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warrior turns into a million-dollar actor RAW novel - Chapter (122)
전직 용사는 천만배우-122화(122/199)
부상하는 로켓들 (4)
* * *
전우의 금의환향이다.
일 년 전 이맘때쯤, 김률이 어땠던가. 충무로의 실패작, 마이너스의 손··· 온갖 멸칭에 시달린 끝에, 영화를 찍을 배우가 없어 투자사의 캐스팅에 휘둘리는 중이었다.
‘큰범 스튜디오’ 태 대표의 도움으로 간신히 꿈을 좇던 퀭한 눈의 예술가.
지금은 그 위상부터 천지차이로 다르다.
“영광입니다, 김률 감독님!”
“저, 저도 팬입니다! 장외운명이랑 가시의 숲, 재개봉하자마자 몇 번이나 관람했어요.”
“저희도 서예종 출신들이거든요. 감독님 전설을 듣기만 하다가, 이렇게 뵙게 되니 가문의 영광입니다. 혹시 사인 좀······.”
김률은 등장하자마자 촬영장의 인기 스타로 등극했다. 스탭들이 특히 많아서일까. 유명세가 거의 인기 배우 뺨칠 정도다.
몰려든 인파를 비집고, 나종모 PD까지 꾸역꾸역 끼어들어 악수를 청한다.
“아유, 뭐 이리 지방방송들이 많아! 김 감독님, 저 나종모입니다. 작년 말인가, 지나가던 길에 큰범 쪽에 잠깐 들렀는데 안 계시더라고요.”
“예, 요즘은 서울에 거의 없었습니다. 이번 로케가 쭉 진해에서 잡혀 있어서요.”
“괜찮아요, 괜찮습니다. 언제 한번 소주나 하시죠. 저희가 또 같은 충무로의 탕아 아닙니까, 와하하핫!”
“저, 피디님. 우리 감독님은 탕아가 아니라 블루칩인데요?”
‘흑의사제’의 성공 이후, 김률은 완벽한 재평가의 아이콘으로 부상했다.
그간 찍었던 영화··· 심지어 찍고 나서 상영조차 못 걸었던, 비운의 미개봉작들이 평단의 호평을 받으며 불티나게 휘몰아친 탓이다.
[‘장외운명’, ‘가시의 숲’··· 재개봉작으로는 이례적으로 200만 돌파] [히트작 없는 충무로, 꽉 막힌 한국영화 숨통 트게 하는 ‘김률 매직’] [영화평론가 서준용, “김률은 5년 내로 아카데미에 발 들일 것”]새 영화를 찍는다는 소식은 들었는데, 어제 오후 갑자기 전화가 왔다.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혹시 조만간 찾아뵈어도 괜찮겠습니까?
다른 사람도 아닌 ‘흑의사제’의 멤버다. 흔쾌히 그러시라 하긴 했지만, 설마 바로 다음날 놀러올 줄은 몰랐다.
사진을 수십 장 찍어주고 나서야 인파가 흩어졌다. 건은 희미하게 웃었다.
“인기가 엄청나신데요.”
김률도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드라마 촬영 현장에, 이렇게 후배들이 많을 줄 몰랐습니다. 정작 학교를 졸업한 게 언젠지 기억도 안 나는데······.”
여전히 로케를 찾아 전국 팔도를 도는 걸까. 낯빛은 전보다 훨씬 좋아졌으나 바닷사람처럼 새카맣게 탄 피부는 여전하다.
“적(籍)을 뒀던 곳은 오래 남으니까요.”
“그런가 봅니다. 제가 박건 씨 덕분에 여태 호랑이 등을 타는 것처럼.”
“감독님 영화인데요, 숟가락을 얹은 건 저죠.”
웃음소리가 물처럼 흐른다. 전쟁 같던 크랭크인을 헤쳐 나간 탓인지, 꽤 오래 못 봤는데도 엊그제 만난 것처럼 편하다.
“갑자기 찾아와서 죄송합니다. 전화로 말씀드릴까 했지만, 아무래도 직접 찾아뵙고······.”
김률이 말할 때, 세트장 한쪽이 소란스러워지면서 대형 트럭이 들어왔다.
흔히 ‘밥차’라고 불리는 출장 푸드트럭. 옆면에는 보는 사람이 민망해지는 멘트가 초대형 폰트로 적혀 있다.
[충무로의 문제아가 돌아왔다! 감독이 쏘는 밥차는 처음이지?]보자마자 짐작이 간다. 김률의 멘트는 아닐 테고, 이런 말투를 쓸 사람은 한 명뿐이다.
아니나 다를까. 트럭 옆면이 열리면서, 직원들과 함께 하얀 조리모를 쓴 태종범 대표가 확성기로 광역 배급을 전파한다.
“자, 왔습니다. 드디어 왔어요. 둘이 먹으면 영화관 달려가게 된다는 김률표 밥차, 재탕 없는 영화는 영화도 아니다! 자자, 망회돌 식구 여러분, 지금 바로 LPTV에서 흑의사제를 확인하세요!”
“와, 밥차다!”
“감독님, 잘 먹겠습니다!”
“서예종 전설한테 밥차도 받아 보고··· 진짜, 가슴이 웅장해진다.”
그놈의 도로 허가 때문에 여태 점심도 거르고 일하던 참이다. 굶주린 스탭들이 밥차로 몰려들고, 배우들도 하나둘씩 일어선다.
마침 이쪽과 눈이 마주치자, 태종범 대표는 중요한 얘기들 나누라는 듯 손을 흔든다.
“···빈손으로 오기 뭐해서 대표님께 부탁했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혼자 할 걸 그랬네요.”
“태 대표님도 건강해 보이시는데요.”
“건강하다 못해 펄펄합니다. 어제 연락을 받은 뒤론 쭉 저 상태셨죠.”
“연락이라면?”
김률은 옛 친우에게 연락이 왔다는 투로 말했다.
“칸에서 초청장이 왔습니다.”
남들이 기뻐 날뛸 이야기를, 무심하게 하는 저 말버릇은 여전하다. 오히려 배우 쪽이 눈을 조금 크게 떴다.
“칸? 영화제 말입니까?”
“예. 제가 가장 먼저 연락을 받았습니다. 아마 오늘 저녁쯤 기사들이 뜰 겁니다.”
칸 영화제.
베를린, 베니스와 함께 3대 영화제로 꼽히는 국제 영화계의 메카다.
한때 한국영화도 많이 초청됐지만 최근에는 몇 년째 명단을 올리지 못하며 ‘작품 가뭄’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곳에 국내 상업영화, 그것도 신인이나 다름없는 감독의 작품이 초청을 받은 것이다.
“아마 곧 알게 되시겠지만, 제가 직접 전해 드리고 싶었습니다. 박 배우님이 없었더라면 칸도 대종상도··· 아니, 이 모든 게 불가능했을 테니까요. 저는 아직 그 언덕에서 들었던 이야기를 기억합니다.”
“감독님.”
“숙원을 좇지 않는 인간은, 시체나 다름없다는.”
인기를 얻고 위상이 높아졌다 한들, 저 젊은 감독은 조금도 때 묻지 않았다. 마지막 숨을 내쉬는 순간마저도 겸손할 사내다.
―드디어··· 세 번째 놈을 죽였군. 베리알과 아스메라우스는 네게 맡기마.
김률의 얼굴에서 옛 동료가 겹쳐져, 건은 화제를 돌렸다.
“상을 받을 수도 있는 겁니까?”
김률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칸은 경쟁과 비경쟁으로 나뉩니다. 저희는 경쟁 부문에 초청받았으니, 확률은 희박하더라도 가능성이 없지는 않죠.”
“그렇습니까.”
대수롭지 않게 답하며, 건은 주먹 관절을 문질렀다. 예상치 못한 선물이 생일도 되기 전에 튀어나온 기분이다.
작년 말, 신인상과 작품상을 받자 환청의 형태로 옛 기억이 돌아왔다.
국내에서 받은 상이 그 정도라면··· 저 이름난 국제영화제는 어떨까.
“전 오히려 이쪽이 신기한데요. 봤던 모습 중, 가장 기대에 차 보이십니다.”
그를 쳐다보던 김률이 슬그머니 웃었다.
“기대는 아니고······.”
“지금에서야 이야기하는 거지만, 흑의사제 때도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박 배우님께선 어떤 이유··· 최고로 올라서야 하는 비원 때문에 연기를 시작하신 게 아닐까 하고요. 제가 스스로의 염원에 맹목적으로 집착했듯이.”
명감독의 눈썰미는 날카롭다. 이쪽의 속내를 말한 적도 없건만, 핵심을 정확히 짚어낸다.
건은 더 빼지 않고 긍정했다.
“찾는 것이 있습니다.”
“시청률이나 관객 수가 필요한?”
“예, 거기에 시상도.”
“그리고 더 높은 목표에 다다른다면, 아마 발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시고요.”
“그럴 겁니다. 여태 그랬으니까요.”
어느 날 밤, 지구로 돌아온 뒤의 도식도를 정리해 본 적이 있었다.
‘서울의 개’에서는 어떤 기억을 찾았고, 또 ‘흑의사제’와 ‘회색도시 팀장님’에서는 무엇이 돌아왔는지. 경성의 ‘백정장군’을 지나, 마침내 회귀자 역할을 맡게 된 ‘망회돌’까지.
쭉 늘어놓자 흥미로운 사실이 밝혀졌다. 다소 뒤죽박죽이긴 해도, 기억들은 그가 철왕국에 전이된 초창기부터 서서히 돌아오고 있었다.
마치 악마군의 잔당을 참하고, 격의 상승으로 저 대악마들에게 차례차례 도전했듯이.
‘조건부 해금이 따로 없었지.’
분노의 발몬과 죄악의 베리알, 가장 강대했던 셋째와 넷째와의 기억은 여전히 희미하다.
그러나, 그 역시 작년과는 사뭇 다르다. 만약 올해 들어간 작품들이 더욱 성공한다면······.
또다시 환청이 들려올 것이다. 카메라 앞에서 돌아오는 옛 권능과 함께.
“박 배우님, 식사 안 하세요?”
“감독님이랑 같이 먹겠습니다.”
“끼니도 때 놓치면 속 버려요. 두 분 다, 바빠도 밥은 꼭 챙겨 드세요!”
음식 접시를 든 스탭들이 그들을 지나치며 한 마디씩 건넨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김률의 입가가 올라갔다.
“박 배우님의 가장 큰 장점은 연기력도, 피지컬도 아닌 바로 이것 같습니다. 군자와 영웅은 사람을 끌어들인다고 하죠.”
“전 둘 다 아닙니다만.”
“아, 용사란 호칭을 더 선호하시죠. 쓰시는 글도 재미있게 보는 중입니다. 여러 작품을 하셔서 그런가, 진짜 각본처럼 흥미로웠습니다.”
이번에는 한 방 맞았다. 건은 주변을 둘러보고 목소리를 낮췄다.
“그건 또 어떻게······?”
최근, 팬카페에 연재하기 시작한 ‘철왕국 이야기’가 여기서 나올 줄은 몰랐다.
김률은 어깨를 자랑스레 으쓱해 보였다.
“저도 열혈건이거든요. 흑의사제 크랭크업 마치자마자 가입했었습니다.”
“···못 뵌 새 많이 달라지셨군요. 배우 놀리는 데 진심이 되시고.”
“박 배우님도 밝아지셨습니다. 대표님한테 매번 잔소리나 듣던 제가 할 소린 아니지만.”
오가는 덕담 속에서, 잠시나마 배우와 감독은 함께 영화를 찍던 순간으로 돌아간다.
지금만큼은 대형 드라마 세트가 아닌, 똘똘 뭉쳐 열악함과 맞서던 영화촬영장에 있는 것처럼.
“그런데 감독님, 죄송하지만 급한 일 하나만 해결하고 이야기해도······.”
건의 말에, 김률 감독은 흔쾌히 함께 일어섰다.
“제가 너무 시간을 끌었군요. 감독님들이 많이 계시던데, 기획 회의가 있습니까?”
“아뇨. 밥 좀 받아 오려고요.”
“예? ···아, 밥차.”
세월은 어쩔 수 없는지, 잠시 멍해졌던 김률이 웃음을 터뜨렸다.
“오랜만에 음식 탑을 또 보겠네요. 여전히 닭은 안 드십니까?”
“예. 날개 달린 것들은 전부.”
“···박 배우님도 정말 한결같으십니다.”
*
-자, 숨을 깊이 들이마시세요. 명상은 우리 몸을 우주로 만들어 줄······.
“어휴, 정신 사나워.”
삑, 흘러나오던 강사의 동영상이 꺼진다. 리모컨을 쥔 한지영은 다시 채널을 바꾼다.
이내, ‘망회돌’ 전 회차 재방송이 풀 HD화질로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쌤, 죄송해요. 제 우주는 여기라서.”
요 몇 주 사이, 그녀의 심신은 평온해졌다.
마음 편히 출근하고, 4개에 만 원짜리 맥주 세트를 사서 퇴근한다. 그러고 집으로 돌아와 좋아하는 배우의 작품을 켜면?
땀방울을 날리는 에어컨 바람처럼, 연예인 부럽잖은 무릉도원이 펼쳐지는 것이다.
“크··· 이게 인생이지. 안 그러니, 크림아?”
“야옹!”
최근 임시보호 중인 삼색고양이가 말을 알아들은 것처럼 야옹거린다.
그러고 보면 요즘은 너무 힘들었다. 사실 박건의 ‘덕질’을 시작한 이래 자주 그랬다.
늘 험한 길을 택하는 배우에게 마음을 졸이는가 하면, 나쁜 놈들이 음해하거나 역경이 닥쳐올 때는 장판파의 장비처럼 맞서 싸웠다.
“또 그걸 넘어서는 맛이 있긴 하지만.”
배우는 끊임없이 도전하고, 팬들은 그런 배우를 아낌없이 서포트한다.
더군다나, 요즘에는 팬카페에 글도 자주 쓰고 있어서 좋았다.
[배우의 시나리오]EP.0 : 나는 군인이었다
EP.1 : 철왕국
EP.2 : 차원전이의 이유
게시판이 생기고 첫 글이 올라왔을 때, 그녀도 이게 무슨 컨텐츠인가, 싶었다.
알고 보니 이세계와 용사가 나오는··· 그래, 딱 웹소설스러운 시나리오 연재였다. 이를테면 배우가 직접 쓰는 자신의 팬픽이랄까.
“고드, 용사, 대악마··· 본인이 좋아하는 건 다 넣어서 더 웃긴단 말이지. 누가 매사 진심인 사람 아니랄까 봐.”
그리고 연재작을 읽어본 팬들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놀랐다.
세계관과 구성, 주인공들의 캐릭터가 웬만한 소설보다도 짜임새 있었으니까.
결국 한지영은 노트북으로 단체 영상통화를 켜서 불꽃 튀는 토론회를 벌였다.
“이건 드라마 각본으로 내려고 준비한 거야. 박건 작가 원작에 잘 치는 PD 붙여서, 딱 다음 작품으로 들어가려는 거지.”
“아님. 딱 봐도 고드가 부캐임. 지금까지 한 인터뷰랑 컨셉 겹치는 거 보면 모름?”
“어··· 일리 있긴 해. 뭐라더라, 메타버스? DG가 한창 한다고 설치던 세계관보다야 우리 오빠 퀄리티가 훨씬 높잖아.”
작가 데뷔설, 예능용 부캐설, 메타버스 신사업설이 팽팽히 맞섰지만 결론은 ‘박건 이즈 뭔들’로 귀결되었다.
부캐나 메타버스면 뭐 어떠랴. 애매한 컨셉으로 1절 2절에 3절까지 거듭해, 잘 나가던 아이돌들 이미지를 깎아먹던 DG와는 분명 다르다.
‘배우··· 아니, 작가가 이 세계에 진심인 게 느껴진단 말이지.’
글 속의 주인공, 고드의 독백을 읽을 때면 묘하게 박건이 겹쳐 보이는 것도 신기했다.
뭔가 직접 겪은 이야기 같다고 할까, 정말 돌아온 용사가 후일담을 회상하는 느낌이랄까.
그 덕에, 요즘 팬들 사이에서는 박건이 정말로 회귀자라는 과몰입 스토리가 인기였다.
“비록··· 용사의 몸은 지구에 있지만··· 마음은 아직도 철왕국의 마경에서······.”
근면한 카페 스탭으로서, 떡밥은 꾸준히 활성화시키는 것이 인지상정.
기계식 키보드를 두드리던 한지영의 시선이 옆으로 향한다. 징, 지잉, 그녀의 스마트폰에서 알람이 쏟아지는 참이었다.
다른 메신저들은 다 무음이니, 이 알람은 ‘열혈건이’ 운영진 단톡방이다.
“···뭐야? 한창 일하고 있는데.”
귀찮은 투덜거림도 잠시, 톡을 확인한 한지영의 휴대폰이 허공을 날았다.
“세상에, 칸? 거기다가 망회돌은 2회 연장? 이게 무슨 일이야!”
좋은 일에 좋은 일이 같이 온다.
곧이어 불어닥칠 태풍을 대비하라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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