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warrior turns into a million-dollar actor RAW novel - Chapter (103)
전직 용사는 천만배우-103화(103/199)
휴식이 끝난 뒤 (1)
* * *
박건의 모 팬 커뮤니티.
공식 팬카페와는 다른, 비공식으로 운영되는 팬사이트들이 연예인마다 몇 개씩 있다.
일명 ‘덕질’하는 팬 중 업계 관계자들도 있어, 제법 정확한 정보들이 오간다. 주로 글 리젠이 활발한 시간은 지금과 같은 새벽이다.
[갤주 현재까지 작품 분석]내용 : JNBC 서울의 개(액션느와르) 26%, 흑의사제(오컬트) 632만, 회색도시 팀장님(로코) 21%, 백정장군(시대극) 40%.
다음 작품은 뭘로 찍을까?
-뭘 해도 좋으니 좀 쉬었으면
└갤주 성격에 안 쉴 듯
└└진짜ㅋㅋㅋㅋㅋ 휴식이란 걸 몰라
-근데 다른 사정이 있어? 사담들 들어보면 늘 시청률 신경쓰는 것 같던데…
└맞아 뭔가 이유가 있는 듯
└└관계자들도 모른대 ㅇㅇ 공개촬영 때 간 팬이 매니저한테 물어봤다더라
└└└그건 너무 실례 아니냐 ㅋㅋㅋㅋ 배우가 자기 형인데
-데뷔작이 JNBC고… 바로 전에 CVN 대박 쳤으니 둘 중 하나로 가지 않을까?
└측근들 오피셜인데, 모든 방송국이 박건 노리고 있다고 함+심지어 KBC까지
-그럴 만 하지 ㅋㅋ 씨빙도 박건이 멱살잡고 정착시켰는데
ㄴ백정장군 하나로 출시하자마자 글로벌 순위 진입임. 다른 OTT 자체드라마들도 러브콜 무진장 넣을 듯.
-이번엔 누구랑 할까?
└(강스포) 로만 배우들이랑 같이 할지도 모름
└└작품 망칠 일 있음? 백하니 진지유 중 하나랑 또 하면 빼박 스캔들인데
└└└삭제된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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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오고 있다.
아스팔트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제법 후텁지근한 바람이 도시로 흘러든다.
“우와, 이게 여기 있었네! 어디 갔나 한참을 찾았었는데··· 진작 청소 좀 할걸.”
모처럼의 토요일.
박건의 본가에서는 이사 준비가 한창이다. 짐을 싸고 가구를 옮기느라, 활짝 열어 둔 창문에서 6월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
환호성을 올린 박선이 CD의 먼지를 소중히 털었다. 옆에서 책장을 살피던 박열호가 물었다.
“선아, 그건 뭐냐?”
“이거 카피나인 정규 1집 사인 CD. 첫 알바비로 산 거야.”
“당신도 기억나요? 선이 어릴 적 꿈이 아이돌이었던 거. 춤이랑 노래가 좋다던 애가 갑자기 매니저를 한대서 얼마나 걱정이었는지.”
“옛날 얘기라니까! 그것도 금방 접었어!”
막내를 놀린 한영주가 소리 내 웃는다.
본래 힘쓰는 일은 이 집의 장남이 혼자 다 해 버리지만,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나머지 가족들이 의기투합했다.
이번에는 손때 묻은 졸업앨범이 나온다. 한영주는 앨범을 박스에 넣다가 물었다.
“그나저나, 네 형은 아침부터 어딜 그렇게 바삐 간다니?
“어, 오늘 좀 바쁘다던데······.”
“작품 미팅?”
허리를 편 박선도 땀을 훔친다. 벌써 초여름이라고, 얼마 안 움직였는데 이마가 촉촉하다.
“아니, 배우 미팅이래.”
*
반포, 모 주상복합아파트 앞.
건은 오늘의 목적지를 올려다보았다.
선글라스 너머로, 까마득히 높은데다 호화로운 콘크리트 건물이 보인다.
‘철왕국에도 이런 방벽이 있었는데.’
통칭 절망의 석벽. ‘구원의 벽’이라고 명명됐던 석벽은 악마군에게 짓밟혀 무너졌다.
오만함을 넘어 어리숙한 생각이었다. 신성력으로 강화된 무구마저 꺾는 적들의 힘을, 고작 돌벽을 쌓아 저지할 수 있으리라 여겼다니.
그는 아파트 층수를 훑었다. 대충 세어도 70층이 훌쩍 넘는 높이다.
‘여긴 그때 산 아파트보다 더 비싸 보이는데.’
새삼,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작년 이맘때는 동료를 구하러 뛰었는데, 지금은 그를 전우로 데려오려는 이들이 줄을 섰다.
-안녕하십니까, MBS 곽한욱 CP입니다. 편하신 시간에 문자 주시면 회신드리겠습니다.
-영화감독 서원군입니다. 소속사로 연락을 드리는 게 예의인 줄은 압니다만, 도저히 기다리기 힘들어 결례를 무릅쓰고······.
-박건 배우님, 안녕하세요? 저는 김여옥 작가님 팀의 이진솔이라고 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이번에 작가님께서 집필하시는 시놉시스에······.
지상파 3사와 케이블은 물론, 영화감독과 제작사부터 글로벌 OTT 한국지부 담당자들까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달려든다.
본래는 소속사나 매니저를 통하는 게 관계라지만, ‘서울의 개’ 때부터 직접 오는 컨택들은 도무지 없어지질 않는다.
빨리 고르긴 해야 하니까. 무심히 생각할 때, 놀란 목소리가 들렸다.
“뭐야, 박건 씨도 왔어요?”
“예. 방금요.”
편한 흰 티와 청바지 차림의 최필립이 신기한 눈으로 그를 훑어봤다. 자기랑 같은 브랜드의 선글라스를 낀 걸 알아본 모양이었다.
“신승이 형이 마음을 먹긴 먹은 모양인데요. 안 하던 짓을 다 하고.”
“최필립 씨도 구신승 배우가 부른 겁니까?”
“네. 뭔 소릴 하려는지, 한 달 전부터 운을 띄우더라고요. 울어봐도 나중에 오면 알 거라고만 하고, 뭐 작품 잡은 게 있는 모양인데······.”
“일단 올라가시죠. 제가 연락하겠습니다.”
“아뇨, 몇 호인지 알아요.”
이전에 와 본 적이 있는 듯, 최필립은 익숙하게 세대를 호출했다. 이내 바깥쪽 출입문이 삐 소리를 내며 열렸다.
-79층입니다.
구신승은 맨 꼭대기층에 살고 있었다.
층에 두 세대밖에 없는 초인종을 누르자 현관문 틈으로 구신승의 얼굴이 빼꼼 나왔다. 방금 일어난 듯, 세안용 헤어밴드를 낀 채였다.
“어, 둘이 같이 왔어요?”
“어떻게 같이 와. 앞에서 만났지.”
시큰둥하게 대꾸한 최필립이 먼저 들어가고, 건도 뒤를 따랐다. 오래된 회사 동료라 사석에선 말을 놓는 것 같았다.
‘하긴, 지난번에 백하니랑도 반말을 했지.’
탑 배우의 집은 복도부터 향이 났다. 지나가면서 보니 난이 그려진 꽃병에 디퓨저가 꽂혀 있었다.
부동산과 투자의 귀재.
어젯밤 박선이 귀띔해 준 정보였다. 작품 및 광고 개런티도 어마어마하지만 그걸 2차, 3차로 굴려 엄청난 수익을 벌었다고 했다.
과연, 여태 가 본 집 중 가장 좋다. 그의 오피스텔보다는 당연히 넓고··· 얼마 전 계약한 부모님의 아파트보다 평수가 큰 느낌이었다.
‘거의 펜트하우스인데. 변휘승 배우 집이랑 비교해도 두 배 크기······.’
무심코 생각하던 건은 미간을 모았다. 어째, 본 세계로 복귀한 뒤론 남자들 집만 찾아간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뭐야, 냉각치료기 기어이 샀어?”
주머니에 손을 꽂은 채, 휘적휘적 들어가던 최필립이 문득 물었다. 거대한 냉장고처럼 생긴 통이 드넓은 거실 한쪽에 있었다.
“응, 지난번 배역이 스켈레톤 선수였잖아. 피로 풀 때도 좋대서 하나 샀지.”
“나중에 한번 시켜 줘. 한 대 들일지 말지 작년부터 고민했는데.”
“하나 사 줄까?”
“됐네요, 누가 부동산 재벌 아니랄까 봐.”
“내가 재벌은 아닌데.”
가구들은 최근 다시 인기를 끌고 있는 스칸디나비아 풍이었다. 그들이 앉자, 구신승은 비타민음료를 하나씩 가져왔다. 최필립은 받자마자 눈을 게슴츠레하게 떴다.
“이거 형이 광고하는 거······.”
“여러분, 우선 감사합니다. 특히 박건 씨, 많이 갑작스러웠을 텐데도 와 주셔서요.”
“아닙니다. 요즘 한가하던 참이라.”
PPL 논란은 싹둑 끊겼다. 구신승은 진지한 표정으로 두 손님을 주시했다.
“이렇게 모여 달라고 한 이유는··· 우리의 운명 때문입니다.”
가로로 길어졌던 최필립의 눈이, 이번엔 세로로 올라갔다.
“뭔 뜬구름 잡는 소리야?”
이내 구신승의 가디건 주머니에서 둘둘 말린 대본이 나왔다.
“바로 여기. 이 작품을 하기 위해서요. 올해의 사주를 본 결과, 우리 셋은 유신유화 귀기불통(貴氣不通)을 뚫고
“저 인간 또 저런다, 또.”
“보내 주셨던 소설입니까?”
최필립이 질색하며 귀를 막았지만, 건은 손을 뻗어 대본 한 부를 집었다. 구신승은 엄숙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작가가 1차로 각색한 본인 소설의 시나리오입니다.”
“뭐야, 무슨 소설?”
“필립이 너한테도 보냈는데, 읽어 보라고.”
“당연히 안 읽었지. 형이 맨날 무슨 이상한 링크 걸어서 폰 해킹당할까 봐.”
이런 일이 많이 있었던 듯, 대꾸한 최필립도 대본을 펼쳤다.
물론 이쪽은 이미 아는 작품이었다. 그날 미팅 후, 구신승에게서 연락이 오기 전에 플랫폼에 들어가서 전권 독파했으니까.
망나니 회귀자가 돌아왔다.
누적 조회수 1억, 총 1425화, 연재 당시부터 공전의 히트를 친 웹소설이다.
‘저 회귀 소리에 놀라서 찾아봤었지.’
다행히 작가는 철왕국의 용사를 아는 이가 아니었다. 설명을 들어 보니, 요즘 나오는 소설들에 회귀는 흔한 소재라고 했다.
빙의나 환생··· 거기다 각성까지, 주인공의 특수성을 증폭시키기 위한 장치인 모양이었다.
“들어 봤던 재벌물이네. 삼형제? 이래서 우리 셋을 모은 거였구만.”
“세 명 다 연기력이 필요해.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배역이 없어서, 은씨 가(家)는 특히나.”
내용은 쉽고 간결했다. 굴지의 재벌 가문인 ‘선화그룹’의 은기학 회장이 노쇠하고 그 아들과 딸들이 대립한다.
결국 할아버지가 작고(作故)한 뒤, 수십 년간 싸우던 후손들은 외부의 적들에게 사분오열되어 그룹을 잃고 만다.
주인공은 은기학 총회장의 세 손자.
은선인과 은선창과 은한섬. 이 중 망나니로 소문난 셋째만이 20년 전으로 회귀하며 소설이 시작되는 것이다.
구신승이 준 대본은 2화 분량이었는데, 드라마 극본으로 만드니 또 새로웠다. 최필립도 쓱 읽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많이 팔릴 만 해. 배역들도 매력 있고 설정도 드라마판 뻔한 시놉시스랑 달라서. 이게 소설가가 쓴 대본이라고?”
“응. 아직 각색 전이니까.”
“방송국은? 이런 거, 아무리 원작이 좋아도 꼰대 국장에 감 없는 작가가 건드리는 순간 나락까지 처박히는데.”
구신승이 갸웃거리자 헤어밴드에 달린 토끼 귀가 함께 움직였다.
“기억이 안 나는데··· JNBC 아니면 MBS, 아니다, YTS였나?”
“···그럴 거면 그냥 모른다고 해. 그놈의 나잇값 못 하는 귀도 좀 벗고.”
“저, 그런데요.”
한쪽 손을 들자 두 배우가 이쪽을 돌아봤다. 건은 그들이 간과한 사실을 지적했다.
“그래서, 저희 배역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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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층 높이의 펜트하우스. 머리를 맞댄 세 남자 사이에서, 치열한 불꽃이 튄다.
당연히 진짜 불은 아니다. 연예계 최고 주가를 달리는 자들의 쟁탈전이 벌어진 탓이다.
“당연히 은한섬이지. 혼자 회귀에 망나니 속성이면, 대놓고 나 주인공이요 아냐?”
최필립이 지르고 들어오자 구신승도 느릿느릿하게 맞받았다.
“나도 마찬가지라. 필립이, 넌 비주얼로 보나 성격으로 보나 둘째가 어울리지 않나? 실제 나이도 이 중 중간이잖아.”
“나이대로 갈 거였으면 군대를 갔지, 작품을 왜 찍어. 말 나온 김에 제일 나이 많은 사람이 첫째형 맡으면 되겠네.”
“그럼 제가 셋째로 가면 되겠습니까?”
건이 냉큼 끼어들었으나, 두 배우는 동시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건 좀······.”
“신승이 형은 첫째 고정, 나머지 배역은 정정당당하게 경쟁하는 게 맞죠.”
역시 쉽지 않다. 애초에 배역이 결정돼 있다면 모를까, 아예 날것인 작품이니 다들 메인 주인공부터 눈독을 들인다.
“아직 편성은커녕 각색도 안 됐다면서요. 김칫국 마시다 저희 셋 다 떨어지는 거 아닙니까?”
“그럴 리가요. 저기 컨셉광 형이면 모를까.”
오만한 어조로 단정 지은 최필립이 의견을 제시했다.
“뭐, 이러니저러니 해도 배역은 제작진 마음이니까··· 우리 중 누굴 푸시하면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걸로 하죠. 배우끼리 이러는 것도 웃기네.”
“왜? 말 나온 김에 간단히 정해 봐도 재밌을 것 같은데. 박건 배우는 어때요?”
최필립의 도발이 오만하고 냉소적이라면, 구신승은 유들유들하게 속을 긁는다. 건은 고민 없이 끄덕였다.
“좋습니다. 그럼 팔씨름으로 할까요?”
“와, 무서운 사람이네. 우리 둘이 손 네 개로 덤벼도 질걸요.”
“하는 수 없군. 그럼 찍은 작품이 가장 많은 사람으로······.”
“어림없는 소리. 박건 씨, 저 인간 아역 때부터 활동한 거라 절대 못 이겨요.”
이젠 뭘로 붙느냐가 문제였다. 오목, 숨 참기, 햄버거 많이 먹기··· 갈수록 유치해지는 종목들을 듣다 못한 건이 말했다.
“그냥 가위 바위 보로 하시죠.”
나머지 두 명의 눈도 번득였다.
“단판? 삼판?”
“당연히 단판. 무르기 없습니다.”
“콜. 운도 실력이지.”
이내 세 명 모두 자리에서 일어섰다. 제각기 몸을 푸는 회사 동료들을 바라보며, 건은 미약한 죄책감을 느꼈다.
‘좀 미안하긴 하지만······.’
팽팽한 긴장감 속, 나무뿌리 모양의 통원목 탁자 위로 팔들이 올라갔다.
“가위, 바위, 보!”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