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warrior turns into a million-dollar actor RAW novel - Chapter (132)
전직 용사는 천만배우-132화(132/199)
저마다의 행성에서 (6)
* * *
연예인의 ‘언플’이란 양날의 검이다.
뭔가 문제가 생겼을 때, 토크쇼나 인터뷰에 나오는 것을 소속사 대표들이 선호치 않는 이유다.
우선 고려해야 할 부분이 많다.
21세기, 스타에게 겨눠지는 대중들의 잣대는 전보다 훨씬 엄격해졌다.
자칫하면 이미지 관리로 세탁기를 돌린다면서 조롱하고, 그렇다고 지나친 동정표를 받아도 아티스트의 이미지에 악영향이 온다.
모 개그맨이 사업 실패 후, 짠한 컨셉으로 제 2의 전성기를 맞았다지만 어디까지나 예능 분야였기에 가능했을 뿐.
아이돌 출신, 거기에 현직 여배우가 빚쟁이 프레임을 쓰면 좋을 것이 없다.
그런 면에서, 우민영의 휴먼캠프는 완벽에 가까운 선택지라 할 수 있었다.
[우민영의 휴먼캠프, 97번째 손님은 ‘로만 3인방’] [진지유, 데뷔 후 첫 심경고백··· “내 가족 때문에 피해받은 모든 분께 죄송하다”] [노중만과 백하니가 밝힌, 대표 ‘악질’ 소속사 대표 A씨와 C씨는 누구?]기사들이 깔리고 영상들이 퍼졌다.
한 명에게만 포커싱을 맞춘 ‘언플’이 아닌, 소속사 대표와 동료 배우가 출연해 자연스레 연예계 후일담을 밝힌다.
-속칭 노예계약이라고 하는, 사기에 가까운 불공정계약으로 고통받는 아티스트들을 빼 오자. 그 악당들을 무너뜨리고 성공하자, 이것이 제 목표이자 로만의 설립 이유였습니다.
-아, 그럼 혹시 두 배우님도······.
-전 저 정돈 아니었어서. 그럭저럭 잘 먹고 잘사는 편이었죠.
우민영의 토스를 백하니가 냉정하게 잘라내자, 사람들의 시선이 한곳에 모인다.
몰려든 앵글 속, 살짝 초췌해진 진지유가 또렷한 발음으로 말을 받는다.
-아역배우로 모델료를 받았을 때, 사실 그때부터 단추를 잘못 채웠던 것 같아요. 아이돌 시절엔 가족들과 소속사 간 마찰도 있었고.
-마찰이라면?
-정산비가 달랐던 거죠. 그 밖에도 문제가 많았는데, 결국 제가 탈퇴하면서 계약을 끊어냈어요. 그래서 예전 멤버들한텐 늘 미안해요. 이런 얘기 하지 말라고 맨날 혼나는데, 저만 아니었으면 전성기를 더 오래 누리지 않았을까 싶어서······.
애들한테 또 혼나겠다, 하면서 희미하게 웃는 진지유의 표정을 모두가 보았다.
그리고 그곳엔, 어떤 눈물로도 흉내 낼 수 없는 슬픔과 진심이 있었다.
프로그램이 끝나 갈 즈음, 마무리 멘트를 부탁받은 노중만은 짧게 전했다.
-앞으로도, 로만은 소속 아티스트들의 권익을 위해 힘쓸 겁니다. 그들을 해치는 이가 가장 가까운 가족이나 친척일지라도.
멤버 조합부터 토크까지 버릴 타선이 없다.
백하니야 같은 소속사니 그렇다 쳐도, 여간해선 수면 위로 나오지 않던 노중만 아닌가.
거기에 ‘악덕 엔터와의 전쟁’이라 불리던 십여 년 전, K-엔터의 민낯을 슬쩍이라도 흘렸다는 점에 대중들은 흥분했다.
-노중만 뭐임? 방송활동 하는 사람이엇음?
└찐으로 중요하거나 소속 연예인한테 뭔 일 생길 때만 등판함
└└여배우 빚쟁이 썰 떴잖아 ㅇㅇ 그게 진지유가 맞았던 거지
└└└생긴 건 깡패지만 그저 빛…
-원래 별명이 중크나이트였음 ㅋㅋㅋ 알 만한 사람은 알 텐데, 더러운 엔터판에 ㄹㅇ 노빠꾸 상남자임
└노크나이트 ㄷㄷㄷ
└└악덕엔터마다 찾아서 노크; 문 부수고 연예인 구출;
└└└아침부터 술취했나
-근데 진지유랑 백하니 사이 나쁜 거 아님? 이걸 지원사격해주네
└은쓰리 못 봤냐… 로만은 모두가 전우다…
└└남배우랑 여배우가 다르자너
-아무튼 이번 화는 휴캠 올타임 레전드였음.
‘휴먼캠프’ 방영 며칠 뒤, 민국당 의원 홍광석의 SNS에 장문의 글이 올라왔다.
[K-컬쳐가 세계로 뻗어나가는 지금, 엔터테이너들을 위협하는 스토킹 범죄가 있음에 비분을 금할 길이 없다. 친족의 명분으로 행해지는 가정폭력과 2차 가해, 그 외 악질적 스토킹 사례들을 근절키 위해서는 보호절차 규정이······.]꼭 ‘짠 것처럼’, 시기가 적절하다.
휴먼캠프를 본 수많은 팬들이 홍광석의 글을 RT했고, 기자들도 퍼나른 컨텐츠로 2차, 3차 재생산에 들어갔다
‘불의 길’에 이어, 또 연예인 사업에 숟가락 올리기냐는 비판도 있었으나 이슈의 거센 흐름에 금세 묻혔다.
실제 인플루언서 스토킹 사례와 함께, 여태 잠잠하던 주변 사람들의 폭로까지 나온 것이다.
제목 : 모 여배우 가족 썰
서현고 43기임. 뒷사정을 조금 아는데, 어릴 때부터 진지유는 걍 노예였음… 애가 착하니까 부모랑 형제자매, 친척까지 다 들러붙어서 등골 빼먹고 이름 팔아서 돈 빨아감.
그리고 빌려주는 사람들도 웃긴 게, 연예인이라는 말 한마디만 믿음 ㅋㅋ 가족이 아니라 생판 모르는 사기꾼한테도 홀랑 넘어갔을 듯.
로만에서 진지유 계약 직후 내걸었던, ‘아티스트를 이용한 투자 유도 및 금전갈취를 조심하라’는 입장문이 수면 위로 부상했다.
거기에 가족들의 사기 행각, 진지유가 비교적 최근까지도 채무를 변제해 줬다는 사실까지 퍼져나가며 여론은 굳어졌다.
끝까지 가족을 책임지려 한 어린 가장과, 그런 소녀를 혹사시킨 희대의 쓰레기들로.
*
중구의 한 아파트.
평수에 비해 기이하게 텅 빈 집 안에서, 진지유의 어머니 이정희가 짜증을 터뜨렸다.
“이게 어떻게 된 거니, 응?”
그 옆, 유일하게 남은 가죽소파에 웅크리고 앉아 있던 언니 진지수가 돌아봤다.
“뭐가, 또.”
“왜 연락이 없는 거냐고. 지수 네가 며칠만 기다리면 돈 나올 거라고 했잖아!”
분명 그럴 줄 알았다. 그들의 차녀, 어릴 적부터 가족들을 위해 헌신하던 둘째라면.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진지유, 용기 있는 고백··· “더 이상의 상처도 피해도 없었으면”] [로만 엔터테인먼트 공식 입장문 발표, 아티스트의 괴로움 덜기 위해 일부 보상 결정··· 단 이번이 마지막일 것] [제대로 뿔난 진지유 팬덤, ‘또 속아서 돈 빌려주면 우리가 철회시킬 예정’]공식 호구는 약이라도 먹었는지, 토크쇼에서 가족의 치부를 들추는 걸로 모자라 독한 인터뷰까지 언론사마다 해댔다.
알아낸 번호로 밤새 전화를 걸자 다음날 경찰에게 연락이 왔다. 아무리 가족이라도, 부재중을 그렇게 남기면 회사 차원에서 영업방해 소송이 들어올 수 있다는 거였다.
‘···뭐라도 잘못 먹은 건가?’
그렇다고, 매몰찬 동생년과 언플 전쟁을 벌이기엔 너무 늦었다.
애당초 연예인과 일반인··· 그것도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계에서는 아무리 가족이라도 유리하게 이끌 수가 없다.
그럼에도 마음 약한 동생을 적당히 압박하면 얼마가 나올 거라 생각했었다. 데뷔 이래 쭉 그랬고 몇 년 전에도 받아냈듯이.
···이렇게 될 줄은, 정말로 몰랐다.
“앉아있지만 말고, 너희가 좀 가서 받아와 봐. 지유 걔가 잠깐 실수한 걸 거야. 내일쯤 되면 인터뷰도 정정하고 입금도 해 줄 거라니까? 그 화장품 광고인가 뭔가도 최근에 찍었다면서!”
어머니 이정희가 히스테릭하게 다그친다.
누가 봐도 끝난 싸움이지만, 사치와 향락에 찌든 인간은 현실적 판단이 불가능해진다.
하루에도 수백만 원, 많게는 수천만 원씩을 펑펑 써대던 이들이라면 더더욱.
“실수는 무슨. 지금 우리가 감방 들어가게 생겼는데.”
“그러니까 더 찾아가야지! 네 누나 심성이 착해서, 얼굴 보고 부탁하면······.”
“엄마가 직접 가 보든가! 집 밖만 나가면 이상한 새끼들이 따라붙는데, 작은누나 아파트가 아니라 편의점도 못 간다고. 그놈들 따돌리다 아빠 발목 삔 거 안 보여?”
저만치서 담배만 연거푸 피우던 남동생이 거칠게 윽박질렀다.
며칠 전, 제 누나한테 간다며 나갔다가 새파래져서 들어온 이후 계속 저 상태다.
‘이··· 이상한 새끼들이 따라와. 대놓고 따라오다가 돌아보면 같이 쳐다보고, 또 내가 움직이면 다시 쫓아온다고!’
언니 진지수는 입술을 깨문다. 동생이 미친 건가, 싶어 그녀도 나가 봤기에 저 말이 무슨 뜻인지 안다.
‘······.’
새카만 정장, 또는 후드티를 입은 사내들이 수십 미터 뒤에서 그녀를 쫓아온다.
‘이봐요, 당신들 누구예요!’
바락 소리쳐도 답이 없다.
범죄라면 몸을 숨기는 척이라도 할 텐데, 이건 미행이 아니라 백주대낮의 스토킹이다. 마치··· 그들이 촬영 끝난 둘째에게 그랬던 것처럼.
손을 달달 떨며, 금단증상처럼 엄지를 물어뜯던 이정희 여사가 눈을 치떴다.
“그래, 그 노중만이란 작자가 지유한테 나쁜 바람을 불어넣은 거야. 사탄 들린 놈, 마귀 같은 놈, 한 대표 고소할 때부터 기운이 더러웠어.”
“엄마, 정신 좀 차려! 이젠 그 대표가 아니라 지유가 우리랑 싸우려고 한다고!”
“네가 뭘 알아, 이것아. 한 푼이라도 벌어다 보태 봤어?”
엄마와 장녀의 언성이 높아지는 와중, 무언가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재떨이를 던져 버린 남동생이 씨근거렸다.
“다들, 입 좀 닥쳐. 엄마랑 큰누나는 그깟 쇼핑 안 하면 그만이지만 난 사기죄로 징역이라고. 돈 끌어온 투자자들이 이십 명도 넘어.”
“···그거 너만 한 거 아냐.”
흘러나온 목소리에, 남동생의 눈이 커졌다. 진지수는 고개를 푹 떨어뜨린 채 중얼거렸다.
“기사에 나왔잖아. 아빠랑 엄마도, 나도 여기저기서 다 빌렸어. 지난번 명품사업 망하고, 가구 편집샵 차리면 대박 날 것 같아서······.”
“씨팔, 그걸 왜 지금 말해?”
“넌 뭘 잘했다고 욕을 하니? 네 누나들이 막둥이 사장 시킨다고 얼마나 노력한 줄 알아?”
“엄마는 빠져 있으랬지!”
오랜 욕심의 말로는 비참하다.
곧이어 몇 없는 가구들이 부서지고 깨지기 시작했다. 닷새 전, 휴먼캠프의 마지막에 나왔던 우민영 박사의 말처럼.
-어떤 균열은 부서져야 해요. 관계가 조각난다고 사람마저 조각나는 건 아니니까. 나를 다시 빚으려면··· 파편을 밟고 나아가야죠.
*
청담의 모 스튜디오.
오늘은 미팅룸이 된 건물 2층에, 만나기로 한 손님들이 속속 모였다.
“안녕하십니까.”
“아이고, 팀장님도 오랜만에 뵙네요. 이쪽··· 대표님이랑은 초면이신지?”
“예. 박건 씨랑은 몇 번 만났습니다.”
이성철 본부장이 노중만 대표를 소개하자, 군인 같은 자세로 서 있던 사내가 답했다.
창진그룹에서 진규일이 개인적으로 운용하는 비서실 전력. DG&조이너스와 맞설 때 도움을 줬던 속칭 ‘1팀장’이다.
“본론부터 하지. 저쪽은?”
노중만이 물었다. 1팀장은 여전히 고저 없는 목소리로 보고했다.
“자택에 틀어박혀 있습니다. 밖에 나가기가 무서우니 몇 군데에 연락하는 것 같던데, 돈을 더 빌리긴 어려울 겁니다.”
“매스컴에 하소연할 가능성도 있어. 진지유나 로만이 사람을 썼다면서.”
이번에는 이성철 본부장이 답했다.
“이미 여론이 고착화됐어요. 전화나 서면 인터뷰로는 한계가 있을 테고··· 어떤 지면에 싣든 악성루머로 몰 수 있습니다.”
그 사건 이후로, 2주가 흘렀다.
박건이 주도하고 그의 사람들이 움직인, ‘진지유 구출 작전’은 성공적으로 끝나 가는 중이었다.
‘대표님께 부탁드릴 일이 있습니다.’
‘내게?’
‘예. 혼자서는 할 수 없습니다.’
진지유가 쓰러진 날, 박건은 대표실이 아닌 개인 자택으로 찾아와 노중만과 독대했다.
작전은 스케일부터 남달랐다. 우호적인 국회의원으로 법안 언플을 밀고, 가족의 탈을 쓴 스토커들에게는 본인들이 하던 짓을 그대로 돌려준다.
듣고 있던 노중만이 물었다.
‘지유의 이미지는? 어떤 방식으로든 본인의 입장표명이 필요할 텐데.’
박건은 당연하다는 듯 대꾸했다.
‘적당한 프로그램이 있더군요. KBC 쪽과 이야기를 끝내 뒀습니다. 대표님과 진지유 씨, 그리고 한 명쯤 더 데려가면 될 겁니다.’
‘자네가 아니라?’
‘예. 저보다는······.’
잠시 텀을 둔 뒤, 생각지도 못한 이름이 나왔다.
‘백하니 씨가 좋겠군요.’
그리고··· 여론은 생각한 그대로 흘러갔다. 피해자와 가해자는 명백하지만, 지나친 동정표를 사지 않는 선에서.
진지유의 멘탈 보호가 문제였을 뿐, 칼을 뽑은 이상 저쪽에 밀릴 일은 없는 것이다.
“한동안은 주시해야 돼. 가족이 배신당했다는 생각에 돌발행동을 할 수도 있으니까.”
“조를 나눠 감시 중입니다. 금원 피해를 입은 채무자들 쪽도 장작을 넣었으니, 뭘 하기 전 법원에 먼저 소환될 겁니다.”
방송이 나간 뒤, 로만은 피해를 입은 채무자들 측에 일부 금액을 변제해 주었다.
그럼에도 빚이 워낙 커, 결국 민형사적 책임은 피하기 힘들 것이 확실시되고 있었다.
“그럼, 전 다음 일정 때문에.”
“잘 부탁해요. 혹시 필요한 게 있으면 우리 쪽으로 얘기하고.”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얼마간 더 의견이 오간 뒤, 목례한 1팀장이 먼저 자리를 떴다.
이성철 본부장이 큰 숨을 내쉬었다.
“···하이고, 이걸로 한 고비 넘겼네요.”
“안심은 일러. 더 지켜봐야지.”
“뭐, 이 정도까지 안전망을 쳤는데 별일 있겠습니까. 피해자들 구제도 어느 정도 됐고요.”
로만이 변제한 채무는 노중만의 사비였다.
언론엔 소속사의 할 일이니, 도의적인 책임이니 입장을 표명했으나··· 실상은 진지유 때문임을 모를 이성철이 아니다.
정작 노중만은 무표정하게 화제를 돌렸다.
“박 배우는?”
“아, 그러고 보니 오늘이 출국일이네요. 영화제 개막 전에 미리 니스로 가 있겠답니다.”
“회사엔 안 왔던데. 동생이랑 출발한 건가?”
특별한 질문도 아니건만, 대답은 얼른 나오지 않았다.
이성철 본부장은 묘한 표정으로 턱을 쓸었다.
“아뇨. 오늘은 특별 기사가 갔을걸요.”
* * *