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King RAW novel - Chapter 54
053 암운
“팔강부터는 다를 줄 알았는데 또 이겼네!”
“제갈세가를 한 번도 아니고 연달아 격파했다고!”
“이쯤 되면 제갈세가와는 불구대천의 원수 아니냐!”
“그래도 우승을 하면 얘기가 다르지. 우승 후보한테 진 거니까.”
“제갈세가의 검이 최고는 아니잖아. 우승은 아직 몰라.”
대회장의 함성이 남궁세가 전체를 쩌렁쩌렁 울렸다. 대회의 열기가 하늘마저 놀라게 하고 있었다.
멍!
소룡대회로 인해 남궁세가로 이목이 몰렸으나, 남궁연화에겐 그런 것 따위 하등 중요하지 않았다. 대회를 하든 말든 의미가 없다. 그녀에게는 이틀 전의 대련이 여전히 꿈같았다.
“언제까지 멍하니 있을 거지? 혹시, 약속을 지키지 않으려는 거면 매우 곤란해질 거야.”
“너, 대체 뭐야?”
“알면서 묻지 마라. 네가 아는 그대로니까.”
“그러니까 말이 안 되잖아. 어떻게 너 같은 녀석이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문파에서 나올 수 있냐고.”
“너는 명성이 자자한 문파에서 태어나서 좋겠다.”
“빈정대지 말고, 기연이라도 얻은 거야?”
“맘대로 생각해.”
남궁연화는 무진의 무공을 파악하려고 노력했다. 지도 대련을 핑계로 무공의 연원을 살피려는 의도가 있었다. 막상 대련을 했을 땐 그런 생각 따윈 나지도 않았지만. 아직도 이틀 전을 떠올리면 온몸에 소름이 가시지 않는다. 다시는 상상하고 싶지 않을 만큼 끔찍한 전율이었다.
‘그 기세는 뭐지?’
무진의 기세는 무공만 뼈 빠지게 익혀서는 나오기 힘들다. 아수라의 지옥을 넘어왔다면 또 모를까. 그러나 현재의 강호는 마교나 혈교, 변황의 침범이 없는 평화로운 시기였다. 소규모로 혈전이 펼쳐진다고 해도, 무진과 같은 기세를 가진 자들은 보지 못했다.
‘야차나 지옥마가 아니고서야.’
남궁세가에서도 겪어 보지 못한 종류의 기세였다. 단순히 무공의 강함을 논한다면 무진과 비슷한 수준은 세가 내에서도 몇 있었다. 아버지나 그 형제들, 장로들과 호법들.
그들이 무진과 대적한다면 과연 이길 수 있을까? 그리 물어보면 남궁연화는 대답하지 못한다.
무공과 강함이 다르다.
물론, 일정 수준의 경지에 이르지 않으면 무용할 수도 있겠지만, 비슷한 수준으론 절대 무진을 이길 수 없다. 그런 결론이 나왔다.
“천뢰신권의 약점을 어떻게 안 거야?”
“넌 약점이 너무 많아서 굳이 알 필요 없었어.”
“그래도 체력 수련은 누구보다 열심히 했거든.”
“당연히 열심히 해야지. 남녀의 규격 차이에서 오는 태생적인 한계를 넘어서려면. 하물며 너는 작금의 수준에 만족하지 않잖아. 우물 안 개구리로 살 거면 지금처럼 하고.”
뇌기를 익히기 적합한 천뢰지체를 타고났다고는 해도, 여자는 여자다. 규격, 근력, 근골을 사내와 비교하면 차이가 벌어진다. 이를 넘어서야 그때부터 진정한 고수라고 볼 수 있다.
남궁연화는 분명 다른 이들보다 노력을 해 왔을 것이다. 그녀의 신체는 약하지 않다. 그러나 그건 규격 안에 있는 무인과 비교를 할 때고. 남궁연화는 규격 외의 고수가 되기를 원하고 있었다. 그러려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몇 배는 더 힘들고, 처절한 과정이 필요하다.
“좋은 스승을 만나서 운이 좋은 거야. 나 같은 스승은 어디 가도 없거든.”
“잘난 체 좀 그만할 수 없어!”
“잘난 체가 아니라 사실이잖아.”
“재수 없는 새끼!”
“맞는다.”
무진이 장난스럽게 주먹을 들자, 남궁연화는 황급히 십보 밖으로 물러섰다. 몸이 알아서 공포를 체감했다. 저놈은 장난이지만, 자신은 바닥에 팽개쳐져 내장 터진 개구리 신세가 되곤 했다.
“너무해! 난 여잔데.”
“누가?”
얄밉지만 남궁연화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옥에서 기어 올라온 악마 같은 놈이지만, 무공을 살피는 눈은 정확했다. 마치 자신과 동고동락하며 무공을 수련한 동문처럼. 어제오늘 대련으로 얻은 흔적들을 체화하는 것만으로도 예전과는 판이하게 다른 결과를 가져왔다.
-무식한 것들끼리 잘 어울리는군.
‘무공은 원래 몸과 몸의 대화로 하는 거야.’
-유진이 알면 가만 안 둘걸.
‘형수 이름 함부로 부르지 마라. 어디서 감히!’
무진은 남궁연화를 밀어붙이면서 마왕의 눈으로 무공을 살피도록 했다. 투심마안으로 잊어버리지 않도록 남궁연화의 뇌리에 각인시켰다.
“송호문은 검공이잖아.”
“특별한 권공은 아니니까.”
“그래, 너 잘났다.”
“네가 약한 거야.”
이 미친놈은 어떻게 하면 사람 열 받게 하는지 매일 연구하는 것만 같다. 같은 말을 하는데도 사람을 제대로 열 받게 했다. 맘 같아서는 한 대라도 쥐어 패고 싶은데, 역량의 부족함만 맛볼 뿐이다. 남궁세가의 직계로서 처음 맛보는 비통한 감정. 이렇게 무기력해도 되나 싶을 정도다.
‘비전 초식은커녕 무공의 근원도 모르겠어.’
무진은 자신을 상대로 대단한 초식을 쓰지 않았다. 아주 기본적인 초식으로, 비교하자면 도문의 육합권이 적합했다. 천지사방의 합을 중시하는 육합권의 완벽한 형태라고 할까? 그러나 기질 자체는 도가와는 상반되었다.
‘게다가 뇌기를 받아치는 차력미기는 사기잖아.’
너무 간단하게 받아쳐서 그때는 잘 몰랐다. 그런데 되짚어 보면 말도 안 되는 사기적인 수법이었다. 자신의 수를 완벽하게 꿰뚫어 보지 않으면 불가능했다.
“언제까지 상념에 빠져 있을 거야? 내가 시간이 남아도는 사람도 아니고.”
“아들 시합도 안 보고 술판부터 벌인 인간이 할 소리야!”
“다 보고 있었어.”
무진은 다 보인다고 했다. 내 마음을 투영하여, 너의 마음까지도 읽어 낸다고.
“짝눈 만들어 줄까?”
“험한 소리 하면 맞는다고 했을 텐데.”
대놓고 무시하는 무진을 보면 열불이 나지만, 남궁연화는 약속을 지켜야 했다.
할아버지를 만나게 해 주기 위해서 세가의 심처로 들어왔다. 여기부터는 직계나 허락받은 자만이 들어올 수 있었다.
“여기 아무나 못 들어오는 곳이야.”
“그런데?”
시큰둥한 무진이었다.
빨리 검제나 보고 가겠다는 의도가 명백했다. 그러고 보니 왜 검제를 보려고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만류귀종이라고 해도, 검법과 권법은 궤가 달랐다.
“가르침을 받기는 해?”
“예전에는 받았는데, 근래에는 폐관수련을 하셔서 못 받았어.”
“할아버지라며.”
“검제시잖아. 나만 혜택을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형제자매 간에 사이좋게 지내야지.”
“그랬으면 좋겠다.”
남궁연화도 그러길 바라지만, 권력 구도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모든 직계는 가주가 되기 위해 노력하기에 경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남궁세가의 검제가 기거하는 대연정(大衍庭)에 도착했다. 전대 가주의 집치고는 규모가 있거나 화려하진 않았다.
막 대연정에 들어서려고 할 때.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이냐?”
“할아버지를 뵈려고요.”
무진과 남궁연화를 가로막고 선 사내는 검을 잡는 오른팔이 있어야 할 자리가 허전했다. 바람이 살랑일 때마다 빈 소매가 맥없이 흔들렸다.
펄럭, 펄럭!
생김새를 보면 검패와 비슷하지만, 좀 달랐다. 검패도 선이 굵지만, 이자는 더 굵고 고집이 세 보였다.
예상대로 그는 검패의 형, 남궁제다.
독비검이란 별호처럼 팔을 잃은 모습이 처량해 보일 법도 하지만, 그는 강직한 분위기를 풍기려고 했다.
“아버지는 마지막 연공을 위해 외부와 접촉하지 않겠다고 하셨다.”
“폐관은 끝났다고 했잖아요.”
“그래서 내 말을 믿지 못하겠다는 것이냐!”
“그런 건 아니지만, 백부! 안 될까요?”
“외인까지 데리고 와서 아버지의 연공을 방해할 셈이더냐!”
남궁제의 서늘한 눈이 무진을 향했다. 대연정은 외인이 함부로 들어올 수 없는 장소라는 위협이 담겨 있었다.
후비적!
무진은 귓구멍을 시원하게 파고 건더기를 불어 바람에 휘날리며 시큰둥하게 서 있었다. 네가 뭐라고 하든 내 관심사가 아니라는 뜻이 명확하게 전달되었다.
꿈틀!
명백한 무시. 의도했다고 해야 할까? 그런 뜻이 담기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처한 상황에 따라서 해석은 주관적이었다.
남궁제의 서늘한 두 눈에 일종의 광기가 번들거렸다. 그가 평생을 감내해야 했던 굴욕이 떠올랐다. 그것도 한낱 삼류문파의 애송이로 인해서.
“겁이 없군.”
“저한테 하는 말씀입니까?”
“어설픈 격장지계 따윈 통하지 않는다.”
“팔이 하나 없어서 그런가, 속이 좁으시네요.”
“……?”
어떠냐, 이래도 격장지계냐.
무진의 사실 적시에 남궁제는 물론 남궁연화마저 화들짝 놀랐다. 설마, 저 말을 대놓고 할 줄이야. 이 인간이 무쇠를 씹어 드셨나. 남궁연화는 이 사태를 말려야 했다.
부르르!
남궁제에게 있어 외팔은 역린과도 같았다. 무인에게 중요한 오른팔을 잃었을 때의 충격은 여전히 그를 괴롭히고 있었다. 그 이후로 내색하지 않으려고 애를 썼고, 누구도 그 말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세가에서는 불문율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것을 무진은 스스럼없이 깨 버렸다.
“네놈이 죽고 싶은 모양이구나!”
“제가 거짓말을 한 것도 아니고, 외팔이를 외팔이라고 하지 그럼 뭐라고 합니까?”
그래,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장애가 있는 사람한테 대놓고 그런 말을 하면 당연히 욕먹어도 싸다. 광기 서린 살의를 발산하는 남궁제를 탓하기보다, 무진의 무례함이 문제였다.
“그만해, 이 미친놈아!”
“내가 뭘?”
“그걸 말이라고 해!”
남궁연화는 이 무책임한 놈이 제정신인지 아닌지 이제 확실히 깨달았다. 미친놈이다, 그것도 완전히! 백부의 오른팔이 잘리기는 했지만, 여전히 남궁세가를 지탱하는 검이었다. 오른팔로 익힌 검공을 버리고 왼팔로 다시 시작해 초절정에 이르렀다. 그 노력을 무시할 수 없었다.
“연화는 빠지거라. 네놈! 각오해야 할 것이다.”
“이상한 말씀을 하시는군요. 전 전대 가주님을 뵈러 왔습니다. 하온데, 의중은 물어보지도 않고 막으려고만 하는군요.”
무진의 물음에 살의를 풍기던 남궁제는 순간적으로 멈칫했다. 분명 불쾌한 질문이었다. 검제도 가만있거늘, 네가 뭔데 앞을 막냐는 무뢰한 질문임에도, 핵심을 관통했다. 검제는 폐관을 마쳤다. 연공 때문에 손녀와의 만남을 물어보지도 않고 막는다? 따지고 들면 이상했다.
“건방진! 네놈이 한 말을 책임져야 할 것이다. 아니면 네 잘난 문파도 무사하지 못할 테니까.”
“해보자고?”
문파를 건드리자 무진은 기세를 감추지 않았다. 내부에 웅크리고 있던 강렬한 기운이 활화산처럼 솟구쳐 나왔다.
움찔!
남궁제는 한 발 뒤로 물러서고 말았다. 건들거리는 왈패 같은 놈이 한순간 지옥에서 올라온 야차처럼 돌변했다. 몸이 느끼고 있었다.
‘이놈!’
남궁제는 분노가 싸늘하게 가라앉는 걸 느꼈다. 싸운다면 진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간단히 제압하긴 어려울 듯했다. 문제는, 여기서 되돌리면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 이놈을 끝장내고 싶다는 살의가 들끓었다.
그때.
무진이 포권을 취하며.
“신주이십일강을 뵙고 싶다는 열망에 무례를 범했습니다. 제가 한순간 눈이 멀었나 봅니다.”
의외의 모습이었다.
남궁연화는 이놈이 또 왜 이래? 도대체 뭘 잘못 먹어야 이럴 수 있어, 하는 표정을 지었다. 온갖 무례를 범하고, 이젠 사과를 하고 지랄이었다. 도무지 어디에 장단을 맞추어야 할지 갈피를 못 잡았다.
‘받을래? 말래?’
무진은 사과를 받아들여 달라 청을 하지만, 얼굴은 전혀 그런 기색이 아니었다.
받으려면 받고, 말려면 말라는.
부들, 부들!
남궁제는 끓어오르는 화를 주체하지 못할 뻔했다. 그러나 더는 소란을 피워서 좋을 게 없었다.
“꺼져라!”
“감사합니다. 다음에 이 은혜를 풀도록 하지요.”
“그 기회, 머지않을 것이다.”
“저로선 반가운 일이군요.”
무진은 자세를 풀고 돌아서며 남궁연화를 보았다.
남궁연화는 기가 막혀서 망연한 표정을 지우지 못하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무진은 미친놈이 맞았다. 어쩌자고 저런 미친놈을 데리고 온 건지. 팔자가 사나웠다. 이럴 줄 알았으면 이놈 안 만났다, 절대!
“안 가? 그럼 말고.”
무진은 머뭇거리지 않고 대연정의 문턱을 성큼성큼 넘었다. 멍하니 서 있던 남궁연화는 그제야 현실로 돌아와 백부에게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그리고 남궁연화는 소리쳤다.
“야, 그쪽 아니라고!”
“아, 이쪽이군.”
“왼쪽이야!”
“아, 그렇군.”
무진과 남궁연화가 사라지고도 남궁제는 그 자리에서 한참이나 노려보았다. 오른팔을 잃었을 때와 비견되는 분노였다. 감히 자신을 희롱한 놈을 가만둘 순 없었다.
빠득!
광기가 번들거렸다.
객잔으로 돌아온 무진은 푸짐한 상차림을 주인에게 부탁했다. 대낮부터 낮술을 즐겨 마셨던 무진이기에 주인장도 이상하게 보지 않았다. 주점 특산 술과 안주를 탁자 한가득 차려 주었다.
소고기, 닭고기, 돼지고기.
고기 삼종주에 맵고, 짜고, 달고.
기름까지.
몸에 좋은 요리보다 맛을 우선시하는 무진의 식성이 고스란히 반영되었다. 주인도 이젠 취향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남궁연화의 언성이 높았다.
“야, 이 미친놈아!”
“사람들 듣는데!”
“시끄럽고, 대체 왜 그런 거야?”
“뭐가?”
“네 눈엔 우리 가문이 우스워?”
“우습기는.”
네 가문만 우습나, 무림 전체가 우스워. 그러니 자존감 상하지 않아도 된단다.
-미쳤군.
‘나 전왕이야.’
자존감이 하늘을 찌르다 못해 천신과 맞먹을 정도지만, 무진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전왕 시절 무림을 같잖게 본 것은 사실이니까. 대부분의 절대고수가 죽었다고 해도, 무림은 마신교에 너무나 간단히 무너졌었다. 자신이 아니었다면 비벼 볼 여지도 없었다. 그러니 우습게 여기는 것도 당연하잖아.
“너! 너무 무례했어.”
“알아.”
“알면서 그랬다면 더 나빠. 백부가 손을 썼으면 어쩌려고 그런 거야?”
“안 썼잖아.”
남궁제는 무진의 사과를 받았다. 그것이 남궁연화에겐 이상한 일이었다. 백부가 그처럼 감정을 드러내는 것도 묘한 일이지만, 살의를 풍겼음에도 손을 쓰지 않았다. 백부답지 않다고 해야 하나, 어쩌면 남궁세가답지 않은 행동이었다.
“그 팔, 어떻게 잃은 거냐?”
“넌 몰라도 돼.”
자기들끼리만 알아야 한다면, 추측하기 어렵지 않았다.
“그럼 후계 경쟁이었겠네.”
“찍지 좀 마!”
남궁연화도 끝까지 아니라고는 하지 않았다. 비밀이기는 하지만, 세가 내에선 모르는 사람이 없다. 다들 알고 있음에도 쉬쉬하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그러나 이 인간은 모르고 있었다. 그냥 찍은 거다.
잘 찍어서 열 받는다.
“네 아버지한테 한이 많겠는걸.”
“말이 되는 소릴 해!”
“너는 네 팔을 자른 사람에게 순순히 충성을 다할 거냐?”
“정당한 대결이었어. 그리고 이상한 말로 가문을 욕되게 하지 마. 아무리 너라도 용서하지 않아.”
가문에 대한 애착은 당연한 것이다. 자기가 가문을 욕하는 일은 있어도, 남이 욕하면 참지 못하는 법이다. 그러나 가문에 대한 애착은 눈을 멀게 한다. 정확한 판단을 내리지 못하도록, 감정의 호소가 강력했다.
“형만 한 아우가 없다곤 해도, 그건 순리대로 흘러갔을 때의 일이지.”
“너도 네 동생한테 빼앗겼으면서.”
“난 아름다운 양보를 한 거고. 팔도 무사하잖아.”
“망나니로 소문이 자자하던데, 아름다운 양보는 개뿔!”
그새 조사를 했군. 남궁세가의 정보력이 살아 있기는 한가 보다. 그 정도면 나쁘진 않았다.
“가문의 사람들이 있었으면 무사하지 못했을 거야. 앞으로 말조심해.”
“새겨듣지. 그건 그렇다 치고, 검제는 언제부터 폐관 수련을 한 거야?”
“오 년 전부터.”
“깨달음이 있었나?”
“자세히는 몰라.”
무진은 대충 물어본 후 술을 마시고, 안주를 집어 입에 털어 넣었다. 대수롭지 않은 평온함이었다. 그것이 남궁연화의 심기를 건드렸다. 목숨이 왔다 갔다 했던 상황이었다.
‘두렵지도 않나?’
이 인간이 대책 없기는 해도, 먼저 나서지는 않는 성격이었다. 백부와의 대화는 좀 이상했다. 단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는데, 마음에 걸렸다.
“아니면 됐어.”
무진은 남궁연화와 술잔을 주고받으며 대작한 후에 방으로 돌아왔다. 남궁연화는 깨달음을 소화해야 한다며 먼저 일어났다.
무진은 의문을 떨치지 못했다.
‘마정이었지?’
-정확히는 마혼이라고 해야겠지. 교도라면 신정으로 부르겠고.
‘이 시기에 이렇게나 깊이 파고들었다는 거야?’
-전략의 기본이니까.
무진은 전왕이었을 때 무수히 많은 마신교의 마인을 격퇴했다. 수없이 싸우고, 또 싸웠다. 자연히 마인의 냄새를 누구보다 잘 맡았다. 이는 직감이고, 확신은 아니다. 그러나 거의 십할에 가까웠다.
그래서 무진은 무례를 알면서도 강하게 도발했다. 과연 어떤 식으로 반응해 올지 확인을 해 본 것이다.
마왕은 남궁제에게서 마혼을 느꼈다.
마혼은 마정을 흡입했을 때 생기는 일종의 성향이다. 겉으로는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전왕처럼 익숙하다면 또 모를까, 현시대의 무인은 마혼을 구분하지 못한다.
그것도 완벽하지 않았을 때나 그렇지, 마신교에서도 수위에 드는 마인은 마혼을 완벽히 감출 수 있었다.
남궁제는 암계를 감추었다. 어지간한 도발도 아니고, 뼈아픈 과거를 끄집어냈다. 그럼에도 남궁제는 사과를 받아들였다. 자존심 강한 남궁세가의 무인이 그런 모욕을 참는다? 누가 봐도 숨겨 놓은 꿍꿍이가 있음을 보여 주었다.
‘남궁제로 뭘 할 수 있을까?’
-모른다.
남궁제를 제압하는 선에서 끝을 낸다면 얼마든지 처리할 수 있었다. 당장 아무도 모르게 처리하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남궁제만이 아니라면 골치 아파진다. 실제로 남궁제 혼자서 남궁세가를 흔들기도 어렵다. 검제가 아니라 해도 검패를 비롯한 남궁세가의 주요 전력은 건재했다.
‘어지간한 짓으론 어림도 없을 텐데.’
-지금 당장은 확인이 어렵다. 네가 나선다고 해도 믿지 않을 테고.
암중 세력이 남궁세가에 수작을 부린다고 알려 준들, 저들이 순순히 믿을까. 남궁연화만 봐도 충분히 짐작이 되었다. 도리어 수작 부린다고 칼춤을 주지 않는다면 다행이었다.
‘어쩔 수 없나?’
-괜한 짓 하지 마라.
‘나도 알아.’
-곧 드러날 테니, 기다려.
무진도 아예 생각이 없지는 않았다. 마신교는 아직 수면 위로 드러나지도 않았다. 때를 봐 가면서 행동해야 했다. 아니면 남궁세가를 버리거나.
큰 애착은 없다.
내 가족과 가문이 먼저다.
‘정 안 되면 아들 데리고 튀지 뭐.’
-후후, 과연.
철호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