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warrior turns into a million-dollar actor RAW novel - Chapter (107)
전직 용사는 천만배우-107화(107/199)
망나니와 소방관 (3)
* * *
인선이 결정 났다.
무려 닷새간 오디션이 열렸고, PD와 원작자 및 제작진 몇몇이 심사위원으로 참관했다.
스탭들은 나종모와 손발을 맞춰 온 경력자 위주로 꾸려졌다. 모자란 머릿수는 외부 제작사에서 보충될 것이다.
줄기찬 미팅들로 제작팀이 바쁜 한편, JNBC 홍보실에도 불이 났다.
“허 팀장, 기존 팬들부터 잡아. YTS 버스영웅 때 봤지? 웹툰 원작이라도 병크 띄우면 우리 게시판 뒤집어진다.”
“벌써부터 난리도 아닌데요. 각색 작가 누군지 뜨자마자 들썩거리는 분위깁니다.”
“작가들은 나 PD가 핸들링할 거야. 리딩에 첫방까지만 안 빠그라지게 해 봐, 나머진 저 거대팬덤이 쌍끌이할 테니까.”
‘망회돌’은 1억 뷰를 훌쩍 넘긴 초특급 밀리언셀러다.
작가인 윤발25 또한 팬카페까지 있는 웹소설계의 아이돌인 터.
드라마화가 됐을 때 내 작가, 내 작품을 망칠까 걱정되는 것도 당연하다. 원작 팬들 사이에서는 열띤 토론이 일었다.
-어떻게 나오려나?
└JNBC니 최소 중박은 갈 듯
└└아냐.. 폭망할 수도 있어… 버스영웅이랑 칼과그대 생각해 봐
└└└??? : 원작 칼질 드가자ㅏㅏㅏ
-설마… ㅋㅋㅋㅋ 1억뷰 원작을 마음대로 주무를까? 후폭풍 어떻게 감당하려고
└모르지 방송국 놈들 패악질 한두번인가
└└ㅇㅇ 입꾹닫 방영해놓고 논란 식을 때까지 기다리면 됨
-웹소나 보는 찐따들아 ㅋㅋㅋㅋㅋ 그래서 니들이 뭘할수잇는데? 앜ㅋㅋㅋㅋㅋ
└병먹금
└└신고된 댓글입니다.
-근데 이번 캐스팅이 로만 3인방 말고는 거의 악역 장인들이네 ㅋㅋㅋ
└재벌물이라 그런가. 악인들의 전성시대처럼 연출하려는 듯.
└└주인공조차도 회귀 전엔 개꼴통 망나니 포지션이니까요
나종모는 소문난 연기파 배우들, 그중에서도 악역 전문들을 모아 ‘망회돌 크루’를 꾸렸다.
우선 타락한 재벌과 정치인, 소위 ‘회장님’ 역할인 석필호.
늘 맡는 역할이 같다 보니 스펙트럼이 좁다는 저평가도 받지만, 연기력으로는 이미 기라성 같은 대선배들의 반열에 들었다.
나머지 면면들도 화려하다. ‘이혼의 조건’에서 불륜녀 및 악녀 역할로 스타덤에 오른 최양영, 조폭 연기의 달인 전현만, 연쇄살인마 연기로 충무로를 씹어먹은 임기운······.
“당연히 석필호가 은기학 회장을 맡겠고··· 은씨 삼형제는 아직인가?”
“내부에선 다 정해졌겠지. 일부러 안 띄우는 것 같아, 막판까지 떡밥 뿌리려고.”
“셋째는 무조건 박건일걸. 나이순으로 가도 그게 맞아.”
“이 사람, 아직 나종모를 모르는구만? 의외로 최필립이 망나니 롤일 수도 있다고.”
거기에, 아직 공개되지 않은 선화그룹의 세 형제들까지.
최필립과 구신승은 애초부터 팬덤이 크다. 세 배우가 뭉친다는 소식에, 글로벌 팬들까지 로만의 공식 유튜브로 몰려왔다.
[드디어 완전체 출동?! 삼형제의 정체를 맞춰라 (Eng Sub)]“안녕하세요, 여러분. 이번에 셋이 함께 작품을 들어가게 된 구신승입니다.”
“영화로 보고 금방 또 뵙네요. 최필립입니다.”
“박건입니다.”
환히 웃는 구신승과 미소를 머금은 최필립, 무표정한 박건이 한 앵글에 잡힌다.
나란히 앉아 문답만 주고받는데 시간이 녹아 사라진다. 편집기사가 혼을 쏟은 보정화면이라 해도 믿을 미모들 덕분이다.
조회수와 좋아요가 폭주하는 동안, 몇몇 이들은 제작진에 주목했다.
총감독은 나종모, 원작 소설가는 윤발25, 각색을 맡은 작가는 여진주.
이 생소한 조합이 시너지를 낼지··· 정확히는 불협화음 없이 완성될 수 있을지를.
*
대본 리딩 하루 전날.
모처럼 옛 인연에게 연락이 왔다.
[은희욱 작가] : 잠깐 시간 괜찮아요? 간단하게 식사나 같이 하고 싶은데.건은 흔쾌히 승낙했다. 그를 데뷔시켜 준 장본인 아닌가. 작업한 동료들 중에서도 ‘서울의 개’ 작감은 유독 각별한 편이다.
“오랜만이에요. 남의 집 잔치라, 종방연은 라방만 보면서 축하했었네요.”
은희욱 작가는 대궐 같은 한옥저택에서 그를 반겼다. 예전이야 호프집에서 만났지만, 이제 그랬다간 몰려든 인파로 사고가 날 것이다.
곤드레밥, 어산적, 떡갈비에 더덕구이··· 한 상 그득한 음식들 앞에서 인사가 오간다.
“못 찾아뵈어서 죄송합니다.”
“한우를 산더미처럼 보내시고 무슨 말씀을. 아, 그러고 보니 삼촌이 슬퍼하던데요.”
“삼촌이라면······.”
“KBC 국장이에요. 황 모 씨라고, 박건이고 로만이고 별거 아니라더니 거하게 털리셨죠. 하이페리온으로 손해는 안 봤어도 자존심은 꽤 구겼을 거예요.”
건은 젓가락을 들었다. 시청률을 겨뤘던 방송국엔 별 감정이 없다.
DG처럼 직접 손을 뻗는다면 몰라도, 돈을 댄 채널일 뿐인데 좋고 싫고가 있겠나.
“유감의 표시로, 내일쯤 국장실로도 뭘 좀 보내야겠습니다. 같은 한우면 되겠죠.”
“···뒷목 잡고 내버리실 것 같은데요.”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 식사가 끝났다. 은희욱은 싹 비워진 그릇들을 흐뭇하게 둘러보았다.
“여전하시네요.”
“요즘 식사량이 좀 줄었습니다. 전역 후에 워낙 잘 먹어 대서.”
“여 작가도 가리질 않아요. 손에 들어온 원고는 다 자기 작품인 줄 알죠.”
예고도 없이 본론이 나온다. 그는 흘려들었던 이름을 기억해냈다.
“여진주 작가.”
“네. 정확하게는 작가가 아니라 사단이지만··· 작품 같이 한다는 소릴 듣고 걱정했어요. 듣기론 윗선 픽이라던데, 종모 형이 왜 오케이했는지 이해가 안 갔네요.”
“걱정하신 이유라면······.”
“인성과 실력, 비대한 작가적 자의식.”
신랄하게 평한 은희욱 작가가 말을 이었다.
“개인적으로 좀 알거든요. 같은 판에서 활동하다 보니, 몇 번 부딪쳤던 적도 있고.”
“주먹으로 말입니까?”
“···아뇨, SNS요. 서로 저격하고 다투다가 다음 작품 들어가면서 흐지부지 끝났어요.”
“작가님이 싸우는 건 상상이 안 가는데요.”
“보조작가 부리는 건 좋죠. 근데 본인 산하, 제 식구 아이디어를 자기 것처럼 쓰잖아요. 프로의식이고 뭐고 없이.”
건은 팔짱을 꼈다.
“그런 사람이 어떻게 아직 활동합니까?”
“극성팬이 많아요. 실력은 또 있어서, 남의 대본 빼먹어서 만든 커리어도 짱짱하고.”
“커리어?”
“JNBC 초기··· 한창 종편 명줄 위태위태할 때, 히트를 몇 번 쳤어요. 박건 씨가 CVN 구원투수로 살려낸 것처럼. 방송국 입장에서는 개국공신인 셈이죠.”
개국공신··· 변두리의 귀족들보다 저런 정통파 가문들이 더욱 악랄했다.
자신들이 철왕국의 주춧돌을 올렸다고 발악하는 늙은이들, 사술로 삶을 연장하던 장로원의 노괴들을 몇 명이나 베었던가?
“이해는 해요. 작가란 작자들은 어딘가 조금씩 뒤틀린 인간들이니까.”
은희욱은 창호지 문 저편을 잠시 바라보았다.
“실력은 확실한 사람이니, 이게 다 기우일 수도 있고요. 그래도 만에 하나··· 일이 터지면 주연 배우가 해결해야 할 상황이 올까 싶어서.”
“지금까지는 잘 버텨 왔습니다.”
똑똑, 노크를 하고 들어온 고용인이 다기 세트를 세팅했다. 은희욱 작가는 차를 따르며 웃었다.
“꽝 부딪치는 거야 걱정 없죠. 박건 씨 성격상 야비한 처세나 언론플레이, 이런 쪽은 어렵잖아요.”
건은 고민했다. 그의 기준에서 치사한 짓은 이미 꽤 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생계만 달려 있다면 모를까. 지난 삶의 숙원과 연관됐으니 수단과 방법을 가릴 수 없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극의 밖에서까지 배우가 왕일 필요는 없어요. 킹 메이커로만 기능해도 충분하죠.”
힘을 실으라는 말이다. 그가 이해할 것을 안다는 듯, 슬며시 웃은 은희욱이 찻물을 비웠다.
“때로는 흑막도 리더의 덕목이니까.”
*
“감독님, 장득영 배우가 조금 늦는다는데 그대로 진행할까요?”
“야, 이한성이! 이한성이 어딨어!”
“강 선배, 기사님이 손 좀 빌려달라세요!”
리딩장은 언제나 북적거린다.
실제 촬영장은 아니라도, 카메라가 설치되고 관계자들이 오는 자리다.
대본 리딩의 화제성이 전보다 떨어졌다 한들 작품의 프리뷰로서 기능해야 한다.
리딩이 진행될 공간은 JNBC의 소형 홀, 단층별로 나뉜 책상 위에 배우들의 이름표가 놓여 있다.
“형, 잠깐 PD님 좀 보고 올게. 앞에서 들어오고 계신대.”
오늘도 배우 중 일등 출근은 박씨 형제다. 안쪽을 훑어본 박건이 물었다.
“여 작가님은?”
원래도 눈치가 빠른 편이었으나, 2년간 형과 붙어 다니면서 표정만 봐도 졌다.
박선은 소리 죽여 브리핑했다.
“오면서 물어봤어. 오늘 안 오신대.”
“왜?”
“모르겠어. 조감독님 얘기 들어보니까, 자긴 작품만 고치면 됐지 굳이 리딩까지 볼 필요 없다고······.”
박건은 고개를 끄덕이고 여진주를 머릿속에서 지웠다. 옛 동료에게 언질은 받았지만,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다.
‘불화를 예비할 필요는 없지.’
곧 반가운 얼굴들이 등장했다. 몸집이 호리호리한 남자가 나 PD 옆에 있다.
전설로 남은 욕탕 씬, 박건의 첫 오디션을 상대 배역으로 쳐 줬던 현도균 무술감독이다.
“그때 철갑상어가 백상아리로 돌아왔네. 난 박 사범님이랑 칼 나눈 게 일생의 영광이야.”
“뭔 소리야? 건이 씨는 태생부터 범고래구만.”
“저는 사범이 아닙니다.”
박건이 뭐라고 하든 말든, 역사의 산증인은 감격에 물든다. 현 감독이 눈가를 닦는 동안 나 PD가 촬영감독과 투닥거린다.
“선화그룹 본사랑 선화쉴드, 은기학 회장 집을 다 세트장으로 커버해? 하, 이건 너무 주머니 싸매는 거 아냐?”
“뭐 어때. 우리가 하이페리온인가, 고층뷰만 CG로 좀 커버하면 되지.”
“아이고, 나 감독아. 이젠 시청자들 눈썰미가 연출팀 막내보다 예리해요. 또 영상미랍시고 온갖 각도로 내려찍게 시킬 거잖아.”
“그럼 한조타워 촬영 허가를 받든가. 지환이가 섭외 나가서 처참하게 까인 거 몰라?”
두 감독의 실랑이를 듣던 박건이 물었다.
“한조타워는 왜 섭외가 안 됩니까?”
“최상층은 한조그룹, 그 할아범 소유잖아요. 펜트하우스 한 층만 달라고 빌었는데 안 먹혀. 지금까지 허가가 났던 방송국이 없어요.”
하이페리온처럼 돈을 덕지덕지 바르지는 않았으나, 그래도 투자가 꽤 붙었다.
작중 은기학 회장의 본가와 은한섬의 방산업체, 타 계열사 사옥 등을 구현할 수 있을 만큼.
그 중 하나로 잠실 최고 높이의 타워를 섭외했는데, 보기 좋게 거절당한 모양이었다.
박건이 막 입을 열려던 때였다.
“박건 배우?”
흰 백발을 양 어깨로 풀어헤친, 거구의 노인이 성큼성큼 다가왔다.
“석필호다, 석필호!”
“와, 뭐 저리 커? 환갑 넘은 노친네가 박건이랑 키가 비슷하네.”
젊었을 적, 대한극장을 휩쓸던 쾌남은 대체 불가능한 회장님이 되었다. 독수리처럼 부리부리한 눈가의 주름이 가늘어진다.
“백 늙은이한테 얘기 들었어요. 잘 해 봅시다.”
“예, 감사합니다.”
“어머! 한섬이 오빠!”
이번에는 애교스러운 목소리가 사람들의 귓가를 녹이고 들어온다.
극중 주인공을 유혹하는 라이벌 그룹의 손녀, 최양영도 출근을 마쳤다.
“전 박건인데요.”
“그럼 양영이는 박건바라기 할래요. 아, 최양영이 누구냐면 제 이름.”
이건 또 뭐지? 하는 표정으로 박건이 쳐다보는데도 최양영은 생글대며 말했다.
“대본 보니까 저희 많이 붙더라고요. 제가 오빠 꼬시는 나쁜 불여우 역할이니까, 완전 빡세게 굴려주세요!”
“디렉션을 받으면 노력해 보겠습니다.”
아는 사람은 알지만, 기본적으로 박건은 여자 연예인들에게 더 무뚝뚝한 편이다. 급히 다가온 매니저가 최양영을 끌고 험지에서 이탈한다.
“···양영아, 빡세게가 뭐냐······.”
“우음, 그럼 뭐라고 해. 졸라게?”
“인터넷에 올라온다고, 좀!”
멀어지는 여배우와 매니저의 속닥거림이 들려온다. 기감을 고요히 세운 채, 박건은 손 안에서 들끓는 합기를 느꼈다.
새로운 팀, 새로운 시작이다.
풀 떡밥은 넘치도록 많다. ‘서울의 개’ 감독과 배우의 재결합, 로만 3인방의 동시 출격, 메가 히트 웹소설의 드라마화······.
그리고, 주인공은 회귀자다. 과거로 돌아가 옛 과오를 씻을 기회를 얻은.
‘한 번이라면··· 축복일지도 모르지.’
촬영 리허설이 몇 차례 돌아가는 사이, 구신승과 최필립도 도착했다.
곧 단층별로 모든 책상에 배우들이 자리를 잡고 앉았다. 선 채로 구경하던, 타 엔터 팀장이 소리 낮춰 속삭였다.
“역시 예상대로네.”
“구가 첫째, 최는 둘째고 박이 막내. 딱 저게 밸런스가 맞는다니까.”
“쉿, 시작한다.”
조용히 하라며 옆구리를 찌를 필요도 없다. 박건의 입술이 달싹인 순간, 좌중은 적막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업화를 겪은 망나니의 후회일까. 수십 년이 흐른 듯한 목소리가 절절한 회고를 토한다.
“나는, 몰락한 왕국의 막내였다.”
불타 버린 그룹에서 홀로 살아남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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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관계자들을 통해 은씨 일가의 배역들이 퍼져나갔다.
선화그룹 총회장 은기학, 배우 석필호.
선화전자 사장 은선인, 배우 구신승.
선화중공업 사장 은선창, 배우 최필립.
선화쉴드 부사장 은한섬, 배우 박건.
같은 날 새벽, JNBC 홈페이지의 ‘망회돌’ 섹션 대문에도 표지가 업로드됐다.
흰 바탕에 검은 붓글씨. 웅장한 필치로 적힌 문장은 재벌 총수가 직접 쓴 듯 유려했다.
業火의 鮮火, 人和를 향하여
(업화의 선화, 인화를 향하여)
가문을 부활시키려는 망나니의 귀환기,
첫 촬영이 엿새 앞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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