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King RAW novel - Chapter 55
054 난 말했다(1)
“외숙, 이제라도 가서 축하해야 하지 않을까요?”
“하기는 해야겠지.”
“늦었다고 닦달하진 않으시겠죠. 그럴 분은…… 흠.”
“……그럴 게다.”
둘 다 확신이 서진 않았다.
일전에 대하객잔에 머물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갔었다. 때마침 객잔 주변에 사람들이 몰려 있어 호기심이 동해 살펴봤더니 그자와 현악검이 대치 중이었다.
현악검은 제갈세가를 대표하는 검수였다. 비록 다른 오대세가에 비하면 무력적인 측면에서 뒤떨어진다는 평이 있어도 제갈세가를 경시할 자는 무림에 없다.
‘대놓고 팼지, 명분까지 만들어 가면서.’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맞아 본 사람은 잘 안다. 그는 절대 손해 보는 짓은 하지 않는다. 엉뚱하고 폭력적이고 성급하나, 원하는 결과를 창출했다.
의도치 않은 행운인지, 계산된 큰 그림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 자체로 대단한 것이다. 자고로 운이 따라 주지 않으면 어떠한 계획도 이루기 힘든 법이다.
‘그래도 그렇지, 사방이 적투성이니, 원.’
무력은 보문상단에서 뼈저리게 경험했다. 그가 얼마나 뛰어난 무력을 갖추고 있는지 모르진 않았다.
최소 초절정의 반열에는 올랐을 것이다. 현악검을 가지고 놀았으니 어쩌면 당연했다. 청양 송호문에는 어울리지 않았다. 꾸며 낸 소문이 아니고서야, 그런 자가 망나니로 소문이 자자하다니.
실력은 둘째치고, 성격은 문제가 있었다.
불현듯, 위장이 아니라 본래 성격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망나니가 실력만 뛰어난 개 같은 상황이면 어쩌지? 최악의 가정이었다.
‘오대세가에 불을 지르고 다니면 어떻게 하냐고.’
황보세가와는 언제 어울렸는지 몰라도, 다른 세가는 송호문을 적대시하는 느낌이 강했다. 사방 천지에 적개심이 수두룩하다. 그래서 대회가 시작되는 동안 망설였다.
소룡대회가 치러지는 중 망설이다 사강전까지 오게 되었다. 찾아갈 것 같았으면 대하객잔에서 인사를 했어야 한다. 무심코 몸을 빼는 바람에 어정쩡하게 되었다.
‘영이가 날을 세우지만 않았어도.’
동생은 무진의 강함을 봤음에도 여전히 욕심을 내려놓지 않았다. 드러내진 않았어도, 보문상단의 실세로서 송호문을 견제했다. 위험한 처신이다. 압도적인 강자는 그 자체로 강력한 무기였다. 재력만으론 넘보지 못했다.
‘부질없는 짓이지.’
소룡대회에 참가한 강태진의 선전은 실로 놀라웠다. 비슷한 연령에선 적수가 많지 않았다. 참가한 대다수가 열여섯 살인 걸 고려하면 강태진의 천재성은 눈부셨다. 자칫 오대세가만의 잔치로 전락할 수 있는 소룡대회에 긴장감을 불어넣었다.
‘당연한 일이긴 한데, 살얼음을 걷는 기분이란 말이야.’
무진의 강함과는 별개로, 그가 보여 주는 괴행과 파격은 감당하기 벅찰 때가 있었다. 노파심일지 몰라도, 황보세가가 은연중 쩔쩔맨다는 느낌을 받았다.
과연 곽가장과 보문상단이 저자를 품을 수 있을까?
의문이 들자 망설였다.
하나, 사강에 든 이상 결선에 오를 가능성이 커졌다. 외면해도, 외면하지 않는다고 해도 송호문의 굴레에서 벗어나긴 어렵다.
‘형님의 명을 거절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결심이 선 곽철웅은 조카와 함께 대하객잔을 앞에 두었다.
대하객잔의 문을 열고 들어가 무진의 방을 찾았다. 객잔 주인에게 물어보니 어렵진 않았다. 워낙 대형 사고를 빵빵 터트려서 근방에서 벌써 유명했다.
무진은 아들과 방에 있었다.
따지고 보면 인사란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찾는 게 이치에 합당했다. 그러나 예의를 따져 봤자 손해 보는 쪽은 자신과 가문이었다.
곽철웅은 어렵사리 운을 뗐다.
멀뚱멀뚱 바라볼 때가 아닌데, 침묵이 흘렀다. 무거운 침묵이 불편하기 마련이거늘, 이 인간의 무신경은 천하무적이었다. 어떻게 된 인간이 어른을 앞에 세워 놓고 한마디를 하지 않는다. 그 자체로 압박이고, 그걸 노렸다면 놈은 괴팍함의 결정체였다.
“인사가 늦었네.”
“압니다.”
“상황이 여의치…… 알아?”
“현악검을 팰 때 그 자리에서 구경하지 않았습니까.”
“……봤나?”
“예.”
그 와중에 또 봤어?
현악검을 진정 개밥에 도토리로 봤다는 의미였다. 간단히 제압했을 때부터 보통이 아닌 줄은 알았지만, 그 이상일지도.
그래, 그렇다 치자.
봤는데 어째서 여태 찾지를 않았지?
그때 인사를 했으면 지금 이렇게 뻘쭘할 일도 없잖아. 보통은 아는 사람이 오면 나중에라도 알은체를 하는 것이 일반적인 상리거늘.
“그런데 왜?”
“대단한 일도 아니지 않습니까.”
곽철웅은 순간 말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현악검을 개 패듯 팬 일, 아니면 자신에게 인사를 하는 일? 전자나 후자나 기분은 동시에 나빴다. 게다가 어떤 말을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엉뚱한 말을 해 버리면 이자의 꼬임에 넘어가는 꼴이었다.
‘우려했던 대로, 상대하기 불편한 자로구나.’
그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기는 해야 하는데, 같이 있을수록 사람을 안절부절못하게 하는 유형이었다. 신중한 편인 갈효명이 처음부터 심기가 불편해져서 달려든 이유가 있었다. 그러다가 개 맞듯이 또 처맞았지.
그러고 보니, 왜 사람을 자꾸 구차하게 패냐고? 좀 성의를 가지고 패면, 흠! 그것도 그렇군.
‘술수에 말려들면 안 된다.’
이자는 상대를 화나게 만들어서 먼저 달려들게 하는 재주가 있었다. 그러고선 자신은 어쩔 수 없이 팼다는 그럴듯한 명분을 만들었다. 이는 처맞은 사람을 두 번, 세 번 죽이는 짓이었다.
“하실 말씀이 있습니까?”
“사강전 축하하네.”
“제 아들인데, 그 정도는 기본이죠.”
말려들면 안 된다고 다짐을 했지만, 곽철웅은 표정 관리가 잘 안 되었다. 태진의 선전이 대단하긴 해도, 보통은 손사래를 치며 겸양을 떨기 마련인데, 이 인간에게 겸손이란 건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일전의 가르침은 가문을 대신해 감사하네.”
“아내가 예쁘면 처가의 말뚝에 대고도 절한다고 하잖아요. 대단치 않은 일이니 담아 두지 마세요.”
담아 두지 말라면서 무진은 아내를 언급했다.
곽가장에 심득을 전해 준 것은 전적으로 아내를 위한 일이었다고. 앞으로 처신을 똑바로 하라는 일종의 경고였다. 지켜보겠다는 의도도 있었다.
-꽁한 건 알아줘야 한다니까. 왕이란 칭호가 아깝다.
‘왕은 사람 아니냐.’
황제도 밥 처먹고, 똥 싼다.
오지랖 천경이 빈정거렸지만, 무진은 하고 싶은 말을 담아 두지 않았다. 거창한 별호를 가지고 있으면 그에 걸맞은 품위를 보여야 한다고 하는데, 무진은 주변 평판보다 자기감정이 중요했다.
-그래도 돌아가는 사태를 봐 가면서 해야지.
‘꼭 그렇지도 않잖아.’
-하긴 무인에게 무공만큼 중요한 것도 없지.
‘압도적이면 자기들이 알아서 꼬리를 말거든.’
지금도 봐라.
모르고 있을 때와 달리 곽철웅은 순한 양처럼 경청하고 있었다. 감정이 상하는데도 침착함을 유지하려고 애를 썼다. 강자와 척을 지지 않겠다는 의도가 다분했다. 가문을 위해서 자존심을 내려놓았다.
속물 같지만, 세상의 이치가 그렇다.
“훈련한 티가 나는구나.”
“그때의 가르침을 고이 간직하고 있습니다.”
곽철웅과 함께 온 백천운의 성취는 보문상단에서보다 최소 한 단계는 발전했다. 이만하면 고만고만한 애들 사이에선 제법 실력을 발휘할 만하다.
무진의 예상대로 백천운은 원래보다 좋은 성적을 얻었다. 이회전만 통과해도 나쁘지 않은 성취였다.
그러나 자신보다 어린 태진이 사강에 올랐다. 비교 대상과의 친분에서 오는 괴리감이 자신감을 떨어뜨렸다.
그런 기색을 알아챈 곽철웅이 조카를 위로했다.
“사회전에서 하북팽가를 만나지 않았다면 더 좋은 성적을 얻었을 걸세.”
“그래서 하북팽가는 어디까지 올라갔답니까?”
“오회전에서 남궁세가를 만났네.”
“그렇군요.”
무진은 사실 확인을 했을 뿐이지만, 시무룩한 조카를 위한 곽철웅의 위로에 얼음 동동 넣은 찬물을 끼얹은 꼴이 되었다.
‘얄밉다!’
자기 아들은 오대세가를 밟고 올라갔다 이거지.
가문에 심득을 전해 준 일은 고맙기는 한데, 다시 생각해 보니 전혀 고맙지 않았다. 곽철웅에게 있어 인내심을 시험하게 하는 분노 유발자였다.
“결승에 선착하길 기원하겠네.”
“결승이야 문제도 아니죠. 그리고 이쯤에서 떨어지는 편이 나을지도 모릅니다.”
말을 해도 정나미 떨어지게!
곽철웅도 욱해서 감정을 토해 내고, 아차! 하는 불편한 감정이 그의 얼굴에 교차했다.
“자네 정말 너무하는군.”
“오해하지 마세요. 곽가장을 위해서 하는 말이니까. 감당할 수 있다면 모르겠지만.”
가라앉은 무진의 분위기에 곽철웅은 모골이 송연해지면서 섬뜩함을 느꼈다. 소룡대회에 숨겨진 내막이 있다는 불길함이 스쳤다.
장난일까? 그럴지도 모른다. 이 인간은 기만과 거짓에 능숙했다.
“알고 싶으세요?”
“아닐세.”
소룡대회의 숨겨진 내막이라면, 남궁세가와 관련 있을 확률이 높았다. 곽가장이 강소성 단양에선 이름 석 자를 내밀 수 있지만, 남궁세가와 비교한다면 부족함을 떠나 격이 맞지 않았다. 더욱이 오대세가의 장로급이 자리했다.
곽가장이 알아서 좋을 게 없어 보였다. 어설프게 파고들다 먼지가 될 수 있었다. 곽철웅은 자기 주제를 모르지 않았다. 그래서 선을 그었다.
한데, 사람의 호기심이란.
“궁금하시죠?”
“……아니네!”
말려들 뻔했다.
곽철웅의 등골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이 인간의 속내를 도저히 짐작 못 하겠다. 연이 있어 위해 주는 척은 하는데, 선이 분명히 있었다. 정해진 선을 넘으면, 사정을 봐주지 않는 단호함마저 느껴졌다.
급히 마음을 정리한 곽철웅은 어렵게 속내를 꺼냈다. 그가 무진을 찾은 이유는 따로 있었다.
“시간이 되면 곽가장에 들러 줄 수 있나?”
“공짜를 너무 좋아하시네요.”
속내를 간파당한 곽철웅은 깊은 한숨을 쉬었다. 가벼운 언행과 달리 산전수전을 겪은 노강호와 마주한 기분이었다. 사실 어느 정도는 예상한 대답이었다. 자신이 생각해도 염치가 없는 부탁이다. 그럼에도 가문을 위해 체면을 버렸다.
“언짢았다면 사과함세. 하지만 다른 뜻이 있었던 것은 절대 아니네.”
“농담입니다. 거리감 느껴지게 왜 이러세요. 전 유진이 처가에 편한 마음으로 가기를 원하는 사람입니다. 가족을 보러 가는데 거리감이 있어서야 되겠습니까.”
“그거라면 걱정하지 말게. 보문상단에 전폭적인 지원을 하기로 했으니까.”
“그런 거 바라고 한 일은 아니지만, 성의를 봐서 고민은 해 보죠.”
“이 은혜는 잊지 않겠네.”
무진은 아내에게 혹여나 있을 껄끄러운 장애물은 모조리 다 치워 버릴 계획이다. 그것이 설령 피를 나눈 혈육일지라도.
형님은 보문상단의 후계자로서 자기 역할만 충실하면 그만이다. 그 이상으로 번거로운 짓을 한다면 대가를 치러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