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King RAW novel - Chapter 535
534 발작(3)
검제는 진심으로 아쉬웠다. 놈들이 무슨 수작을 부렸는지 떠보려고 했지만, 만만치 않은 상대였다. 광천군은 분명 광기에 젖어 있으나, 심마에 사로잡히지는 않았다. 이제까지 만난 자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심기를 지녔다.
음.
방금까지만 해도 당황했던 검제가 평정심을 찾자 광천군은 묘한 느낌을 받았다. 설마 여기서 빠져나갈 수 있다고 여기는 건가? 검제의 검공이 예상을 초월한 경지에 이르긴 했으나, 벗어나기는 요원했다.
“허세를 부리는군.”
광천군은 개의치 않고 검제를 죽이라고 명령했다. 심검에서 풀려난 검절이 명령대로 움직였다.
검제로선 전처럼 제압하기가 여의치 않기는 했다. 광천군의 계략에 휘말린 희생자이기는 하나, 맹주를 죽이면 곤란하기에 검공에 제한이 있었다. 그에 반해 사공에 사로잡힌 검절은 육탄으로 돌격해 왔다.
찌릿!
맹주의 공세를 막아 내며 기회를 만들었지만, 검제는 치고 들어가지 못했다. 그 틈을 절묘하게 파고드는 살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거, 참!’
광천군이 끊임없이 빈틈을 노렸다. 일대일로 붙어도 승부를 장담하기 어려운 광천군이 작정하고 암수를 썼다. 하물며 심검을 파훼했던 수법이었다.
광천분뢰수.
광천군은 틈을 대놓고 노리고 있었다. 검절이 죽는다고 해도 신경 쓰지 않았다. 반드시 검제를 죽이고 말겠다는 결의를 불태웠다.
쐐애애액!
검절이 조화지검의 극의 천지합일을 펼쳤다. 영혼이 제압되었다고는 하나 백 년의 정련이 고스란히 담긴 조화지검은 얕볼 수 없었다.
검제로서도 어설픈 대응은 독이었다. 재차 제왕검형의 만상천검을 펼쳐야 했다.
“걸렸다.”
파격의 틈이 보였다.
광천군이 회심의 미소를 짓기가 무섭게 폐부를 찌르는 경고음이 있었다. 위험하다는 자각과 동시에 돌아섰다.
“역시 감각 좋네.”
별안간 폭발이 일어났다.
꽈아아아앙, 화르르르르!
천지를 붕멸하는 거력이 일순 증폭하여 재차 폭발했다. 내력의 증폭과 폭발의 순환이 이어졌다. 방어 후의 방심을 노리듯, 삼중의 폭발이 일어나도록 권공의 정수를 심었다.
퍼퍼퍼퍼펑!
암습은 멈추지 않았다. 광천군은 이어지는 권폭에 당혹스러웠다. 광혈천강기로 반탄진력을 일으켰지만, 그마저도 뚫고 들어오며 타격을 준다. 광겁사공을 육신에 새겨 광혈체로 개조하지 않았다면 위험했다.
“누구냐?”
대답 대신 권폭, 권인, 권천이 광천군의 반격을 무용지물로 만들어 내고 끊임없이 몰아붙였다.
우우웅!
광천군은 이쯤에서 밀어내려고 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점점 잡아먹히고 있었다. 반응이 늦은 것도, 사각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도 있으나. 결정적으로 무공이 잠식되고 있었다. 자신의 대응을 한 수 앞에서 막아섰다.
“……뭐냐?”
광천군의 의문은 해소되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시간을 벌고 싶었지만 좁히기는커녕 간극의 차이가 벌어지고 있었다.
퍼어엉, 쿨럭!
방어를 무력화한 후 이어진 권격에 옆구리가 부서진다. 광혈체의 재생력으로도 회복이 되지 않을 수법이었다. 집요하리만치 철저히 분쇄하고 있었다.
‘……빌어먹을!!’
반격의 기회가 없다. 습격자는 그 어떤 대응도 용납하지 않았다. 철저하게 유리한 위치를 점한 채 압도하고 있었다.
광천군으로선 어이없는 현실이 아닐 수 없었다.
‘……이 나를!’
이대로는 죽는다.
광천군에겐 받아들이기 어려운 현실이었다. 본교에서도 자신을 이처럼 압도할 수 있는 자는 없다. 무엇보다 화가 나는 것은 전력 발휘를 못 하는 현실에 있었다. 광기의 극의인 광겁을 개방해야 하는데, 그럴 틈을 주지 않았다. 마치 광겁사공을 알고 있다는 듯이 암수를 썼다.
‘……알아?’
섬뜩한 진실이 광천군의 뇌리를 강타했다. 여태까지 검제가 했다고 생각했었는데, 이제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었다.
누군가가 검제를 방패막이로 내세워 본교의 대계를 흔들어 놓았던 것이라면? 대계가 번번이 실패했고, 무림대회마저 어그러졌다. 대회의 결승이 이틀이나 앞당겨지면서 계획을 또다시 수정해야 했었다.
더욱이 오늘 아침의 사태도 예상을 벗어난 일이었다. 일시에 절반이 넘는 본교의 세작이 사로잡히게 될 줄 누가 알았으랴.
이 모든 사태의 원흉이 검제라고 하기엔 미심쩍었다. 그 연유가 바로 암습을 펼치는 암중인의 정체에 있었다.
암중인의 무위가 이제까지 조사한 대륙 무인의 그 누구와도 맞지 않았다. 가히 한 단계 이상, 격의 차이가 있었다. 그런 사실을 본교는 까맣게 몰랐다.
이놈이다!
본교의 대업을 끊임없이 훼방하려면, 미리 알고 있지 않고서는 불가능했다. 그렇기에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도대체 누가? 본교를 손바닥 보듯이 훤히 꿰고 있단 말인가.
퍼퍼퍼퍼펑, 푸아앙!
습격자는 공세를 늦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능숙하게 약점을 찔렀다. 설상가상으로 호신강기를 뚫고 들어온 내력이 범상치 않았다. 마치 사공과 마공의 상극처럼 내력의 흐름을 끊어 내고 있었다.
‘이게 대체?’
알아내야 했다. 이놈이야말로 본교의 숙적이었다. 이토록 중요한 사실을 아무도 모르고 있다니, 교의 안위가 위태로웠다.
“……나를 죽이는 순간 검절은 죽는다!”
광겁사공을 발휘할 시간을 벌기 위해서 광천군은 자존심을 굽혔다. 본교의 교도가 봤다면 경악을 금치 못했으리라. 차라리 죽으면 죽었지, 굽히지 않을 광천군이기에 더더욱.
꽈아앙, 커어어억!
머뭇거리리란 예상과 달리, 광천군은 직격을 당하고 말았다. 찰나의 빈틈을 노렸거늘, 역으로 빈틈을 노출시킨 격이었다. 그 허점을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살의를 담아 공격했다.
쿨럭, 주르르르!
이번 타격은 출혈이 너무 컸다. 겉으로 흘리는 피는 아무것도 아니다. 내부를 엉망진창으로 휘젓고 있는 파멸적인 전사경에 육신이 터져 버릴 것 같았다.
씨익!
보이지 않았으나, 광천군은 놈이 웃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놈의 손속은 살수 그 자체였다. 자신을 죽이는 데 망설임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검절의 죽음도 의식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놈은 미친놈이다.
자신보다 더한!
또한,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비정한 놈이기도 했다. 그 점은 본교와 비슷하다 못해 판박이였다. 같잖은 짓 따위는 애초에 해서는 안 되었다. 몸이 망가지는 것을 아랑곳하지 않고 달려들었어야 했다.
“……제길! 이러고도 네놈이 무인…… 크악!”
광천군은 치욕스러운 현실에 치를 떨었다. 설마 버러지 같은 것들이나 하는 상투적인 말을 꺼내게 될 줄은 몰랐기에.
번뜩!
오싹!
목숨이 위태로운 전율에 광천군은 필사적이었다. 이대로 죽을 수는 없었다. 어떻게든 벗어나야 했다. 그러나 암중인은 완성된 틈을 놓치지 않았다.
무장류.
무진은 광천군의 틈을 발견하고 단 한 번도 선수를 내어 주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만이 진실은 아니다. 구단을 개방한 전왕공과 일체화한 전군보가 광천군의 모든 수를 예측하여 유도했다.
전왕투법 전왕멸.
휘황찬란한 수식어 따위는 전왕공에 어울리지 않았다. 무진의 수는 간단했다. 죽이는 데 최적화되었을 뿐. 완전한 분멸을 원하는 파멸력이었다.
푸스스스!
굉음이 아닌 모래성처럼 허물어진다고 해야 할까.
광천군은 두 눈을 부릅떴다. 일순 모든 것이 부스러져 버리고 말았다. 광혈마공과 광겁사공으로 무장한 육신이 가루가 되기 직전이었다.
털썩!
저절로 무릎이 굽혀졌다.
광천군은 넋이 나간 얼굴로 상대를 올려다봐야 했다. 지금이라면 반격할 시간이 있었다. 그러나 절망적인 미련에 불과했다. 곧, 바스러져 버리리란 사실을 모르지 않았다.
……이렇게 허무하게!
광천군은 말이 나오지 않았다. 죽음도 믿기 어려운데, 그 과정이 지나치게 압도적이었다. 가지고 있는 그 무엇도 해 보지 못했다. 이처럼 맥없이 당하게 되리라고는. 그래서 더 놈의 정체가 알고 싶어졌다.
“……네놈은 대체 뭐냐?”
“알면 달라지나, 끝났는데.”
“……인정할 수 없다!”
“가진 걸 다 꺼내게 할 순 없잖아. 안 그래?”
“……죽어서도 용서하지 않겠다!”
“호오, 광천군답지 않은데. 너, 그런 말 싫어하잖아.”
“……?”
광천군은 죽어 가는 와중에도 헛바람을 삼켰다. 놈은 자신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 말이 되지 않았다. 대륙에서 활동한 적이 없었던 자신을 대체 어떻게 안단 말인가?
“그리고 검절은 안 죽어.”
“……그럴 리 없다!”
“완벽했다면 죽었겠지.”
“……설마?”
“촉박했잖아.”
검절을 처음부터 도구로 썼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었다. 자신조차도 이용당하는 줄 몰랐으니, 천기자도 아니고 우리라고 알 수가 있나. 그저 놈들이 어떤 최악의 수를 쓰는지 몰라 일단 준비를 한 것이다.
황실에서 한 번 사용했던 수법을 또 쓰지 말란 법도 없고. 그래서 염 노가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한 것이다. 시간적인 여유가 없도록 갑자기 밀어붙인 연유도 지금을 위해서였다.
광천군은 문득 의문이 들었다.
“알면서 어째서?”
“아예 안 통하면 의심을 샀겠지.”
검절에게 사공이 통하지 않는다면 잘못되었다는 것을 감지할 터. 마신교의 대응이 무진의 예상과는 다른 형태일 수도 있었다. 변수를 최대한 좁혀야 대응이 수월했다.
빠드득!
무진의 손바닥 안에서 놀아났다는 사실에 광천군은 죽어 가면서도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식으로 죽으려고 그 오랜 세월을 인내해 온 게 아니다.
“농락을 당한 채 죽어 가는 기분이 어떠신가?”
“……네놈 뜻대로 될 성싶으냐!”
“사람은 다 똑같아. 그런데 왜 그랬냐?”
“닥쳐랏! 용서하지 않겠다!”
“네 말대로 망자는 아무것도 못 해.”
무진은 광천군에게 쌓인 게 좀 있었다. 이놈은 다른 이들과 다르게 인간을 극한으로 몰아넣어 절망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채 죽어 가는 것을 즐겼다. 희망이 사라진 무저갱 속에서도 저항하는 자들의 용기를 잔인하게 짓밟았다.
퍼엉, 채채챙!
검절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만약을 대비해 철양진인, 자운진인을 숨겨 뒀으며, 무림맹에 오는 도중에 만난 생사철협이 함께했다. 원래는 대회에 참가하려고 했지만, 대의를 거론하며 꼬드겼다. 본인도 좋아하는 것 같아서 다행이긴 했다. 철양진인만 보면 좋아서 벌벌 떨었다.
크크크크크.
바스러지는 놈이 웃어?
예상과 다른 광천군의 반응에 무진은 미간을 찌푸렸다. 속 편히 죽으면 곤란했다. 더할 나위 없이 비참하고 억울하게 죽어야 미래에 죽었던 무인들의 원한을 풀 수 있었다.
-아직 죽지도 않았는데, 뭔 원한이야?
‘됐고, 이놈 왜 또 지랄인 거야?’
-숨겨 놓은 수가 있나 보지.
‘지금 남의 일처럼 말할 때냐!’
죽음 앞에서 초연하게 웃는 사람은 흔치 않다. 마왕의 말대로 남겨진 수가 더 있을 수도 있었다. 수작질을 모두 걸러 낸 줄 알았는데.
“너 이 새끼, 또 무슨 수작이야?”
“……알려 줄 것 같으냐!”
죽어도 말하지 않겠다는 광천군의 조롱에 무진은 대가리를 박살 내고 싶었다. 그러나 이놈은 톡! 쳐도 부서질 놈이었고, 어차피 회생 불가능했다. 좀 더 빨리 죽이나, 늦게 죽이나 별 차이가 없으니 주둥이를 함부로 놀리는 것이다.
-그러게 치명상만 입혔어야지!
‘아까는 죽이라며!’
치명상을 입힌 후 괴롭힐 걸 그랬다. 하나, 마신교도에게 기회를 내어 주는 것만큼 어리석은 짓은 없다. 광천군의 숨통을 속전속결로 끊은 것은 마왕과 무진의 합의된 사안이었다.
그땐 그랬지만, 어쨌든 예상과는 다른 전개에 사분오열되었다. 언제든 간단히 깨질 무진과 마왕의 깃털 같은 우정이었다.
무진의 곤란한 표정을 보자, 죽어 가는 광천군은 통쾌했다. 이런 식으로라도 복수할 수 있다면 만족한다.
“……넌 실수했다. 크크크…… 헉!”
“이런, 젠장!”
왜 비웃고 지랄이냐고.
푸스스스!
성질을 참지 못한 무진의 가벼운 주먹질에조차 광천군은 버티지 못하고 부스러져 버렸다. 대가리가 먼저 박살 나는 바람에 더는 말도 못 하게 생겼다.
마왕이 없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게 성질 좀 죽였어야지.
‘이 새끼가 비웃잖아.’
좀 전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달라지진 않는다. 광천군의 정신을 지배하기는 불가능했다. 놈이 말을 해 주지 않는 이상, 알아내긴 어렵다. 어차피 부서질 놈, 조금 일찍 부서뜨린 것에 지나지 않았다.
‘검절은 아닐 테고.’
검절과 친위대는 제압되기 직전이었다. 발버둥을 쳐 봤자 검제, 자운진인, 철양진인, 생사철협의 합공을 버티기엔 역부족이었다.
죽을 놈의 마지막 앙심이라고 하기엔 광천군의 성향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억울하다고 그딴 식으로 협박하는 놈은 아니다.
일단 나가 보자.
응?
나가려고 했는데, 무량원의 살상진이 가로막는다. 이거 어째 일이 꼬일지도 모르겠다.
‘엿 된 건가?’
-그럴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