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King RAW novel - Chapter 62
061 거봐(5)
퍼억!
그러나 기대는 언제나 실망을 부르는 법.
검제의 얼굴이 팩! 하고 돌아갔다.
무진은 검제가 제 실력을 드러낼 기회를 내어 주지 않았다. 일부러 남궁제를 노리고 권풍을 발출할 때부터 검제의 반응을 의도대로 끌어낸 것이다.
검제는 무의식적으로 자식을 감싸고 있었다. 그렇다면 남궁제의 위험을 가장 먼저 알아챌 확률이 높았다.
-아니면?
‘거기까진 생각 안 했는데.’
-뒤를 캐야 할 거 아냐! 생각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잘됐잖아.’
전투 본능, 무진의 감각은 초월 영역에 있었다. 보기엔 맘대로 지껄였지만, 전투에서는 항상 십할의 확률이었다. 잘 찍는다는 말도 어찌 보면 맞는 말이었다.
“얼굴, 옆구리, 고자.”
무진은 대를 이을 걱정이 없는 검제를 고려해서 지극히 효율적인 공격 수단을 펼쳤다. 대는 이어졌고, 남궁세가는 혈족이 많았다. 고독사하지 않을 만큼 자식들이 많아 오히려 문제가 많았다. 그러니 이 모든 문제의 근원을 해결하려면, 고자는 어찌 보면 필수 불가결일지도.
퍽, 퍽, 퍽!
무진의 일방적인 공격이었다.
얼굴, 옆구리, 고환을 마치 갖다 대고 있는 것처럼 검제는 반응하지 못했다.
치는 족족, 다 처맞았다.
저게 과연 검제인지, 목각인형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검이 궤적을 그리지만 허무하게 허공을 베었다. 베고 난 후 이어지는 권공은 검제의 얼굴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었다.
주르륵!
찢어진 부위에서 핏물이 흐르고, 산발이 된 머리채가 볼썽사납게 흔들렸다. 이어서 찍힌 무릎에 허리가 꺾이고, 다시 이어지는 팔꿈치에 치명타를 입었다.
퍼억!
쿠다다당!
바닥을 볼썽사납게 구르는 검제의 모습은 생경하기까지 했다. 그 어떤 일에도 굳건했던 검제를 상기하기에는 거리감이 있었다.
툭, 쿠웩!
무진은 반사적으로 일어나려는 검제를 두고 보지 않았다. 자신의 우위를 끝까지 유지하며 검제의 품위를 박살 냈다. 일어나려고 할수록, 발버둥이 되었다.
퍽, 퍽, 퍽!
이젠 아예 일방적으로 때리기만 한다. 피할 필요가 없어졌다. 검을 놓친 검제는 무진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본능적으로 육체를 보호하지만, 온전히 피하진 못했다.
꽈악!
머리채를 잡은 무진은 들어 올려진 검제의 안면을 주먹으로 후려쳤다.
퍼어엉!
꽈당!
관자놀이에 충격을 받은 검제는 버티지 못하고 기절했다. 너른 오징어처럼 추욱! 늘어지면서 활력을 잃었다.
휙!
검제를 마무리한 후 무진은 돌아섰다.
멍!
마주한 자들의 얼굴엔 경악이 담겨 있었다. 자신들이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그런 얼빠진 얼굴들이었다. 서로 칼부림을 하는 주제에 한눈을 팔고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쌔앵!
무진은 냅다 달려들었다.
한눈을 파는 건 자유지만, 무진은 그 시간을 내버려 두지 않았다. 보법을 밟아 공간을 파고들었다. 단숨에 검진을 뚫고 들어가 무방비로 서 있던 맹한 놈의 면상을 후려쳤다.
뻐억!
꽈다다다당!
부자라서 그런지 몰라도, 치는 맛이 있었다. 역시 아비와 아들은 동시에 패야…… 어쨌든 주도권은 잡았을 때 방심하지 않고 힘껏 패야 했다. 도중에 맞다가 죽으면 운명이겠지만, 괜히 시간을 주어서 도망치면 곤란하지 않겠어.
크억!
불현듯 처맞은 남궁제의 안면이 시뻘겋게 물들었다. 코뼈가 부러지면서 숨이 막혔다. 그러나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가슴, 옆구리, 고환에 다시 주먹이 날아들었다.
퍼억!
흐어어어엉!
고통을 함께하지 못해서 미안하지만, 어쩌겠어. 때리기 좋은 위치였고, 막지를 않았다. 설마 거긴 공격하지 않으리란 안일함은 쓴맛을 봐야 고쳐지기 마련이다. 다음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것까지 걱정하진 않는다.
털썩!
힘을 잃은 남궁제는 바닥에 얼굴을 박은 채 고목처럼 쓰러졌다. 손으로 애처롭게 가랑이를 붙잡고 있지만, 불필요한 짓이었다.
헉!
무진은 멍하니 있는 놈들에겐 무형권을 선사해 주었다. 주관적인 입장에선 대단치 않은 무형권이지만, 받아들이는 처지에선 절반 사망이었다. 일곱 명 중 네 명이 가루가 되어 폭사해 버렸다.
스윽!
무진은 돌아서며 남궁연화를 보았다.
“약속 지켜라.”
끄덕!
남궁연화는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그리고 생각했다. 저 인간한테 개기고도 여태 살아남은 자신이 용하다는 것을.
오늘 본 내용을 누군가에게 말을 한들, 믿을 사람이 있을까? 천하제일의 거짓말쟁이가 되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검제를 일방적으로 패서 눕혀 버렸다. 그게 가능한 자가 대륙 전체에 있을지 의구심이 들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인간적으로 너무하잖아.
이렇게 쉽게 끝을 낼 수 있으면서 여태 왜 가만히 있었던 거야? 너무 쉬워서 허탈감이 밀려왔다. 치열하게 싸우다 다치고 죽었어도, 무슨 의미가 있냐고!
“뭐합니까? 배후를 밝혀야지.”
무력감에 정신이 가출했던 사람들을 깨우는 무진이었다. 저런 정신머리로 풍진 강호를 어찌 살아가는 건지, 원! 쯧쯧쯧.
그제야 현실로 돌아온 검패와 승천단은 의식을 잃은 남궁제를 제압하기 위해 움직였다.
“자식 키워 놔 봤자 아무 의미 없네.”
“……아!”
한쪽에 찌그러져 있는 노인네…… 아니 검제가 눈에 띄었다. 하도 어이가 없는 상황의 연속이다 보니, 다들 정신 못 차리고 있었다. 냉철함의 대명사인 검패마저 이때는 사리 분별이 되지 않았다. 그의 일생에 경험해 보지 못한 대이변이었다.
부르르르!
황망하게 가랑이를 붙잡고 의식을 잃은 남궁제의 몸에서 검은 기운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곧이어 육체가 반응하며 부풀어 올랐다.
-흑귀다.
‘알아.’
암흑기와 함께 고의 종류인 흑고를 몸에 집어넣으면 마혼과 반응을 하여 흑귀가 된다. 마신교를 대적할 때 초반에 흑귀로 인해 피해가 상당히 컸었다. 동고동락했던 아군이 적이 되어 동료를 물어뜯었으니 동요가 클 수밖에.
“일단.”
무진은 신속히 권풍을 발출해 변하는 세 마리부터 산산조각을 냈다. 변하기 직전이 가장 약했다. 일단 초기 변화를 끝내면, 육체가 강철보다 단단해진다. 그 전에 제압해야 손쉬웠다.
퍼엉, 퍼엉!
한 마리도 벅찬 남궁세가를 위한 배려였다.
갑작스러운 무진의 무형권에 놀랐지만, 남궁제의 변한 모습에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흑귀가 되면 육체가 반 배 이상 커지고, 전신이 흑귀자처럼 검게 변했다. 더욱이 육체의 변화만이 아니라, 전력이 최소 배 이상으로 강해졌다.
‘제압할 때까지 시간이 좀 있겠지.’
***
“흑고가 반응하다니.”
지금쯤이면 벌집을 쑤셔 놓은 것처럼 큰 소란이 일어났어야 했다. 외견상 남궁세가는 조용한 편이었다. 별다른 동요가 보이지 않았다.
더욱이 흑고가 반응했다.
고의 일종인 흑고는 복용자가 위험에 직면하면 신호를 보내게 되어 있었다. 흑고의 양고와 음고가 동조하면 살기 위해 복용자를 흑귀로 만든다.
변고를 알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음고가 격렬하게 반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패한 건가?”
검제를 금제했으니, 실패는 염두에 두지 않았다. 만약을 대비해서 인원을 데리고 오기는 했어도, 직접 전투에 나서게 될 거라는 예상은 하지 못했다.
“멍청한 놈.”
팔을 잃고 정처 없이 떠돌기에 극상승의 좌수검을 전수하고 공력까지 높여 주었거늘. 이런 간단한 일조차 해내지 못하다니, 불량품은 역시 고쳐 쓰는 게 아니었다.
“하는 수 없지, 계획을 변경한다.”
오늘 반드시 오대세가의 무인들을 죽여야 한다. 그래야 오대세가는 서로 반목하며 결속할 기회를 잃게 될 것이다.
남궁세가는 오대세가의 구심점이나 다름이 없다. 오랜 세월 고착화한 당금의 구도를 다른 오대세가도 반기진 않을 것이다.
만약을 대비해서 남궁제에게 비문을 만들어 놓으라고 했다.
이제부턴 시간 싸움이었다.
남궁제가 실패했다곤 해도, 음고가 반응을 한 이상 흑귀로 변했을 터. 남궁세가라도, 단숨에 제압하긴 힘들 것이다.
오싹!
갑자기 오한이 든 사람처럼 소름이 돋았다. 본능적인 경고가 뇌리를 강하게 울렸다.
“모두 물러……!”
채 말이 끝나기도 전이었다.
슈앙, 꽈아아아아아앙!
쏘아져 나간 가공할 경력이 지축을 흔들어 놓으며 허공으로 버섯구름을 형성했다. 사방으로 퍼지는 경력의 파문에 공간이 갈가리 찢기며 터져 나갔다.
후아앙!
어둠을 진하게 물들이는 흙먼지 사이로 붉은 선혈이 열기에 타들어 가며 메케한 냄새를 풍겼다.
반경 십장이 초토화되었다.
“……이게 대체?”
그도 충격에 나가떨어져 바닥을 짚으며 겨우 일어섰다.
내상이 가볍지 않았다.
‘……고수다.’
상상을 초월하는.
그렇지 않고서야, 이처럼 허무하게 당하진 않는다. 상승의 고수가 야음을 틈타 기습을 가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대개 고수의 반열에 들수록 기습을 등한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상대를 알아내야 했다. 이와 같은 강자가 이름도 알려지지 않았을 리 없다.
퍽, 푸악!
어둠을 가리는 먼지 속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생사의 경계가 사라지고, 죽음의 대지로 변하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먼지가 가라앉으며 온전히 어둠만 남았다.
정적이 흘렀다.
허억!
너무 놀란 그는 말문이 막혔다.
어둠에 홀로 서 있는 자가 있었다. 그는 나른한 오후 산보를 마치고 돌아온 듯 평온해 보였다. 마치 작금의 참살과는 무관한 사람처럼.
저벅, 저벅!
그는 천천히 걸었다.
스륵!
신속히 뭔가를 하려고 했다. 그러나 상대는 그마저도 알고 있다는 듯 히죽였다. 그 증거로 몸 안을 파고든 경력이 기혈의 흐름을 훼방 놓았다. 그가 느긋하게 걸어오는 이유가 있었다. 처음부터 제압해 놓은 상태였다.
“알 만한 사이니까, 어설픈 짓 하지 말자.”
마인의 지독함을 수도 없이 겪어 본 무진이기에 빈틈은 내어 주지 않았다. 그래서 완벽하냐고 물어본다면, 그건 다른 문제였다.
“……네놈은 누구냐?”
“어디 얼마나 알고 있나 볼까.”
무진은 살짝 얼굴을 변용한 상태였다. 이놈들은 이상한 술법을 잘 쓰기에 얼굴을 알려 주면 곤란했다. 어둠과 공력으로 공간을 일그러뜨렸다.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알아. 너 같은 조무래기가 중요한 정보를 알고 있을 리 만무하잖아.”
“어떤 수로도 내 입을 열지는…… 흐억!”
“흑살대구나.”
마왕의 투심마안을 발동했다. 놈의 눈을 통과하여 영혼을 움켜쥐었다. 이 수가 통할 거란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최소한의 정보는 제공해 주었다. 이전에도 경험해 봤듯이 이놈들은 금제가 걸려 있었다. 특성상 일정 선을 넘어가면, 금제가 자동으로 발동해서 붕괴했다.
크어어어억!
괜찮아, 소리 질러도.
기막 쳤다.
사람에겐 밤에 조용히 잘 권리가 있다. 투심마안의 침투로 고통에 시달리는 흑살 십호의 비명이 어둠을 울렸지만 멀리 가지 않았다. 육체의 고통을 넘어 영혼의 고통은 인간의 한계선을 가뿐하게 초월했다.
그 여파로 흑귀는 백 년의 세월을 직통으로 맞은 사람처럼 쭈글쭈글 변해 갔다. 징그러운 광경이기는 한데, 무진은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참, 이놈의 조직은 정이 안 가. 왜 이렇게 정보가 단편적이야.’
-인생을 날로 먹으면 탈 나는 법이다.
‘쉽게 가면 어디가 덧나냐.’
-세상이 그리 쉬웠으면 나와 네가 돌아오지도 않았겠지.
그래도 아예 소득이 없진 않았다. 어떤 식으로 나오는지를 알게 됐으니, 대비를 한다면 출혈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물론 말을 잘 듣는다는 전제가 깔려야 하지만. 듣지 않고 자기 멋대로 한다면, 도륙당하겠지. 그런 것까지 신경 써 줄 필요는 없다고 본다. 인생은 원래 주관적이니까.
‘이제 정산을 해 보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