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King RAW novel - Chapter 75
074 금의환향(4)
“도움이 필요하겠군요.”
“맞습니다. 적지 않은 자금이 필요합니다.”
“어딥니까?”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광산을 개발하려면 나라에 허락을 구해야 했다. 은밀하게 처리하려고 해도 관에서 말이 나올 테고, 다른 상단에선 알고 있을 거다. 그러나 대외로 알리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함산은 안 됩니다.”
“역시 알고 계시는군요. 하오나 수년 전부터 조사를 해 봤고 가능성이 있습니다.”
“경정산이 아니면 투자를 하지 않겠습니다.”
“쏟은 자금이 만만치 않습니다. 하루아침에 바꿀 수 없습니다.”
함산에서 광산이 개발되었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무진은 경정산에서 금광혈전을 펼쳤었다. 정확한 위치는 자신만 알고 있을 것이다.
경정산이 작은 산도 아니고, 정확한 위치를 모르면 헛된 투자가 된다. 그래서 경정산을 알려 준 것이다. 저들이 알아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제 말을 따른다면 광산에서 나오는 수익의 절반을 드리죠. 물론, 투자금은 전액 제가 보장하겠습니다.”
“전액 보장을 하시겠단 말입니까?”
광산 개발에 들어가는 돈은 천문학적일 수도 있었다. 하물며 광산이 개발되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실패할 위험이 컸다. 그래서 광산 개발을 단독 투자로 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하나, 단독 투자가 되어 성공하면 막대한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시간을 끈다면 얘기가 달라지겠지요.”
“당장 결정할 문제는 아닙니다.”
“오래는 못 드립니다.”
“보고를 올린 후, 송호문으로 연락드리겠습니다.”
아직은 마신교가 손을 대지 않았을 확률이 높았다. 그러나 차후에도 그럴 거라고 확신하긴 힘들다. 마신교보다 먼저 금광을 확보하고 산지를 매입해야 했다.
‘진심일까?’
여운상으로서는 고민이 되었다. 상단주의 결정이 필요한 사안이었다. 그러나 그가 말한 대로 이루어진다면 정운상단은 안휘 제일상단으로 부상할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
“그런데 오성문과는 어떤 관계입니까?”
“일전에 미곡 유통과 투자를 위해서 거래를 했었습니다.”
“잘 안 됐나 봅니다.”
“꼭 그렇지는 않지만, 오성문과 거래를 하면 꼭 사업이 좋지 않은 쪽으로 흘렀습니다.”
무진은 대충 감이 왔다. 거래한 적은 있지만, 신뢰를 쌓지는 못한 것이다. 오성문과 복잡하게 묶여 있다고 해도 상관은 없지만. 그딴 삼류 쓰레기만도 못한 문파가 있다 한들, 대계에 도움이 되지도 않을 테고.
“뒤탈은 없다고 봐도 되겠습니까?”
“편하신 대로 하시면 됩니다. 그러면 이만 일어나 보겠습니다.”
무진은 정운상단이 결단을 내릴 수 있는지를 시험했다. 저들이 고집을 피운다면 선택지는 많았다. 자신을 믿고 따를 수 있을지가 중요했다.
선착장에 도착한 무진은 황보장성과 다음을 기약했다.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이다. 정식으로 청을 넣은 후에 찾아가기로 약조했다.
“저도 같이 가면 안 돼요?”
“시집살이를 벌써 하고 싶다면 말리진 않으마.”
서로 사랑하면 그만이라고?
누구 맘대로.
혼인은 가문과 가문의 결합이다. 둘만 좋다고 결정할 만큼 가볍지 않았다. 자고로 부모 말 안 듣고 혼인을 치러서 잘되는 경우를 못 봤다.
내 눈에 흙이 들어가지 않는 한 그런 꼴은 못 보지. 자고로 아들이란 부모의 허락을 받아야 할 명백한 의무가 있었다.
-그냥 네 맘대로 하겠다는 거 같은데.
‘아들은 그래도 돼.’
더욱이 황보세령은 어렸다. 명문 세가에서 곱게만 자랐을 아이가 혼인의 무게를 머리론 알아도, 부딪쳐 보기 전엔 모를 것이다. 머리 좋다고 시집살이 안 하는 것도 아니고.
“아버님, 너무하세요.”
“조만간 태진이가 찾아갈 거다. 혹여 늦어지면 연락을 주마.”
황보세령은 뛰어난 아이다. 또래보다 성숙하고, 상당한 지식을 갖추었다. 그럼에도 아직은 부모와 함께 있어야 한다고 봤다. 아니면 나중에 분명 후회하게 될 거다.
“다음엔 다를 거야.”
“기대할게요, 형.”
보기 좋게 패했지만, 황보진운의 투지는 꺾이지 않았다. 가문의 무공을 대성해 패배를 되돌려 주기로 다짐했다. 황보세가의 소가주로서 어느 정도는 자각한 모습이었다.
“녀석을 꺾을 사람은 나다!”
철호가 분위기를 깨기는 했지만, 이쯤에서 황보세가와는 길을 달리했다.
무진은 정운상단이 준비해 준 마차에 탔다. 마차는 자발적인 훈련을 받은 철호와 태진이 돌아가면서 몰았다. 마상 기초가 부족했던 철호도 곧잘 말을 모는 수준이 됐다.
“오성문이라고 했지?”
“그런데요.”
“하도 구시렁거리더라고.”
“멸문은 안 돼요.”
“우리 아들 많이 컸네, 농담도 할 줄 알고.”
진심을 담았던 태진은 곧바로 태세를 전환해 살기 위한 미소를 지었다. 아버지의 성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억지가 분명해도, 작정하면 사실로 만들고도 남았다.
“제 발로 들어온다면 환영이지.”
“예?”
무진의 예상대로 송호문으로 향하는 길에서 오성문의 이기호와 혁무상을 만났다. 배에서 대충 자기소개를 해서 따로 인사를 하진 않았다.
마차에서 내린 무진은 두 사람과 마주했다.
“배에선 송구했습니다. 송호문이 소룡대회의 우승자와 준우승자를 키운 걸출한 문파였을 줄은 몰랐습니다.”
“모를 수도 있지. 하고 싶은 말은 그게 아닐 테고, 한판 붙자는 거지?”
다소 예의를 갖추려고 노력했던 이기호의 얼굴이 순간적으로 굳어졌다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자신보다 나이가 많다고 해도, 예의가 없는 놈이었다.
‘명성을 좀 얻었다고 송호문이 대문파라도 되는 줄 아는 거냐!’
남궁세가의 소룡대회는 애들의 재롱잔치에 불과했다. 도산검림을 겪어 보지 않은 애송이들과 자신은 비교가 되지 않았다.
‘빼지 않은 점은 칭찬해 주마.’
뒤로 물러섰다면 그것 역시 나쁘진 않았다. 황보세가에 사실을 전하면 그만일 테니까.
“본문은 스무 살이 되면 무사 수행을 떠나는 전통이 있습니다. 괜찮다면 제 마지막 상대가 되어 주겠습니까?”
“공짜로?”
“예?”
“모른 척하긴. 내기하자고.”
무진은 대놓고 속물임을 드러냈다. 돈을 걸고 승자가 독식하는, 매우 간단한 조건을 내걸었다.
‘아버지, 돈독이 오르셨습니까!’
‘코 묻은 돈까지 탐하다니, 독하다!’
차라리 그냥 달라지, 패고서 돈까지 갈취할 셈인가.
태진과 철호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지독함에 치를 떨었다. 아까 주섬주섬 미리 적고 있을 때부터 알아봤다.
‘다 듣고 있었네.’
‘모른 척한 거였어.’
배 안에서 오성문과 마주한 것은 두 번을 넘지 않았다. 대화를 한 것은 처음 소개를 할 때가 전부였다. 그러고서 거의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고의가 다분했다. 하긴, 뒷담화를 듣고서 여태 아무 말 하지 않았을 때부터 꿍꿍이가 있었던 것이다.
꿈틀!
이 작자가.
전혀 생각지도 못한 제안에 이기호는 머뭇거리고 말았다. 곧, 화가 치밀었다. 자신의 무사 수행을 싸구려 취급 한 것처럼 들렸다.
“말이 지나치군.”
“이기면 되는 거 아닌가. 자신 없으면 포기해도 된다. 난 강요는 하지 않거든.”
적절한 선에서 중재를 하려고 했던 혁무상은 무진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저놈이 대체 뭘 믿고 이리 나오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자신을 모른다면 모를까.
그렇다고 순순히 물러서기에는 자존심을 묘하게 건드렸다. 내기가 걸렸다고 해도, 이기면 되었다. 졌을 때의 파문은 고려할 가치가 없어야 했다.
‘심리전을.’
혁무상은 무진이 사람의 심리를 교묘하게 이용하여 불안감을 조성하려는 것으로 봤다. 어쩌면 황보세가와 정운상단도 그런 식으로 꼬드겼을지도.
‘그딴 개수작이 통할 것 같으냐!’
이기호는 끓어오르는 분기를 간신히 억눌렀다.
“무엇을 걸자는 겁니까?”
“이만 냥 어때?”
“은자로 이만 냥을 걸잔 말이오?”
“통이 작네.”
“설마 금자로?”
적당한 액수면 수락하고 개망신을 주려고 했던 이기호도 선뜻 수락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혁무상도 내심 놀란 심정을 다스리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이만 냥이면 오성문으로서도 감당하는 데 애를 먹어야 하는 액수였다. 가지고 있는 자산을 팔아야 마련할 수 있었다.
빠드득!
이기호는 그제야 이놈의 수작을 깨달았다.
그는 가면을 벗어던졌다. 송호문 따위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저 주제에 걸맞지 않은 과분한 대접을 받는 게 아니꼬웠을 뿐이다.
“본문을 희롱하다니, 죽고 싶은 것이냐!”
“애들아.”
신호를 보내자 철호와 태진이 마차에서 궤짝을 꺼내 가지고 나왔다. 바닥에 놓자 묵직함이 전해졌다. 안에 들어 있는 내용물의 무게를 느낄 수 있었다.
“무슨 짓이냐!”
철호와 태진이 묵직한 궤짝을 열자, 눈을 부시게 하는 황금빛이 새어 나왔다.
“이만 냥이다. 확인해 봐.”
이기호와 혁무상은 황금의 위력에 또다시 멈칫했다. 말도 안 되는 액수를 불러 비무를 거절하려는 줄 알았는데, 버젓이 황금을 꺼냈다.
“이기면 너희들 거다.”
“진심이냐?”
“거짓이라면 보여 줄 이유도 없잖아.”
“……그렇군.”
황금 이만 냥이면 살인도 우스웠다. 굳이 위험을 무릅쓰고 일을 벌이진 않는다. 한편으로 저 많은 돈을 아무렇지 않게 내기에 걸었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무사 수행이라며, 이거저거 많이 따지면서 했나 봐. 그럴 거면 문파에서 비무나 하지 그랬어.”
“뭐야!”
이기호가 발끈했다.
그 말 그대로 해석하면, 가려 가면서 이길 수 있는 상대와만 비무를 해 왔다는 의미가 되었다.
“하자.”
“잠깐!”
혁무상은 이기호의 수락에 당황했다. 이만 냥은 이기호가 오성문의 소문주라도 감당하기 버거운 금액이었다. 자칫 일이 잘못되기라도 하는 날엔 책임이 무거웠다.
“보호자의 허락이 필요한가 보군.”
무진은 이해한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른이 아이를 대하는 눈빛으로.
와!
태진과 철호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자신의 아버지이자 스승은 도발의 천재였다. 옆에서 보고 있는데도 울컥울컥! 분노가 치밀었다.
‘아버지, 진짜 사악하십니다!’
‘저자한테 배울 게 있는 건가?’
무진은 애들을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싸움은 무공만으로 판가름하는 것이 아니다. 상대를 이용하는 심리전, 시간과 장소를 유도하는 전략 전술은 필수였다.
그리고 정보의 중요성까지, 아직 이놈들은 현악검에 대한 소식을 못 들은 모양이다.
바르르!
아니나 다를까.
발끈한 이기호가 검을 뽑았다.
“덤벼라.”
“그 전에 수인을 부탁해. 나중에 하도 뒷말을 하는 경우가 많아서. 오해는 하지 말자.”
미리 준비해 놓은 것처럼 문서를 꺼내 이기호와 혁무상에게 주었다. 내용은 별거 없었다. 비무에서 이긴 자에게 황금 이만 냥을 내어 준다는 내용이다.
물론, 이만 냥을 주지 않으면 그에 합당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단서 조항은 있었다.
문서를 확인한 혁무상은 미간을 찌푸렸다. 보통은 이딴 걸 품에 들고 다니지 않는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내어 주었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이쯤에서 물러서는 것이 어떠하냐?”
“저딴 놈이 무서워서 피하라는 겁니까! 저는 그렇게는 못 합니다!”
이기호가 고집을 피우자 혁무상은 골이 지끈거렸다. 사태를 이렇게까지 키운 무진이 얄미웠다. 놈을 손봐 주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으나 꺼림칙했다. 지나치게 아귀가 딱딱 맞아 들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