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King RAW novel - Chapter 539
538 몰랐을 때 잘했어야지(2)
“……천군께서!”
“……안 돼!”
“……살려!”
무진은 무형탄지공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무공이란 원래 손맛이었다. 무리 속으로 파고들어 배신자의 숨통을 철저하게 끊어 주었다.
일수절멸.
기격뢰.
한 수에 수십 명이 속절없이 터져 나가거나 찢겼다. 감히 대적할 수 없는 절대의 영역임에도 무자비한 손속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어른이 아이를 죽이는 것보다 더한 허무함이 맴돌았다. 항거조차 통하지 않을 격의 차이였다.
“사신이 아니고서야!”
“저게 정말 천운권이 맞아?”
“입 잘못 놀린 우린 어떡하지?”
“사문으로 찾아오는 거 아냐!”
무진이 본격적으로 살수를 쓰자 대회장을 휩쓸었던 혈전은 삽시간에 끝이 났다. 따지고 보면 천군과 흑강시가 죽으면서 저항 자체가 무의미했다.
서걱!
쿨럭!
검후에게 검을 허용한 태양신군의 얼굴엔 불신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대계의 실패에도 흔들리지 않았던 평정심이 와르르! 무너졌다. 무림에 출도한 이래로 승승장구했던 삶이 마신교와 부딪친 후 천외천의 벽을 체감했다. 그중에서도 천군은 감히 도달하지 못할 불가해였다.
그런 천군을 가지고 노는 저 놈은 대체 뭐란 말인가!
“……저건 대체 뭐냐고?”
“이번에도 흔들렸나. 연약하기 짝이 없는 신념이군.”
“닥쳐, 너 따위가 뭘 안다는 것이냐!”
“당신보단 많이 알겠지.”
“죽여 버리겠어!”
태양신공을 극한으로 쥐어짜 검후와 동귀어진하려고 했다. 그러나 태양신군의 멸화는 검후의 빙결에 사그라들었다. 팽팽하던 대결치고는 밋밋한 결말이었다.
하나, 당연하기도 했다. 태양신군의 의지는 꺾였다. 최강의 무인도 결의가 사라지면 빈껍데기에 불과했다.
털썩!
힘이 빠지며 주저앉아 버린 태양신군은 넋이 나갔다. 머리카락은 망나니처럼 휘날리고, 눈동자는 초점을 잃어버렸다.
“……처음부터 알았다면 이렇게 되진 않았어!”
“억울해할 필요 없다. 어차피 당신의 선택은 변하지 않을 테니까.”
“……나를 조롱하지 마라!”
“그렇다면 끝까지 싸웠어야지.”
“빙산의 일각일 뿐, 어디 그때가 되어서도 당당…….”
끝내려는 검후를 뒤로하고, 무진이 살포시 나타나 개소리를 지껄이는 태양신군의 목덜미를 후려쳤다. 채 분노를 토해 내기도 전 의식이 끊어지면서 기절하고 말았다. 그 즉시 각종 점혈로 태양신군을 꼼짝 못 하게 만들었다.
“어딜 편하게 가려고.”
모를 때야 손을 쓰기 껄끄럽지만, 알려진 다음에는 편했다. 무진은 태양신군을 강시로 쓸 생각이다. 다행히 금제가 걸려 있지 않아서 혼을 제압하고, 각종 약물에 담가서 개과천선을 시켜 줄 요량이다.
“영원히 본문의 개로서 남으라고. 크크크크.”
무진의 의중을 간파한 검후는 마른침을 삼켰다. 최소한 무인으로서 보내 주려고 했거늘, 그조차도 용납하지 않았다. 저런 식으로 쓰인다면 죽어서도 편하지 않을 것이다.
‘같은 편이라서 다행이구나!’
주변에 어디 또 좋은 재료가 없나 희번덕거리는데 소름이 끼쳤다. 차라리 머리가 터져 죽어 버린 자들이 영혼은 편할 듯싶다.
“아깝다.”
구대문파나 십대문파의 배신자 중에 쓸모가 있으면 평생 봉사할 기회를 주고 싶었다. 그러나 집 지키는 훌륭한 개로 쓰는 걸 저들이 탐탁지 않아 할 수 있었다.
스윽!
무진은 엉망진창이 되어 버린 대회장을 훑었다. 꽤 죽기는 했어도, 이만하면 아주 선방했다. 살아남았으니 이제부터 열심히 마신교를 쳐 죽이면 된다. 사문의 원수임에도 용서한다는 개소리를 지껄이면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후일, 선봉장은 다 정해져 있었다.
움찔!
마신교와의 전투를 위한 소모적인…… 훌륭한…… 도구…… 무인으로서 바라봤을 뿐이지만, 다들 오싹한 전율을 느꼈다.
‘도살자가 따로 없었다고!’
무진과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는 무인들의 사투가 있었다. 마주 보는 순간 염라대왕과 면담 예약이었다. 특히 지금까지 천운권을 조롱했던 자들은 찔리는 기색이 완연했다. 무림에서 주둥이를 조심해야 하는 연유를 깨달았다.
두두두두!
대지를 울리는 진동에 무진은 미간을 찌푸렸다.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다.
‘하여간 질기기는.’
-너만 할까.
***
꽈아앙, 푸스스스!
거친 폭발과 동시에 파편처럼 터져 나가는 살과 뼈들은 가공할 살상 병기였다.
하아아!
강기로 벽을 쳤던 권왕과 독왕은 피바다가 되어 버린 안가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갑자기 돌변하여 달려들 때까지도 염려하진 않았다. 무위를 극복하기에는 차이가 컸다. 무진의 염려가 과하다고 생각했었다.
하나, 악효천을 필두로 서슴없이 동귀어진을 펼치자 치가 떨리지 않을 수 없었다. 광기에 홀린 사람처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전원 폭사를 각오하며 달려들었기에 천하의 권왕과 독왕에게도 쉽지 않은 전투였다.
더욱이 선천진기를 격발시켰는지 내외력과 속도가 몇 배로 증가했다. 죽음을 도외시한 본원진기의 격발은 심지가 타들어 가기 전의 촛불처럼 강하게 불타올랐다.
당문의 독룡대와 황보세가의 적룡단도 적지 않은 손해를 입을 뻔했다. 대응이 조금만 늦었다면 반수 이상이 주검이 되었을 수도 있었다.
특히 안가에 미리 설치한 진법의 역할이 컸다. 단순 동귀어진이 아니라 사방으로 분산하여 빠져나가려고도 했다. 살상 병기나 다름없어진 무인이 외부로 빠져나가 폭사했다면 이 정도로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공간을 좁혀 놓은 대응이 최적이었다.
“믿기지 않지만, 녀석의 말대로였어.”
“이들 전부가 배신자였을 줄이야.”
소수의 배신까지는 용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전부가 배신자라니, 소름 끼치는 진실이었다. 마신교의 세작이 이토록 깊숙이 파고들어 활동하고 있었음에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니.
“쪽팔려서 접시 물에 코 박고 죽고 싶군.”
“심정은 이해 갑니다만, 녀석 앞에서는 안 할 겁니다.”
“하긴, 진짜로 접시 물에 코를 박힐지도 모르지.”
“능히 그럴 녀석입니다.”
자신들은 명색이 무림의 어른이다. 안마당에서 독버섯이 버젓이 자라고 있는데도 모르고 있었다. 녀석이 나서지 않았다면 무림은 대혼란의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을 것이다.
“어떻게 알았을까?”
“대륙의 모든 정보력을 손에 넣었으니 알아낼 수도 있었겠지요.”
“아니, 그랬다면 개방의 노개가 가장 먼저 알았을 거다.”
“녀석이 말해 주지 않는 이상 알 수 없는 일이군요.”
“이상하긴 하지만, 사실 중요하진 않다. 녀석이 군림을 원하는 것도 아니고.”
무진의 성향을 잘 알고 있기에 독왕과 권왕은 그나마 안심했다. 행여나 야욕이라도 가지고 있다면 누가 과연 막을 수 있을까?
더욱이 지금과 같은 격동의 시대엔 무진이 필요했다. 자신들만으로는 어려운 현실을 씁쓸하지만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한테 떠넘기지나 않으면 다행이겠지요.”
“그런 일은 절대로 일어나선 안 되지.”
독왕의 강한 의지에 권왕은 헛기침을 하고 말았다. 그동안 쌓인 게 많았던 모양이다. 나이 들어 부림을 당해서 그런지 몰라도, 물귀신이 되어 갔다.
“주변을 정리하시게.”
“그러지요.”
이놈이 또 무슨 사고를 치는지 알아봐야 했다. 그러나 안다고 해도 뾰족한 수는 없을 듯싶다.
***
신호가 울렸다.
흑천무제 단천경은 이 순간을 기다렸다. 정파의 추악한 위선으로 인해 사파는 초토화되었었다. 하지도 않은 일로 사파라 하여 탄압하고, 거슬린다고 하여 멸문을 시켰다. 그러고선 흑도를 관리하기 위해서 사파를 남겨 두었다. 직접 하기 껄끄러운 일들을 처리하고, 찌꺼기만 먹으라고 하였다.
불합리할 수도 있으나, 그것이 무림이다. 어차피 세상은 약육강식이 지배한다. 강하지 못하면 잡아먹히는 원초적인 세계다.
하나, 본인들의 추악함을 숨기려는 것은 위선이었다.
“이제는 너희들이 당할 차례다.”
사파를 규합하며 흑룡성으로 뭉쳤지만, 암흑신마의 미온적인 태도로 다시 흔들리고 있었다. 기껏 정파를 무너뜨릴 구심점을 만들었더니, 위선자들과 다르지 않은 선택을 했다. 더는 기다릴 수가 없게 되었다.
무림맹을 친 후, 흑룡성으로 무림을 통합하리라.
정파의 위선자들이 곱게 물러날 리 없으니, 선택의 여지는 없다. 무림맹의 위상이 예전과 다르다고 하나, 정파의 심장임은 분명했다. 흑룡성의 깃발이 무림맹에 나부끼는 것을 백도무림이 얌전히 지켜보고 있겠는가.
‘양패구상을 당했다면 더더욱 좋겠지.’
마신교의 천군이라면 무림맹이라도 감당하기 벅찰 것이다. 놈들이 휩쓸고 지나갔으니, 무림맹이 온전할 리 만무했다. 최소한 검제를 비롯한 절대고수는 살아 있지 않을 터. 설령, 목숨이 붙어 있다고 해도, 자신의 상대가 되기에는 부족했다.
단천경의 배후로 사도십이세 중 환월보, 패천문, 염왕궁, 사자궁, 군왕련, 혈륜가, 만마방이 따랐다. 남은 사도십이세는 흑천부처럼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다.
‘늙은이가 신물을 대체 어디서 얻은 거지?’
사도십이세의 신물이 풀리면서 단천경의 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흘렀다. 규합했던 세력이 깨지면서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가만히 두고 볼 수 없기에 무림맹을 노리기로 한 것이다.
한편으로 그도 흑천번을 얻기 위해서 애를 써야 했기에 편치는 않았었다.
“항복은 없다. 모조리 죽여라.”
“존명!”
무림맹의 내부는 심각했다. 그렇지 않다면 외부의 경계가 이처럼 허술할 리 없다.
가는 길을 막아서는 정파의 무인은 도륙했다.
이제는 무림맹을 지척에 두었다.
후후후.
단천경은 희열을 느꼈다. 가문이 무너지고 오랫동안 인고의 세월을 보냈다. 무림맹을 처단하고, 사도십이세를 규합하는 즉시 자신이 받았던 수모를 고스란히 돌려주리라.
그는 어린 시절의 수치를 잊지 못했다. 살기 위해 빌어야 했고, 도망쳐야 했으며, 비굴하게 고개를 숙였다. 긴 세월이 흘렀음에도 그날의 상처는 바로 오늘처럼 생생했다.
그때.
크크크크!
무림맹의 입구를 막고 선 사내가 히죽였다. 마치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듯.
그렇기에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미치광이가 아니고서도 분위기를 살피지도 못하는 어리석은 자가 아닌가.
“죽어라!”
흑룡성의 무인들이 달려 나갔다. 광인이든, 아니든 중요하진 않았다. 성주께서 멸살을 바란 이상 남은 것은 죽음뿐이다.
우웅, 파앙!
파스스스!
거력이 발생했다. 일순 공간을 잡아채자, 쇄도해 들어왔던 사십의 무인이 허공에 멈추더니 버티지 못하고 터져 나가며 가루가 되었다.
휘이잉!
정적이 흐르며 차가운 바람이 잘게 일었다. 살기등등했던 기세가 삽시간에 식어 버렸다. 눈앞에서 벌어진 광경에 돌진하던 자들도 얼어붙었다.
빠직!
예상치 못한 사태에 단천경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저 미친놈인 줄 알았더니 범상치 않은 무위다. 선발대가 비록 대단한 무인은 아니더라도, 저리 간단히 처리할 만큼 약하진 않았다. 무림맹을 치기 위해서 데려온 삼천의 무인은 사도십이세의 정예였다. 개개인의 무위는 최소한이 일류를 넘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