했다.
‘합격술이나 계속 연구해.’
-미친놈!
‘하고 있었으면서. 완성되면 말하고.’
-닥쳐!
지금의 성취만으로 놓고 보면 마왕도 상당히 강해졌다. 미래에서 붙었을 때의 자신으로선 상대가 되지 않았다. 이놈 혼자서 돌아왔다면 대체 무슨 사태가 벌어졌을지, 암담한 세상은 불을 보듯 자명하다.
‘하늘이 나를 보낸 이유가 있겠지.’
-내가 너를 보낸 거야! 누구한테 감사하는 거냐고!
‘천망…… 어쨌든.’
-제발 모르면 쓰지 마!
마왕은 이놈이 문자병에 걸렸다고 판단했다. 어떻게든 무식을 가려 보려고 하지만, 감춰지지 않는다. 짜증 나게도 그 무식함이 자신에게도 옮아가는 것 같았다. 반대로 자신의 명석함이 무진에게 옮겨 가서 무공의 성취를 높였다.
마왕으로선 억울한 일이었다. 자신은 바보가 되어 가는데, 이놈은 앉아서 공으로 명석함을 얻어 갔다. 그간 해석되지 않았던 전왕공의 비의가 풀린 연유였다.
무진은 마왕의 억울함을 뒤로하고, 별채에서 분개하고 있는 두 여인을 보았다.
“그렇게 억울해할 실력은 아니던데.”
“형부, 간발의 차이였다고요!”
백유화, 백유경은 아쉬움이 가득했다. 본선에 오르는 마지막 관문에서 탈락했기 때문이다. 그 한 번의 고비만 넘겼어도 당 공자와 함께 상을 받을 수 있었다.
“태진아, 그랬니?”
“아버지, 이모는 제 상대가 아닙니다.”
“그렇다는데?”
“우리가 널 얼마나 귀여워했는데, 이럴 수가 있어?”
이모들이 배신감에 치를 떨지만, 태진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대결은 공정했고, 이모들과 친분을 쌓기에는 기간이 짧았다. 며칠 봤다고 해서 없던 정이 생기진 않는다. 그저 어머니의 동생으로서 예의를 다해 공경할 뿐.
‘이모들이 제 인생 책임져 줄 것도 아니잖아요.’
태진은 아버지만 믿고 갔다. 아무런 힘도 없는 이모들과 미래를 도모하기에는 무리가 따랐다.
“그나저나 내 돈은 어쩔 거야?”
“형부, 위로는 못 해 줄망정 너무해요.”
“난 분명히 싫다고 했어. 그런데도 자신 있다며 걸어 보라고 했지. 이거 누구 탓인 것 같아? 그리고 너희들보다 먼저 떨어진 녀석도 있으니까 궁상떨지 마.”
“크흠, 송구합니다.”
본선에 오르긴 했지만, 청풍 역시도 떨어졌다. 소림의 땡중한테 밀려서 패배한 것이다. 남존무당이 북숭소림의 벽을 느꼈다고 하기에는 무리가 따르나. 수적인 열세라고 봐야 했다.
“내일 대회장에 오지 마라.”
“왜요?”
“싫으면 갚으시든가.”
“치사하게!”
“내일 혈풍이 불지도 몰라서 그래. 너희들 죽으면 내가 유진이를 볼 면목이 없잖아.”
“예? 그게 무슨?”
“그렇게만 알고 있어. 아닐 수도 있으니까.”
청풍도장도 놀라는 눈치였지만, 무진은 와도 된다고 했다.
넌 죽어도 나랑 관계없으니까.
***
어둠이 짙게 내리깔렸다.
축제를 즐기려던 자들도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고, 떠들썩했던 정주는 조용해졌다. 술에 취해 밤거리를 헤매거나 토하는 자들이 종종 있었다.
내일을 기대하는 이들과 실패로 인해서 분노하는 이들의 희비가 교차하는 밤이었다. 속내를 숨긴 채 내일의 파국을 원하는 자들도 있었다.
무림대회는 예측에서 많이 어긋났다. 많은 이들의 바람과는 다르게 흘러갔다. 천운권의 발언이 허언이 되기를 바랐으나, 무림대회는 그에게 날개를 달아 주었다.
본선 팔강은 둘째 치고, 예선을 통과한 문파와 무인의 면면을 봐도 그렇다. 악연과 선연이 뒤섞였어도, 천운권과 연관이 있었다. 이로 인해 무림대회에 쏟아부은 노력과 시간이 허사로 돌아가고 말았다.
침묵의 어둠 속, 분노하는 자들은 숨을 죽인 채 내일을 기다렸다. 원하는 대로 판이 굴러가지 않은 이상, 극단적인 수도 고려해야 했다.
어쩌면 무림대회의 승자가 가려지는 순간 환호가 아닌 절망이 자리하게 될지도.
정주의 중심부에서 조금 떨어진 구역.
낡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인 하층민들이 사는 빈민촌이다. 도시라고 해서 모두 부유하지는 않았다. 가난한 자들의 고혈을 갈취하는 것은 태평성대에도 사라지지 않는 관행 같은 세상의 진리였다.
평범한 외형의 두 사내가 늦은 밤 술잔을 기울이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소식이 느려서 답답하군.”
“내일까지는 조심하라고 하지 않았나. 개방과 하오문은 물론 수상한 자들이 뒷조사를 하고 있으니까 말이야.”
대회가 시작되고 감시 인원이 대폭 증가했다. 언제든지 죽일 수도 있으나, 그 자체로 발각될 우려가 있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명이 하달된 후에는 연락을 주고받지 않았다.
“조사한다고 달라질 건 없지.”
“그래도 자만은 금물이다.”
두 사내는 술잔을 천천히 기울였다. 어서 빨리 이 밤이 지나가기를 학수고대했다.
영협쌍객.
하남을 대표하는 십검에 속하는 초절정에 오른 검공의 고수이며, 둘이 펼치는 합격은 정평이 나 있다.
그들이 명성을 떨친 연유는 단순히 악인을 처단하는 데만 있지 않았다. 항시 낮은 자세로 살아가며 어려운 자들을 발 벗고 나서서 도왔기 때문이다.
한데, 협객이라고 하기에는 음산한 대화가 이어졌다. 이런 모습을 본 사람이 있다면 당혹감을 갖추지 못했을 것이다. 다른 이들도 아니고 명성을 얻고서도 빈민촌에서 사는 영협쌍객이었기에.
“여하튼 천운권이 일을 망쳤군.”
“놈에 대한 처분은 내려오지 않았다.”
“내 손에 걸렸어야 했는데.”
“과장되기는 했어도 만만한 상대는 아니네.”
무려 이십 년에 가까운 세월을 인내하며 기다렸다. 그 시간 동안 그들은 본성을 드러내지 못했었다. 내일이면 더는 그러지 않아도 되었다. 감추어 눌러 놓았던 본성을 드러낸다 한들 개의치 않을 것이다.
일순.
휘잉!
한 줄기 바람이 불었다.
푸욱!
가죽을 뚫어내는 피육음. 등을 찌른 칼날이 심장을 뚫고 나왔다. 그 순간 수평을 가르는 검기가 있었다.
뎅강!
별안간 일어난 살수였다. 찌르고 난 후 이어진 벼락같은 참격, 기울이던 술잔은 멈춰졌다. 마주하던 자들의 눈빛에서 놀람과 죽음이 교차했다.
스륵, 떼구르르르!
목을 가른 핏줄기가 선명해진다. 이윽고 비스듬히 미끄러지다가 바닥을 볼품없이 구른다.
영협쌍객 진호충의 수급은 여전히 현실을 인정하지 못했다.
“……누구냐?”
심장이 꿰뚫린 영협쌍객의 맹화상은 돌연한 사태를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언제, 어떻게? 라는 가장 기본적인 연계가 존재하지 않았다. 평소와 같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지만, 긴장을 늦추지 않았기에 죽어 가는 와중에도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곧 죽을 놈이 알아서 뭐 하시게?”
“이런 짓을 하고도 네놈이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으냐!”
“벌레 좀 죽였다고 뭔 일이 있겠어?”
“……맹에서 네놈을 찾을 것이다!”
“사이비교도 주제에 끝까지 협객인 척하시겠다.”
맹화상의 놀람은 진행형이었다. 놈이 자신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이십 년의 강호 활동 중 한 번도 자신을 드러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어떻게 안단 말인가? 연락을 취한 것도 최근에 불과했다.
“……그걸 누가 믿는다고!”
“믿겠지. 이러면.”
“살수의 말 따위…… 헉!”
“어때, 괜찮지?”
괜찮을 리가 없다. 맹화상은 기맥으로 밀려들어 오는 내력에 경악했다. 알아채고 통제하려고 하지만 어림도 없었다. 순식간에 단전 깊숙이 파고들어 와 불씨를 지폈던 마정을 완전히 개방했다. 그제야 단숨에 죽이지 않은 연유를 깨달았다.
“……어떻게?”
“잘 가.”
차라리 죽는 것으로 끝나는 문제였다면 맹화상은 발광하지 않았을 것이다.
……안 돼!
맹화상의 바람이었을 뿐, 검은 무정했다.
대가리를 싹둑! 잘라 버렸다.
데구르르!
바닥을 구른 맹화상을 뒤로하고 그림자는 곧바로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사륵!
곧바로 그림자들이 나타나 죽어 있는 자들을 수거해서 사라졌다.
푸욱!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이 죽어 간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었다. 등을 찌르고 들어간 칼날이 가슴을 뚫고 나갈 때까지도 알아채지 못했다.
그야말로 완벽한 암습이었다.
대체 누가? 의문을 품었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돌아설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이제는 왜냐는 의문만이 남았다.
자신이 죽어야 하는 연유를 모르겠다. 분하고, 억울하고, 원통할 따름이다.
“……어째서?”
그녀는 여인으로 구성이 된 화선문의 문주 화월검녀 유소설이었다. 무림에 명성을 떨칠 대문파는 아니더라도, 중견 문파에는 속했다. 특히 아름다운 외모만큼이나 그녀는 뛰어난 환검을 펼쳤다. 이번 대회에서 아쉽게 예선에서 탈락했지만, 명성에 걸맞은 실력을 선보였다.
누구에게도 원한을 산 적이 없기에 작금의 암습은 이해하기 힘들었다. 더욱이 함께 있었던 문도들도 죽었다. 저항도 못 하고 기습적인 수법에 심장이 뚫리고, 목이 잘렸다.
“어째서라니, 마녀 주제에.”
“……뭐야?”
“혈음마공이 극성에 이르렀군.”
“……죽엇!”
처연했던 유소설의 안면이 악귀처럼 일그러지는 순간, 살수는 내력을 부여했다.
“……이건!”
“잘 가.”
마정을 끄집어내어 증폭한 후, 대가리를 잘랐다. 허무한 최후에 유소설의 눈빛에서 억울함이 묻어 나왔지만, 살수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무심했다.
사륵!
살수가 떠난 후, 곧바로 그림자가 나타났다. 분리된 신체를 곱게 들어서 포대에 담았다.
‘하, 정말 가차 없네!’
시체나 수거하라고 따로 불렀나?
개과천선의 대가치곤 힘들다.
***
짙었던 어둠도 한 줄기 빛에 흐릿해진다.
날이 밝았다.
무림대회의 마지막을 장식할 대결만이 남았다. 서둘러 채비를 하고 무림맹으로 갈 준비를 했다. 승자가 누가 될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차기 무림맹주가 결정되는 날이기도 했다. 검제가 유력한 가운데, 태양신군의 행보에도 귀추가 주목되었다.
“준비해라.”
“예, 가주님.”
산동악가의 가주 악효천의 명령에 무인들은 일사불란하게 채비를 마쳤다. 불과 얼마 전까지와는 완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산동악가의 정예인 흑뢰대는 가주의 명을 충실히 받들었다.
‘언젠가는 죽여 버릴 테다!’
악효천은 그날의 패배와 악연을 곱씹고 있었다. 신검마협과 천운권에 대한 분노는 한계를 넘어선 지 오래였다. 그러나 그분의 명을 따르지 않으면 산동악가의 명운은 끝장이었다.
‘이 힘만 있다면 얼마든지 가능해!’
주인을 몰라보고 가문을 쥐고 흔들던 총관 일파를 처리했을 때가 잊히지 않았다. 아버지를 잃고 흔들렸지만, 산동악가는 그분과 함께 대륙을 호령하게 될 것이다.
음!
위화감이 번졌다. 창을 잡는 순간, 앞을 막아서는 자들이 나타났다. 자신을 포위한 자들의 정체는 어렵지 않게 파악했다. 무복의 복색, 문양, 형태만으로도 증명이 되었다.
하지만 왜?
의문이 남았다. 비록 오대세가에 들지는 못했어도, 사소한 다툼이 있다고 해도 지나간 일에 불과하다. 인사를 하러 왔다고 하기에는 수가 너무 많았다.
무엇보다.
저자가 직접 찾아올 줄은.
“권왕을 뵙습니다!”
“조용히 따라오너라.”
상대가 상대이니만큼 인사를 올렸더니, 다짜고짜 따라오란다. 예상을 벗어나는 사태에 화가 치밀었다. 그가 황보세가의 전대 가주이자 신주이십일강의 권왕일지라도, 한 세가의 가주에게 오라 가라 할 권리는 없었다. 하물며 오늘은 대회의 마지막 날이었다.
“황보 대협이라도 저를 강압할 순 없습니다. 이건 도가 지나친 행위입니다.”
“입씨름하기 귀찮다. 따르든지, 싸우든지 결정해라. 분명히 말하지만, 손속에 자비를 두진 않겠다.”
권왕의 배후로 백전권이 이끄는 적룡단이 전투태세를 갖췄다. 산동악가의 정예인 흑뢰대가 있다고 하나 전력의 차이가 극명하다.
“이러는 연유가 무엇입니까?”
“벌써 세 번째군.”
권왕의 기도가 바뀌며 일대의 흐름이 정지되었다. 자신의 허락이 없이는 누구도 빠져나갈 수 없는 공간으로 변했다.
크윽!
고작 마음을 달리 먹었을 뿐이거늘, 악효천이 체감하는 압박감은 상상을 초월했다. 권왕이 어째서 천하를 오시하는 절대고수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화경에 오르면서 자신감을 얻었으나 우물 안의 개구리였다. 진정한 절대고수에겐 까마득한 벽이 있었다.
오싹!
뼈까지 시린 살의에 악효천은 치를 떨어야 했다. 권왕도 벅찬데, 백전권이 이끄는 적룡단도 빈틈을 허락하지 않았다. 조금의 수상한 움직임도 봐주지 않겠다는 결의가 전해졌다.
권왕은 침묵도 허락하지 않았다.
“죽겠다면 그리하라.”
“……잠깐! 따르겠습니다!”
비기를 꺼낸다고 달라지진 않는다. 허락을 구하지 않고 함부로 썼다가는 감당하기 어려운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더욱이 다른 이도 아니고 권왕이 행차했다. 사태의 심각성이 예측한 범위를 벗어났다.
“그 전에, 대체 무슨 일인지 말씀을 해 주십시오!”
“맹 차원에서 이루어진 일이니 함부로 입을 놀린다면 산동악가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무림맹이 나섰다면 더는 저항할 수 없다. 다소 과한 처사라고 해도, 무림맹에 대놓고 반기를 들었다간 권왕의 말대로 산동악가는 주춧돌도 남지 않을 것이다.
‘흠, 짧은 기간, 성취가 놀랍군.’
권왕도 자세한 사정은 듣지 못했다. 급히 연락을 받았고, 오늘 아침에 부랴부랴 움직였다. 전후 맥락을 모르기에 의문이 들었으나, 그 녀석이 하고자 하는 일이니 일단 했다.
‘해코지당하지 않으려면 어쩔 수 없지.’
소인배가 앙심을 품으면 골치 아픈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럴 바엔 시키는 일은 무조건 완벽하게 처리해야 했다. 황보세가의 무사 안녕을 위한 처사였다.
‘일단 오늘만 넘기자.’
또 무슨 짓을 할지 모르기에 답답한 건 권왕도 마찬가지였다.
권왕은 악효천과 흑뢰대를 제압하지 않았다. 같이 맹으로 가는 것으로 했다. 관점에 따라서는 악효천이 권왕에게 잘 보이려고 애를 쓰는 것처럼 보였다.
권왕과 함께 찾아간 장소는 무림맹에서 비밀리에 관리하는 자들을 위해 설계한 일종의 안가였다.
특이한 점은 안가치고는 상당히 넓었다. 적지 않은 인원을 수용할 수 있었다.
안가를 찾은 악효천은 헛바람을 속으로 삼켰다. 당문의 늙어 죽지도 않을 노괴물 독왕을 마주했기 때문이다. 대회의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독왕과 권왕이 한자리에 있다니, 등 뒤로 식은땀이 흘렀다.
“당 대협을 뵙습니다!”
“아직은 인사를 받을 때가 아니다.”
“대체 무슨 일입니까?”
“조만간 알게 될 거다.”
독왕의 단호함에 악효천은 입을 닫았다. 물어본다고 말해 줄 것도 아닐 테고, 공연한 시간 낭비였다.
‘저들은 또 왜?’
안가에 모인 자들의 낯이 익었다. 갈수록 의문이 중첩되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기에 이토록 많은 사람을 잡아 와 모아 놓는단 말인가?
독왕도 권왕 못지않게 탐탁지는 않았다.
내막을 모르고 시키는 대로 했을 뿐. 조만간 알게 될 거라고 하는데, 의문투성이였다.
‘잘하는 짓인지 모르겠습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잘됐었잖아.’
‘그래도, 아니면 어쩌지요?’
‘아니면 내보내면 될 일이지.’
독왕과 권왕은 책임질 생각이 전혀 없었다. 불평불만이 나올 수 있으나, 어쩌진 못할 테니까. 약자는 강자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을 만큼 세상은 아름답지 않았다.
그것은 선악의 구도로 볼 수 없는 문제였다. 약육강식은 인간사의 본능이며, 변하지 않는 진리이기 때문이다. 강자와 약자가 바뀔 수는 있어도, 자신이 선 위치에 따라 마음은 달라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