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King RAW novel - Chapter 70
069 동냥아치(4)
“……살려!”
“빌지 마. 어차피 죽일 거니까.”
“이 악독…… 크억!”
“너희들은 왜 매번 하는 말이 똑같냐.”
너무 속 보이잖아.
올 때는 자신만만하게 오고선, 상황이 이렇다고 구질구질해지다니, 매우 인간적이었다.
탓하지는 않는다.
인간은 자기가 처한 상황에 따라서 수도 없이 생각이 바뀌는 존재니까. 하물며 살기 위한 구질구질함은 본능이었다. 이를 탓해 봤자 큰 의미는 없다.
번쩍!
살려고 바둥거림에도, 무진은 투심마안을 발동해 놈의 영혼을 관통했다. 단숨에 파고 들어가 알고 있는 정보를 낱낱이 파헤쳤다.
“어휴, 많이도 죽였네.”
예상보다 훨씬 나쁜 놈이라서 매우 흡족했다. 이렇게나 사람을 많이 죽였다면 쌓아 두고 있는 업보가 많을 수밖에 없다.
“쯧쯧쯧, 이 불쌍한 영혼을 어찌할꼬!”
크아아아아아악!
괜찮아, 소리쳐도. 이 일대에는 사람이 없거든. 너희들도 알고 왔으니 자유롭게 소리치라고.
바들, 바들!
몸을 떨어 대던 강자기의 육신이 쏟아지는 빗물에도 불구하고 말라비틀어진 목내이처럼 쭈그러들고 있었다. 몸의 수분이 거의 날아가 버렸는데도 살아서 바동거리는 모습이 참으로 기괴하고 인간적이었다.
푸스스스!
곧 완전히 말라 버린 강자기는 마안에 흡수되듯 생기를 빨려 영혼마저 승천하지 못하고 소멸했다.
커억!
강자기가 죽자, 남은 일견과 이견도 뒤를 따랐다. 태진과 철호의 무력과 합격만 높여 주었다.
“주변 정리하고 있어. 잠시 갔다 올 데가 있으니까.”
무진이 자리에서 일어나 빗속으로 사라지고 나서야, 태진과 철호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태진이 철호를 보며.
“이래도 부러워?”
“……너한테는 안 져!”
그렇지, 할 말 없겠지.
***
“노사께서 행차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다른 일도 아니고, 루주의 부탁을 어찌 외면할 수 있겠소.”
“마음만으로도 든든합니다.”
“미력하나마 힘이 되어 드리겠소이다.”
웃는 상의 다소 풍만한 체격의 중년인과 도문의 도사처럼 선기를 풍기는 노인이 술잔을 건네며 화기애애했다. 마치 정도의 협사처럼, 위선…… 교양이 넘친다.
‘들인 돈이 얼만데, 당연히 찾아와야지.’
‘체면은 챙겨 줬으니, 알아서 잘 모셔라.’
그러나 속내는 이해득실을 따지는 인간 군상의 끝판왕들이었다. 조금이라도 손해를 보겠다 싶으면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겉으로 보이는 마음씨 좋은 동네 아저씨와 도량 깊은 도인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성향이었다.
이것을 둘이 모르냐?
그렇지도 않다. 알면서도 이해관계가 잘 맞아서 함께해 왔다. 이 바닥의 생리는 의리가 아닌, 철저히 이해득실에 따라서 움직였다.
“나를 보자고 한 용건이 무엇이오?”
“사실 그리 큰일은 아닙니다. 오늘따라 제 마음이 조금 적적해서 노사를 모셨습니다. 그에 합당한 대가는 충분히 지급하겠습니다.”
“대가라니요, 루주의 인품이야 소문이 자자하지 않소. 다만, 요즘따라 기력이 쇠해 기대한 만큼 적적함을 달래 드릴 수 있을지 걱정이오.”
적지 않은 돈을 썼으니 그에 걸맞은 활약을 하라는, 귀한 몸을 이끌고 왔으니 합당한 액수를 보장하라는 뒷말은 굳이 하지 않았다.
“사천에서 특별히 공수한 검남춘입니다.”
“나이가 드니 술이 잘 안 받기는 하지만, 성의를 봐서 한 잔 더 함세.”
호랑말코 같은 인간이 술을 마다할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않는지, 중년 사내는 술잔에 가득 따라 주었다.
부르르!
빈 잔에 술을 따르던 적야루주 장기철은 술상의 진동에 미간을 찌푸렸다.
초대를 받은 검노사 섭장생도 진동을 감지하고 심상치 않음을 간파했다. 이 밤중에 일반적인 진동도 아닌, 기의 파문이 번질 리 만무할 테니.
“루주께서 하지 않은 말이 있는 것 같소이다.”
“우리 사이에 말이 꼭 필요하겠습니까.”
섭 노사의 의도에 장기철은 내색하지 않았지만, 속으로 치를 떨었다. 이 양반이 생긴 것과 달리 돈을 더럽게 밝혔다. 도문의 선인 같은 모습은 사기 치기 위한 포장에 불과했다. 하지만 돈 외에는 큰 문제가 없으니 관계를 유지할 뿐이다.
‘그나저나 웬 소란이야?’
느낌이 좋지는 않았다.
“밖에 누구 없느냐!”
장기철은 사태를 확인하기 위해 수하를 불렀다.
흠칫!
폐부를 관통하는 소름에 장기철과 섭장생은 자리에서 일어나야 했다. 바늘방석에 앉은 날이 잔뜩 서 있는 듯한 위화감을 느꼈다.
꽈아아아앙!
위화감이 선지에 떨어뜨린 먹물처럼 번지고, 밤을 어지럽게 울리는 굉음이 포효했다. 순식간에 전체로 번져 간 파문이 적야루를 휘감고 돌았다.
“……칩입자다!”
“……누구냐!”
“여기가 어딘 줄…… 크아아악!”
밤을 어지럽게 하는 침입자는 문답무용, 폭력을 쏟아 냈다.
아닌 밤중의 난동이지만, 어느 정도 경계는 하고 있었다. 그러나 폭력의 난이도가 상상을 불허했다. 그들이 감당할 범위를 아득히 초월하고 있었다.
푸아아앙!
폭발하고, 부서지고, 날아가고.
“이거, 생각보다 심각하구려.”
“원하는 대로 줄 테니, 그 입 좀 다무시오.”
섭장생의 이죽거림에도 장기철의 심력은 침입자에게 쏠려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만약을 대비하고는 있었지만, 범위를 상회했다.
‘실패했나?’
혈견은 적야의 가장 중요한 전력이었다. 실패는 염두에 두지 않았거늘.
‘대체 누구야?’
산에서 내려온 무진은 적야루에 도착했다. 적야루는 합비의 외곽에 자리하고 있었다.
불이 들어온 걸 보니, 경계가 제법이었다. 실패를 예상하지 않으면서도, 만전을 기하는 습관은 감이 좋다는 의미였다.
“눈치가 빠른 놈일수록 방법은 하나지.”
-다른 방법은 쓸 생각도 없었잖아. 언제부터 전략이 있었다고.
말이 그렇다는 거다.
다른 꿍꿍이가 있든 말든,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어떤 이유든 나를 공격한 이상 대가는 죽음뿐. 다른 것도 아니고, 돈 때문에 사람을 죽이는 놈들에게 자비는 사치지.
“웬 놈이냐!”
“보면 모르냐.”
강도…… 정의의 사도지.
하마터면 없는 말을 할 뻔했다. 혹시 듣지 않았을까, 노파심에 경비를 서는 놈들의 면상을 박살 냈다. 순번으로 경계를 섰다면, 미안하지 않게 다음 순번도 죽여 줄 예정이다. 어차피 뒈질 놈들인데, 먼저 죽는다고 억울해할 필요 없다.
뿌가가각!
대가리가 사라진 이상 지옥에 가서도 의사 표현의 자유는 없는 셈으로 쳤다. 나중에 염라대왕에게 이실직고한다고 해도 부끄럽지는 않았다. 다만, 회귀가 가능하다는 걸 안 이상, 사후세계가 겁이 나기는 했다.
-천하의 전왕이 귀신을 무서워하는 거냐?
‘당연히 무섭지, 귀신 안 무서워하는 인간이 어디 있어!’
사람이면 쳐 죽이면 그만인데, 귀신은 안 죽잖아.
도사도 아니고, 부적을 쓸 줄도 몰랐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사특한 기운이나 사술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연유는 몰라도, 전왕공의 공능으로 받아들였다.
“침입자다!”
정문을 요란하게 깨부수고 들어가, 떨어져 있는 검을 주워 휘둘렀다. 이제부터 검의 진의를 보여 줄 요량이었다.
검을 다루는 데 어려움은 없었다. 어차피 손의 연장선상에 불과했다.
베고, 찌르고.
다만, 요령은 있다.
작게 베고, 크게 베고, 얕게 베고, 적당히 찌르고, 세게 찌르고, 교묘하게 찌르고.
강약을 조절하여 형을 이룰 뿐.
누가 봤다면 도둑놈이란 소리를 들어도 할 말은 없다. 검의 오의를 배우지 않았음에도 비슷하다 못해, 거의 빼다 박은 수준이었다. 수박의 겉을 핥지만, 위력은 속살만큼 달달…… 강력했다.
스왁, 꽈아아앙!
무진은 공력을 아끼지 않았다. 어차피 남아도는 공력이고, 전왕 시절보다 윗단계였다.
기본적인 검법으로 강기를 퍼부었다. 어둠을 밝히는 청색의 불빛이 일대에 공포를 선사했다.
일도양단의 수.
쩌어어억, 푸아아아아앙!
수직으로 가르자, 달려오던 적야루의 무인들 열 명이 반으로 쪼개지며 좌우로 튕겨 나갔다. 동시에 발생한 검강의 소용돌이는, 강력한 와류를 형성하여 주변을 끌어들였다가 방생했다.
푸아아악!
크아아악!
쪼개지고, 찢기고.
사방팔방으로 날아간 몸뚱어리가 어둠을 붉게 피칠 했다. 죽어서도 내 대가리, 팔, 다리 달라고 꿈에서도 나올 것 같은 현장감 넘치는 광경이었다.
삽시간에 아수라장의 사지로 변했다. 단언컨대, 지옥이 있다면 바로 여기였다.
“……사신이다!”
“……도망쳐!”
동료의 죽음에 분개하여 달려들 만용…… 용기 넘치는 자들이 아니었다. 돈맛 좀 보자고 가입했으니, 목숨을 도외시하지 않았다. 오히려 동료를 버려서라도 살려고 아등바등했다.
슈슈슈슝.
크악!
무진은 도망치는 놈들을 두고 보지 않고 검탄을 발출했다. 쏟아져 내리는 은하수처럼 뻗어 나간 수십 개의 검탄이 목숨을 앗아 갔다.
후아아앙!
검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는 사지로 변했다. 살아 있는 자가 존재하지 않았다.
“이쯤 되면 나와야지.”
무진은 전각을 향해 검력을 발출했다. 한 점에 집중된 검강이 강환으로 전환되어 전각을 꿰뚫어 버렸다.
슈아아앙, 꽈아아아아앙!
삼층으로 된 전각의 윗부분이 휑하니 날아가 버리고, 멍하니 선 중년인과 노인을 볼 수 있었다.
휙!
무진은 대뜸 전각으로 날아올라 놈들과 마주 섰다. 가뿐하게 삼층까지 날아오르는 신형은 백학처럼 우아했다.
헉!
입을 다물지 못하는 장기철과 섭장생이었다.
그들이 상상하는 것 이상의 참상이 눈앞에 펼쳐졌다. 파문이 번졌을 때만 해도 감당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드러난 전경은 몰살이나 다름이 없었다. 남아 있는 잔당은 얼굴도 내밀지 않고 도망쳤다.
‘강환을!’
최소 초절정의 극, 어쩌면 화경의 초입에는 이르지 않았을까? 감히 상상하기도 힘든 고수의 출현이었다. 저런 괴물인 줄 알았다면 탐내지 않았을 것이다. 현악검을 가지고 놀았다곤 해도, 과장이 심한 줄 알았거늘. 현실은 십 분의 일도 정확히 표현한 게 아니었다.
장기철은 일단 발뺌했다.
“어인 일로 이런 짓을 벌이는 것입니까!”
“왜 이래, 전표에 추종향을 발라 놨으면서. 그렇게 몇 번이나 등쳐 먹었잖아.”
장기철의 표정이 일순 굳었다.
대체 어떻게 알았지?
추종향에서 냄새가 나는 것도 아닐 텐데. 특수한 약물을 쓰지 않으면 냄새를 확인하기 어렵다.
하물며 그 약물은 반출한 적이 없다. 독자적으로 개발하여 비법을 아는 사람은 자신뿐이었다.
발뺌을 할 수 없게 되자.
“원하는 대로 돈을 드리겠소. 그러니 제발 이쯤에서 멈춰 주십시오!”
“그건 당연한 거고.”
무진은 타협의 여지를 주지 않았다. 적야루에 올 때부터 작정하고 왔다.
왜냐고? 좀 이상하긴 하지.
여린 마음과 달리 잔인했으니까.
사실 전왕 시절 이놈들이 쓴 천리추종향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었다. 무림맹도 상당한 피해를 봤다. 그래서 다른 건 몰라도 이놈들이 썼던 추종향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혹시나 하고 소나무의 진액과 지네의 피를 섞어 묻혔더니, 색깔이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