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King RAW novel - Chapter 546
545 최후의 결전(2)
“정녕 대단한 놈이구나.”
철양진인은 진심으로 감탄했다. 천군도 인간일진대, 합공을 막아 내고 심대한 타격을 주었다. 홀로 상대했다면 무릎을 꿇은 것은 자신들이 되었을 것이다.
독왕, 권왕, 검후도 경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천군의 강함은 능히 천하제일에 근접했다. 천하망종만 없었다면 무천군은 고금제일이라 불려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 정도로 무의 능력만 놓고 보면 놀라웠다.
처억!
전력을 쏟아 낸 몸은 과부하가 일어났고, 내외력의 소모가 극심했다. 쓰러졌어도 이상하지 않은데도, 신군산은 땅을 받침 삼아 일어섰다. 피로 물들어 혈인이나, 눈빛은 오히려 초연했다.
철양진인은 무초식의 도법에서 무천군의 기원을 찾아냈다.
“신도문의 후예였더냐.”
“기억하는 자가 있었군.”
철양진인은 신도문의 멸문을 알고 있었다. 또한, 무림이 신도문을 어떻게 대했는지도.
신도문은 대륙을 위해서 희생했지만, 문파는 멸문하고 말았다. 무림의 가혹한 순리였다. 정파의 한 축인 무당파의 도인으로서 안타까웠다.
“그렇다 한들, 마신교가 한 짓은 용서할 수 없다.”
“용서라. 아직도 그런 말을 하는구나. 하나, 그대들은 순순히 본교의 뜻을 따랐어야 했어.”
“피를 나눈 형제와 동문이 서로 칼을 겨누었어야 한단 말이더냐!”
“그랬다면 인간으로서 죽을 수는 있었겠지.”
언성을 높였던 양로단은 무천군의 자조적인 회한에 이질적인 느낌을 받았다. 마신교가 대단하다곤 하나, 전장의 승패는 결정이 났다. 마신교도 대부분이 죽었고, 흑강시는 파괴되었다. 천외천의 무력을 소유한 무천군도 더는 무의미한 저항이었다.
그런데 마치 자신은 할 수 있는 데까지 했다는 후련함도 있었다. 모든 사태의 책임에서 벗어난 초탈함이 보였다.
재앙을 몰고 온 당사자가 저래도 되는 걸까?
“수많은 사람을 지옥으로 떨어뜨리고도 반성조차 하지 않는 것이냐!”
“지옥이라 단정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무천군의 초연함에 분개한 양로단은 더는 좌시하지 않았다.
그 순간 소름 돋는 기운이 해남도를 뒤덮었다. 아니, 세상 전체를 뒤덮고도 남을 악의였다. 절대고수인 그들조차도 소름이 돋다 못해 굳어 버렸다.
“……이 무슨?”
해남도가 흔들렸다.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을 붕괴시키는 거악의 태동이었다. 감히 따르지 못할 악의에 저절로 무릎이 굽혀졌다.
“……무슨 짓을 벌인 것이냐?”
“내가 아니라 그대들이 자처한 것이다.”
“헛소리 지껄이지 마라!”
“이미 늦었다.”
무천군은 세상이 원망스러웠고, 사람이 싫었다. 그러나 문주께서 바라시는 파멸을 원하진 않았다. 무림을 멸해도, 인간으로서 남기를 원했다.
수백 년의 노력이 이제는 허사로 돌아갔다. 저 근원적인 악의, 마신의 권능은 인간의 통제를 불허했다.
‘문주님…… 아니, 아버지! 그리 원통하셨습니까?’
신군산은 옳고 그름을 판단하진 않았다. 그릇된 욕망에 지나지 않는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아들이고 싶었다. 저 모습은 문주님도, 아버지도 아니었다.
두드드드드드!
파문이 점점 커지더니.
꽈아아앙, 투콰아아아앙!
후아아아앙!
하늘로 솟구쳐 오르며 천지 사방을 어둠으로 물들였다. 단순히 하늘이 어두워졌다고 할 순 없다. 어둠과 함께 거대한 악의가 인간의 기질을 변질시키려고 했다. 어지간한 심력이 아니고선 오래 버티지 못한다.
“……이건 뭐지?”
“……이길 수 없어. 이길 수 없다고!”
“……인간의 영역이 아니라고!”
두려움과 공포가 휘몰아치며 전장을 고요하게 했다. 순수한 악의 태동에 저항할 의지조차 사라졌다.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만악의 근원이었다.
“형!”
“아버지!”
“사부님!”
무호 일동은 무진을 간절히 불렀다. 이런 기운은 처음이었다. 본연의 순수한 두려움과 공포가 밀려왔다.
다행히 희망은 있었다.
그렇기에 누구도 포기하진 않았다.
모두의 바람이 무진을 향했다.
이를 대변하듯.
투아아아앙!
사방을 휘젓는 악의와 격렬한 투기가 격돌했다. 악의가 공포를 유발한다면 투기는 피가 끓어오르게 한다.
쩌어엉!
보이지도 않는 거리에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이 전투가 전쟁의 판도를 바꾸게 되리란 걸 깨달았다.
후아앙!
만상이 갈라지고, 관통하고, 부서진다.
인외(人外)였다.
마신과 전신의 싸움이 이럴까.
신황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인간은 마신을 이길 수 없다. 그것이 진리이자 현실이었다. 그래야 마땅하거늘, 어째서 저항을 한단 말인가.
“소용없는 짓이다.”
“해 보지 않으면 모르지.”
신황의 권능이 무형도로 변하며 하늘을 가득 뒤덮는다. 도형이 검게 칠해지며 폭우처럼 쏟아진다. 삼라만상을 제압하는 악의가 대지를 뒤덮는다.
쏴아아앙, 슈슈슈슉!
푸아아앙!
대지로 떨어져 내린 권능이 폭발하여 하늘로 기둥을 새겼다. 이쯤 되면 사라졌어도 벌써 사라져야 했건만.
무진과 천경은 물러서기는커녕 하늘로 쏘아져 올라갔다.
쩌어엉, 퍼엉!
무진과 천경의 합격이 신황의 도격을 쳐 내고, 무형권을 발출했다. 하늘로 솟구치는 거대한 권형이 신황을 노렸다. 마신의 명을 거역하는 인간의 무한한 의지였다.
푸아아앙!
하늘이 유리잔처럼 부서지며, 파편이 떨어진 대지가 비명을 지른다. 인간의 타락에 분노한 신의 징벌이 이럴까. 모래성처럼 대지가 부서져 내린다. 그러나 시작에 불과했다. 전투는 시간이 지날수록 치열해져만 갔다.
권능과 권능이 상충했다.
마신이 된 신황은 천하 만물을 파괴할 힘을 갖추었다. 항거 불능의 절대력을 내포했다. 하지만 무진과 천경도 인외를 초월한 절대자였다. 전력으론 신황이 압도적이나, 전투에선 무진과 천경이 뒤지지 않았다.
권능은 분명 초월적인 전력이다. 초월 영역에 닿지 못한 자는 다가서지도 못한다. 그러나 그것이 만능이란 뜻은 되지 않았다. 비록 권능에서도 역량의 차이가 있겠으나, 승패를 결정짓지는 못했다.
스와앙!
기억을 완전히 흡수한 신황은 신도팔식을 권능으로 펼치고 있었다. 단순한 찌르기, 베기에도 허공이 베이고, 쪼개졌다. 빠르다는 개념이 사라졌다. 거리의 제한이 없이 공격했다. 반응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았다.
창조된 세상을 부수고, 새로운 세상을 연다.
스윽, 주르르!
전위를 맡았던 무진의 몸에 핏물이 튀었다. 극강의 육체임에도 상처가 생겼다. 좀처럼 볼 수 없는 광경이며, 위기가 분명했다. 그런 와중에도 무진의 눈빛은 점점 살아나고 있었다.
처음에는 피하지도 못했던 신황의 도격을 무진은 흘려 내며 파고들었다. 거리를 잡아챈 후 이어지는 전왕멸이 신황의 권능을 소멸했다.
“어림없다.”
“과연 그럴까.”
무진의 후위를 맡은 천경이 소멸된 공간을 찌르고 들어가 마왕인을 새겼다. 본질은 같으나, 전혀 다른 방향으로 재탄생한 마력이 신황에게 타격을 주었다. 같지만 다른, 극과 극의 성질이 섞이며 권능을 흐트러뜨렸다.
크윽!
여태 반응은커녕 무심했던 신황의 얼굴에 주름이 생겼다. 예상치 못한 흐름에 분노했다. 인간에게 상처를 입는다는 것 자체를 인정할 수 없었다.
“죽어라.”
화가 난 신황이 권능을 증폭하여 사방으로 공격했다. 반드시 분멸해 버리겠다는 거악의 분노를 담았다.
씨익!
위험천만한 공격에 무진은 희열을 느꼈다.
저런 식으로 무차별적인 공격이 통하리라 보는 건가. 마신이라고 해도, 이제 막 깨어난 애송이에 불과했다. 인간의 기억을 끄집어내어 도법을 펼치지만, 어딘지 모르게 미숙하다.
무진은 그런 틈을 놓치지 않았다.
죽을 수도 있는 사지가 분명한데도, 신황의 포화 속으로 찌르고 들어가 전왕투를 펼쳤다. 신황의 흐름을 끊어 내는 전왕공의 본질이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냈다. 전투를 거듭할수록 전장을 지배하는 전왕의 본모습이었다. 전투를 단순히 힘과 힘의 싸움으로만 봤다면 오산이었다.
퍼억!
신황을 감싸는 어둠의 방패를 부수고, 내부에 충격을 주었다. 권능과 결합한 전왕투기가 내부를 휘젓는다. 신황의 마정지기가 격노하며 밀어내려고 했다.
그러자 천경이 신황의 대마력이 온전하게 발휘되지 않도록 막아섰다. 마치 지남철이 서로를 밀어내듯이 마력과 마력이 상충하여 파격을 나타냈다.
신황으로선 생각도 해 보지 못한 타격이었다. 자신은 마신이 되었다. 인간의 무공에 상처를 입고, 흔들려선 안 되었다.
어째서 이놈들을 떨어뜨릴 수가 없단 말인가?
이해할 수 없는 현실에 신황은 당황했다.
무진과 천경은 신황의 흔들림을 내버려 두지 않았다. 좀 더 시간이 흘렀다면 신황은 무적자가 되었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 막 인간의 육체를 얻었다. 현실에 완벽히 적응하려면 마신이라도 시간이 필요했다.
물론, 무진과 천경이 아니었다면 시간 따윈 필요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필이면 천적이나 다름이 없는 상극과 마주했기에 벌어진 사태였다.
마신과 상극인 전왕, 마신의 본질을 아는 마왕의 합격은 신황에겐 그야말로 최악의 상성이었다.
“전마투의 위력이 어떠냐?”
“마전투다.”
“그래서 끝장을 낼 수 있겠냐?”
“젠장, 내가 만들었잖아!”
“그래서 어쩌라고?”
“넌 정말 빌어먹을 놈이다!”
“어허, 형님한테. 예의가 없구나.”
전마투나 마전투나 똑같지만, 천경으로선 많이 억울했다. 자신이 만든 합격술인데도 결정타를 먹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신황의 권능을 흐트러뜨릴 순 있어도, 천경의 본질은 또한 마정지기였다. 서로가 같기에 신황을 죽일 수는 없다. 결국, 무진이 아니고선 신황을 쓰러뜨리지 못한다.
“이게 바로 형님의 위엄이다.”
“시끄럽고, 어서 끝내!”
“어허, 형님이라니까.”
“닥쳐, 끝까지 지랄이네!”
자신을 두고 끝내니, 마니 하는 무진과 천경의 티격태격에 신황은 극도로 분노했다. 태어나자마자 처음 느끼는 격렬한 광기였다.
“죽어라!”
“안 죽어.”
무진의 주먹이 신황의 얼굴에 닿았다.
뻐억!
크게 휘청인 신황은 분노 이전에 당황했다. 말이 안 되지만, 고통이 느껴졌다. 인간만이 느끼는 고통이 점점 더 선명해지고 있었다.
퍼억, 크윽!
무진은 일전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았다. 한 번에 죽이려고 하다가 괜히 일을 크게 만들었다. 물론, 천경의 책임이 가장 컸다. 그때 그 말만 안 했어도 살아나지 않았을 테니까.
무진은 꾸준히 두들겼다. 신황의 강력한 공격을 스치듯이 피하면서 타격을 주었다. 그런 대치가 점차 일방적으로 변하고 있었다. 무진의 권격이 신황의 육체를 일방적으로 두들겼다.
커억!
피를 토한 신황은 작금의 현실을 믿기 어려웠다. 회복이 되지 않고 있었다. 내부를 파고든 놈의 투기가 마력을 끊어 냈다. 더욱이 순수한 마력에 혼탁한 마력이 섞여 통제되지 않는다.
퍼퍼퍼퍼퍽!
퍼억, 퍼억!
무진은 전왕멸을 잘게 쪼개듯이 퍼부으며 신황의 권능을 조금씩 소멸해 나갔다. 시간이 갈수록 위력을 더해 가며 익숙해졌다.
주르르르!
피투성이에 사람의 형체를 잃어 가는 신황은 분노가 아닌 공포를 느꼈다. 어쩌면 자신이 소멸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스쳤다. 이대로 있다가는 신황과 함께 사라질 수도 있었다.
‘……안 돼!’
때마침 천경이 신황의 등을 노렸다.
신황은 무진의 공격에 몸부림치면서도 살기 위해서 신형을 돌렸다. 천경과 신황이 마주 보게 되자, 서로의 쌍장이 교차했다.
쩌어어엉, 푸아아앙!
하늘과 대지가 쪼개지는 굉음이 터졌다.
신황은 이때를 노렸다. 전이를 통해 천경과 합일을 이루어 온전히 흡수하기로 한 것이다. 변했다고 하나 본질은 하나였다. 나로 인해 시작되었다면 이제 다시 돌아올 때가 되었다. 너는 나의 분신에 불과할 따름이니.
“지금이야!”
“아깝네.”
천경의 외침에 신황은 깨달았다.
속았다는 것을.
마지막 수단을 쓰도록 끊임없이 유도한 후, 육체를 버릴 때를 노렸다. 육체를 벗어난 마신의 권능을 천경이 일부 흡수하는 찰나, 십성을 초월한 무진의 전왕멸이 작렬했다.
-이럴……!
푸스스스스!
한순간 신황과 함께 마신의 원념까지 전부 소멸시켜 버렸다. 마지막 일격이라고 하기에는 대단치 않아 보였지만, 옆에서 본 천경은 체감하고 있었다.
호오!
무진도 감회가 새로웠다. 솔직히 이번 일격은 정말로 대단했다. 본인이 했어도, 다시 하기 힘든 권격이었다. 이렇게나 굉장했었다니, 대견하기까지 했다.
“그 정도는 나도 할 수 있다.”
“그러면 한 방 맞아 볼래?”
“방금과 같은 위력은 아닐 텐데.”
“그러니까.”
“……이 악마 같은 놈!”
너 정도는 죽일 수 있다는 무진의 오만함에 천경은 오만 정이 다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