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King RAW novel - Chapter 71
070 동냥아치(5)
이놈들인 줄은 몰랐지만, 마신교가 침입할 당시 배신자들이 워낙 많았다. 무림이 혼란스러운 시기에 그들은 무너지자마자 곧바로 마신교에 투항해서 무림을 전복하는 데 일조했다. 당시 추종향이 묻은 줄 모르고 접선지에 모였다가 마신교의 공습에 일망타진당한 적이 있었다.
따지고 보면 추종향은 매우 사소한 물건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사소함을 간과하다 엄청난 피해를 양산했다.
물론, 그때 그놈들의 전신이 적야루인 줄은 몰랐었다. 이름을 바꾸었고, 이 당시에도 드러내 놓고 활동하진 않았었다. 알았다면 예전에 찾아가서 싹 다 죽였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재회하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운명의 장난이 아닐 수 없었다.
‘이렇게 또 세상을 구하네.’
-이런 병신 같은 경우는 살다 처음이군.
‘착하게 살아, 나처럼. 그래야 복 받지.’
-많이 받아라.
응?
듣고 보니 별로 안 좋네.
마신교가 원수긴 한데, 계속 싸우다 보면 사랑은 언제 해. 내 가족부터 지켜야지. 자고로 수신가제치국…… 그렇잖아.
도랑 치고 가재도 잡고.
“우리 뒤에 흑룡성이 있소!”
“이거 어쩌나, 남궁세가가 여길 알더라고.”
흑룡성이 사파를 지탱하는 거대한 거두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합비에 영향력을 행사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검제가 완쾌되지 않았다면 모를까. 남궁세가가 건재한 이상, 흑룡성의 힘이 미치진 못할 것이다.
‘젠장, 작정하고 친 거구나!’
어쩌면 이놈하고 남궁세가가 합작해서 쳐들어온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 줄도 모르고 놈이 쳐 놓은 덫을 옳다구나, 하고 물었다. 소룡대회도 적야루를 치기 위한 미끼였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놈이 어떻게 알고 우승과 준우승을 알아.
“치사한 정파 놈들!”
“너희들 말론 속은 놈이 병신이라며.”
무진은 장기철의 오해를 풀어 주지 않았다. 어떤 일이든 속 시원하게 풀어 주면 나중에 독이 되어 돌아오곤 했다. 그러니 항상 입조심을 해야 한다.
뭐가 그리 할 말이 많은지, 참.
‘승산이 있을까?’
장기철의 속내는 복잡했다.
강기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고수를 상대로 이길 거라 장담하긴 어렵다. 그러나 섭 노괴가 힘을 보탠다면 기회가 있을 것이다. 숨겨 놓은 비장의 암기, 잠혈폭성을 쓴다면 말이다.
“……난 모르는 일이오.”
이런 십장생!
수양 깊은 도사처럼 생긴 섭장생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의 절기인 풍섬을 펼쳤다. 단숨에 십장을 건너뛰는 섭장생의 신형은, 다급함을 여실하게 드러냈다.
“친구를 잘 사귀어야지.”
무진은 검을 수평으로 베었다.
무형의 거력이 예리한 기운을 토하며 공간을 수평으로 그었다.
뜨끔!
섭장생은 계속 나아가다 멈칫했다. 곧 혼이 빠져나가면서 상 하체가 분리되어 떨어져 나갔다.
오싹!
섭장생의 허무한 개죽음에 장기철의 뇌리는 백지처럼 하얗게 탈색되었다. 검노사라고 부르지만, 섭장생은 야차처럼 사나운 검객이었다. 저처럼 허무하게 뒈질 만큼 약하지 않았다. 비록 도망가다 죽었지만, 그럼에도 충격적이었다.
어쨌든 장기철로서는 최악이었다. 차라리 싸우다 뒈질 것이지. 기회조차 만들지 못하고 뒈져 버리자 그동안 투자한 돈이 아까워졌다.
“알지?”
“……죽엇!”
시간을 주지 않았다.
무진이 한 걸음 내딛자, 장기철은 본인의 장기인 적살장을 뻗었다. 혈기를 머금은 적살장은 일순 배 이상의 장력을 분출할 수 있는 그의 성명절기였다.
적색의 장력이 공간을 가득 메웠다. 동시에 잠혈폭성을 발동했다. 장력에 독이 실린 비침을 실었다. 이 수법을 써서 죽이지 못한 놈이 없었다.
서걱!
대충 휘두른 선이 장기철을 휘감고 지나갔다. 붉은 선이 팔에 새겨지자, 허무하게 떨어져 내렸다.
크아아악!
두 팔이 잘려서 바닥에서 제멋대로 피를 토하고 있었다. 팔을 잃은 장기철이 비명을 질러 대며 뒷걸음질을 쳤다.
“이 악마 같은…… 쿠웩!”
“그러지 마, 너도 했잖아.”
강자기의 기억을 훑어보니 개 같은 짓을 많이도 했다. 고리대업, 도박, 매춘, 인신매매, 하도 많아서 일일이 세기도 입 아프다.
무엇보다 단 한 번도 봐주지 않았다. 살아서 움직일 때까지 탈탈 털고, 죽어서도 편히 가지 못하게 했다. 그런 주제에 악마라니, 단번에 죽여 주는 악마도 있나.
이 얼마나 관대한 아량이야.
맘 같아서는 살아 있는 것이 지옥으로 만들어 주고 싶으나, 귀찮은 건 딱 질색이었다.
‘일해라, 마왕아.’
-난 네 종이 아니다!
짜식이, 싫다고는 하지 않았다.
장기철을 허공섭물로 잡아채고 투심마안을 발동했다. 숨기고 있는 걸 찾기 위해 고생할 바에 기억을 읽어 내고 털어 버리는 편이 효율적이었다. 그리고 죽여도 죄책감 받지 않는 인간은 드물거든.
푸스스스!
다 사용한 도구는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무진은 신속히 원하는 걸 찾았다. 생각보다 영악한 놈이었다. 대다수의 고리대업을 하는 놈들은 보물은 자기 근처에 놓는데, 장기철은 다른 장소에 숨겨 놓았다.
그것도 자신만 아는 장소에.
무진은 보물은 됐고, 거래 장부를 찾았다.
보물이야 숨겨 놓고 다음에 찾으면 되지만, 장부는 그때그때 확인을 해야 한다. 당연히 자신만 아는 가까운 장소에 숨겨 놓았을 것이다.
궤짝을 열어 확인해 보고 무진은 씁쓸했다. 이것도 챙기고 싶은데, 그러면 너무 속 보이는 짓이 되어 버린다. 사나이로 태어나 동냥아치 짓은 해선 안 되지.
질척, 질척!
어디선가 누구에게!
빗줄기를 맞으며 바쁘게 뛰어오는 인기척이 느껴졌다. 말도 없이 가는 건 예의가 아니니 알은체를 했다.
“왔어.”
“이 망할 새끼가!”
어후, 몇 번을 말하냐고.
과년한 처자가 왜 이렇게 입이 험해, 쯧쯧쯧!
이러고서 시집이나 갈 수 있겠어.
무진은 떠났지만, 권공을 상기하면 할수록 답답했다. 그 괴물과 나란히 서는 모습이 떠오르지 않았다. 남궁연화는 마음을 다잡으려고 연무장에서 천뢰신권을 훈련하고 있었다.
늦은 시간까지 훈련한 후 돌아서는데, 서신이 도착했다. 무진이 묵었던 객잔의 점소이였다.
서신을 읽은 남궁연화는 아버지를 찾았다. 혼자서 처리할 사안이 아니었던지라, 가주의 결정이 필요했다. 허락해 줄지 걱정이 되었지만, 무진의 예상대로였다.
아버지는 일언반구도 없이 인가가 필요한 창궁단을 내어 주었다.
남궁연화는 창궁단과 빗속을 질주하여 적야루에 당도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 인간의 안위는 걱정하지 않았다. 할아버지를 무위로 제압한 괴물이었다. 적야룬지, 똥자룬지 몰라도 결과는 자명했다.
펼쳐진 광경은 예상대로지만, 도를 넘어 지나쳤다.
정문을 지켜야 할 문짝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내부로 이어지는 공간은 피투성이로 점철되었다. 사지 멀쩡한 인간들은 없고, 건물은 파괴되어 형상을 유지하지 못했다.
저벅, 저벅!
아수라장 속에서 태연히 걸어오는 무진을 보고 있자니, 골이 지끈거렸다. 천지사방을 피바다로 만들어 놓고 저래도 되는 거냐고.
그러고서 한다는 말이.
왔어?
“대체 무슨 짓이야?”
“이것들이 내게 살수를 보냈더라고. 돈 좀 잃었다고 사람을 죽이려고 하다니, 세상 참 각박하다, 그치?”
다른 사람도 아니고 네가 어떻게 그딴 말을 할 수 있는 거냐. 얼굴이 금강불괴냐고!
“네 말이 다 맞다 쳐. 그런데 나는 왜 부른 거야?”
“일전에 부탁 들어준다며. 정리 좀 잘해 줘. 대남궁세가의 대연화께서 허튼소리로 미천한 백성을 속이진 않겠지. 그럼 이 미천한 백성이 무지하게 서운할 거야.”
남궁연화는 무진의 뻔뻔함에 할 말을 잃었다. 그래도 일말의 걱정이 되어서 부리나케 달려온 사람에게 뭐가 어쩌고저째!
“이봐, 아가씨께 무례…… 응?”
창궁단의 단주 설경우가 나서자, 무진은 대충 주먹을 뻗었다. 제삼자가 나설 자리가 아님을 친절하게 가르쳐 주었다. 그래도 나설 요량이면, 그 용기를 칭찬해 주마.
슈아앙, 꽈아아앙!
지붕이 없어진 전각의 반이 통째로 날아가는 광경이 펼쳐졌다. 그야말로 순식간에 벌어진 폭사에 다들 할 말을 잃었다.
“무례가 어떻다고요?”
“……아닙니다!”
무지막지한 무력시위에 창궁단은 한 발 뒤로 물러섰다.
남궁연화는 입이 댓발은 튀어나왔다. 자신을 걱정해서 나선 설 단주의 어색한 퇴장에 욕이 튀어나올 뻔했다. 이 인간의 인간성은 정말 최악이었다.
“할 말 있으면 하세요. 저 그렇게 꽉 막힌 사람 아닙니다.”
“……할 말 없습니다!”
저러고서 무슨 말을 하느냐고!
적이라면 모를까, 창궁단은 아가씨와의 대화를 방해하지 않으려고 조용히 물러섰다. 무심코 봤지만, 최소한 무형권이었다. 그렇다면 화경에 오른 고수가 분명하다. 저런 굉장한 고수가 세가와 연을 맺고 있을 줄은 미처 몰랐다.
“말귀를 잘 알아들으시는 분들일세.”
“못 알아들었으면?”
“알아듣게 차분하게 설명했겠지.”
“행여나 그러시겠다.”
“복잡하게 살지 말자.”
“복잡하게 만드는 게 누군데!”
“그래서 안 들어줄 거야?”
“안 들어주면 어쩔 건데?”
“이래도?”
무진은 장부를 넘겨주었다. 비가 오기에 간단하게 기막을 쳐 주었다. 종이가 젖지 않도록, 사내로서 해 줄 수 있는 가벼운 배려였다.
여자한테 인기를 끌려면 기막 정도는 칠 줄 알아야지.
장부를 읽어 내려갈수록 남궁연화의 얼굴이 썩어 갔다. 한두 장만 봐도 토할 것 같다. 후반으로 갈수록 어떤 내용이 있을지 감당이 되지 않을 지경이다.
“단주님, 이 일대를 봉쇄하고 정리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아가씨.”
정파가 자리 잡은 곳이라고 해도 사파가 없다곤 단언할 수 없다. 어느 정도는 관행처럼 내버려 두었다. 모조리 뿌리 뽑겠다고 나서도, 독버섯처럼 계속 자라났다.
그럼에도 적야루는 도가 지나쳤다.
“흑룡성과 연관이 있지?”
“알고서 한 거야?”
“당연하지.”
“몰랐구나.”
이년, 눈치 빠르네.
무진의 태연한 대꾸에도 남궁연화의 통찰력은 날카로웠다. 마지못한 무진은 순순히 털어놓았다. 그리고 잘 포장해 달라고 대놓고 요구했다.
“알았어.”
“과연 대연화야.”
“시끄러워!”
“조용히 말했어.”
밤중에 소란은 옳지 않잖아.
남궁연화로선 들어주지 않을 수도 없었다. 합비의 외곽이라고는 해도, 남궁세가의 영역이었다. 자신의 앞마당에서 흑룡성과 관련 있는 사파가 날뛰고 있다고 해 봐라. 소문이 나는 순간 남궁세가의 명성은 곤두박질칠 것이다. 이는 소룡대회에서 우승하지 못한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잠깐.”
“왜?”
“궤짝은 놓고 가야지.”
“……수고비는?”
“아니면 이 난장을 깐 인간이 누군지 널리 알려져야겠지. 개방에서도 아주 좋아할 거야.”
“남궁세가가 궁박한 것도 아니고, 너무하네.”
“그렇다고 막 쓰진 않아.”
궤짝의 반 정도는 가지고 가도 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행동했거늘. 남궁연화의 꼼꼼함에 무진은 감탄했다. 자고로 돈을 헤프게 쓰는 인간치고 제대로 된 인간을 본 적이 없다. 성격이 과격하기는 해도, 남궁연화는 올바른 인간이었다.
‘돈 들어올 때 노 저으라고 했지.’
-물 들어올 때지!
무진은 대꾸하지 않고 남궁연화에게 인사했다. 그동안 심심하지 않게 해 주었다.
“수고.”
“닥치고 가!”
무진은 뒤도 안 돌아보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 모습을 멍하니 한참을 바라본 남궁연화였다.
“흥, 또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