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warrior turns into a million-dollar actor RAW novel - Chapter (112)
전직 용사는 천만배우-112화(112/199)
번지는 불길을 잡으려면 (1)
* * *
“뭐야, 왜 다들 모여 있어?”
흡연장에서 나오던 나종모 PD가 물었다. 지나가던 스탭이 웃으며 대꾸했다.
“모르셨구나, 저기서 지금 미팅 열렸잖아요.”
“미팅?”
“네. 원작자랑 주연 배우들 자리 깔고, 무슨 소설 얘기가 한창이던데요.”
그러고 보니 로만 3인방 사이, 눈에 확 띄는 파랑머리가 보인다. 온 지 얼마나 됐다고 제법 친해진 분위기다.
집에서 챙겨 온 홍삼포를 쭉 빨며, 나종모 PD는 으쓱했다.
“거, 젊어서들 그런가··· 체력도 좋아.”
새벽부터 시작한 촬영이 벌써 한밤중이다.
엑스트라들은 촬영보다 대기가 길지만, 주연 배우들은 드라마든 영화든 늘 바쁘다.
그나마 길게 쉴 수 있는 타이밍은 다른 주연이 촬영 중일 때··· 혹은 지금처럼 식사 직후다.
‘커피 한잔씩들 드세요. 공짜로 드라마 다 봤는데 입장료는 내야죠.’
밤이 깊도록 촬영장을 구경하던 윤발25가, 커피까지 쏘고는 박건 옆에 눌러앉았다.
거기에 구신승과 최필립도 끼며 삽시간에 토크쇼가 개최됐다. 메이킹필름을 찍는 촬영팀 스탭만 신이 나 캠코더를 들이댄다.
“작가님, 혹시 주인공이 끊임없이 회귀하는 소설도 있습니까?”
“아, 무한 루프물! 이 바닥에 많았죠. 근데 요즘은 또 OSMU(원 소스 멀티 유즈) 시대라서요. 주인공이 그렇게 구르면 작품 분위기가 너무 피폐해져서··· 예전만큼 인기는 없을 거예요.”
건이 던진 화두를 윤발25가 덥석 문다. 회귀자 배우와 회귀 전문 작가가 모였으니, 좌담회의 화제는 당연히 소설이다.
팔짱을 낀 최필립이 말했다.
“맞아. 요즘 들어오는 시나리오들 중에 그런 게 많았어요. 무슨 만화랑 소설 원작이랬나? 최근에 OTT 독점 작품도 이거 찍느라 깠는데.”
저 말대로다. 몇몇 작품들이 히트를 친 뒤, 방송계 관계자들은 ‘대박 작품’ 선독점에 혈안이 되었다.
원작의 팬덤은 그 어떤 마케팅 수단보다 좋은 홍보가 되어 준다. 명실상부한 탑 배우들도 웹툰 원작 영화며 드라마에 거액을 받고 출연하니, 1차 저작권자들의 위상은 최고조에 달한다.
구신승이 능글맞게 끼어들었다.
“우리 둘째, 자랑하고 싶었구나?”
“자랑은 개뿔. 사실을 말한 거구만.”
“최 배우님 말씀대로예요. 이전에 쓰는 작품이랑 이번 신작, 웹툰도 안 나왔는데 여기저기서 드라마화 제의가 들어오더라고요. 미리 침을 발라야 투자사도 꼬이니까··· 그런데 루프물은 왜요?”
건은 무심히 대답했다.
“재미있게 본 소설이 있거든요.”
“아아, 거기 주인공도 회귀자였나 보다.”
“예. 읽다가 끝부분에서 잘렸습니다. 작가가 마무리를 제대로 안 했더군요.”
“그런 몹쓸 인간이······!”
동종업계의 횡포에 작가가 분노하는 동안, 담담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저는 궁금했습니다. 별안간 이 세상이 아닌 곳에 떨어져서, 죽어도 죽지 못하는 운명이 되었다면··· 그래서 원치 않는 과업을 이행해야 했다면, 제가 아닌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했을지.”
가볍던 분위기에 파문이 퍼진다.
구신승이 자세를 고쳐 앉고, 최필립도 흥미로운 표정으로 귀를 기울인다. 동료 배우가 진지하게 묻고 있음을 알아차린 탓이다.
입술을 축인 윤발25가 답했다.
“한섬이는 미쳐 버렸을 것 같은데요. 성격이 워낙 개차반이라, 지구가 아닌 걸 알자마자 난동을 부리다가 몇 번 죽었겠죠?”
“작가님이라면?”
“저라면······.”
윤발25, 손호윤은 음산하게 중얼거렸다. 쉿쉿대며 먹잇감을 물색하는 뱀처럼.
“사람을 찾겠죠.”
듣고 있던 최필립이 갸웃거렸다.
“사람? 왜요?”
“봐요. 현실적으로 추리해 볼 때, 분명히 어떤 놈은 내가 여기서 나갈 방법을 알고 있을 거란 말이에요. 날 불러온 놈이라든가, 모른 척 풀만 뜯는 다른 놈이라든가. 그놈 하나만 족치면 생고생 안 하고 우리 세계로 돌아가지 않겠어요?”
“너무 성격파탄자 루트인데.”
구신승이 중얼거렸지만, 너무 작아서 윤발25는 듣지 못한 것 같았다.
생각에 잠긴 것은 전직 용사도 마찬가지다.
‘···그래, 그렇게 생각했었다. 누군가는 방법을 알고 있을 거라고.’
용사행 도중, 몇 차례 폭주했을 때가 있었다.
반복되는 회귀로 이성이 붕괴 직전까지 간 탓이었을까. 아니면 세 번째 악마, 분노의 발몬에게 벽을 실감한 공포였을까.
악마군이 아닌 용사의 검에 수많은 이들이 거꾸러졌고, 사상 최초로 용사가 불러온 전란이 철왕국을 휩쓸었다.
―용사님, 왜 그러시는 겁니까!
―날 돌려보낼 방법을 찾아라. 드높은 천상에 기도를 올려서라도.
―빛의 에키니엘이시여, 저희를 구원하소서······.
쓰러지는 신관들을 보며, 그는 성검에 묻은 피를 휘둘러 털었다.
―아직도 모르는군. 그 겁쟁이들은 너희를 지켜주지 않아.
마침내 철왕국의 민초들이 궤멸에 가까운 타격을 입을 때까지도, 대악마의 군세와 드높은 천상은 침묵만 지켰다.
천사를 불러 용사가 청한 바를 물어야 한다, 그것만이 고드의 폭주를 막는 방법이라며 의회에서 소리쳤다던 성녀는 처형되었다.
용사의 타락을 방조했다는 죄목이었고··· 그 소식을 들은 그는 마지막 끈을 놓았다.
성녀 아리아가 죽은 회차, 철왕국의 열두 성은 개미새끼 한 마리도 살아남지 못했다.
“일단 열심히 살았을 것 같은데. 어쨌든 하라는 걸 하면 돌려보내 준다니까.”
“난 작가님 쪽. 마음에 안 들잖아, 무급노동으로 부려먹는데 목숨까지 걸라고? 고까워서라도 깽판 치고 드러눕지.”
“둘째야, 그것도 배우병이다. 다른 세계로 가서도 연예인 특수가 먹힐 성싶으냐?”
“저기, 왜 두 분이 싸우시는지······.”
저쪽에서는 현실 세계의 동료들이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귀환 후 회귀에 대해 타인과 이야기한 적이 처음이라서일까. 카메라 앞이 아닌데도 옛 기억들이 물밀듯이 범람했다.
‘아무도 전 대(代)의 용사에 대해 알지 못했다. 잊혀진 제국의 망령들··· 왕국령을 피해 도망친 몇몇을 제외하고는.’
깊고 험준한 계곡, 수백 년을 살아왔다는 광인들과 마주친 적이 있긴 했다.
불로의 저주를 받아 미쳐 버린, 마지막 제국인이라고 하였나. 시체처럼 누워 있던 노인은 성검을 본 순간 흰 눈을 까뒤집었다.
―악마, 피투성이 악마의 칼! 이카룬, 불운한 불멸자이자 시한부의 필멸자여, 너도 결국 그 꼴이 되어 돌아왔구나!
그다음 회차. 그는 철왕국의 신전에서 깨어나자마자 사라지려는 천사를 붙잡았다.
내 이전에 용사가 있었냐는 질문에, 천사는 놀랍게도 긍정을 표했다.
―용사가 있었다고? 나처럼 전이된?
―오래 전이었다. 차원의 문이 안정되고 이 땅의 인간들이 번성했을 무렵이었지.
―그들은 어떻게 됐지?
―악과 맞서 용맹히 싸웠다.
―그걸 묻는 게 아니다. 왜 지금 어디 있는지를 물었어.
라비엘, 맨 처음 왕국에 현신해 용사의 과업을 명하는 저 천사는 대답하지 않았다.
일렁이는 빛무리 속, 후드를 뒤집어쓴 머리 부분을 잠시 숙이더니 날개를 펼쳐 사라졌다.
‘하여간, 제 말만 하는 놈들이었지.’
이상한 점은 처음부터 많았다. 피와 절망으로 얼룩진 전장에서, 그는 모든 것이 잘 짜여진 한 편의 영웅극이라는 느낌을 받곤 했다.
회귀의 기억을 자신만 가지고 있다는 것도, 철왕국 수뇌부들의 묘한 태도도, 마지막까지 풀 수 없던 이 세계의 비밀까지.
애초에 납치당하듯 끌려온 곳이다. 어떤 추악한 진실이 감춰져 있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싸웠던 이유는······.
“나도 그들도, 절박했으니까.”
툭 흘러나온 말에, 한창 떠들고 있던 사람들의 눈길이 이쪽으로 모였다.
연기 짬밥이 늘어나니 임기응변도 능해진다. 건은 아무렇지 않게 덧붙였다.
“아까 이야기한 소설 대사입니다. 갑자기 생각이 나서, 여기 구 선배님 흉내를 좀.”
“그건 저렇게 하는 거 아닌데······.”
구신승이 억울한 표정으로 항변했으나, 아무도 귀담아듣지 않았다.
*
“컷!”
배우에게 ‘첫방’이란 어떤 의미가 있는가.
인기 연예저널의 인터뷰에서, 모 중견 배우는 이런 말을 남겼다.
-새 작품을 들어가잖아요? 나는 막방은 안 봐도 첫방은 봅니다. 영화도 똑같아요. 첫방 시청률이랑 첫 주 관객 숫자는 꼭 확인해야 직성이 풀리죠.
-어째서인가요?
-왜긴요, 처음이 더 궁금하잖아. 망할지 흥할지 점쳐 보는 맛도 있고.
그러나··· 배우들 중엔 예외도 있다. 첫방에도 종방에도 별 의미를 두지 않는 사람. 시청률과 시상만 목표인 목적지향적인 배우가.
이번 JNBC 월화극의 주인공, 흐트러진 넥타이를 고쳐 매고 있는 박건이다.
“그래서, 진짜 본방사수 안 할 거예요?”
“예.”
“이 세상 시크함이 아냐······.”
최양영은 절망에 빠진 여주인공처럼 입을 막았다. 얼굴이 얼마나 작은지, 한 손에 코부터 턱까지가 전부 가려진다.
“뭐 어떻습니까, 다른 분들이 봐 줄 텐데.”
쳇바퀴처럼 돌아온 월요일이지만, 오늘은 현장 식구들에게 특별하다. 드디어 대망의 ‘망회돌’ 첫 방영일이기 때문이다.
‘오늘 같이 볼 사람들 있어? 돼지갈비집 빌려서 회식 겸 본방사수 가자고!’
‘뭔 회식이야? 감독이야 입만 나불거리니 괜찮지, 우린 카메라 쥔 손 떨려서 안 돼.’
나종모 PD와 김정남 촬영감독이 실랑이하는 동안에도 카메라는 돈다.
이제는 최양영도 본격적인 촬영 레이스에 합류했다. 금지옥엽 자란 대양그룹의 손녀딸, 동료와 적을 넘나드는 경쟁자의 배역이다.
[최양영, ‘망회돌’ 속 재벌집 손녀로 변신··· “이제 선우희라고 불러주세요”] [대양그룹 선우희, 안방극장에 뿌릴 ‘최양영표 팜므파탈’ 시선집중]최양영이 맡은 ‘선우희’는 원작에서도 가장 많은 팬덤을 가진 캐릭터다.
캐스팅이 발표되자마자 높은 싱크로율로 화제가 된 만큼, 팬들의 기대도 한몸에 받는 중이었다.
손을 모아쥔 최양영은 애처롭게 물었다.
“그래도 주연이랑 조연이랑 다른데, 오빠가 와 주시면 안 돼요? 감독님이 벌써 다들 꼬셨단 말이에요. 딱 십 분만 같이 보다가······.”
“저희 동갑입니다.”
“대박, 동수 말이 맞았어요! 선배, 오빠, 이런 호칭에 무지 철저하댔는데, 이걸 맞추네.”
히히, 하고 웃는 얼굴에 애교가 뚝뚝 묻어난다.
지금껏 많은 여배우며 아이돌을 봤지만··· 최양영은··· 그중 가장 친화력이 높다. 꾸밈없는 표현과 살가운 애교는 덤이다.
전형적으로 남자들은 홀리고 여자들에겐 미움을 살 상이라고 할 수 있다.
박건은 무뚝뚝하게 화제를 돌렸다.
“이동수 씨는 잘 계십니까?
“푸흡, 오빠 덕분에 몸값 올라서 신났죠. 회사에서 볼 때마다 입에 귀에 걸려서, 현아 언니가 꼴 보기 싫다고 엄청 구박해요.”
“동갑이라고 말씀드렸는데요.”
“연기 연습한 거예요, 은한섬이 선우희보다 한 살 많던데?”
최양영은 ‘백정장군’을 함께 찍었던, C&J 식구들과 연이 있다. 이윽고 화제는 옛 전우들에서 오늘의 시청률로 바뀌었다.
로만에서 늘 열리는, 드라마 모니터링을 듣자 최양영은 열렬한 참석 의사를 표했다.
“저도 갈래요! 로만 사옥 궁금했는데! 이 참에 인증샷도 왕창 찍어야겠다.”
“저희 회사 소속이 아니면 못 들어옵니다.”
“피, 너무해.”
볼이 부은 최양영이 입술을 내민다. 지금까지 반 장난이었다면, 이번엔 진짜로 섭섭한 기색이다.
“농담이고, 어차피 제가 불참이라서요. 종방 때쯤 기회가 되면 초대하겠습니다.”
“어어, 왜요? 오늘 감독님이 본방 시간에 촬영 다 뺐을 텐데?”
“다른 스케줄이 있어서요. EBC 쪽 작품을 찍어야 합니다.”
으음··· 심각한 콧소리를 내던 최양영은 자기 미니백을 열었다. 그러더니 기름종이에 아이라이너로 숫자를 적어 건넸다.
“거기 대표님 나쁜 사람이었네. 노동착취 신고는 여기, 이 번호로 연락해요.”
“변호사 사무실입니까?”
“응, 저랑 목소리 비슷한 언니가 받을 거예요.”
“······.”
박건이 휴대폰 번호가 적힌 쪽지를 빤히 내려다볼 때, 조감독이 촬영 재개를 알렸다.
“자, 오늘은 감독님께서 신속 정확하게 가신답니다! 일찍 끝내고 본방 확인하러 갑시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저녁 8시.
JNBC에, ‘망회돌’의 로고가 떴다.
*
강북의 신축 오피스텔.
벽걸이 TV 앞, 고급 소파에 파랑머리 청년이 와인을 들고 걸터앉았다.
드라마화된 본인의 작품이 첫 전파를 타는 날이다. 절로 흥얼대는 콧노래가 흘러나온다.
“편집자한테도 연락하지 말랬고, 엄마랑 아빠도 보고 계신댔고··· 오케이! 완벽해.”
그러나 콧노래는 곧 사라졌다.
인물들이 나오고 극이 진행될수록, 소설가의 표정은 점점 바뀌어 갔다.
팬들과의 소통을 위해 한쪽에 켜 둔 노트북에도 반응들이 무수히 올라간다.
스마트폰을 집어들며, 손호윤은 배신당한 사람처럼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이게··· 대체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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