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warrior turns into a million-dollar actor RAW novel - Chapter (126)
전직 용사는 천만배우-126화(126/199)
부상하는 로켓들 (8)
* * *
그날이 왔다.
속칭 막방 당일.
16부작이던 ‘망회돌’이 2회차가 늘어, 어젠 17회가 방영됐고 오늘은 18회가 뜬다.
[한 주 더 하는 ‘망회돌’, 미뤄진 ‘격투왕 변호사’···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35% 넘긴 ‘망회돌’ 시청률, 마지막 회에서 유종의 미 거둘까]준비하던 드라마가 한 주 밀렸으나··· 누구도 불만을 표시하지 않는다.
드라마 초반부터 2화 추가편성이 고지된 데다, 시청률 짜내기용 늘리기가 아니라 원작 호흡에 잘 맞췄기 때문이다.
차에 탄 채, 로만의 주차장으로 들어가려던 보컬 트레이너가 고개를 쭉 뺀다.
“야, 날씨 한번 좋다!”
“김 쌤, 그러다 사고 나요! 앞에 봐!”
날은 맑고, 하늘은 높다.
가만히 있어도 기분이 좋아지는 여름날의 아침. 7층 홍보팀도 오전부터 들썩이는 중이다.
“어, 오늘도 그거 하려나? 다 같이 회사에 모여서 본방사수?”
커피를 마시던 남직원의 말에, 여직원이 고개를 젓는다.
“노노, 이번엔 없던데. 팀장님도 상영회 시절 다 갔다면서 울상이시더라.”
“그건 그래. 화제성 미쳤지, 시청률 대박이지, 같이 보려는 인간이 한둘이겠냐고.”
첫방이야 시청률이 얼마나 나올까 가슴을 졸이지, 이미 성공한 작품의 막방은 샴페인만 터뜨리면 될 일이다.
‘망회돌’ 기사를 쭉 훑던 여직원이 중얼거렸다.
“아마 주연들은 모이지 않으려나?”
“은쓰리에 최양영, 석필호까지 다 모여서 사진이나 찍어 주면 좋겠네. 시작 전부터 노 젓게.”
“나중에 선이 씨한테 물어봐. 오늘 본진은 어디냐고.”
*
최양영의 소속사 미디어폭스.
느지막이 출근한 대표가 사무실을 지나가다 발길을 멈췄다.
회사의 메인 여배우가 벽을 보고 앉아 있었던 것이다. 저걸 뭐라고 할까··· 삐진 어린애?
“야, 쟨 또 왜 저러고 있냐?”
최양영 옆에 있던, 부대표나 다름없는 실장이 목을 긋는 시늉을 했다.
“오늘 막방 모니터, 데려가 달라고 조르다가 잘렸대요. 로만 삼인방만 본다고.”
“안 잘렸거든? 내가 빠진 거거든?”
고개를 돌린 최양영이 빽 소리친다. 실장은 실실대며 타격감 좋은 연예인을 약올렸다.
“빠지긴 뭘, 최필립한테 징징대다가 입구컷 당한 거 다 들었는데. 그 양반 동료고 뭐고 선 잘 긋는다고 얘기했잖아.”
“······.”
“정 보고 싶으면 그··· 누구야, JNBC 근처로 가든가. 다른 배우들 모여서 본다더라.”
“몰라, 자기들끼리 재밌게 놀라고 해!”
쏘아붙인 최양영이 발딱 일어나더니, 씩씩대며 나가버린다. 쾅! 닫힌 문을 바라보던 대표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우리 양영이, 우쭈쭈만 받다가 제대로 텄네.”
“다른 데도 아니고 로만이잖아요. 거기 배우들 철벽 오진다니까.”
“이쪽도 선우희 때문에 드라마 특수 제대로 받고 있잖아. JNBC랑 로만에 적당한 선물 하나씩 보내, 쟤는 이따 단 거나 좀 사주고.”
*
-26층입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양손에 큼지막한 짐을 들고 내린 건이 물었다.
“최양영 씨는 안 불러도 됩니까?”
앞서 아파트 복도를 걸어가던 최필립이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그 사람을 왜 불러요. 친하지도 않은데.”
“같이 보고 싶은 눈치던데요.”
“알 반가, 자기 회사 사람들이랑 보겠지.”
맨 뒤의 구신승이 따라오며 말했다.
“너무 칼같이 쳐내긴 했어. 대놓고 사람 차별하면 욕 먹는다.”
“이 바닥에 평등주의자가 어딨어? 어쨌든 난 모르는 사람 집에 안 들여.”
그들은 지금 최필립의 아파트에 있었다. 여느 때처럼 회사에서 볼까, 아니면 스튜디오 하날 빌려 사람들이랑 시청할까, 고민 중에 최필립이 불쑥 제안을 꺼낸 것이다.
‘그럼 같이 볼래요? 원래 모니터 잘 안 하긴 하는데, 이번엔 막방이니까.’
탑 배우의 집이라기에 클 줄 알았지만, 의외로 최필립은 평범한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딱히 으리으리하지도, 뷰가 좋거나 내부가 넓지도 않다. 집주인은 설명이라도 하듯 어깨를 으쓱했다.
“집이 커 봤자 치우기만 힘들어서. 혼자 사니까 넓을 필요도 없더라고요.”
곧 초대받은 매니저들도 도착해, 막방 상영회 총인원은 6명이 되었다.
구신승의 매니저, 양수연 팀장은 산더미같이 쌓인 휴지를 보고 감탄했다.
“필립 씨, 휴지사업 시작했어요?”
“박건 씨한테 물어봐요. 집들이 선물이라고 한 트럭을 가져왔으니까.”
“···죄송합니다. 저희 형이 중간이 없어요······.”
‘망회돌’ 마지막 촬영이 끝난 지 벌써 일주일이 넘었다.
오랜만에 만났는데도 배우고 매니저고 격의 없이 친근하다. 촬영 당시, 그리고 지금도 서로의 SNS에 댓글을 남기며 자주 교류한 탓이다.
박선이 문득 생각난 것처럼 말했다.
“아, 회사에서 본부장님도 만났어요. 필립 배우님 집에서 본다니까, 알겠다면서 따로 연락하시겠대요.”
“어? 연락 안 왔는데?”
휴대폰을 확인하는 최필립 옆에서, 박건이 손을 들었다.
“저한테 왔습니다. 사진 한 장만 몰래 찍어서 홍보팀에 보내 달라시던데요.”
“어휴··· 지긋지긋한 바이럴. 박건 씨도 그 양반 번호 차단해요, 방해금지모드였다고 하고. 백하니한테 배운 건데 나름 쏠쏠하더라고.”
웃고 떠들다 보니 방영 시간이 되었다.
박건이 소리를 한 단 올리자, 광고가 끝나며 흰 화면에 드라마 제목이 떠올랐다.
마지막 회라서일까. 여태까지의 방영분 하이라이트가 먼저 흘러나온다.
―비켜, 안 비켜?
―막아! 못 가게 해!
비상소집된 이사회.
은한섬의 예상처럼, 선화그룹 비서실과 은기학의 개인 경호원들이 회의 개장을 막아선다.
지켜보던 은한섬, 피식 웃으며 중얼거린다.
―이럴 줄 알았지, 할아버지. 물불 안 가리는 건 몇 번을 태어나도 똑같을 테니까.
그러나 이쪽도 만반의 준비를 한 상태. 전생의 기억으로 ‘장 박사’를 회유해, 압도적인 기술력으로 무장한 이들을 이길 수 없다.
이내 근력증강 특수장비를 착용시킨 선화쉴드 직원들이 상대 세력을 몰아붙이기 시작한다.
―아이고, 안녕들 하십니까.
―은선창 사장? 당신이 왜 여길······.
―왜긴, 호박씨 열심히 까던 형수네 혼내주러 왔지. 우리 집안이 콩가루 같긴 했나 봐, 송일 따위가 감히 탐내던 걸 보면.
송일그룹의 약점들을 틀어쥔 은선창이 복수를 시작하고,
―은 회장님! 왜 이러시는 겁니까, 갑자기 관계를 끊으시겠다뇨!
―난 회장이 아닙니다. 지금 총회장은 내 할아버지, 은기학 총회장님이죠. 이제 곧 바뀔지도 모르겠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라······.
―이봐, 남상길 의원.
―뭐··· 뭐요?
―당대표쯤 하니 무서운 게 없었나? 충성을 하든 손을 잡든, 우호를 택했으면 끝까지 갔어야지. 당신들은 욕심이 너무 과했어.
은선인 역시 배신을 준비하던 정계 인사들과 전면전에 돌입한다.
선화그룹의 전신은 조선화약··· 민중을 구하기 위해, 또 국가를 지키기 위해 타오르던 연기였다.
이제 그 연기가 푸른 불길로 변해 은씨 삼형제의 몸을 휘감는다.
교차된 편집 속, 그들 세 명이 나아가는 것을 보던 최필립이 중얼거렸다.
“저거 하난 건졌네. 막화 망해도 캡처 떠서 피드에 걸어 둬야겠다.”
옆에서 시청하던 매니저 김영태가 물었다.
“왜? 가족애나 K-신파 같은 건 두드러기 난다고 질색하더니.”
“가족애가 아니라 비즈니스니까. 셋 다 자기 목표를 위해 손잡은 거잖아.”
꼭 우리처럼, 덧붙인 최필립이 다시 TV에 집중한다. 박건과 잠깐 시선을 마주친 구신승도 물을 한 잔 마신다.
말은 저렇게 해도, 이 작품을 통해 제법 친해졌음을 이 자리의 모두가 안다.
―은 회장님 들어오십니다!
그리고 격전의 한복판, 모두가 보는 앞에서 회의장에 은기학 회장이 등장한다.
―총회장님! 이게 무슨 일이란 말입니까!
―누가 총회장님인가, 말조심하게!
이사회에 참석한 이들 사이에서도 작은 소란이 빚어진다.
‘친 은기학’파를 자처하는 원로들과, ‘친 은한섬’파의 신흥 임원진들이다. 단기간에 세력을 키운 회귀자로서도 이사회를 완벽하게 장악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언론과 검경, 정치권에서는 치열한 싸움이 벌어지는 중이다.
회귀자··· 은한섬은 거대한 적수에게 걸맞는 포위망을 준비했다.
세금포탈, 차명계좌, 비자금 조성.
손자의 칼이 명명백백한 혐의를 겨눠 오지만, 늙은 맹수는 상처를 돌보지 않는다.
―은 부사장··· 아니, 한섬아. 진정 욕심에 넋이 나간 게냐?
―죄송하지만 회장님, 이제 진실을 밝힐 시간이 되었습니다.
은한섬의 말과 함께, 뒤쪽이 웅성거리더니 두 명이 걸어들어온다.
해외로 떠나 있다던 은기학의 부인 강영숙 여사와, 은재영의 남편 이시동이다.
―너희가 어떻게······!
은기학의 손등에 굵은 핏줄이 돋아난 순간, 강영숙 여사가 입을 연다.
―오랫동안 한국을 떠나있었어요. 당신은 재영이뿐만 아니라 나까지 해치려 했지만, 이제 그 철혈의 제국도 끝이 보이는군요.
이어 회의장 가운데, 영상화된 홀로그램이 떠오르며 은기학 회장이 저지른 악행의 증거가 조목조목 제시된다.
마지막에 나온 것은 오래된 녹음 파일이다. 아버지, 어떻게 이런 짓을··· 은재영의 목소리가 나온 뒤, 은기학의 노호성이 들린다.
아내의 죽음에 남몰래 칼을 갈며, 한평생 재벌가 데릴사위로 살아온 이시동이 말한다.
―장인어른, 아직도 저는 기억합니다. 당신과 다투고 난 뒤, 재영이는 조세포탈의 증거를 가지고 차를 몰던 도중 사고를 당했습니다. 아버지 된 자로서 어찌 이런 짓을 할 수 있습니까?
―그건······.
―사고였든, 고의였든, 그건 중요치 않습니다. 당신의 딸, 한 아이의 어머니는 욕심에 잡아먹히고 만 겁니다. 선화라는 이름 속에서.
그것으로 전황은 완전히 기운다. 자료만 있었어도 등을 돌릴 판에, 오랜 시간 잠적했던 사모님과 사위까지 참전하지 않았나.
―전 총회장의 신병을 확보해. 측근들을 이용해 도주의 우려가 있으니.
은한섬의 명령을 받고 사람들이 다가간 순간, 별안간 건장한 노구(老軀)가 휘청인다.
연기인가? 생각이 스친 것도 잠시, 은기학 총회장의 몸이 무너져내린다. 발밑의 지지대를 잃은 탑이 붕괴하듯이.
―회장님!
―구급차 불러, 병원으로 모신다!
소란과 함께, 화면이 잠시 암전했다. 막간을 틈타 박선이 옆의 형에게 소곤거린다.
“형, 저때 기억나? 연기인 거 알면서도 엄청 놀랐잖아, 석 선생님 진짜 쓰러지신 줄 알고.”
“응, 실감 나더라.”
그 이후는, 그야말로 폭풍처럼 몰아치는 이야기들이 극을 채웠다.
직위가 해제된 은기학 전 총회장이 뇌종양임이 밝혀지고, 세인들은 악행을 저질러 천벌을 받은 거라며 분개한다.
두 형들의 싸움도 모두 승리로 끝난다. 선화를 집어삼키려던 송일그룹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분노한 민심을 ‘서울의 영웅’ 은한섬이 나서 진정시킴으로써 주가 역시 방어해 낸다.
그리고 시한부 판정을 받은 은기학의 병실에, 모두를 물린 은한섬이 들어간다.
―조금 늦었구나.
―예, 할아버지 곳간을 터느라.
―더 많이 가져가지 그랬느냐, 절대자는 끊임없이 굶주려야 하는 법이거늘.
그날 이후, 은기학 회장은 거짓말처럼 초췌해졌다. 코로 튜브를 삽관한 얼굴에 죽음의 기운이 돌지만, 입매는 웃고 있다.
죽음이 악인을 회개시키기라도 한 걸까. 은한섬의 미간이 찌푸려진다.
―난 당신을 용서할 수 없습니다.
―나도 그렇단다. 그래서 쭉 기다리고 있었지, 너희 중 누군가가··· 아니, 어쩌면 내 아들들 중 누구라도, 칼을 들고 올라와 내 목을 치기를.
―그게 무슨 소립니까?
―죄를 벗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공표하고 죗값을 받기도 싫었지. 내가 추락하는 순간, 이 제국이 수많은 승냥이 떼에게 뜯길 터니까.
한순간, 은한섬의 뇌리에 불꽃이 튄다.
그러고 보면 이상한 점이 많았다. 분명 이쪽의 동향을··· 아버지와 할머니가 쥔 증거를 알았을 텐데도 움직이지 않았으니까.
당시에는 그저 일말의 양심, 또는 자리보전을 위한 수단이라고 여겼다.
만약 그게 아니었다면······.
―일부러, 기다렸던 겁니까?
떨리는 손자의 목소리에 답하는 대신, 죄 많은 노인은 닫힌 창을 본다.
―그날··· 재영이가 증거를 들고 찾아왔을 때, 슬슬 물러나야 할 때가 왔다고 여겼지. 그 애가 그걸로 뭘 하든 받아들일 생각이었다.
―······.
―사고 소식을 듣고, 수만 번을 후회하고 또 후회했다. 내가 거기서 고개를 숙였더라면 재영이가 뛰쳐나가지 않았을 테니까. 죄 많고 한 많던 삶이지만, 이 이야기만은 해주고 싶었다.
파르르 떨리던 은기학의 눈꺼풀이 닫히며, 화면이 전환된다. 동시에 한 마디 목소리가 거실에 퍼져나간다.
―미안하구나.
은기학이 죽고 은한섬이 선화의 왕좌에 앉는다는 결말은 같지만, 그 과정은 달랐다.
이어 열린 은한섬의 취임식, 축하해 주는 형들과 주변 이들이 앵글에 잡힌다.
그리고 다시 한밤중.
국밥집 앞에 새까만 벤츠가 멈추고, 운전석에서 은한섬이 내린다.
―여긴 다시 와도 여전하네.
맨 처음, 은한섬이 순대국밥을 먹고 쓰러져 죽었던 골목.
그곳에 저벅저벅 들어간 회귀자는, 이번에는 동전이 아닌 지폐를 꺼낸다.
―순대국밥이랑 소주 하나요.
그리고 누군가와 마주 앉기라도 한 듯, 잔 두 개에 소주를 채운다.
“······.”
드라마가 끝났다.
마지막 촬영 분량을 직접 찍고 봤던 사람들이지만, 막상 화면이 바뀌자 말이 없다.
여진주와 윤발25, 둘은 단순한 권선징악이 아닌 하나의 세계를 그려냈다.
다시 한 번 기회를 얻었을지언정··· 완벽한 인생이란 불가능하다는 사실도.
여운을 품은 정적 속에서, 나직한 목소리가 좌중을 깨운다.
“재미있었습니다, 고증이 제법 좋아서.”
회귀자가 연기한 회귀극이 막을 내렸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