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King RAW novel - Chapter 537
536 뽀록났네(2)
검은 복면을 쓴 자들.
그들이 등장하면서 전세가 심상치가 않았다. 특히 복면인들의 중심에 선 사내는 절대의 고수였다. 그가 뿌리는 기세는 신주이십일강이 아니고선 상대가 불가능했다.
“……천룡무상강기!”
“천룡제!”
그의 정체가 삼제의 일인 천룡제란 사실에 모두는 경악했다. 그가 여태 살아 있는 것도 이상하지만, 정파의 빛으로 추앙을 받는 천룡제가 마신교도였다니 믿어지지 않았다.
“……검천비상!!”
“……검왕이다!”
취선을 필두로 남궁세가, 사천당문, 하북팽가가 나섰다. 결과적으로 저들이 적이 된 연유는 복면이 찢어지면서 드러났다.
“……흑강시!”
“말도 안 돼!”
신주이십일강이 강시가 되어 나타나다니, 마신교가 얼마나 무시무시한 적인지를 실감하게 했다. 손발을 자르고도 안심하지 않았는데, 그 이상의 파격이었다.
화르르를, 솨아아아!
저 위, 대회장의 상석은 초토화된 지 오래였다. 검후와 태양신군의 격돌이 만들어 낸 참상이었다. 불과 얼음의 상극이 누가 더 우위에 있는지를 증명한다.
“명색이 신군이란 자가 신념을 저버리다니, 무인으로서의 자존심도 없는 것이냐.”
“검후는 여전히 세상 물정을 모르는군. 저들을 보아라. 저게 과연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힘이라고 보는가.”
태양신군은 세뇌를 당하진 않았다. 그저 마신교의 힘을 보았을 뿐이다. 제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닿지 않을 극강의 무력. 그런 자들조차도 마신교의 도구에 지나지 않았다. 물론, 이렇게까지 극단적인 수를 쓸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그럼에도 따르지 않을 수 없는 연유는 두렵기 때문이다.
‘네년은 마신교의 무서움을 보지 못했기에 그리 당당한 것이다!’
태양신군도 배신하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저 꼴을 봐라. 저항하는 순간 목숨을 잃고 죽지도 못하는 괴물이 되어 버린다. 강시가 되어서 죽어서도 부림을 당하느니, 차라리 살아서 따르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맹주가 돼야 했었는데!’
그랬다면 무림은 피를 흘리지 않아도 되었다. 마신교는 안정적인 무림의 지배를 원했다. 이게 다 검제의 무모한 욕심이 불러온 파국이었다.
흥!
검후는 태양신군의 변명에 코웃음 쳤다. 고작 목숨을 잃는 것이 두려워 항복했다니, 태양신군이 무진의 맛을 봤어야 했다.
‘난장판이 따로 없구나, 이놈은 뭘 하고 있는 게야!’
취선은 판도를 예측하기 어려운 대회장의 난전에 한숨을 흘렸다. 그토록 대비했건만, 상황이 나아지기는커녕 최악으로 가고 있었다.
큭!
흑강시가 된 검왕은 까다로웠다. 원래도 강했지만, 사방으로 뿌리는 흑강시의 사기에 무인들이 맥을 못 추었다. 그래서 더 무시무시했다. 생전의 역량을 넘어선 강시를 만들어 냈다는 사실이.
“어르신, 한눈팔면 어떻게 해요!”
“죽겠네!”
“어서 본원진기라도 사용하세요!”
철호, 서문호, 태진이 검왕을 맡고 있었다. 다른 이들에게 맡겨서는 답이 나오지 않았다. 숨겨 놓은 전력을 모두 끄집어내고 있었다. 나이를 초월한 무력에 당천예와 팽무린은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강하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상상을 초월한 성장 속도였다. 어쩌면 저 나이에 절대경에 들어섰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상대는 검왕이었다.
검으로는 검제를 제외하면 따를 자가 없다고 알려진 검에 미친 자. 그런 검왕이 수십 년의 세월이 지나 흑강시가 되어 나타날 줄 누가 알았으랴.
천하신검의 소유자인 검왕이 펼치는 검은 굉장히 정석적이었다. 변검이나 환검과는 다른, 변칙적이지 않은 검의 기본이자 정수였다. 그러면 얼핏 상대하기 쉬울 거라고 보지만, 검의가 극한에 이르면 오히려 까다로웠다.
서걱!
철호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강기를 사용한 무쌍일점포가 싹둑 잘렸다. 태진이 검강을 발출하지 않았다면 검왕의 검격에 걸레짝이 되었을 수도 있었다.
혼자서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철호, 서문호, 태진은 한 덩어리가 되어 필사적으로 대응했다. 합격이 아니고선 검왕을 막아 세우기 어려웠다.
“어린놈들이 제법이군.”
“……말했어!”
강시의 언어는 ‘끼요요욧!’이 전부인 줄 알았기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오너라, 검의 정수를 알려 주마.”
“대체 어떻게?”
“유한한 인간보다는 낫겠지.”
검왕의 말에 태진, 서문호, 철호는 말문이 막혔다. 저 인간이 한 말의 진의를 알기에 소름이 돋았다. 검을 완성하기 위해서 인간을 버렸다는 뜻이 되었다.
“그래 봤자 사교의 도구일 뿐이잖아!”
“강시 주제에 고고한 척은!”
“인간으로서 세운 업적이라면 존중했을 텐데.”
무표정한 검왕의 눈빛이 일그러지는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서문호, 태진, 철호에게는 승산이 없었다. 버티고는 있지만,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저딴 말을 주고받다니, 누가 보면 여유롭게 이기는 줄 알겠다.
“어린놈들이 주제를 모르는군.”
“우리가 강시보단 훨씬 낫지.”
태진, 서문호, 철호는 몸에 생채기가 나며 피가 흐르지만 물러서지 않았다. 이런 정도로 물러서기에는 아버지이자 사부님에게 호되게 당한 세월이 아까웠다. 사부님에 비하면 아직은 많이 살 만했다.
허!
검왕과의 대치를 본 무인들은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흑강시가 되었다고는 하나, 검왕은 신주이십일강에 속했다. 셋이 합공한다고 해도 버티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았다.
불완전하긴 해도 절대경이 떠오른다.
“아까는 왜 진 거야?”
“전력을 숨기고 있었던 건가?”
“소림도 꽤 했잖아.”
오명의 재평가가 필요하긴 해도, 당면한 과제가 더 시급하기에 묻혔다. 곧 죽을지도 모르는 살얼음판 속에서 감탄이나 평가가 중요한 건 아니니까.
일단 살고 봐야지.
쿨럭, 주르르!
기회를 노려서 대력신권을 사용했던 오명은 허망하게 튕겨 나가 바닥을 굴렀다. 바닥을 짚고 일어설 때 기침이 나왔고 핏물이 흘렀다.
“……이럴 수가!!”
오명으로선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현실이었다. 저들의 대결에 끼기는커녕 다가서지도 못하고 있었다. 감히 자신이 들어갈 영역이 아니라는 듯 폭발적인 대결이었다.
“뭐 저런!!”
신검마협과 여인들의 합공을 보고 있노라니, 오명은 본사의 백팔나한진도 안 되겠다 싶었다. 더욱이 검왕을 상대하는 녀석들도 경이로울 만큼 대단했다. 개개인도 강하지만, 능수능란한 합격에 소름이 돋았다.
“……소승이 낄 자리가 아니었구려!”
씁쓸하지만, 오명은 현실을 인정해야 했다. 그는 자신이 있어야 할 곳으로 발길을 돌렸다. 저 안으로 파고들었다가는 합격을 방해하는 꼴이 되었다.
“……장로님!”
“오명아, 이쪽으로 오거라.”
눈을 돌렸던 오명은 믿어지지 않는 광경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다른 이도 아니고 자신의 스승이 배신자였다. 그것을 증명하듯, 사제인 오산의 머리통을 박살 냈다. 주변으로 피 흘리는 구파일방과 십대문파의 무사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 전부 불신에 사로잡혔다.
“……인세의 지옥이구나!”
차라리 생사대적이라면 목숨을 걸고 싸우다 장렬히 전사한들 아깝지 않았다. 그러나 존경하여 따랐던 스승과 장로들이 배신자였다니, 믿고 싶지 않은 현실이었다.
대문파의 무인들이 동요하는 연유였다. 다행인 것은, 취선을 비롯한 전대의 고수들이 중심을 잡고 있었다. 그들은 어떻게 알았는지, 이 황당한 사태에도 동요하지 않고 막아섰다.
이때 참장수를 비롯한 사십인도 참여했다. 그들은 짧은 시간 무진에게 혹독하게 갈굼…… 가르침을 받아 자기 역할을 할 수 있었다.
“이길 수가 있을까?”
수적으로는 압도적으로 유리하다. 그러나 신검마협을 몰아붙이는 자는 인간의 영역을 넘어섰다. 본신의 전력을 드러낸 신검마협은 전대의 고수들과 견주어도 부족하지 않았다. 젊은 패기를 고려하면 훨씬 날카롭고 예리했다.
“포기하지 않아?”
어째서?
오명은 의문이 든 순간, 부끄러웠다. 무인이라면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해서는 안 되었다. 설령 가망이 없다고 해도, 목숨을 걸고 싸워야 했다. 신검마협에게 가졌던 시기심을 자책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오명아, 이 스승을 공격하겠다는 것이더냐?”
“사부님, 성불하십시오!”
목탁은 없지만, 철곤이 바닥에 있었다. 마구니에 깃든 사부님을 위해 제자로서 눈물을 머금고 도리를 다할 뿐.
극도경세.
도의 물결이 결계처럼 퍼지며 세상을 장악했다. 남궁연화의 천뢰와 이서정의 빙룡이 사슬처럼 펼쳐지는 극천군의 도세를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썼다. 이대로는 도세에 휩쓸리며 먼지조차 남지 않을 것이다.
무호의 연환삼식이 극도경세를 찌르고 들어가지 않았다면 끝장났을 것이다.
“제법 잘 버티는군.”
극천군은 이렇게까지 버티리라고는 예상하지 않았다. 후일 본교의 숙적인 줄 알았더니, 이미 다 자란 용봉이 아니던가. 경지의 차이가 있기는 하나, 실전 전투에 강했다. 단순히 경험이 많다고 해서 이처럼 대응하진 못한다. 감각도 감각이지만, 자신과 같은 강자와의 사투를 매일 경험하지 않고서는.
“반드시 죽일 연놈들이었어.”
극천군의 나지막한 분노에 무호, 남궁연화, 이서정은 소름이 돋았다. 저자의 역량을 아직 가늠하지도 못한 상태였다. 남아 있는 전력을 모두 쏟아 내며, 합격을 퍼붓고 있으나 도리어 밀리고 있었다.
괴물!
천군이란 자의 무위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대결을 하면 할수록 벽을 느꼈다.
“이제 끝내지.”
“여태 끝내지 못했으면 주둥이만 살았네!”
그렇지, 우리 연화!
다른 건 몰라도 남궁연화의 배짱은 알아줘야 한다니까. 그 배짱이 나한테 주먹으로 날아와서 문제지만.
“흥, 누가 보면 우릴 바로 죽일 수 있을 것처럼 말하네!”
잘한다, 우리 서정!
냉철하게 상대를 깔아뭉갤 때의 모습은 정말 아름답다. 저 아름다운 얼굴로 자신에게 검만 안 빼 들었으면 좋겠다.
그래도 든든하다.
무호는 왠지 모르게 서글펐다. 지금은 괜찮아도, 앞날이 녹록지 않을 것 같다.
“이러면 좀 다르겠지.”
극천군의 극도신마공이 초월했다. 말 그대로 십성의 벽을 넘어 십이성에 도달한 것이다. 말이 되지 않는데, 한계를 가뿐히 넘어섰다. 한데,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는다.
오싹!
꿀꺽!
무호, 남궁연화, 이서정쯤 되면 변화를 알아챌 수 있었다. 같은 사람인데, 전혀 다른 존재가 되어 버린 것이다.
앞날은커녕.
당장 죽게 생겼다.
극도사계.
극천군은 도법으로 죽음의 세계, 망자의 영역을 완성했다. 무공과 사공의 합일이었다.
푸스스스!
도세에 스며든 도영에 닿기만 해도 강기가 소멸해 버린다. 마치 죽어 버린 강기, 연기처럼 흩어지는 광경에 무호, 남궁연화, 이서정의 표정도 죽어 갔다.
흐어어억!
합격으로 근근이 살아가고 있는데, 벽이 이단으로 높아졌다. 극천군의 사도(死刀)에 합격은 분해되고, 생사의 간극에서 간신히 벗어났을 뿐이다.
주르르르!
무호, 남궁연화, 이서정의 입가에 핏물이 흘렀다. 들끓어 오르는 기혈에 운신조차 불안정했다. 만상일여에 올라 자신만의 영역을 그렸으나, 극천군에겐 닿지도 않았다.
부르르르!
당장에라도 무릎을 꿇고 싶으나, 그럴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다. 극천군의 도가 멈추지 않았다. 이전과 달리 숨통을 끊어 내려는 듯 작정했다.
극도멸혼.
사지육신은 물론, 혼까지 뭉개 버리려고 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는지 무호는 선천진기를 토해내며 이서정과 남궁연화를 밀어냈다.
푸아아아앙!
도와 마주친 검.
대비가 극명하게 갈렸다. 속절없이 밀려 나간 무호는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숨은 쉬고 있지만, 언제 끊어져도 이상하지 않았다.
“강 랑!”
“이 바보 새끼가!”
이서정과 남궁연화가 급히 무호를 살피며 극천군을 막아섰다. 그러나 승패는 완전히 갈렸다. 도세에서 겨우 회피했을 뿐, 그녀들도 상당한 충격을 받은 상태였다. 극천군의 도를 더는 막을 수가 없게 되었다.
“부질없는 짓이다.”
극천군은 희망을 주지 않았다. 일도를 내리그으면 본교의 숙적이 될 씨앗을 처단할 수 있었다. 남은 잔챙이들이야 그리 문제 될 것도 아니었다. 오랜 공을 들인 무림의 장악과 혼란이 이런 식으로 흘러가게 될 줄이야.
그러나 이제 더는 본교에 저항할 자는 없다.
“가라.”
도를 휘두르려는 찰나, 극천군은 위화감을 느꼈다. 더는 위험이 없을 거라는 예상과는 다른 본능이 위험을 감지한다. 그는 망설이지 않고 방향을 전환하여 공간을 갈랐다.
꽈아아아아앙, 쩌어어어어억!
쩌저적, 파아앗!
대회장을 한순간 고요하게 만드는 파문이 번졌다. 누구도 그 엄청난 격전에 눈을 돌리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번지는 격렬한 파장은 대회장을 한순간 휩쓸었다. 견디지 못한 자들은 내상을 입고 쓰러지거나 피를 토한다.
큭!
도병만 남은 도.
본교에서 특별히 제작한 운철로 만든 자신만의 애도였다. 그래서 자신의 무공과 같은 극도로 칭했다. 애병이 박살 나며 생긴 반진력에 운신마저 일시적으로 제한당하고 말았다.
“……뭐냐?”
의문을 품기도 전.
꽈아아앙!
재차 폭발이 다른 방향에서 일어났다. 극천군으로서는 믿어지지 않는 광경이 벌어졌다. 자신을 일권에 무력화하고, 장악한 장내 속에서 살수를 펼친다.
푸스스스!
그 대상이 천룡제였다.
사위를 압도하던 천룡제의 상체가 한순간에 사라져 버렸다. 남아 있는 하체는 의문을 품었으나, 상대는 이미 다른 목표를 노렸다.
꽈아악!
어느새 검왕의 배후를 장악한 무진이었다. 일절의 틈을 주지 않는다. 단숨에 검왕의 머리통을 잡은 후 으스러뜨렸다.
꽈드드득!
휘잉!
무진은 남아 있는 검왕의 육체를 허공으로 던져 삼매진화로 태웠다.
화르르르!
검왕의 육체가 잿더미가 되어 휘날리지만, 무진은 멈추지 않고 남아 있는 흑강시를 허공섭물로 들어 올려 불을 질렀다.
화화화활!
끼요요욧!
흑강시의 발악은 백염에 휩쓸리며 잿더미로 끝이 나고 말았다. 무수히 많은 무인을 도륙하고 다녔던 흑강시의 허무한 최후였다. 특히 천룡제와 검왕이 일수를 버티지 못하고 흔적도 남기지 못했다.
솨아아아아!
대회장에 정적이 흘렀다.
아무도 감히 입을 열지 못한 채 지켜봐야 했다. 흑강시가 되었다고는 하나, 신주이십일강의 무인이었다. 그런 자들에게 시장판의 삼류 왈패만도 못한 최후를 선사했다. 인간적인 영역을 아득히 벗어났다.
저벅, 저벅!
흑강시를 처리한 무진의 발걸음만 대회장 안에 들렸다. 정적이 흐르는 가운데 동생의 상태를 살폈다.
무호는 그제야 앓는 소리를 했다.
“왜 이제 온 거야?”
“선천진기가 아깝냐. 이거나 먹어.”
활생단을 내어 준 무진은 자신을 노려보는 극천군과 마주했다. 그때까지도 사람들은 말을 잇지 못했다. 느닷없이 나타나 불리한 흐름을 단번에 역전시켜 버린 존재에 대한 경악이었다.
“……천운권!”
“……세상이 망했나?”
“……이건 꿈이야!”
“……어째서?”
충격적인 현실에 모두가 망연자실했다. 어떤 말로도 형언할 수 없는 천재지변이었다. 현실을 부정하고 싶은 강렬한 충동에 휩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