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King RAW novel - Chapter 73
072 금의환향(2)
설마라는 단서를 붙였지만, 황보장성은 장담하지 못했다. 과장이 심하다는 쪽으로 결론을 내리는 편이 정신 건강에는 이로웠다. 아버지가 이 사실을 알면 어떤 말을 할지, 뻔히 예상되었다.
“제왕검형이 거의 완성되었더라고요.”
“뭐가 완성이 돼?”
“제왕검형이요.”
“그 남궁세가의 비원이자 정수인 제왕검형?”
무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황보장성은 쉬이 믿어지지 않았다. 제왕검형은 남궁세가의 오랜 숙원이었다. 선대부터 제왕검형을 담기 위해 노력했지만, 남궁세가 역사상 두 명밖에는 이루지 못했다. 그런데 이젠 세 명이 되었다.
‘이놈, 대체 얼마나 강한 거야?’
이쯤 되니 더더욱 갈피를 잡기 힘든 황보장성이었다. 무진의 강함을 봐서 알고는 있었는데, 그마저도 진면목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사소한 일로 매번 놀라시면 어떡합니까. 절 모르는 분도 아니면서.”
“아무리 그래도 검젤세!”
황보장성은 대수롭지 않은 무진의 태도에 갈피를 못 잡았다. 대놓고 자랑을 하면서도, 명성에 연연하진 않았다. 보통 저 나이에 검제를 이겼다고 하면, 강호의 지각변동을 일으킨 대사건이었다. 소문을 내고 싶어 안달이 나도 부족하거늘, 별거 아닌 일로 치부했다.
‘담대한 건지, 오만한 건지? 도통 모르겠군.’
전자보다는 후자일 것 같아서 황보장성은 많이 짜증이 났다. 그렇다면 이놈의 강호가 무진에게는 별것도 아닌 잡것들의 난립처럼 보일 테니까.
“그보다,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중요한 일? 이보다 더 큰 사건이 있었어? 진작 말을 해야 할 거 아닌가.”
암중 세력의 등장만 해도 골이 지끈거리는데, 또 다른 큰일이 있다고 하니 황보장성은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는 말마다 벽력탄을 대수롭지 않게 쏟아 냈다.
“적으세요.”
“알았네.”
무진은 세세하게 설명했다. 하나라도 빼놓으면 곤란할 수 있으니, 확실하게 짚어 주었다.
엥?
설명을 적을수록 황보장성은 고개를 갸웃했다. 분명 적지 않은 금액이었다. 족히 수만 냥은 거뜬히 나왔다. 문제는 내용물에 있었다.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 건데, 여자들의 의복, 노리개, 패물, 당과로 대체 뭘 하려고?”
“뭘 하긴요, 제 아내와 딸 선물인데.”
“……?”
황보장성은 헛바람을 삼켰다.
‘이 작자가!’
아니, 뭔 놈의 선물을!
이 정도면 황제조차도 흡족함을 표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선물치고는 도를 넘어서는 과함이었다.
“아내한테 필생의 약점이라도 잡혔나?”
“농담도. 보름 후 아내 생일입니다. 다음 달은 혼인한 날이고, 그다음 달은 아내가 임신했던 날이고, 그다음 달은 아내하고 첫 소풍을 나간 날이고…… 등등.”
매우 사소한 일조차 기억하고 챙기는 무진의 세심함에 황보장성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렸다.
대체 왜 그딴 기념일까지 알고 있는 거냐고. 대다수의 사내는 몰라야 했고, 그것이 당연했다.
‘이놈이 날 놀리나?’
진심 같아서 섬뜩하다. 아내가 이 사실을 알면 어떤 사태가 벌어질지, 그조차도 섬뜩했다.
‘혹시 요즘 풍토가?’
안 돼!
“진 랑, 아~!”
“령 매도 먹어.”
“전 안 먹어도 배불러요.”
“안 먹는데 어떻게?”
어떻게는 뭐가 어떻게야, 미래의 천하제일고수를 보고 있는데.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지. 소룡대회에서의 활약상은 예상은 하고 있었다.
나이를 떠나 실력만큼은 오대세가의 미래들과 견주기에 충분하다고 봤다. 웬걸, 충분한 수준을 넘어 그들을 압도했다. 나이가 비슷했다면 또 몰라, 차후 성장 잠재력은 차고 넘쳤다.
‘불쌍한 놈!’
황보세령의 의도를 너무나 잘 아는 황보진운이었다. 숙부의 딸이기 이전에 천 년 묵은 여우였다. 키워서 잡아먹을 게 분명했다. 그래도 동생의 안목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태진은 분명 뛰어났다. 이대로만 성장하면 차후 대륙에 맹위를 떨칠 고수가 될 것이다.
‘나도 놀지만은 않을 거다.’
황보진운은 의기소침하지만은 않았다. 처음 만남이 개떡 같기는 했어도 은혜를 입었다. 차후 같은 식구가 될 테고.
그래도 무공으론 뒤처지고 싶지 않았다. 자신은 권왕의 손자니까.
“치사한 놈!”
태진과 황보세령의 화기애애가 철호에게는 눈꼴사나웠다. 특히 태진에게만은 절대 지고 싶지 않다는 승부욕을 불태웠다.
자기 낭군을 욕하자, 황보세령이 쌍심지를 켰다.
“말이 심하네요.”
“심하긴 뭐가. 저놈이 먹은 영약을 알면 그딴 말 못 할걸. 더러운 세상, 왜 이렇게 불공평한 거야.”
“기연은 원래 하늘이 내린다고 했어요.”
“하늘은 무슨, 저 녀석 아버지가 다 갖다 줬다고!”
철호는 한이 맺힌 사람처럼 속사포처럼 쏟아 냈다. 듣지 않은 줄 알았지만, 만년하수오, 만년삼왕, 만년공청석유, 만년석균, 만년태청단, 만년대환단까지.
“……?”
허튼소리 하지 말라던 황보세령과 황보진운은 태진을 멍하니 바라보고 말았다.
화들짝 놀란 태진은 변명했다.
“만년하수오랑 만년삼밖에 안 먹었어. 만년공청석유, 만년석균은 본 적도 없다고! 더욱이 태청단과 대환단은 제조한 영단인데 만 년이 가당키나 하냐고요.”
뭐밖에 안 먹었다고!
만년하수오와 만년삼왕이 따위로 취급할 영초는 아니잖아.
황보세가가 오대세가의 한 축을 담당하는 가문이라고 해도, 만년하수오나 만년삼왕을 복용하진 못했다. 연이 있어야만 하고, 가문에서도 선택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그걸 동시에 복용하고 별거 아니라고 하면, 우리들은 뭐가 되냐고! 그동안 염소 똥만 처먹은 거잖아.
“이러고도 강해지지 않으면 이상한 거지!”
“철호 형, 오해는 하지 말자. 나도 노력하잖아!”
“내가 더 노력하거든.”
“말이 왜 그렇게 나와!”
이 철벽 형하고는 대화가 안 통했다.
어렸을 때 알고서 먹은 것도 아니고, 아버지가 먹으라고 강요해서 복용하고 일갑자 반의 공력을 얻은 것이 전부였다.
“그리고 삼갑자도 안 된다고요.”
철호와 황보진운은 피는 못 속인다는 걸 깨달았다. 아닌 척해도 빼다 박았다.
이번에는 황보세령도 옹호를 못 하고 입을 닫았다.
오해의 소지는 있었다.
아버지가 삼갑자는 시작점에 불과하다고 귀에 인이 박이도록 말했기에 태진으로서는 대단하게 여기지 않았다.
‘난 억울해!’
***
봄철은 물동량이 많지 않은 비수기다. 가을이 되어야 농산물의 유통이 활발해지며 자금이 풀린다. 지금처럼 물량이 대폭 줄어드는 시기에는 상단도 재정을 긴축하거나, 다른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특히 물품이 농산물일 경우엔 자금 유통에 어려움이 많았다. 이와 같은 비수기를 효과적으로 보내야 상단의 내실을 탄탄히 구축할 수 있었다.
정운상단은 미곡 사업을 중점으로 하기에 이 시기에는 안휘의 다른 상단과 비교해서 유동자금이 부족했다. 다른 분야로 넓히기 위해 노력은 하고 있으나 여의치가 않았다.
안휘 삼대상단에 속하는 청풍상단과 백제상단이 자리를 꿰차고 견제를 해 오는 바람에 실적이 초라했다. 차후 상전(商戰)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발판이 필요하다.
그래서 광산을 개발하기 위해 방향을 틀었다. 문제는 광산 개발을 하려면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다는 것. 미곡 유통으로 벌어들인 수익의 절반을 쏟고도 부족했다.
정운상단의 상단주와 핵심 수뇌부가 한자리에 모였다. 소호에서 보내온 서신 때문에 긴급회의가 열렸다.
“송호문이 대체 어딘데 이런 금액을 쓴단 말인가?”
“올해 남궁세가의 소룡대회에서 우승과 준우승을 한 문파입니다.”
금자로 팔만 냥이나 되는 돈을 거침없이 썼다. 물품을 운송하는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자금이 부족한 정운상단으로서는 가뭄의 단비였다. 투자금을 유치할 수만 있다면, 광산 개발에 박차를 가할 수 있었다.
“그런데 어째서 우리에게?”
“같은 배를 탄 황보세가와 인연이 닿아 거래를 튼 모양입니다.”
“그만한 자금력과 무력을 갖추고 있다면 놓치지 말아야겠군.”
“하오나 보문상단과는 혈연관계를 맺은 상태입니다.”
송호문의 장남과 보문상단의 장녀가 사돈지간이었다. 그런데도 자신의 상단에 자금을 쓴 연유를 판단하기가 쉽지 않았다. 아무래도 송호문과 보문상단 간에 어떤 문제가 있지 않을까 유추했다. 자세한 사정을 파악해 볼 여지가 있었다.
“분명 다른 의도가 있을 것이다. 송호문과 거래를 틀 수 있도록 만전을 다하도록 하게.”
“소호로 대행수를 파견했습니다.”
능백환은 이번 거래로 만족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짙은 돈 냄새가 풍겼다. 상단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송호문과는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육감이 발동했다.
“이럴 게 아니라, 소려의 짝이 필요하지 않겠소.”
“의사는 타진해 보겠으나, 소려의 반려를 구하는 일입니다. 신중을 기해야 할 문제입니다.”
거래를 통해 광산 개발 비용을 좀 더 충당해 볼 요량이었다. 이번 개발이 어그러지면 상단으로선 타격이 막심했다. 하나, 이대로 포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시장은 정체되고, 청풍상단과 백제상단이 호시탐탐 미곡 유통까지 노리고 있었다. 가만히 있다가는 기반 전체를 빼앗길 처지였다.
***
오성문.
강소성 상주에 기반을 둔 문파로 이백 년의 역사를 지녔다. 규모로만 보면 강소성의 십대문파에는 들었다. 인근 지역의 대다수 토지를 소유하고 있는 대지주이기도 했다. 그 기반으로 현재의 오성문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오성문의 문주 폭풍도 이택상은 강소성을 대표하는 고수에 꼽혔다.
이기호는 이택상의 아들로 무사 수행 후 돌아가는 길이었다. 강호를 경험하고, 연륜을 쌓기 위한 무사 수행. 그것을 통해 제법 실력을 갈고닦아 나름대로 성취를 이루었다고 자부했다.
다만, 혹시라도 있을 불상사를 방지하기 위해 아버지가 특별히 문파의 삼대빈객인 섬광마도 혁무상을 붙여 주기는 했다.
그러나 그가 할 일은 많지 않았다.
비슷한 나이에 자신을 이길 만한 무인은 구파일방이나 오대세가의 신성이 아니고서는 어림없었다.
더욱이 강소성이 아니더라도, 오성문을 아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강소성을 대표하는 문파로서 자부심을 느꼈다.
그런 이기호에게 작금의 상황은 무척이나 생소했다. 무사 수행을 무사히 마치고 금의환향을 기대하고 있었다.
‘저것들은 뭐냐고.’
배를 타고 소호를 건너는 내내 정운상단의 극진한 대접을 받고 있었다. 정운상단이면 안휘를 대표하는 상단이었다. 본문과도 교섭이 있었다.
자신을 소개하면 당연히 대접이 달라질 줄 알았다. 미곡 유통과 투자를 위해서 본문을 방문해 거래한 적도 있었고.
“오성문의 이기호입니다.”
“오성문의 소문주셨군요, 저는 정운상단의 대행수를 맡은 여운상입니다.”
상단의 대행수면 서열 삼위의 핵심 수뇌부에 속했다. 그 정도는 이기호도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하나, 아쉬운 쪽은 정운상단이었다.
“본문과 정운상단은 밀접한 관계가 있을 텐데요.”
“거래를 원하신다면 언제든 연락을 주십시오.”
여운상의 뜨뜻미지근한 대답에 이기호는 미간을 찌푸렸다. 관계를 거론했지만, 대접이 시원치 않으면 언제든 틀어질 수 있다는 의미였다. 그런데도 시큰둥하기만 했다. 근래에 들어 상단의 운영이 힘들다고 들었는데.
“서운해지려고 하네요. 저는 정운상단과 가깝게 지내고 싶었을 뿐인데요.”
“천부당만부당하신 말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