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warrior turns into a million-dollar actor RAW novel - Chapter (127)
전직 용사는 천만배우-127화(127/199)
저마다의 행성에서 (1)
* * *
‘망회돌’ 마지막 회차가 방영된 주.
금요일 밤, 신사동 골목으로 값비싼 스포츠카들이 들어온다.
이미 지하주차장은 만석이다. 선글라스를 쓴 여자가 근처 건물에 발렛을 맡기고 어디론가 향한다.
이내, 아찔한 힐이 어느 철문 앞에서 멈췄다.
“연락 받고 온 거긴 한데, 여기 맞아요?”
“예. 들어가시면 됩니다.”
정문은 잠가 둔 채, 뒷문 앞에 선 가드가 입장객을 들여보낸다.
축하연도 자주 하면 민폐가 된다. 벌 만큼 벌었는데 굳이 아낄 이유도 없는 노릇.
눈치 보이는 소속사 사옥 대신, 아예 라운지 하나를 대관했다.
“어머, 언니!”
“왜 지금 왔어, 희주는?”
“오늘 늦는대. 박건 보면 꼭 사진 찍어달라던데, 아직 있지?”
“있긴 한데 사람이 워낙 많아서··· 아무튼 실물 미쳤더라, 매번 보던 배우들이랑 달라.”
내부는 그야말로 선남선녀의 잔치다. 잔뜩 차려입은 여자가 방금 도착한 지인을 데리고 어두운 계단을 올라간다.
1층에서는 DJ가 음악을 틀고, 트랜디한 비트가 딱 대화를 방해하지 않을 만큼만 울린다.
지인이 지인을, 또 그 지인이 다른 지인을 부른 파티장에서도 단연 ‘망회돌’ 멤버들 곁에 사람들이 몰린다.
주인공의 동생. 수트는커녕 청바지에 반팔 티만 걸친 박선이지만, 그에게도 연예인이며 관계자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안녕하세요, 예전에 한번 뵀었는데. JNBC 복도에서요.”
씩 웃은 사내가 박선에게 명함을 건넨다. 쓱 보니 김용수 PD라고 적혀 있다.
“아, 김 PD님이셨군요! 형은 아마 2층에 있을 거예요.”
“아뇨, 오늘은 매니저님한테도 인사를 드려야겠다 싶어서요. 팀장 승진도 축하드릴 겸.”
이 바닥 소문은 빠르다. 팀장 직급을 단 지 몇 주 되지도 않았는데, 축하 문자며 전화가 쏟아져 정신이 없을 정도다.
“감사합니다. 아직 정식으로 다른 연예인 분들을 맡은 건 아니고······.”
박선이 얼떨떨하게 대답했지만, 상대는 장난스럽게 눈을 찡긋한다.
“꼭 누굴 맡아야 팀장인가,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거죠. 그나저나 예능엔 관심 없으시려나?”
“형하고 상의해 보겠습니다. 회사에서도 긍정적으로 검토 중이라서요.”
“아뇨, 박건 씨 말고 선 매니저님.”
“예··· 예?”
“저희, 예능국 쪽에서 매니저님도 블루칩이라고 소문이 자자하거든요. 스타 가족들, 특히 매니저가 주가 된 예능 파일럿이 곧 나올 겁니다. 나중에 기획이나 한번 봐주세요.”
어이쿠, 저기 나종모 오네. 중얼거린 예능국 PD가 사라지자마자 웬 여자 두 명이 붙는다.
또다시 뚝딱거리는 동생을 멀찌감치서 바라보며, 건은 희미하게 웃었다.
‘참 한결같단 말이지. 이제 슬슬 인기에 적응했을 때도 됐는데.’
들었다면 자기도 어엿한 프로라며 억울해했을 테지만, 아직 박선은 귀여운 동생이다.
배우인 형에게도, 회귀한 용사에게도.
“박 배우님, 안녕하십니까! 저 이수창입니다, 예전에 준상이 형네 고깃집에서 인사드렸는데··· 혹시 기억하실까요?”
“예,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는요, 제가 더 감사하죠! 실례가 안 된다면 사진 한 장··· 아니, 두 장만 찍어 주십시오!”
훤칠한 남자 배우가, 사진을 몇 장이나 찍고는 못내 아쉬운 듯 물러난다.
실례만 아니라면 사진이 아니라 입은 속옷이라도 부적 대신 달라고 할 기세다.
‘이상한 이미지가 생겼어, 하필 회귀자 역할을 맡아 버려서.’
마이더스의 손.
이제 연예계 모두가 그 별명을 이야기한다.
손대는 작품마다 성공으로 이끈 전적이 은한섬의 회귀자 이미지와 맞물려, 진지하게 두 번째 삶 아니냐고 묻는 사람도 있다.
막방 다음날 찾아간 홍보실에서, 공기형 팀장은 잔뜩 흥분해 그를 맞았다.
‘미쳤다는 말밖에 표현이 안 돼요. 영화는 칸 경쟁부문에, 드라마는 연타석으로 40%급이라니. 이 바닥에선 박건 이름만 나와도 같이 하려는 사람들이 일렬종대로 상암동 열 바퀴일걸요.’
‘시청률은 백정장군 때도 높았잖습니까. 딱히 더 큰 성공도 아닌데요.’
‘박 배우님, 99랑 100의 차이가 뭔 줄 알아요?’
‘글자 수?
‘···아니죠, 한 틱 차이로 끓고 말고가 결정된다는 거예요. 아홉 번 성공하고 열 번째에 실패하느냐, 전부 다 대박을 치느냐가 중요한 이유지.’
그리고 승승장구는 현재진행형이다.
“박 배우님!”
돌아보니 윤발25가 손을 흔들고 있다. 옆에는 웬 화려하게 생긴 여자와 함께였다.
이 바닥을 구르며, 자동으로 장착된 마스크 레이더가 직감을 전한다. 연예인은 아닌 것 같고··· 지인을 데려왔나?
“안녕하십니까.”
“예, 대박이에요! 저한테 무슨, 출판산업 부흥인가? 책 쓰는 사람들이 받는 상을 준다더라고요. 일요일에 그거 받으러 파주까지 가요.”
“작가님도 책 쓰는 분 아닙니까?”
윤발25는 눈을 끔뻑이다가, 그도 그렇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어··· 그러게요. 그나저나 배우님도 무진장 축하드려요, 칸에 가신다면서요?”
“그럴 것 같습니다. 올해는 시상이 좀 늦춰져서, 함께 찍은 동료들이랑 함께 참석하게 됐습니다.”
이미 윤발25는 샴페인을 몇 잔 들이켠 것 같았다. 엄청나네요, 엄청나요! 찰진 탄성을 연신 올리다가 옆의 여자를 돌아봤다.
“맞다. 이쪽은 친한 여동생이에요. 최근 안 좋은 일이 좀 있어서, 기분전환이라도 시켜 줄 겸 같이 데려왔어요.”
“안 좋은 일이라면······.”
“아, 아니에요. 오빤 이 좋은 날에 뭔 소릴 하는 거야?”
화들짝 놀란 동생이 말렸지만, 윤발25는 꿋꿋하게 할 말을 했다.
“이 친구가 인기 스트리머인데, 최근에 스토킹을 당했거든요. 뻔히 악질 팬인 거 아는데 잡질 못해서 한동안 시달렸대요. 대한민국 법이 뭐 이따위인지, 화가 다 나더라니까요.”
“오빠, 그만 좀 해! 죄송해요, 술도 약한 사람이 엄청 마셔서······.”
“야, 내가 언제?”
“오자마자 샴페인부터 원샷했잖아! 창피하니까 이리 와. 얼른!”
윤발25는 동생의 손에 끌려가면서도 스토킹 처벌법이 어쩌고, 웹소설보다 현실이 더 사악하다며 중얼중얼거렸다.
‘요즘은 일반인도 스토킹을 당하나?’
건이 생각했을 때, 익숙한 얼굴이 나타났다.
“백하니 씨?”
“못 볼 거라도 봤어요? 표정이 왜 그 모양인지 모르겠네.”
“이런 데는 안 온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백정장군 종방연 이후로요.”
올블랙 점프 수트에, 실버 체인벨트로 포인트를 준 백하니는 잠깐 멈칫했다.
“···그건 그때고, 오늘은 회사 사람들 다 나온다잖아요. 이럴 때 얼굴 좀 비춰야지, 개과천선하는 척이 얼마나 힘든데.”
“개과천선?”
백하니의 한쪽 눈썹이 찡그려졌다.
“뭐예요, 모른다고?”
“뜻이 뭔지는 압니다. 갱생 아닙니까?”
“···말을 말아야지.”
한숨을 내쉰 백하니가 문득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나저나, 걔는 먼저 갔어요? 보기 싫은 얼굴들 다 있는데 하나가 없네.”
“보기 싫은 얼굴이라면······.”
“누구겠어요, 진지유지.”
그러고 보니, 축하 연락들이 쏟아지는 와중에도 진지유 쪽은 조용했다.
평소라면 전화라도 할 사람이··· 요즘 바빴나? 별 생각 없이 넘어가려는데 백하니가 묘한 어조로 말했다.
“뭐, 걔도 어지간히 복잡한 애니까.”
*
로만 엔터테인먼트 사옥,
대표실에 들어온 본부장이 고개를 갸웃했다.
“어라, 웬 공기청정기입니까? 처음 보는 놈인데요.”
소파에 앉아 있던 노중만 대표가 말했다.
“선물. 어제 왔으니 본부장은 못 봤을 거야.”
“심지어 한조전자··· 비싼 모델인데, JNBC에서 배우들 보내 줬다고 뇌물이라도 찔렀습니까?”
“그쪽에선 전화만 왔지. 저건 백하니가 보냈어, 미세먼지에 급사하지 말라더군.”
껄껄대는 웃음소리가 대표실을 울렸다. 겨우 웃음을 멈춘 이성철 본부장이 찔끔 나온 눈물을 닦아냈다.
“요즘 하니가 이상한 컨셉을 잡았네요. 기부천사라도 되려고 그러나.”
“자네한테도?”
“예. 며칠 전에 새 명패랑 그 뭐야, 이백만 원짜리 의자가 왔더라고요. 지난번에 던져서 부쉈던 거 대신이라면서.”
백하니가 달라졌다.
사고를 안 치는 건 물론, 일전 난동을 부렸던 이들에게 화해의 손길까지 내밀고 있다.
이성철 본부장에게는 새 명패에 유명 브랜드 의자를 보내고, 유준일 실장에게는 탈모샴푸와 흑채 스프레이가 날아갔다.
선물이 하필 회사로 날아와서, 싱글벙글하며 소포를 뜯은 유준일은 화를 내야 할지 기뻐해야 할지 헷갈리는 표정이 됐다.
‘하··· 이거 멕이는 거 맞죠? 저랑 싸우자는 거 아닙니까, 예?’
‘그냥 써. 어차피 필요하면서 뭘 내숭을 부려.’
‘아니, 본부장님! 전 머리카락이 체질적으로 얇은 거라니까요!’
눈치 빠른 이들은 변화의 시기를 안다.
필시 백정장군, 그 시대극을 찍고 난 다음일 것이다.
박건에게 홀딱 반한 거다, 저 백하니가 드디어 철이 든 것이다··· 소문은 무성했지만 어느 것 하나 진실로 밝혀지진 않았다.
이성철 본부장이 보기에도 그렇다. 누군가에게 잘 보이려 옛 만행들을 주워 담을 정도로 백하니가 계산적인 인간은 아니므로.
그보다는 자연스러운 변화에 가깝다. 얼어붙은 폭포가 조금씩 녹고, 겨우내 쌓인 나무의 눈이 훈풍에 날려가듯이.
“사이가 아직 좋아 보이더라고요. 이번 쫑파티에도 간 것 같고.”
“그러게. 신승이랑은 별 시너지가 안 났는데.”
소속 연예인이다 보니, 대표 배우들끼리는 원체 접점이 많긴 했다.
구신승과 화보를 찍었을 때는 서로 소 닭 보듯 했고··· 최필립과는 영락없이 견원지간, 진지유랑은 못 잡아먹어 안달이었더랬다.
노 대표가 느긋하게 다리를 뻗었다.
“보다 보면 신기해. 처세가 특별히 좋은 것도 아닌데, 사람들이 늘 옆에 있단 말이지.”
“뭐··· 리더십 때문 아니겠어요? 어딜 가나 주인공이 되는 타입이잖아요.”
“아냐, 해야 하니 앞장을 서는 것뿐이지. 본인이 궂은일을 짊어지는 게 익숙하니까.”
사람을 이끄는 것을 좋아하는 자와, 앞서 희생하는 자는 분명 다르다.
고개를 끄덕이던 이성철 본부장이 물었다.
“대표님, 지유 쪽에는 별 소식 없습니까?”
방금까지와는 사뭇 다른, 가라앉은 음성이다. 노중만의 표정도 굳어졌다.
“아직 잠잠해. 그렇게 난장을 피웠으니, 몇 주는 더 붙어서 지켜봐야지.”
끝났다고는 하지 않는다.
당장 노중만 자신만 해도 도처에 적들이 즐비하지 않은가.
한 방 먹은 DG와 건재한 조이너스. 호시탐탐 틈을 노리는 로만의 경쟁자들처럼, 인간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고를 짊어지고 살아간다.
“신경 좀 써 줘. 충격이 클 거야, 접근금지 상태에서 또 덤벼들었으니.”
“제가 어떻게요. 저희 회사로 지유 데려온 건 대표님이신데.”
“데려온 사람과 마음을 둘 사람이 같나.”
이성철 본부장은 어깨를 으쓱였다.
바로 엊그제, 콧대 높던 외제차 브랜드에서 광고모델 제안이 들어왔다.
주인공은 최근 가족들의 차를 한꺼번에 바꿔 줬다는 ‘망회돌’의 막내손자다.
대표실 액자 마지막에 걸린, 어느덧 로만의 메인이 된 신인에게 두 시선이 모인다.
“모르죠, 벤츠가 왔으니 똥차는 치워질지도.”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