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King RAW novel - Chapter 56
055 난 말했다(2)
곽철웅은 백천운을 데리고 서둘러 객잔을 나섰다. 그로서는 남궁세가의 일에 관여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일어나지 않으면 좋겠지만, 불미스러운 사건이 발생한다면 될수록 멀리 떨어져야 안전했다.
‘강소성에 볼일도 있고.’
-기어이 불러들일 생각이구나.
‘그편이 가족을 위해서도 낫지 않겠어.’
-강호의 운명이 걸린 문제다.
‘언제부터 강호를 걱정했다고. 사실은 네 몸뚱이 걱정이 더 크잖아. 아니냐?’
-……알고 있었구나.
‘모르는 게 이상하지. 날 아주 호구로 봤구나.’
서로 호구로 보고 있었다.
누가 더 호구인지는……. 인생은 참 길다.
***
사강 대진이 나왔다.
태진의 상대는 남궁세가의 신룡 남궁현이었고, 철호는 사천당가의 베일에 싸인 신성 당천호였다.
대회를 치르는 동안 제검(制劍)이란 평가를 받은 남궁현의 검은 완성도가 높았다. 남궁현의 사강 진출은 누구나 예상을 했다. 모두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이름에 걸맞은 활약을 펼쳤다.
당천호의 사강도 예상에서 크게 빗나가진 않았다. 섬전이란 말이 무색할 만큼 빠른 몸놀림과 웅후한 권공을 선보이며 승승장구했다.
그에 반해 태진과 철호의 활약은 모두의 예상을 빗나갔다. 무명이나 다름없는 상태에서 역사를 써 나가고 있었다. 모두에게 보란 듯이 압도적인 실력을 과시하며 사강에 진출했다.
아비란 작자가 도중에 설레발을 쳐서 분위기를 흐리기는 했으나, 자식 자랑하고 싶은 팔불출 아비의 마음으로 잘도 포장되었다.
이게 바로 승리의 낙수효과였다.
입 싼 소리를 해도 실력이 되면 긍정적인 해석이 되었다. 힘의 논리는 시대가 변해도 바뀌지 않는 슬픈 현실이었다.
비호일검 강태진.
흉살마권 남철호.
어린애들 대회치고는 무척이나 거창한 편이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 별호가 자신의 것이 되려면 그에 걸맞은 실력과 악명이 자자해야 했다.
부들, 부들!
가공할 별호에 철호가 떨고 있었다.
“멋진데.”
“……내가 왜 흉살입니까?”
“몰랐어? 너 사람 되게 잘 죽이게 생겼어. 백정 중에서도 상백정일걸. 밤중에 갑자기 나타나면 네 사부도 놀라서 고꾸라질 거다.”
“……제기랄! 다 부숴 버릴 테다!”
이글이글 투지를 불태우는 철호였다. 가공할 살기는 아니더라도, 불사르지 않고서는 해소되지 않을 한을 발산했다. 대회장을 더욱 달아오르게 해 주었다.
-살성을 만들 생각이냐?
‘네 후예답다.’
-……그 말 취소해라. 난 잘생겼다.
‘얼굴값 하긴 매한가지잖아.’
따지고 보면 맞는 말이긴 한데, 천경은 굉장히 기분이 나빴다. 송옥이나 반안도 최소 삼수는 양보해도 부족할 최강의 미남이란 자부심이 있었다. 저런 흉악한 살인마의 면상과는 차원이 다르다. 마왕에겐 품격이 있었다.
‘마왕이 얼굴 따지긴.’
-나 얼굴로 마왕 된 거다. 너무 잘생겨서. 그 시절 내가 나타나기만 하면 계집들이 질질 쌌지. 하긴 넌 이런 감정 모르겠구나.
질질 흘리든 똥을 지리든.
무진은 그딴 것에 관심 없었다. 얼굴 뜯어 먹고 살 것도 아니고. 사내는 평범한 얼굴이 최고였다.
능력은 절대고수여야 하고.
“그러게 왜 여자를 패냐. 적당히 비슷하게 싸웠으면 됐을걸.”
“이게 다 저 녀석…… 크악!”
“내 앞에서 아들 욕 하면 안 되지.”
“……치사하게!”
내 아들이 아무리 못나고, 미워도 아비 앞에서 욕하면 화나지.
무진은 혈육우선주의에 근거해서 철호를 대해 주었다. 아비 없는 서러움을 만끽하며 울분을 마음껏 발산하기를 바랐다.
‘완전 마공인데.’
-기공이라고 봐야겠지.
철호의 성취가 눈부셨다. 지금도 공력의 질과 양이 일취월장하고 있었다. 울분과 한이 철호를 단단하게 만들어 주었다. 모진 풍파를 이겨 내고 성장하는.
‘그래서 그런가, 애가 아주 메말랐지.’
-마신교에 어울리는 인재긴 했지.
철호는 면상만으로 강호에서 먹어 줄 만했다. 딱 보면 웬만한 고수는 명함도 내밀기 힘들다. 그러니 공력과 연륜이 쌓일수록 흉성이 자자해지니.
“소녀 살인마다!”
“강호에 흉성이 떴어!”
“이젠 미남 사냥꾼이 되겠네!”
“상대가 당가라고!”
철호가 등장하자 대회장이 술렁거렸다. 면상만으로 좌중을 압도하며 색다른 의미의 인기인으로 부각되었다. 평범한 얼굴을 가진 사람은 이해하기 힘든 반응일 것이다.
“쯧쯧쯧, 애 상처받게, 어른이 돼서 뭐하는 짓이람. 인성이 돼야지, 인성이.”
주변 사람을 대놓고 탓하며, 자기는 외모에 편견이 없다고 주장하는 무진의 뻔뻔함에 철호는 이를 갈았다. 저딴 사람들의 말은 상처도 아니었다. 가장 큰 상처는 죄다 무진이 주었다. 그런 주제에 뭐가 어쩌고저째!
‘이놈의 강호, 전부 때려 부숴 버릴 거야!’
그래, 그래.
분노는 너의 힘이다.
“사강전 첫 시합이 있겠습니다. 당천호와 남철호는 비무대로 올라와 주기 바랍니다.”
와아아아아!
흥행성은 있었다.
어두운 분위기를 풍기는 당천호는 의외로 미남이었다. 당가를 상징하는 검은색 무광의 무복이 잘 어울렸다.
고독한 미소년으로 잘 자라 준다면 여자깨나 울릴 면상을 지녔다. 그가 차가운 눈으로 주변을 훑을 때마다 소녀들의 방심은 여지없이 흔들렸다.
과연, 나쁜 남자는 대세였다. 당연한 말이지만 미남은 기본이고, 배경 빵빵하고, 성격은 더러워야 가능하다. 그냥 나쁜 놈은 안 통한다.
“당가제일미남이다!”
“까야, 적련신장으로 저를 죽여 봐 주세요! 붉은 연꽃처럼 아름다운 연희예요!”
“연꽃이 시들었냐, 메기 같은 얼굴로 어딜 감히!”
“당 공자, 절 위해 부디 승리하길 기원하겠어요!”
“이 아줌마가 주책이야!”
역시 생긴 값을 했다. 그런데 실력도 좋고 가문도 괜찮으니 인기는 덩달아 따라왔다.
철호가 비무대에 오르자 분위기가 아예 달라졌다.
“와, 저 얼굴은 봐도 봐도 적응이 안 되냐!”
“우리 당 공자님 얼굴에 생채기라도 내면 가만 안 둬……. 까악! 이 살인마야, 어딜 봐!”
“눈깔 봐라, 사람 수백 명은 죽였을 거야!”
“저게 어떻게 열여섯 살이야. 나이 속인 거 아니냐고!”
“불혹도 쟤 앞에서는 존대해야겠다!”
철호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주체하지 못했다. 상처 입은 철호의 분노에 당천호가 기름을 부어 주었다.
“그 얼굴로 잘도 살아왔군.”
“뭐야, 이 새끼가!”
언성이 컸을까!
“역시 살인마야!”
“인성이, 욕하는 거 좀 봐!”
“당 공자님, 세상을 구해 주세요!”
그럴수록 철호의 철혈사자공은 무럭무럭 콩나물처럼 자라고 있었다. 세상의 온갖 불합리함을 부숴 버리겠다는 단호한 의지를 피력했다.
대회가 한창 열기를 띠고 있을 때 무진은 남궁세가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수상하게 여길 수도 있겠지만, 대연화가 있기에 의심은 받지 않았다. 권후 시절의 성깔과는 다르게 주변의 평판이 괜찮은 편이었다.
여태 내숭을 떨고 살았다는 거지.
“달라붙지 마, 나 유부남이다.”
“네 얼굴 모르는 사람 별로 없어. 그러니까, 이상한 걱정일랑 하지도 말라고!”
“다행이다.”
“허튼소리 그만하고. 그 말에 목숨 걸 수 있어?”
이 사람하고 있으면 괜히 신경질부터 났다. 따지고 보면 첫 만남부터 이상하긴 했다. 한판 붙자고 했더니, 사람을 개처럼 패고. 가르침을 달라고 했더니, 죽는 줄 알았다. 해 달라고 하면 해 주기는 하는데, 과정이 내 맘같이 않은 인간이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괴상망측한 인간이 또 이상한 말을 지껄였다. 듣고서 하도 어이가 없어 말문이 막혔었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 건지 고심을 해봐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목숨을 왜 걸어?”
“그러면서 나보고 믿으라고!”
“믿기 싫으면 믿지 마라. 누가 믿어 달래!”
“그게 할 소리냐고!”
무진의 시큰둥한 반응에 남궁연화는 목 끝까지 울화가 차올랐다. 이 인간은 겪으면 겪을수록 신선했다. 하지만 전혀 다른 의미로 신선하다. 사람을 짜증 나게 하는 데 아주 도가 텄다.
“선량한 사람이 충고하면 좋게 받아들이면 되지, 소리를 지르고 지랄이야.”
“네가 한 말을 되짚어 보고서 그런 말을 해! 넌 양심도 없냐!”
무진은 남궁세가에 혈사가 일어날 수도 있다고 경고를 해 주었다. 막을 수 있으면 막아 보라는, 아주 신사적인 충고였다. 나중에 잘못되기보다는, 사전에 차단할 수 있으면 남궁세가로서는 이득이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충고야.
“대체 무슨 근거로 그딴 허무맹랑한 소릴 지껄이는 거야? 증거라도 있어?”
“증거? 당연히 없지.”
“……?”
내가 미래에서 와서 그놈들을 아주 잘 안다고 할 순 없잖아. 결국, 감이라고 대충 둘러댈 수밖에 없다.
그리고 굳이 증거를 찾기 위해 생고생할 마음 없다. 남궁세가가 무너지든 말든 중요하지도 않고. 그 집요한 놈들이 증거를 남겼으면 미래에서도 찾아냈을 거다. 똑똑한 놈들도 찾지 못했는데, 내가 뭐라고 찾아.
“이 미친 새끼가!”
“맞을래?”
움찔!
참다못한 남궁연화가 쌍욕을 했는데도 무진의 반응은 예상과 달랐다. 내 말이 틀리더라도, 넌 내 말을 들어야 한다는 무책임이 다분했다.
어이없게도, 무진은 한다면 하는 인간이었다. 여기가 남궁세가고 남궁세가의 무인들이 둘러싸고 있어도 팰 미친놈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몸이 반응했다.
남궁연화에게 있어 무진은 여태 만나 보지 못한 미지의 생명체였다. 광인도 헛소릴 지껄일 때 주변은 파악한다. 그런데 이 인간은 자유분방이 넘쳐도 지나치게 넘친다.
‘참자.’
대연신공을 일으켜 심신을 가라앉혔다. 마음공부에 탁월한 대연신공은 정신을 단련하기에 제격이었다. 그녀로선 과격한 기운인 천뢰기를 다스리기 위해서 반드시 익혀야 했지만.
“다른 사람에게 말하면 네가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러니까 너한테만 말한 거지. 내가 그렇게 생각이 없는 사람이 아니에요.”
나는 널 믿고, 너한테만 말을 했다.
아주 신뢰가 철철 넘쳤다.
자기 집 아니라고 막말을!
남궁연화는 인내심의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가문에 혈사가 일어난다는 걸 어떻게 충고로 받아들이냐고. 하물며 책임도 지지 않는단다.
이 자식은 인생 자체가 아니면 말고라는 식이었다.
편하게 산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대책이 없다고 해야 하나? 전자든, 후자든 짜증 나는 인간임은 분명했다.
“아무리 너라도, 이쯤 되면 막나가자는 거지?”
“정 그렇게 믿기 힘들면, 독비검 그자를 감시해 봐. 뭔가 있을지 모르겠다.”
“자꾸 이런 식으로 나오면 나도 참아 주기 힘들어.”
“내 집도 아니고. 알았어, 그만할게.”
무진도 그쯤에서 멈추었다.
사실 그녀의 불우했던 기억이 상기돼서 한 말이었다. 될수록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러나 세상일이란 게 꽤 잔인하다. 벌어질 일은 꼭 벌어지거든.
‘아직은 권후도 아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