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warrior turns into a million-dollar actor RAW novel - Chapter (131)
전직 용사는 천만배우-131화(131/199)
저마다의 행성에서 (5)
* * *
늦은 밤.
G90 리무진이 빈 공터로 들어갔다.
자신의 차 옆에 서 있던 박건은 미끄러지듯 멈춘 리무진으로 돌아섰다.
운전기사가 내리기도 전에 뒷문이 열리며, 검은 정장의 사내가 땅을 밟았다.
C&J 엔터테인먼트 총책임자 겸 CVN의 실세, 창진그룹 진규일 본부장이다.
“오랜만이야.”
“그러게, 백정장군 때 마지막으로 봤으니까.”
이후 한조타워 섭외 건으로 통화를 주고받긴 했지만, 다시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동창이라 해도 비즈니스, 또는 파트너의 성격이 강한 것이다.
“기자나 파파라치는··· 아니, 없겠지.”
감히 누구 뒤를 밟겠어, 피식 웃으며 중얼거린 진규일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건 그렇고, 무슨 일이야? 이렇게 피곤해 보일 때도 있었나?”
건은 목 뒤를 주물렀다. 아무리 써도 뭉치지 않는 근육이, 지금은 영 피로한 기분이었다.
“좀 무리했나 봐. 내 일은 괜찮은데 다른 사람 문제는 골치가 아파서.”
“그럴 만도 하지, 아무리 너라도 뚝딱 해결하긴 어려울 이슈라.”
역시, 이쪽도 알고 있는 눈치다. 회사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엔터 관계자라면 진지유에 대한 기사가 안 들어갔을 리 없다.
스마트워치를 확인한 진규일이 말했다.
“시간이 없어. 며칠 내로 기사가 더 뜰 거고, 실제 채무며 법률적 문제야 어찌 됐든 대응이 늦으면 이미지가 깎일 거야.”
“그래서 홍광석을 만나고 오는 길인데.”
“···홍광석? 민국당 2선짜리?”
고개를 끄덕이자 진규일의 표정이 기이하게 변했다.
“그 작자는 왜?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인가?”
“아니, 아버지랑 같이 작품을 들어가고 나서 연락이 몇 번 왔었어. 지금은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약속을 잡았지.”
진규일은 기사 몇 개만 보고도 상대의 저의를 파악한 기색이었다. 휴대폰 스크롤을 잠시 내리더니 신랄한 평을 내놓았다.
“연예인 빈대군.”
“빈대?”
“아버지랑 같이 찍은 그 다큐, 나오자마자 관심도 없던 소방법 개정안을 올린 것도 그렇고··· 이제 기억이 나. 엔터 사업에 관심이 있다고, 연결자를 찾는다는 소리를 몇 번 들었거든.”
냉담한 어조에 모멸이 섞인다.
그도 그럴 것이, 재계나 정계나 소위 ‘급’ 떨어지는 연예인은 한낱 노리개로 취급한다.
글로벌적 인기를 구가하는 스타라면 모를까. 이번에도 이미지 좋은 배우에 업혀 표심이나 얻자는 수작이 아닌가.
“반대가 될 수도 있지. 쌍방일지도 모르고.”
“그게 무슨······.”
“두어 가지 부탁하고, 필요한 사람들을 비서진이랑 연결시켜 줬어. 이왕 할 거면 이쪽이 필요한 것부터 하자고.”
간단한 설명이었으나, 재벌가 출신 동창은 단번에 이해했다.
“그쪽이 양지겠고 이쪽이 음지겠군. 필요한 게 뭔가?”
합을 맞춰 본 장사꾼들은 팀워크도 남다르다. 건은 본론을 꺼냈다.
“나한테 DG 쪽 파파라치가 붙었을 때, 도와주던 사람들. 잠깐 빌릴 수 있나?”
설명이 이어질수록, 진규일 본부장의 눈빛에 이채가 퍼져나갔다.
확실히 그렇게 하면··· 혼자 중얼거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가족들 쪽에서 피해자 행세를 할 수도 있어. 소속사가 끼어들었다면서 여론전을 시작하면 우리가 손해를 볼 거야.”
“그러니 빌미를 안 줘야지. 회사랑 엮을 엄두도 못 내도록.”
“그건 걱정 마. 보아하니 채무금액도 만만찮은 모양이던데, 연예인 가족이라고 떵떵거린 대가를 치를 테니까.”
회담은 곧 끝났다. 창진그룹의 삼남이 차 쪽으로 걸어가자 운전기사가 문을 열었다.
리무진 뒤편에 타려다가, 진규일은 문득 건이 서 있는 곳을 돌아보았다.
“다른 얘기지만, 궁금한 게 있는데.”
“질문해.”
“유독 각별한 동료가 있나?”
각별한 동료? 건은 잠시 고민했다.
은희욱 작가가 없었더라면 오늘 KBC의 주요 인사를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그 밖에도 두 작품을 같이 한 나종모 PD, 철왕국의 단서를 쥐게 해 준 김률 감독, 소속사 동료들과 서희도, 변휘승도······.
“딱히. 전부 비슷비슷하게 친해.”
질문 속 저의는 달리 있었던 것 같았다. 진규일은 바람 빠지는 웃음소리를 냈다.
“내 기우였던 모양이야. 소속사 식구들끼리 스캔들 날 걱정은 없겠군.”
“스캔들? 최필립 배우나 구신승 배우는 사내연애에 별 관심 없던데.”
“···말을 말자고.”
*
진지유의 병실.
꽃다발과 과일바구니, 온갖 선물들로 개인실은 이미 꽉 찼다.
오늘의 마지막 병문안 손님은 몇 년을 동고동락했던 ‘포 퀸즈’ 멤버들이다.
“언니, 그럼 내일 올게!”
“오지 마, 곧 퇴원인데 뭘 또 와.”
“와, 저 언니 말 안 듣는 거 봐. 자꾸 그러면 우리도 집에 안 간다?”
“민혜야, 막내 좀 말려라. 아무리 그래도 환자한테 진상을 부리니.”
리더 임아희의 제지 속, 멤버들이 하나둘씩 일어났다. 한 명 한 명이 작별인사를 남기는 도중, 눈이 그렁그렁해진 막내가 덥석 안긴다.
“언니, 무슨 일 있으면 전화해. 스케줄이고 뭐고 다 펑크내고 택시 탈게.”
“괜찮다니까, 바보야. 무슨 일이 왜 나니?”
팔짱을 낀 채, 병실 문간에 삐딱하게 서 있던 임아희도 거들었다.
“그래. 저 언니 빚이 얼만진 몰라도, 내 적금이라도 깨서 길바닥에 안 나앉게 할 거니까. 그만 걱정하고 빨랑 나와.”
퉁명스러운 말투지만, 동생들이 지금 어떤 마음인지는 누구보다 잘 안다. 진지유는 목으로 치미는 응어리를 간신히 삼켰다.
“웃기네, 내가 너네보다 돈 훨씬 많아.”
“뭐래. 맨날 다 뜯겼으면서.”
마지막까지 입술을 비죽거린 임아희가 나간 뒤, 비로소 병실엔 평화가 찾아왔다.
“······.”
꽉 찼던 소음이 사라지니 괜히 을씨년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빈 의자를 멍하니 바라보던 진지유는 스마트폰을 켰다.
맨 위에, 방금 들어온 메신저 알람이 반짝이고 있었다.
[임앟] : 애들 다 걱정하니까 빨리 회복해. 진짜 뭔 일 나면 나한테 연락하고.그 밖에도 무수한 톡들이 들어와 있다.
낮에 다녀간 팬카페 운영진부터 시작해서, 함께 작업했던 제작진들, 소식을 들은 동료 배우들의 조심스러운 걱정까지.
“···이럴 만한 사람도 아닌데.”
과분한 관심이며 사랑이다. 특히 팬들이 보내 준 메시지들, 카페에 올라온 글들을 읽으면서는 죄스러운 마음마저 들었다.
‘만약에 언니 잘못되기라도 했어 봐, 우리가 잘먹고 잘살 것 같아?’
한 시간 전, 그녀를 보자마자 대성통곡을 하는 막내 때문에 병실은 울음바다가 됐다.
가장 힘든 시기를 함께 넘겼고,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동생들이다. 이름뿐인 가족들보다 훨씬 각별한.
“내가, 버텨내야 하는데······.”
진지유는 시트를 꾹 쥐었다. 모두가 응원해 주고 있지만··· 이 견고한 족쇄는 좀처럼 끊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박건], 뜬 이름을 보고 잠시 망설이던 진지유는 통화를 터치했다.
“······네.”
-들어가도 됩니까?
“네?”
-슬슬 힘이 빠져서요. 실례하겠습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별안간 병실 창문이 열려 그녀는 기절할 듯 놀랐다.
무슨 곡예라도 하듯 창틀을 넘어 들어온 박건은 다시 문을 닫고 걸쇠를 잠갔다.
“어떻게, 여기가 4층인데······.”
“비상용 사다리가 있던데요. 방문객들이 많길래 밖에서 기다렸습니다.”
“···창밖에서요?”
그녀가 놀라든 말든, 박건은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웬 종이뭉치를 꺼내 건넸다.
받아든 진지유의 눈이 조금 커졌다.
“일단, 거기 맨 윗줄부터 시작합시다.”
*
그리고 다음날 아침,
입원해 있던 연예인이 사라졌다.
“정 팀장, 지유 폰은?”
“안 받습니다. 아예 꺼져 있어요.”
“위치추적, 뭐 이런 거 안 돼?”
“그건 가족들이나 가능한 걸로······.”
로만 사옥, 유준일 실장이 라운지의 테이블을 쾅 내리쳤다.
“뭐만 하면 가족이야! 지금 그놈의 가족 때문에 이 사달이 났는데!”
진지유가 없어진 것은 오전 10시경, 퇴원 절차를 밟곤 말도 없이 사라졌다고 했다.
연락을 받은 정일준 팀장이 집으로 가 봤지만 아무도 없었다.
“아니, 이 언니는 또 어딜 간 거야.”
“설마 가족들이 억지로 데려간 건 아니겠죠? 자기들 돈 갚아 달라고 시키고, 또 막······.”
“데려가긴 어딜 데려가!”
개인 스케줄도 뒤로 하고 달려온 ‘포 퀸즈’ 멤버들도 발만 동동 구를 뿐이다.
다 큰 어른이라도 아직 환자 아닌가. 가족들과 채무자들이 근처를 맴도는 상황이니, 걱정이 되지 않을 수가 없다.
“몇 시간째죠?”
“한··· 네 시간? 좀 있으면 다섯 시간째예요.”
“가능한 곳은 다 연락 넣었어요. SNS나 기자들 조용한 걸 봐선 뭔 일이 난 것 같진 않고, 우리가 오버하는 걸 수도 있으니······.”
공기형 홍보팀장이 굳은 목소리로 말할 때였다. 계속 SNS를 뒤지던 ‘포 퀸즈’의 막내, 서지후가 비명을 질렀다.
“여기! 여기이이!”
“야, 왜 그래!”
말을 못 하는 막내 대신, 재빨리 휴대폰을 빼앗아 든 임아희의 표정도 이상해졌다.
달려온 유 실장과 공 팀장, 다른 직원들도 불안한 얼굴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무슨 일이에요, 왜?”
“···여기. 지유 언니 나오는데요?”
스마트폰 화면 안에서, 웬 토크쇼가 재생되고 있었다.
*
우민영의 휴먼센터,
속칭 ‘우먼센터’.
KBC에서 금요일마다 방영되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자 엄청난 인지도를 자랑하는 우민영 박사의 프로다.
“안녕하세요, 우민영의 휴먼센터입니다. 날이 참 덥죠? 저희 아이들도 요즘 에어컨을 매일같이 트는데, 여름철 실내외 온도차는 5도에서 8도 사이가 적당하답니다.”
무려 생방송.
거기에 나오는 직업군도 다양하다. 이슈가 되거나 한때 되었던 셀럽은 물론, 연예인이나 정치인까지 섭외된다.
“오늘은 특별한 손님을 모셨는데요.”
“아니, 박사님. 우리 소개가 매번 똑같지 않아요?”
“당연하죠. 왜냐면 모든 사람은 특별하잖아요.”
조수 역할 패널의 지적에, 흰 가운을 걸친 우민영이 너스레를 떨자 웃음이 번진다.
출연자들의 네임밸류가 워낙 쟁쟁해, 어지간한 사람은 줄을 서기도 어렵다는 라이브 방송.
특히 시청자는 물론, 참관 방청객들한테도 절대 게스트를 알려주지 않는 룰로 유명하다.
“그럼 모셔 보겠습니다. 오늘의 손님들, 나와 주세요!”
곧이어 등장한 출연자들에, 방청객 사이로 술렁임이 퍼진다.
진지유와 노중만, 그 뒤를 따라 백하니까지 걸어나온 것이다.
“뭐지? 오늘 여배우 특집인가?”
“진지유랑 백하니는 알겠는데··· 저 깡패처럼 생긴 사람은 누구래?”
“쟤들 소속사 대표잖아, 로만 노중만!”
웅성거림이 멎자, 간단한 소개 뒤에 토크가 시작됐다.
평범한 인터뷰였다면 그저 신작 홍보 느낌이었겠지만··· 이곳은 휴먼센터.
작년, ‘흑의사제’ 이후 두문불출하던 노중만 대표와 두 여배우의 조합부터 희귀한데, 나오는 이야기들도 흔치 않다.
“대단하세요. 그러니까 노 대표님께서는 사비로 법정공방을 펼치신 거잖아요, 악성계약에 묶인 아티스트들을 위해서?”
“어쩔 수 없었죠. 그 당시, 계약서상의 정산비와 실제 지급액이 전혀 달랐으니까요. 특히 진 배우를 회사로 데려올 때엔······.”
노중만의 담담하고 묵직한 목소리에, 방청객들은 순식간에 몰입한다.
한쪽에서 현장을 지켜보던 두 사람. 이 기획을 만들어 낸 ‘우먼센터’ PD와 박건이 낮은 목소리로 이야길 주고받는다.
“감사합니다. 급히 드린 연락이었는데.”
“감사는요, 이걸로 로만 식구들이랑 관계가 회복되면 저희도 환영이죠.”
‘백정장군’과 ‘하이페리온’의 대결 이후, 아직도 KBC와 로만은 데면데면한 상태다.
그냥 경쟁 엔터의 배우를 썼으면 모를까, 대놓고 대립각을 세웠던 터라 어색한 것이다.
김남혁이라고 자길 소개한 PD는 무대 쪽을 흘끔 보고 다시 속삭였다.
“저기··· 윗선에선 아직도 노 대표랑 박 배우님을 고깝게 보는데, 절대 전 아니에요. CP 중에 머리가 안 돌아가는 애들이나 그러는 거죠. 그러니까 모쪼록 다음 예능은······.”
“예, KBC 쪽으로 검토해 보겠습니다.”
“아유, 그러면 최고지! 국장님도 아주 면이 팍팍 사실 거예요.”
희희낙락하는 PD에게 마주 웃어 주며, 박건은 스마트폰을 확인했다.
[1팀장] : 들어가겠습니다.진지유 일병 구출 작전이, 막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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