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King RAW novel - Chapter 81
080 뭐 하는 새끼야!(1)
정보의 가치는 희소성, 시간에 비례한다. 남이 알지 못하는 정보를 보유할수록 단체의 가치는 높아지는 법. 이를 잘 알고 효과적으로 이용하는 대표적인 집단이 개방과 하오문이다.
자잘한 정보 집단은 수도 없이 난립하겠지만, 개방과 하오문이 정보의 총집합체임을 부정하는 이는 많지 않다.
그러나 두 집단에서도 최고를 꼽으라면 단연, 개방을 지목한다.
왜냐고?
빛과 어둠.
알다시피 하오문은 음지에서 활동하며, 문도의 대부분이 기녀, 도수, 점주, 야장 등등 하층민에 속했다. 그들이 하는 일이 떳떳하다고 하기에는 문제가 있었다.
개방은 구파일방의 한 축을 담당한다. 정도를 대표하는 무문이며, 협의의 상징으로 대표되었다.
그들 대부분이 거지라는 점을 따지면 거지나 하층민이나 큰 차이를 못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누구도 개방을 무시할 수 없다.
개방에 밉보인 문파치고 오래가는 꼴을 못 봤다. 직접 개입을 하지 않더라도, 어떤 식으로든 불이익을 가져다주기에 개방을 거지 집단으로 천시하지 못했다.
현재의 개방이 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정보를 수집하고, 다른 집단보다 우위에 있어야 했다.
그렇다면 어떤 식으로 정보를 수집할까?
개방은 따로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아도 방대한 정보를 얻기에 용이하다. 시대, 장소를 망라해도 거지가 없는 곳은 찾기 어려우니. 태평성대를 구가했던 왕조에도 거지는 있었다.
거지의 입을 통하면 세상의 인심을 안다고 했다. 그들이 전하는 민심이야말로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보란 위아래가 없다. 찾으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얻지 못할 수도 있는 법.
거적때기 같은 공간에 거지들이 둥그렇게 모여 앉아 있었다.
흠.
마땅치 않은 표정을 짓는 사내.
찢어진 구멍마다 천을 덧대었고, 색이 바래고 때가 타서 원래의 색을 잃은 누더기를 겹쳐서 입은 산발의 거지였다. 때가 탄 얼굴만 봐서는 나이를 짐작하기 힘들다.
중년이라고 해야 할까, 노인이라고 해야 할까?
놀랍게도 그는 삼십 대 초반이었다. 정확한 나이는 알기 어렵다. 태어난 시를 모르고, 거지 소굴에 버려졌으니.
악취를 풍기진 않으나 거지는 분명했다.
다만 그를 아는 자는 아무도 경시하지 않았다. 그의 허리춤 아래에 매인 매듭이 다섯 개였다. 매듭은 개방을 상징하고, 수는 위치를 뜻했다.
오결.
개방에서 삼십 대에 오결의 신분을 가진 자는 많지 않았다. 그 위로는 법개, 장로, 후개, 방주의 순서였다.
그는 안휘를 비롯한 분타를 관리하는 당주다.
홍무개 용추성.
대충 마련된 자리에 대충 앉아서 턱을 괸 채 고민했다.
그 주변으로 거지들도 대충 앉았다.
신분이 높고 낮음에 격식을 차리는 다른 문파와 달리, 개방은 자잘한 예법은 따지지 않는다. 물론 지위에 따른 체계는 명확하다. 형식을 중시하지 않을 따름이지.
“신화마정갑이라고? 그게 사실일 거 같냐?”
“솔직하게 말해야 합니까?”
“거짓으로 말해도 돼. 나중에 밝혀지면 평생 쫄쫄 굶을 줄 알아라.”
거지에게 배고픔은 지옥이었다.
흠칫 놀란 육칠이 속내를 꺼내 들었다. 어차피 거지라서 배알도 없었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인생의 목표는 새하얀 쌀밥과 고깃국이었다.
고관대작, 세도 가문, 명문 문파의 사람들에게는 소박해 보일지라도. 그게 뭐 어때서. 배부르고 등 따시면 그것이 바로 극락이지.
“소호채가 동정수로채나 장강수로십팔채에 비하면 많이 부족하긴 해도, 그 여우 같은 천면호리가 관여했다면 가능성이 있기는 합니다.”
“얼마나 되는데?”
“일 할쯤 되지 않을까요?”
천무의 비결이 숨어 있는 신화마정갑, 그 가치를 모르는 무인은 없으리라. 정보가 새어 나가면 무림에 풍파를 일으키고도 남음이 있었다. 하나, 정보의 신뢰성이 많이 떨어졌다.
“황보세가의 움직임은?”
“별다른 움직임은 없었습니다.”
정보를 얻는 데 시간이 꽤 걸렸다.
원래의 목적은 소호채가 잠잠한 원인을 파악하려고 했었다. 내막을 깊이 들여다봤더니 소호채가 토벌되었다.
황보세가가 의심스러워 주변에 거지를 깔아 놓았었다. 그러나 별다른 추이를 보이지 않았다.
천면호리와 함께 신화마정갑의 보도도 사라졌을 공산이 컸다. 강의 중심에서 강가까지의 거리를 계산하면 자맥질이 뛰어난 수공의 대가라도 살아남기 어려웠다.
따지고 보면 이런 종류의 소문은 언제나 있었다. 신외(神外)의 무공이나 보물에 대한 뜬소문은 다반사였다. 다만, 검증되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뜬소문일 수도 있고, 목적을 위한 암계일 수도 있었다. 그래서 항상 신중하게 행동해야 했다.
홍무개의 이목을 끄는 단편이 있었다.
“그런데 이놈은 뭐지?”
“송호문의 장남으로 무력은 절정 중상은 될 겁니다.”
“절정고수란 놈이 어째서 망나니라고 소문이 나?”
“숨겼겠지요.”
“그러니까 하는 말이잖아. 왜 숨기지 않냐고? 여태 잘 숨긴 놈이.”
현악검을 대놓고 팼다.
망나니로 포장해 본신의 의도와 무력을 숨기고 암계를 꾸미는 흑막이기를 바랐건만.
소호채도 그렇고, 모두가 보는 앞에서 현악검을 묵사발 만들었다. 그렇게 현란하게 사고를 치고 숨겨지기를 바란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었다.
거기서 끝나면 이해라도 하지.
“이걸 아들 바보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패륜이라고 해야 하냐?”
“아들 자랑이긴 합니다만.”
아들을 띄워 주기는 했다.
내 아들이 우승할 거라고 떠벌렸으니까. 하지만 순순히 듣고 있을 오대세가가 아니잖아. 자존심으로 똘똘 뭉친 놈들인데. 대놓고는 말 안 해도 구대문파와 오대세가가 개방을 보는 시선을 모르지 않았다.
보기에는 아들 자랑이지만, 아들에겐 가시방석과 자갈밭을 깔아 주었다. 조용히 실력 발휘를 하면 무탈하게 결승까지 갈 수도 있었을 것을. 굳이 험난한 길을 만들어 주었다.
“거 있지 않습니까, 사자는 자식을 강하게 키우려고 벼랑으로 몬다는 말.”
“너도 벼랑에 몰리고 싶냐! 개소리 지껄이지 말고 입 닥쳐.”
지가 물어보곤.
용추성이 노려보자, 삼결인 육칠은 입을 닫았다.
까라면 까야지 어쩌겠어. 본인도 개소리라고 인정하고 있었다.
“짧은 시간 사고를 많이도 쳤네.”
“맞습니다. 이놈이 범인입니다.”
“왜?”
“그냥요. 쿠웩!”
우선 맞아라.
대가리를 처맞은 육칠이 튕겨 나갔다가 제자리를 찾았다. 또다시 헛소리하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확실한 의사 표현이었다.
육칠은 입이 댓 발은 나와서 뿌루퉁해 있지만, 입은 닫았다. 또 맞고 싶진 않다는 완곡한 의사 표현이었다.
의심스러운 부분이 있기는 한데, 신분이 확실한 편이었다. 그래도 의혹을 간과하진 않았다. 간단히 드러나면 흑막이나 암중 세력일 리 없지.
그래서 정보를 수집했더니 가관이었다.
“이 새끼 대체 뭐 하는 새끼야?”
“아내 바보요…… 쿠웩!”
“입 닥치라고!”
정운상단에 물건을 주문했는데, 그 액수가 개방 전체를 먹여 살리고도 남음이 있었다. 얼마나 대단한 걸 주문했나, 품목을 살펴봤다. 그런데 품목들이 하나같이 여인과 애들이 쓰는 사치품 위주였다.
“무문이면 영약, 무공, 병기를 주문해야 하는 거 아니냐?”
“……쿠웩!”
“대답해라.”
“알면서 왜 물어…… 쿠웩!”
“꼭 매를 벌어, 이 새끼가!”
조사하면 할수록 답 안 나오는 새끼였다.
그럴 돈 있으면 개방에 적선이나 할 것이지. 행동 하나하나가 전부 맘에 안 들었다. 그 돈이면 거지와 백성의 주린 배를 잠시는 달랠 수 있었다.
그래서 더 헷갈렸다.
돈지랄에 무공까지.
본인을 드러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처럼 보이긴 하는데, 그렇다고 크게 드러나지도 않았다. 연기라고 하기에도 이상했다. 살피려고 하면 얼마든지 확인할 수 있어서 짜증 날 지경이었다.
‘낄 데 안 낄 데 다 껴 있단 말이야.’
신화마정갑에 대한 정보가 세간에 알려지면 풍파가 일 것이다. 그래서 주변을 감시했거늘, 움직일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수적 따위가 노렸다면, 아닐 확률이 높았다.
하오문이 적극적이지 않은 것만 봐도 어느 정도는 윤곽이 나왔다. 그놈들도 이 새끼를 조사하면서 골치깨나 썩었을 게 분명했다.
‘아닌데.’
범인이었으면 좋겠다.
물 좀 먹이게.
감이 좋기로 정평이 난 용추성이 보기에도 판단하기 모호한 개새끼였다.
“이 새끼, 한 번 뒤져 봐.”
“…….”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먼 하늘을 상상으로 보고 있었던 육칠은 뒤통수가 따가웠다.
“나다 싶으면 자원해라.”
***
“영감탱이가 쪼잔하긴.”
아내와 애틋한 사랑을 나누고, 딸의 재롱을 흐뭇하게 감상하다 날벼락을 맞을 뻔했다. 가족의 평온한 삶에 풍파를 일으키려고 하다니, 장인어른답지 않았다.
평소엔 거들떠보지도 않았으면서, 굳이 찾아올 건 없잖아.
“안 그러냐, 철호야.”
“스스로 떳떳하다면 피할 이유가 없습니…… 크악!”
아찔한 통증과 함께 정신이 번쩍 들었다. 철호는 시뻘게진 이마를 부여잡으며 무진을 노려보았다.
빠직!
손가락을 보곤 인상을 구겼다. 이유도 모르겠지만, 방금 맞은 충격이 딱밤이란 사실에 치가 떨렸다. 차라리 절세의 탄지공이면 이해라도 하지.
하물며 죄도 없이 처맞았다.
“제가 뭘 어쨌다고 때리는 겁니까!”
“넌 잘못 없지.”
“그런데 왜?”
“여리디여린 사부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으면 처맞아야지.”
“제가 언제? 여리긴 누가?”
“사실 조금 떳떳하진 않거든.”
그 말인즉슨, 충신은 단명한다는 역대의 진리와 일맥상통했다. 신하 주제에 함부로 사실을 적시하면 황제의 심기를 어지럽히는 짓이었다. 예로부터 황족들은 후안무치의 대명사들이었다. 자기들 잘못을 절대 인정하지 않는다.
좀 더 쉽게 풀이하면 내 말에 따라라, 안 그러면 뒈진다, 정도로 해석하면 되시겠다.
“집에 있는 꼴을 못 보는 건가? 왜 자꾸 나돌게 만들지?”
“……크악!”
“묻잖아.”
“……언제요?”
“척사부일체란다! 척 하면 척이어야지, 제자야.”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요!”
틀렸는데, 둘 다 병신인가?
-이것들을 믿고!
성질이 뻗친 철호가 길길이 날뛰자, 무진의 눈매가 꿈틀거렸다. 감히 두 번째 사부한테 제자 주제에 성질을 내고 있었다. 버르장머리 없는 노안 제자에게 매가 약이라는 진리는 만고불변이었다.
“수련이다.”
“여기서요?”
“수련은 원래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지.”
“오늘 안에 산을 넘어야 한다면서요?”
“그렇지.”
가면서 때리겠다는 해석이 가능했다.
철호는 필사적으로 몸부림을 치지만, 무진의 손아귀에선 벗어나지 못했다.
“나는 네게 아무런 감정도 없다.”
“……그거 곤강이잖아요!”
“아냐, 그냥 몽둥이에 기운을 입힌 거야.”
그게 그거 아닌가?
나무 재질의 몽둥이에 곤강을 입히는 일이 그냥이라고 표현할 만큼 대수롭진 않잖아.
곤법을 수련하는 무인들이 들었다면 자괴감에 빠질 개소리였다.
그러고 보면 이 작자, 뭐든지 다 된다.
검을 쓰면 검강, 도를 쓰면 도강, 창을 쓰면 창강, 구강을 쓰면 구강강…… 응?
화경의 경지에 오르면 강기무공을 자유롭게 쓸 수 있다고 해도, 익힌 무공에 따른 위력의 고저는 생기기 마련이다.
그런데 보아라.
꽈아아아앙!
십장의 방위, 그 앞을 가로막았던 거대한 암반이 산산이 부서지며 가루가 되어 버렸다.
뜨악!
딱 봐도 화강암인데, 그것도 수억 년의 압력을 받아 단단해진 암반이 허무할 정도로 가볍게 부수어졌다. 매우 곱게 흩날리는 돌가루를 마주한 철호는 마른침을 삼켰다.
‘저게 어떻게 권법가냐고!’
차라리 권강을 날렸다면 이해라도 하지, 대충 휘두른 몽둥이가 태산을 부수면 그 아래 멀뚱히 선 가련한 제자는 어쩌라는 거냐고!
우공이산의 우직함과는 거리가 멀다.
당연한 말이지만,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혼신을 다해 단공보를 펼치면서 철혈사자권의 후반식 철혈경천으로 대응했다.
쿠다다당!
대응은 무슨, 지나치게 조촐했다.
곤강에 닿기가 무섭게 권공은 사막에 오줌 눈 격이 되었다. 그저 살짝 적시는 수준. 결과만 놓고 보면 살았으니 성공했다고 봐야 했다.
“네 첫 사부는 도망치라고 가르쳤느냐?”
“이 빌어먹을…… 흐억!”
저걸 어떻게 막아!
누군 도망치고 싶냐고요!
억울하지만 어쩌랴, 철호는 살기 위해 도망쳤다. 강기만 해도 엄청난데, 곤강에 서린 와류가 주변 일대를 빨아들였다가 거칠게 뱉어냈다. 그럴 때마다 공간 자체가 산산이 흩어졌다. 와류에 휩쓸리면 씹다 뱉은 칡 껍질이 될 거다.
안개처럼 사라지고 싶지 않으면 쉬지 않고 육신에 박차를 가해야 했다.
달아오른 육체는 어느새 땀으로 범벅이 되어 육수를 좔좔 쏟아 냈다. 몸이 돼지라면 이해라도 하지, 여기서 짤 게 얼마나 있다고.
휘이이잉!
시원하다…… 응?
등 뒤로 거센 바람이 느껴졌다. 아래에서 위로 솟아오르는 강력한 돌풍. 이런 바람은 어지간해서는 불지 않는다.
등 뒤에 벼랑이 있지 않고서야.
흐억!
고개를 돌리자 시원한 바람과 함께 탁 트인 공간이 펼쳐졌다. 어느새 여기까지 올라온 거지? 바람 따라 구름 따라 정처 없이 마구 밀리다 보니 얼마나 움직였는지 느끼지도 못했다.
탁 트인 공간을 만끽하기도 전 깎아지른 듯한 벼랑이 내려오라고 손짓하고 있었다.
철호는 가고 싶지 않았다.
하나, 앞에는 히죽거리며 걸어오고 있는 악마…… 두 번째 사부가 있었다. 실상, 지저(地底)에서 힘들게 기어 올라온 악마도 사부를 마주하면 다시 기어들어 가고 싶을 거다.
“등산은 길이 아닌 길로 가야 제맛이지.”
이 미친!
쌍욕을 박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참아야 했다. 저 인간에겐 통상적인 사고방식은 통하지 않는다. 어지간한 욕을 먹어선 끄떡도 하지 않는 인성 최강이기도 하고.
“그 표정 뭐야? 누가 보면 내가 가자고 한 줄 알겠다. 난 분명 아들한테 가자고 했다. 아니냐?”
“……제기랄!”
제 발등 제가 찍은 철호는 대꾸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세상 얄미운 사부가 한 말이 사실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